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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업식 이주희·동경진

어느 날 트럭을 타고 서울을 떠난 부부가 있다. 신혼 짐을 짐칸에 모두 싣고 연고도 없는 경주에 자리 잡은 이 부부는 ‘계업식’이라는 가게를 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성실하게 운영해 나간 덕에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이른바 ‘맛집’이 되었지만, 이들은 이 흐름에 안주하지 않고 한남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경주로 갈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계업식이라는 이름을 알렸다는 것, 자가용을 타고 올라왔다는 것, 그리고 ‘동그래’라는 귀여운 아이가 함께라는 것. 아직 어려 세상이 새로운 그래는 모든 배움이 즐겁고 반갑다. 머지않아 동생이 생길 이 아이도 자기만의 걸음으로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 가겠지, 그 세상엔 언제나 멋있는 아빠와 엄마가 함께일 테다. 

우리만의 리듬으로

“어떻게 보면 무식한 거고, 어떻게 보면 용기죠. 아무것도 모르니까 겁도 안 났어요.”

(아이를 보며) 안녕? 가족 소개해 줄 수 있어?

그래 싫어!

주희 아빠 이름이 뭐야?

그래 동경진.

주희 엄마 이름은?

그래 이주희.

주희 그래 이름은?

그래 동그래.

 

(웃음) SNS에서 그래를 보는 게 소소한 낙인데 실제로 보니 더욱 귀엽네요. 지금 몇 살이에요? 

주희 네 살이요. 이제 30개월이 되었는데 요즘 우리 집에서 제일 무서우신 분이에요. 자기주장이 어찌나 강한지, 말할 때마다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쾅쾅 때려요. 요 작은 주먹으로 어찌나 큰 소릴 내는지(웃음).

 

참, 며칠 전에 기쁜 소식을 들었어요. 둘째 임신하셨다면서요!

주희 막 13주에 접어든 참이에요. 그래한테도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말해줬는데 처음엔 “동생 싫어! 동생 싫어!” 그러더라고요. 무작정 싫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동생 나오면 그래가 우유도 챙겨 주고 보살펴 줘야 한다고 몇 번 이야기해 주니까 지금은 “동생 나오면 우유 내가 줄 거야.” 그래요. 아직은 눈앞에 동생이 있는 게 아니어서 태어나고 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좀 두렵기도 해요.

경진 동생이 생기면 질투 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당연한 현상이지만 어떤 반응일지 알 수 없으니까 자꾸 마음의 준비를 하게 돼요. 예상치 못한 행동도 한다더라고요.

주희 동생의 존재를 계속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번은 “언니 하고 싶어, 누나 하고 싶어?” 물어봤더니 언니가 하고 싶대요. 저도 자매를 원하는데 아직 둘째 성별은 모르는 상태예요. 둘째가 여자애가 아니라면 셋째를 낳을 의향도 있어요. 제가 세 남매 중 장녀여서 아이 셋에 대한 꿈이 있거든요. 근데 요즘 입덧이 너무 심해서 셋째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이고, 대화 중에 혹시 힘들면 이야기해 주세요. 그래 이름부터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한글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뜻이 어떻게 돼요?

주희 아무 뜻도 없어요. 굳이 의미를 담지 않았거든요. 그래라는 이름은 아이가 생기자마자 정한 거였어요. 그래서 다들 태명인 줄 알더라고요. 중성적인 이름이다 보니 어떤 성별이어도 상관없겠다 싶었죠. 동그래란 이름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자식 이름으로 장난친다.’는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는데요. 저흰 진지하게 지은 이름이고 이 이름을 참 좋아해요. 제 이름이 두루 주周에 기쁠 희喜인데 두루두루 기쁜 사람은 아니거든요. 부모가 이름 뜻을 지어준다고 해도 훗날 이런저런 이유로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래서 이름으로 ‘이렇게 살거라.’ 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나 싶어요. 그래이름은 큰 고민 없이 떠오르는 단어로 지은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완벽해요. 이만큼 완벽한 이름은 없을 거예요.

