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Imagination Can Save Us

우리가 분노를 껴안는 방법

뉴스를 보면 세상은 온통 열받는 일투성이다. 매일 최악의 뉴스가 전해진다. 오존층 파괴, 인종 차별, 전염병과 성범죄, 독재와 테러, 명왕성의 퇴출, 펭귄의 털갈이(?), 사라진 단골 식당까지. 숨만 쉬어도 분노가 차오른다. 지구인이 생산하는 분노의 총량을 계산하려면 양자 컴퓨터가 적어도 세 대는 필요할 거다. 여기 분노에 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마감 생활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지금 무엇 때문에 화가 났고, 또 무엇으로 자기 안의 화염을 다스릴까.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전소영

어제 소개팅은 잘했어요? 

화나는데 질문에 답해야 해요? 일단 분 좀 삭이고 이따 말할게요. 후…. (10분 후) 부랴부랴 칼퇴하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는데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이 남자가 <이태원 클라쓰> 본방사수 해야 한다며 택시를 잡고 집에 가네요? 저 박새로이한테 진 건가요? 그 사람도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 예의상 커피 마시자고 한 건데, 제가 자길 마음에 들어 했다고 생각하면 어쩌죠? 지가 절 깠다고 생각하면? 

 

택시 잡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순간 몸이 차가워지고 눈이 뒤집혔죠. 눈앞이 흐려져서 그대로 돌진할 뻔했어요. <킹덤>에서 인간이 좀비로 변하는 장면 기억해요? 그거랑 비슷했어요. 

 

아니, 그래서 그 분노를 어떻게 할 거예요? 

이열치열이라고, 뜨겁고 얼큰한 걸 먹으러 갈 거예요. 훠궈가 좋겠네요. 특별히 홍탕, 백탕에 토마토탕도 추가해 주세요. 특히 토마토탕은 각종 채소와 고기를 익혀 먹은 후 마지막에 면을 넣어 먹으면 그야말로 ‘소울푸드’가 따로 없어요. 토마토 수프 먹어봤어요? 걸쭉하면서도 진한 맛. 어쩐지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훠궈를 함께 먹는 멤버가 있는데 이왕이면 그들과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먹을 때만큼은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아요. 우리의 대화는 다 먹고 난 후 시작할 거예요. 훠궈가 바닥이 드러날 때쯤 그중 한 명이 묻겠죠. “그래서, 왜 화가 났다고?” 

 

사실 지금 대화가 필요한 거죠? 

맞아요. 마냥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 같은 남자가 좋겠네요. 제가 동백이가 아니라 “뭐여유, 싫어유.” 이러면서 거절할까요? 지금 제 마음으론 거절은 거절, “안 돼.”라는 말은 안 되는 걸로. 어쨌든 저에겐 화를 내고 난 후에 몰려오는 자괴감을 달래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에게라면 그가 날 어떻게 판단할지 신경 쓰지 않고 모두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담에 틀어둘 BGM은 뭐가 좋겠어요? 

크러쉬가 불러주는 무반주 ‘Alone’이 좋을 것 같아요. 화를 내고 난 후에 난 몹시 외로울 테니까요. 

 

대충 어떤 감성인 줄 알겠어요. 영화를 봐도 좋아하는 것만 돌려 보는 타입이죠? 

몸과 마음이 차가워질 땐 90년대 로맨틱 코미디가 딱이죠. 내용도, 엔딩도 다 외울 지경이지만 그래도 좋아요. <유브 갓 메일>(1998),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노팅힐>(1999)이요. 

 

책을 읽는다면요? 

심란하고 마음이 복잡할 땐 몰입도가 좋은 책이 좋아요. 아주 좋은 문장으로 가득 찬, 한국 소설이 좋겠어요. 박완서의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중 “사람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란 시시한 것이기에 마련이다. 알맹이는 늘 설명할 수 없는 데 있다.”라는 문장을 곱씹을래요. 

 

사실 소비보다 더 큰 위안은 없겠죠. 선물 받고 싶은 세 가지를 골라주세요. 

