OUR LOVELY 10KILOGRAM 우리 둘의 10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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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0년, 우리 부부의 체중은 각각 10킬로그램씩 늘었다. 충격이다. 그런데 그 10킬로그램이 꼭 지방의 무게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무게에 부부로 산다는 것에 대한 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몸무게라든지 다이어트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인생의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왔다. 체중계를 들여놓지 않는 것, 음식의 열량을 계산하지 않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그런 내가 체중계를 샀다. 살이 너무 많이 쪘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 내 몸무게는 임신했을 때를 제외한다면 생애 최고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고(따지고 보면 조금만 먹지는 않았다), 살이 찌니 숨이 차고 옷이 끼고 남들에게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얼굴이 달덩이네, 달덩이!”, “턱이 두 개.” 같은 소리나 듣고 다닌다. 좋은 소리만 듣고 살아도 사는 게 딱히 즐겁지 않은 마당에, 이런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니 정말 우울하다. 그래서 체중계를 산 것이다. 나 자신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어느 날 밤 몰래 몸무게를 재고 있는데 남편이 뒤로 슬쩍 다가왔다. 내 몸무게를 본 그는 경악하더니 미친 듯이 웃어댔다. 열이 받은 나는 싫다는 그와 격투를 벌여 단두대 위에라도 세우듯 체중계 위에 그를 억지로 세웠다. 남편의 무게도 엄청났다. 우리는 둘 다 결혼 전보다 10킬로그램이 늘어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서로 살을 빼자고, 지금보다 5킬로그램만 빼자고 손가락 걸고 굳게 다짐한 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붙은 10킬로그램의 살은 어떤 것일까. 그건 그냥 단순한 지방일까. 밤늦은 시간에 참지 못하고 먹어치운 치킨이나 맥주일까. 입이 심심하면 쑤셔 넣던 머핀일까.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늘어난 밥의 양일까. 어쩌면 그건 그냥 살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일지도 몰랐다. 둘이 함께 보낸 10년의 세월. 그렇다면 그건 어떤 세월이었을까. 1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10년 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같은 사람들일까. 10년 만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었을까.

테오도르라는 남자는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 그는 아내와 별거 중이고 곧 이혼하게 될 것이다. 아직 아내를 잊지 못하는 이 외롭고도 외로운 남자는 어느 날 인공지능 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영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소피아 코폴라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래전, 재기발랄한 신인 감독이던 <그녀>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일을 위해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이 여행에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의 아내가 동행했고, 남편이 일하러 다니는 동안 아내는 낯선 도쿄에서 마음 붙일 데를 찾지 못하고 외로워했다. 이 기억은 스파이크 존즈의 아내였던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모티브가 된다. 자신만의 영화적 색깔이 확고한 젊고 전도유망한 감독과, 아버지가 무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인 영화계의 귀족 처녀는 결국 결혼 4년 만에 이혼하고 말았다. 그들은 왜 헤어진 것일까. 딱히 내가 궁금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게다가 두 사람 역시 그 결정을 아쉬워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테오도르가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아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독 자신의 실패한 결혼 생활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결혼해서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사만다가 물었을 때, 테오도르는 사랑에 빠진 어린 두 사람이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세계를 가꾸며 성장해 나가는 그 자유로움과 스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하지만 그게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것. 서로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 변화하고 삶을 공유하는 것.” 

그렇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28살에 결혼했다. 남편은 나보다 두 살이 어려서 26살. 철없을 나이였다. 곧 아이가 태어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삶이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 부부가 되는 것, 부모가 되는 것, 사회인이 되는 것. 그 모든 것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 둘에게 쉽지는 않았다.

이미 독립과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나보다 남편이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닥쳤다.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의 심정은 아이 하나는 손에 잡고 다른 하나는 등에 업은 채 소달구지에 보따리를 산처럼 싣고 누가 퍼붓는지도 모르는 폭격을 피해가며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피난을 가는 사람의 심정이나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포기해 버릴까. 다 놓아 버릴까. 

하시구치 료스케의 영화 <나를 둘러싼 것들>의 부부 쇼코와 카나오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 야무지고 꼼꼼한 아내 쇼코는 임신 가능성이 큰 날들을 체크까지 하면서 임신을 기다린다. 작은 구둣방에서 구두를 닦는 헐렁한 남편 카나오는 여자 손님들에게 집적대기나 하더니 급기야 구둣방을 그만두고 법정 화가로 일하겠다고 나선다. 쇼코에게 그런 남편은 영 못 미덥기만 하다. 쇼코는 곧 임신하지만 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만다. 쇼코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신적으로 점점 무너져 가고, 카나오는 법정에서 그림을 그리며 온갖 끔찍하고 가슴 아픈 사건들과 그 사건의 범인들, 피해자들을 목격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의 상처 입은 마음을 읽으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던 쇼코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의 집들이 때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자 기겁하는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죽이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카나오가 무심하게 거미를 죽이자 쇼코는 그에게 달려들어 악을 쓰며 그를 마구 때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 거미는 쇼코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의 마음, 죽은 아기와 함께 묻어버린 그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카나오는 치솟는 분노로 발작을 일으키는 쇼코를 달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해. 모두한테 미움받아도 되잖아.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사랑받아도 되잖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사랑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내 옆에 있어 주긴 하는데, 나를 위해 있어 주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쇼코는 고백한다. 그의 마음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노라고. 두 사람은 함께 산다. 또 같은 상처를 안고 있다. 두 사람은 가족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두 사람의 세계는 아주 잠깐 겹칠 뿐이다. 두 개의 선로처럼 만날 듯하면서 만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부부인 것이다.