경진 성 때문에 완벽해질 수 있는 이름이죠. 김그래, 이그래, 박그래 다 좋지만 동그래가 가장 완벽하잖아요(웃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제가 동씨여서 아는데, 별명은 무조건 똥이 될 거예요. 조금만 살이 붙어도 ‘똥그래’로 불리겠죠. 놀림당할 게 분명하지만 자존감이 높고 둥그런 성격이면 금세 이겨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저희가 자존감을 잘 만들어 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주희 둘째 소식을 알리고 나니 많이들 이름을 기대하는데, 그래만큼 좋은 이름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아요. 아직 정해둔 건 없고, 지금은 ‘생’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성이 동씨니까 ‘동생’(웃음). 

 

주희 씨 작명 천재 같아요(웃음). 프러포즈를 타투로 했다고 알고 있는데 살짝 볼 수 있어요? 

경진 (팔을 걷으며) 브이라인 만들어 준다고 뒤에서 얼굴에 브이로 손받침을 만들어서 찍은 저희 사진이 있는데, 그걸 도안으로 몰래 타투 하고 ‘Marry Me’라는 글귀를 새겼어요. ‘빅 이벤트다!’ 그러면서 생일날 보여줬죠. 

주희 남들은 로맨틱하다고 하는데 전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생각해 보세요, 팔에 우리 사진을 타투로 새기고 결혼해 달라니….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결혼해서 잘 지내고 있네요(웃음). 한 번은 그래가 이 타투를 보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는 어딨어?” 

경진 그래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도 새겨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바빠서 아직 시도를 못 했어요. 주희가 그래를 안고 있는 사진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래가 그때보다 많이 커져서 도안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이왕이면 지금 그래 모습을 새기고 싶거든요.

(고양이가 다가온다.) 식구가 또 있네요. 애교가 무척 많아요. 

주희 얘 이름은 ‘경매’예요. 저희가 살갑고 다정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손님들이 오면 엄청 좋아해요. 다들 저희보다 예뻐해 주니까요. 손님맞이에 최적화된 고양이죠(웃음).

 

요즘 계업식 업무로 바쁘시죠? 단어만 봐도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좋은 이름이에요.

주희 제가 한 최고의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동그래와 계업식. 그래도, 계업식도, 정해진 게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떠오른 이름들이에요. 닭 요리를 하겠다는 생각만 있던 때였는데 샤워하다가 갑자기 생각나더라고요. 떠오르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경진 제가 닭을 워낙 좋아해서 닭으로 요리하는 가게를 열고 싶었어요. 계업식 오픈 전부터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닭 요리를 계속 넣고 있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한테 “너는 나중에 꼭 닭집 해라.” 이런 이야길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진짜 해볼까 싶더라고요. 오리지널 닭 메뉴도 연구했지만 양식 쪽에서 경험을 쌓아온 터라 대중적인 메뉴에 닭을 접목하기도 했어요.

 

요리를 하는 거랑 연구하는 건 또 다른 분야처럼 보여요.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경진 아니요, 저는 원래 운동선수였어요. 학창 시절엔 유도를 했거든요. 요리사를 꿈꾸진 않았지만 흘러 흘러 요식업으로 먹고살고 있네요. 처음 해본 요리는 떡꼬치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길거리에서 먹어본 떡꼬치가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이걸 매일 먹고 싶은 거예요. 근데 사 먹을 돈이 없으니까 집에서 따라 해보자 싶었죠. 간장, 고추장, 마늘, 올리고당, 설탕… 정확한 계량도 없이 재료만 대충 알아 와선 소스를 만들고 떡을 튀겨서 발라 먹었어요. 근데 그게 재밌고 뿌듯하더라고요. 

 

떡꼬치에서 시작된 요리가 계업식까지 온 거군요. 계업식은 경주에서 시작된 가게죠. 서울에서 활동하시다가 결혼 후 돌연 경주로 가셨고, 잘되던 가게를 또 돌연 한남동으로 이전하셨어요.

주희 결혼하고 우리 가게를 내자고 마음먹었는데 돈이 넉넉지 않으니까 다른 지역으로 가야겠다 싶었어요. 서울은 집값도, 가겟세도 너무 비쌌고 사람들 기준도 높아서 여러모로 장벽이 높았거든요.

경진 저는 뭘 하든 할 거라면 확실히 하자는 성격이에요. 다른 지역에 가게를 내자고 마음먹었는데 서울 근교로 가는 건 제 기준에 너무 어정쩡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더 먼 곳들을 알아보면서 여기저기 다녀봤어요. 통영도 후보지 중 하나였는데 막상 가보니까 동네 분위기가 생각과는 좀 달랐어요. 그러다 신혼여행지였던 경주에 가봤는데 ‘여기다!’ 싶더라고요. 외진 동네에 가게를 차렸는데 그 한적한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첫 가게를 연 거죠.