아, 차가 좋겠네요. 큰 거 안 바랄게요. 스트레스 쌓일 때 드라이브하면서 풀 수 있게, ‘피아트 500 시리즈’ 한 대 부탁해요. 거기에 ‘에코백스 디봇’ 로봇 청소기도요. 그 작은 놈이 아담한 우리 집 구석구석을 청소할 때마다 나를 위해 이걸 선물한 당신을 생각할게요. 그럼 화가 나더라도 참을 인 자 세 번을 쓰며 삭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넷플릭스 평생 구독권’을 부탁해도 될까요? 이게 볼 게 없다 싶어서 구독을 끊으면 볼 게 생기고, 웬만큼 봤다 싶어서 구독을 끊으면 또 볼 게 생기더라고요. 귀찮아서 계속 구독 중이긴 한데, 그래도 선물 받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분노를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써봤는데, 그 외에도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요? 

보통 나를 화나게 하는 건 타인이에요. 말이 통하지 않거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요. 저는 평소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자주 해요. 특히 순간적으로 화가 나면 혼자 있기를 택하죠. 화를 다스리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잠을 자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 감정을 전염시키는 ‘감정 좀비’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죠.

《매거진 B》 에디터

손현

표정을 보니 또 한바탕한 거 같네요? 

오늘도 아내에게 졌어요. 저는 글을 써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을 해요. 문제는 아내와 다툴 때 그런 기술은 무용지물이라는 거죠. 전쟁터에서 언제 글을 쓰고 그걸 보여주겠어요(실제로 결혼 전에 벤 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며 우리의 다름을 설명했다가 조곤조곤 격파당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나름 할 말 다 해봤는데, 결국 아내의 논리가 맞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났어요. 지금까지 백전백패예요. 

 

지금 기분을 무언가에 빗대어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샌프란시스코로 출장 간 친구에게 민폐를 무릅쓰고 부탁해 꼭 갖고 싶은 운동화를 직구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왼쪽 신발 사이즈는 270, 오른쪽은 275인 기분이에요. 최선을 다했지만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있죠. 

 

짝짝이 신발이라…. 끔찍한데요? 

끔찍한 상황이 될수록 순간적으로 두뇌 회전이 빨라져 잠시 이성적으로 돌아와요. 부부싸움이란 무엇인가, 말을 잘하는 스킬은 어디서 배울 수 있나, 나는 왜 어릴 적 웅변 학원을 다니지 않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후회하죠. 싸우지 말걸. 

 

기분도 꿀꿀한데 한잔하지 그래요? 

편의점에 들러 네 캔에 만 원짜리 라거 맥주를 사 올 테니, 올리브 오일에 갓 튀긴 감자칩을 준비해 주세요. 약 3밀리미터 두께로 썰어 후추와 트러플 소금으로 간을 맞춰 주시면 더 좋고요. 제가 즐겨 먹는 조합이에요. 아내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꼭 먹어야겠어요. 그리고 노래를 틀어줄 수 있다면 매번 승리하는 아내를 향한 질투의 마음을 담아 미카MIKA의 ‘Dear Jealousy’를 부탁할게요. 분위기가 고조되는 후반부의 코러스가 일품이죠. 

 

맥주를 마시며 함께 볼 영화는 뭐가 좋겠어요?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의 <파이트 클럽>(1999)이요. 20세기 말 특유의 암울한 정서를 폭력적으로 담아냈다는 비판도 있지만, 주연 배우부터 스토리, 음악, 감독이 영화 속에 심어놓은 사사로운 장치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영화예요. 마지막 신에서 두 주인공이 고층 빌딩에 올라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이 압권이에요. 

 

명작이죠. 저랑 취향이 비슷한 것 같은데, 독서는 어때요? 

모터사이클을 타고 극한의 자유를 누리며 방랑하는 어느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이 쓴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란 책을 좋아해요. 네, 맞아요. 제가 쓴 책이에요. 가끔 그때의 제가 부러워요. 아주 가끔. 음? “나의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났고, 에피소드의 끝에는 고마움만 남았다.” 명문장이죠.

 

PPL은 그쯤 하고, 당신의 기분을 풀 만한 쇼핑 리스트를 말해주세요. 