이런 상태로 계속 함께 살아가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려는 남자와는 함께 사는 게 옳은 걸까. 문제를 끌어안고 무너져버리는 여자와는 계속 살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은 어떤 때에 헤어지는 것을 결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결정을 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겁이 많아서, 비겁해서 헤어지지 못하는 걸까. 부부는 왜 헤어지는 걸까. 부부는 왜 헤어지지 않는 걸까. 부부는 왜 계속 함께 살아야 하는 걸까. 부부는 무엇으로 함께 살아가는 걸까. 

한창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던 어떤 날에 마트에 갔다가 어느 부부를 보았다. 늙고 초라한 부부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그런 아저씨와 아줌마였다. 촌스러운 옷을 입고 촌스러운 머리 모양을 한, 한눈에도 넉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싸구려 옷들이 잔뜩 걸린 옷걸이 쪽으로 다가왔다. 아내가 웃으며 남편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이거 당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렇지?”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옷을 몸에 대보았다. 별로였다. 아내는 괜찮다며 칭찬을 했고 남편은 웃었다. 둘은 그 옷을 다시 내려놓고 사라졌다. 부부라는 건 그런 거 아닌가. 그냥 별로 잘날 것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보듬고 의지하고 붙들어 주면서 사는 그런 거 아닌가. 나는 남편과 계속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을 때 그 순간을 종종 떠올려 보곤 한다. 결혼한 후에 나는 사랑을 다시 배웠다고 생각한다. ‘배웠다’가 아닌 ‘배웠다고 생각한다’고 쓰는 이유는 당연히, 내 생각이 착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누가 물어보면 분명 머뭇거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는, 그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는 타인이 알려줄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일이다. 두 사람의 일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오롯이 두 사람의 것이다. 그 정의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사랑이 힘든 것이다. 우리는 테오도르와 그의 아내처럼 헤어질 수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별것 아닌 일들로 헤어지곤 하니까.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비난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몰랐다. 헤어지지 않고 용케 버틴 후 돌아보니 헤어지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쇼코는 집들이에 놀러 온 사이좋은 신혼부부에게 묻는다. 

“사이가 좋아 보이네. 슬픈 일 기쁜 일 다 말해줘?”

역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슬픈 일 기쁜일 다 말해주는 것. 나는 오래전에 사귀었던 한 남자가 내게 해준 말을 기억한다.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들이던 우리는 사정상 자주 볼 수 없는 사이였는데, 서로를 좋아하긴 했지만 만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했었다. 그러자 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그러는데,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일수록 할 말이 더 많은 법이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게는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일수록 할 말이 더 많다’는 당연한 말이 무척 다정하게 들렸다(물론 ‘엄마가 그러는데’는 빼고). 아무튼 나는 여전히 그 말이 참 마음에 든다. 할 말이 많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테오도르가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거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것이리라. 바로 그 다정한 대화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남편과 함께 걷고 싶다. 걸을 때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물론 이야기를 하다가 싸울 때도 잦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이야기를 하는 건 좋은 것이다. 그러다 가끔 손을 잡기도 한다. 그렇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손 잡는 것을 잊어버린 부부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손에 아이의 손이나 짐 같은 것이 들린 채로 10년을 보내다 보면 웬만하면 그렇게 된다. 결혼 후 10년쯤 지나니 이제야 서로의 손을 잡을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면 사람은 겸손해진다. 그저 내 곁에 누가 있어서 내 손을 잡아준다는 이 현실이 고맙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는 것이, 가끔 힘을 주어 꽉 쥔다는 것이 고맙다. 

쇼코는 남편의 손이 좋다고 말했다. 딱히 눈에 띄지 않는 부위. 눈도 아니고 코도 아니고 입도 아닌 손. 나도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왜 노부부들이 어깨나 허리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는지 알 것 같다. 열정이 사라진 후 남은 담백한 형태의 사랑은 손으로 전해진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여기 네 옆에 서서 너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것. 계속 네 곁에 함께 있겠다는 것. 

그러니까 그것은 사랑이다.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따뜻하고도 단단한 그것은 분명,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의 무게는 10킬로그램이다.

그녀 Her
스파이크 존즈 감독 | 드라마 | 미국 | 126분

다른 사람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작가 ‘테오도르’.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이고 외로움과 공허함에 몸부림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일, 가능한 걸까?

나를 둘러싼 것들 ぐるりのこと。, All Around Us
하시구치 료스케 감독 | 드라마 | 일본 | 104분

똑 부러지는 아내 쇼코, 그에 비하면 조금은 우유부단한 남편 카나오. 그들에게 유산이라는 시련이 닥친다. 아픔을 겪는 건 90년대의 일본 사회도 마찬가지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부부는 그들을 둘러싼 사람과 주변의 사소한 일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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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일러스트 이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