연고가 없는 데서 첫 가게를 여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요.

경진 어떻게 보면 무식한 거고, 어떻게 보면 용기죠. 아무것도 모르니까 겁도 안 났어요.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굶어 죽기라도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내려갔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서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엔 동네 사장님들의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고, 그러다 코로나19로 국내 여행지가 핫해지면서 경주가 흐름을 타기 시작했어요. 예쁜 카페와 식당이 많이 생겼고 외부에서 관광객이 유입되는 속도도 빨라졌죠. 계업식은 그 분위기 덕분에 점점 더 잘 됐어요. 

주희 서울에서 오시는 분도 많았고, 반대로 아래 지역에서 오시는 분도 많았어요. 경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지 사람들까지 찾아오니까 엄청 바쁘고 분주했죠.

 

경주에 취재하러 갔을 때 인터뷰이가 계업식을 추천한 적도 있어요. 그 정도로 굉장히 잘 된 가게였죠. 

경진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장사가 잘 돼 보여도 돈을 절대적으로 많이 벌고 그러진 못해요. 

주희 한남동 이곳도 건물을 통임대해서 1층에 식당, 위층은 집으로 사용하니까 엄청 부자인 줄 아시는데… 해명하기도 지쳐서 이젠 그냥 오해받으면서 살려고요(웃음).

경진 건물주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데 가당치도 않아요(웃음). 사실 경주로 내려갈 때랑 지금이랑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달라진 거라곤 그래가 생겼고, 트럭 타고 내려갔다가 자가용 타고 올라온 정도죠. 신혼일 땐 짐이 얼마 없어서 트럭에 모든 짐을 싣고 셀프 이사했거든요. 이렇게 얘기하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삶의 수순을 잘 밟고 있는 것 같긴 하네요.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내 가게를 열고, 적절한 시점에 아기를 낳고, 둘째를 갖고, 자가용이 생기고…. 근데 저희는 이걸 성공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뭐든 하고 싶은 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항상 계획도 많죠. 계업식을 확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계업식 바깥의 일도 해보고 싶어요. 일본 친구 도움을 받아 도쿄에 지점을 내보고 싶다는 꿈도 있고요. 

주희 경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갔는데요. 그 생활이 이어지니까 지루하더라고요. 돈도 벌 만큼 번다고 생각했는데, 루틴이 잘 잡히니 오히려 불안해졌어요. 새로울 게 없어서요. 경주에선 셰프가 오빠 혼자였기 때문에 메뉴를 발전시키거나 새롭게 연구할 시간도 없었고, 늘 하던 대로 가게를 오픈하고 요리를 내어드리고 문을 닫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그 생활이 자꾸 무료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겠다 마음먹은 거군요. 

경진 생각해 보면 안정적이라고 느낄 때마다 새로운 목표를 찾아서 도전해 온 것 같아요. 지금 여기서 안주하기엔 둘 다 너무 젊고, 열정도 많으니까요. 경주에서 장사가 잘 된 건 사실이에요. 근데 경주엔 오랜 시간 자기 가게를 꾸려운 사람이 많고, 그런 가게를 응원하고 아끼는 문화가 있어요. 반면, 서울은 맛집의 기준이 높고 맛에 대해 예민한 면이 좀 있죠. 상대적으로 경주는 각박하지 않으니까 서울로 가고 싶다는 결심 자체가 잘 안 서는데, 저흰 그 안정감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 되는 거랑은 별개였죠.

주희 무엇보다 그래가 아빠를 엄청 좋아하는데 아빠랑 놀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웠어요. “아빠 언제 와?”를 입에 달고 살았죠. 저도 거의 아빠 없이 애를 키우는 수준이었고요. 그래서 직원을 충원한 것도 있어요. 한남동에 오픈한 지 아직 한 달이 채 안 돼서 가게도, 집도 정리가 덜 됐는데요. 정신없는 이 시기가 지나가면 안정기가 찾아올 테고, 그럼 저희는 또 뭔가를 계획할 것 같아요.

뭔가에 도전한다는 건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이잖아요. 용기도 필요하고, 두렵기도 하고요. 

주희 솔직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그런데 그걸 해결하는 게 너무 짜릿해요. 목표에 다다르면 또 다른 미션을 자꾸 만들고 싶어요. 

경진 주희랑 저는 그게 잘 맞아요. 보통은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잖아요. 특히 자영업은 기복이 심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아요. 근데 전 직장인은 체질이 아닌 것 같아요. 1년 정도 회사에 다닌 적도 있는데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피곤한 시간이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그 시절의 제가 가장 불행해 보였다고 하고요. 

주희 돈을 가장 많이 번 시기였는데도요. 

경진 지금은 하루에 두세 시간 잘 때도 많고, 손님이 몰리면 더할 때도 있는데요. 지금 생활이 훨씬 만족스럽고 덜 피곤해요. 확실히 자기한테 맞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요식업이 체질이란 생각도 드는데 운동하다 요리를 하는 것도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경진 운동을 하다가 여러 이유로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됐을 때 적응이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했다는 사실만으로 만들어지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힘도 잘 쓸 것 같고, 싸움도 잘할 것 같고. 그래서 소위 ‘일찐’들이 저랑 어울리고 싶어 했어요. 형들이 자꾸 데리고 다니려고 했죠. 근데 전 무리 지어 다니고, 술 마시고, 싸우는 그런 걸 안 좋아하거든요. 그 스트레스가 커서 학교를 그만두었고,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는데요. 학원만 다니기는 지루해서 그때 처음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열일곱이었는데, 시급이 1,700원이던 시절이죠. 

주희 진짜 옛날 사람이에요(웃음). 근데 또 뭐든 확실히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 아르바이트를 엄청 잘해 버린 거예요. 

경진 지금은 사라진 문화인데, 그 당시엔 전국적으로 스프링업이라는 청소 대회가 있었어요. 맥도날드 지점별로 가장 깨끗하고 잘 꾸며놓은 지점에 상을 주는 거였죠. 근데 그것도 대충 하기가 싫은 거예요. 시급도 안 받고 하루에 한두 시간 자면서 일주일 동안 매장 청소하고 가꾸고 그랬어요. 그렇게 4년 동안 우승을 했죠.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주희 지금도 주방이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뭐든 대충 하질 않는 사람이죠. 저희가 처음 만난 곳이 ‘함박식당’인데, 거기서의 에피소드도 그래요. 오빠는 셰프, 저는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오빤 셰프이기 전에 그 식당을 엄청 좋아하던 손님이었대요. 함박식당 음식을 처음 먹고 너무 맛있어서 매일매일, 일주일 내내 왔다는 거예요. 이런 거 보면 진짜 뭐든 확실히 하는 것도 능력이구나 싶어요(웃음). 그때 사장님과 연을 맺어서 오빤 주방으로 들어가고, 저는 그때 마침 아르바이트생이 돼서 만난 거죠.

함박식당 그립네요. 두 분 일하실 때 저도 자주 다녔거든요(웃음). 주희 씨는 원래 디자인 작업을 해온 걸로 알아요. 함박식당 메뉴판 작업도 직접 하셨죠. 지금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지내고 있는데 어떻게 요식업 쪽을 생각하게 됐어요? 

주희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회사는 다녔어요. 운동하다가 요리를 시작한 오빠와 달리 저는 디자인 외길을 걸은 편이죠. 어릴 때도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고, 이직도 계속 디자인 계열로 했고요. 전단지 디자인, 잡지 디자인, 광고 디자인…. 회사원으로 지내면서 연이 닿아 식당 아르바이트를 한 건데 그게 이렇게 계업식까지 이어졌네요. 그래도 디자인 작업은 계속 해오고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는 외주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고, 함박식당에 있을 때도 말씀하신 것처럼 메뉴판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같은 걸 그렸어요. 계업식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매일 “은퇴하고 싶다.” 그러지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계속해 오던 업에 변화가 생기니까 어때요?

주희 컴퓨터 앞에서 디자인만 할 때는 몰랐는데, 의외로 사람들이랑 섞이고 소통하는 데 재능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직원이 하나둘 생기면서 저 친구는 뭘 잘하고, 뭘 어려워하고… 그런 걸 빨리 판단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나서서 이끄는 스타일이어서 직원들과 소통을 잘하는 편인데 그게 가게 운영에도 보탬이 돼요. 저도 그렇게 끌고 나가는 게 너무 재밌고요.

경진 저보다 주희가 그런 걸 훨씬 잘해요. 전 그게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거라고 봐요.

 

공감은 관계에 참 중요한 능력이죠. 서울로 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서울 중에서도 한남동을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경진 그것도 역시 도전이었어요. 저희는 경주에 가기 전까지 계속 마포구에서 활동해서 그쪽에 아는 사람이 많아요. 요식업을 하는 지인도 있고요. 아마 다들 당연히 마포구로 올 줄 알았을 거예요.

주희 근데 또 뻔한 게 싫은 거예요. 마포구로 가면 우선은 아는 사람들이 찾기 쉬운 곳이 될 텐데, 그건 제자리걸음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한남동 중에서도 대로변이 아닌 안쪽에 자리 잡은 것도 나름대로 도전이었고요. 사실 처음에 알아본 자리는 한강진역 바로 앞이었어요. 계약을 앞두고 건물주를 여러 번 만났는데, 자꾸 계약을 미루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경주 맛집이라고는 하는데 건물주한텐 입증이 안 된 가게니까 꺼림칙했나 봐요. 건물주 본인 집에도 데려가고, 돈이 많다는 걸 넌지시 자랑도 하는데 계약은 자꾸 미루고…. 기분이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이럴 바에는 안 들어간다 마음먹고는 저 건물주한테 우리 가게가 진짜 맛집이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어요. ‘웨이팅 터지는 한남동 맛집이 되겠다!’고 결심한 거죠(웃음). 

경진 결국 들어가려고 했던 자리에 못 가게 되어서 서울로 올라오는 걸 미루려고 했어요. 근데 아는 분 가게에 왔다가 우연히 통임대 하는 이 건물을 보게 된 거예요. 한적한 동네 분위기도 좋고 집이랑 가게를 한 건물에서 같이 쓸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서 ‘여기다!’ 싶었어요. 이 동네는 어르신도 많고 아이나 가족도 많은 일반적인 동네예요. 이 건물 또한 보통의 가정 주택이고요. 독특한 구조 때문에 엄청 많이 고친 줄 아시는데, 본 건물에 커버를 씌워 눈에 띄게 만들었을 뿐 크게 고친 데는 없어요. 이전 건물이 보이지 않게끔 가리는 식으로만 정비한 거죠. 건물 모양을 고민할 때도 요새 핫플레이스라고 하는 뻔한 건물처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저희가 남들이 안 하는 걸 유독 열심히 하는 편이어서 사서 고생할 때가 많은데요.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그걸 잘 해내는 데서 큰 보람을 느껴요.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주희 아직은 어려서 이렇다, 저렇다 섣불리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요. 근데 도전하는 건 분명히 좋아하는 거 같아요. 요새 어린이집에서 이것저것 배워 오곤 하는데, 얼마 전에 가위질을 배워선 한동안 종이를 마구 오리고 다녔어요. 가만히 보면 새롭게 배우는 걸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경진 새로운 걸 해보는 데 겁이 없는 편이에요. 근데 또 조심성은 꽤나 있고요.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즐기는 것 같은데, 요새는 엄마, 아빠한테 도움 되는 걸 기쁘게 여기더라고요. 이를테면 자기 전에 거실 불 끄기, 아빠 일할 때 문 닫아주기, 엄마 요리할 때 계란 섞어주기 같은 거요. 간단한 거 여도 가족의 일원으로 자기 역할을 할 때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어릴 때 관심이 재능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래가 요새 좋아하는 건 뭐예요?

주희 그걸 말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보통 애들은 좋아하는 캐릭터나 취향 같은 게 확실하던데 그래는 뭐든 두루두루 좋아해요. 어제는 로보카 폴리, 오늘은 타요…. 애니메이션도 고집하는 거 없이 이것저것 보는 편이죠. 그래 성향을 파악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신동이 아닌 건 확실해요(웃음). 진짜 영재들은 그래 나이 때부터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하잖아요. 아, 눈에 띄는 재능이 하나 있긴 해요. 관찰력이 특출하거든요. 지금보다 어릴 때도 그랬어요. 어린이집 간 사이에 집 안에 뭘 바꾸어 놓으면 귀신같이 알아채는 걸 보면 신기했죠. 아빠보다 훨씬 잘 알아서 놀랄 때도 많아요. 관찰력 때문인지 길눈도 밝아요. 몇 번 안 가본 길도 금세 외워선 카페 가는 길에 “커피 이모네 가는 거야?” 하고 물어볼 때도 있어요. 

 

이렇게 작은 몸 안에 어떻게 그리 많은 데이터가 저장되는 걸까요? 초능력 같기도 한데요(웃음). 돌발 질문! 두 분께 초능력을 드릴게요. 어떤 능력을 갖고 싶으세요?

경진 요즘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조차도 너무 아까워요. 가게가 바로 아래층인데도요(웃음).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럼 가족이랑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고, 업무가 바빠도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주희 저는 분신술이요.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서 저를 여러 명 만들고 싶어요. 머리숱이 많기도 하고(웃음)…. 주희1은 육아하고, 주희2는 잠 좀 자고, 주희3은 작업하고, 주희4는 아기 반찬 만들고, 그럼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저한테 제일 필요한 초능력 같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그럼 그래에게 초능력을 하나 준다면요? 

경진 아프지 않는 능력? 목감기로 기침하는 것만 봐도 ‘저렇게 작은 애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디 크게 다치거나 아프면… 아, 상상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주희 마찬가지로 그래가 아프지 않는 게 제일 좋지만… 음, 지금 그래한테는 뭐가 제일 필요할까요? 제가 분신술을 써서 주희5가 종일 그래를 밀착 육아해준다면 특별한 능력 없이도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초능력이 있다면 편하겠지만 살아가면서 차근차근 터득하는 편이 좀더 삶에 재미를 불어넣어 줄 것 같아요. 재능은 스스로 발전해 나가기도 하고, 부모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키워주기도 해요. 두 분 양육관은 어때요?

주희 저희는 그래가 알아서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여러 경험을 장려할 거고요.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스스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뭘 잘하게 될지, 커서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 세계는 너무나 열려 있잖아요. 그래서 그래가 원하는 건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놓고 싶어요. 피아노가 치고 싶다고 하면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고,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태권도 학원에 보내줄 만큼의 능력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계획이 중요할 것 같아요. 서울에선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경진 주방에서 요리하는 걸 벗어나 확장된 일들부터 해보려고요. 경주에 내려가기 전에 닭 요리로 쿠킹 클래스를 자주 열었는데 다시 해보자는 요청이 와서 우선은 그거부터 시작할 계획이에요. 그동안 못 한 재미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메뉴도 개발하고, 계업식만의 콘텐츠나 굿즈도 만들어 보고요.

주희 경주에 있을 땐 “천천히 오래오래”가 모토였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두 아이와 우리 두 사람, 그리고 양가 부모님까지 책임질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지만, 이젠 수익적인 면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사업적으로 확장할 방안을 계속 생각하는 게 당장의 목표겠지요.

 

목표로 달려가다 보면 그래와 동생도 글을 술술 읽을 날이 올 거예요. 아이들에게 한마디 남기면서 마무리해 볼까요?

경진 음… 무슨 말을 남기면 좋을까요. “아빠 멋있지?”(웃음).

그래 아니.

경진 어?

그래 안 멋있어.

경진 아빠 안 멋있어?

그래 멋있어.

주희 어휴(웃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빤한 말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사랑한다는 말이랑 미안하다는 말이요. 아마 엄마들은 오직 이 마음뿐이라는 데에 공감해 주실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도 좋고 그래랑 사이좋게 하루를 시작하거든요. 다투거나 속상한 일도 없는데 잠들기 전이면 아이한테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좀더 챙겨줄걸, 그때 더 예쁘게 말해줄걸, 책 좀 더 재미있게 읽어줄걸…. 

경진 둘째가 생긴 뒤로 몸도 피곤하고, 입덧이 심해서 고생하다 보니까 주희가 자꾸 약해지는 것 같아요. 

주희 맞아요. 제가 힘드니까 그래랑 동생한테 모두 신경을 못 쓰는 것 같아서 더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도 알아서 잘 커주는 게 기특하고 고맙죠.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면 아쉬울 것 같으니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음… 역시 이게 좋겠네요. “엄마가 더 멋있지?”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