BMW의 모터사이클 ‘F800GS Adventure’는 제가 여행할 때 탄 바이크예요. 작년 이맘때 중고로 팔았는데 문득 다시 타고 싶어졌어요. 이제 멀리는 못 가겠고 가까운 지리산이라도 다녀오고 싶네요. 그다음엔 아내를 위해 허먼 밀러 ‘임스 스토리지 유닛Eames Storage Unit’을 고를게요. 미리 사놓고 나중에 협상 카드로 써먹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3만 주’예요. 그 정도면 둘이 맞벌이하지 않아도 배당금으로 먹고살 만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취향에 대해 얘기해 봤는데 그 외에도 기분을 푸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화내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해요. 어쩌다 열이 잔뜩 올라 에너지가 가득 찬 상태라면, 그걸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겠죠. 저는 종종 그 에너지를 테니스 레슨을 받는 데 쓰곤 했어요. 어쩌다 포핸드나 백핸드 스트로크가 잘 맞으면 화도 풀리고 속도 후련하고 개운하더군요. 당장 운동을 할 수도 없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라면 설거지나 빨래, 청소 등 밀린 집안일을 해치워요. 어쨌든 집안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아레나 옴므 플러스》 에디터

조진혁

안색이 안 좋은 거 같아요.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제 일생의 원수를 응징할 기회를 놓쳤어요. 20년간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오직 복수만이 저의 존재 의의였죠. 원수를 해치우려면 100년에 한 번 피는 청계산의 무지개색 파꽃을 갈아 만든 포이즌 티백이 필요한데, 집에 놓고 왔어요. 대신 녹차 티백을 가져왔네요. 원수는 맛이 구수하다며 웃고, 전 저 자신에게 화가 난 상태죠. 마치 《드래곤볼 Z》에서 크리링이 프리저에게 반 토막 났을 때, 제가 분노해 초사이어인이 되어야 하는데 돌이켜보니 크리링과 그 정도로 친했나 싶고, 진짜 문제는 곧 내가 처맞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요. 

 

(어라, 이 장황한 상황극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입술과 눈 밑이 파르르 떨리고 있어요. 얼굴이 빨개지고 말도 잘 못하겠어요. 이런 제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단순히 마그네슘 결핍으로 치부하네요. 

 

상태가 심각한 것 같은데 일단 뭘 좀 먹어야겠어요. 

가래떡으로 만든 떡볶이가 필요해요.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국물이어야 하지만 검붉은 색은 안 돼요. 컬러로 표기하자면 ‘#e00000’ 정도겠네요. 설탕을 듬뿍 쳐 적당히 맵고 달콤한 맛이 났으면 해요. 고춧가루로 코팅된 떡의 겉면은 살짝 건조하고, 안쪽의 식감은 쫀득해야 해요. 10여 년 전 신촌 현대백화점 포장마차에서 먹던 쫀득하고 매콤한 그 떡볶이 말이에요. 

 

포장마차라면 역시 사장님과 대화하며 먹는 재미죠? 

전설적인 사냥꾼 짐 코빗Jim Corbett이 떡볶이를 서빙하고 있네요. 지금 오뎅 국물을 건네며 파월 가의 독신자라 불린 식인 호랑이의 눈빛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바지에 얼마나 많은 양의 오줌을 지렸는지 설명하고 있어요. 그의 사냥담은 떡볶이를 먹으며 듣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네요. 

 

갑자기 사냥꾼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네요? 

영화 <라이온 킹>(1994)을 틀고는 심바의 돌잔치를 보며 저 중 못 잡아본 동물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잠깐, 포장마차에 낯익은 동양인이 들어왔어요. 

영화 <언더시즈>(1992)의 음악감독 게리 창Gary Chang이에요. 짐 코빗의 무용담에 스릴을 더하기 위해 ‘The Takeover’를 연주하고 있어요. 포장마차 안의 모두가 비장한 표정이에요. 

 

어서 이 맥락 없는 콩트를 끝내고 싶어지는데요. 물론 당신에게 그런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기분을 풀기 위해 읽는 책이 있어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1》을 읽어요. 잘된 번역서인데도 제 머리로는 이해 안 되는 문장들이 많죠. 몰라서 한 번 더 읽고, 세 번째 읽을 때쯤이면 화가 났다는 사실도 잊게 돼요. 잇몸이 아플 때는 정강이를 걷어차라는 말이 있죠. (없나?) 어쨌든 화가 났을 땐 의식을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게 좋아요. 

 

그 책을 읽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기억나는 구절 하나만 얘기해 봐요.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저는 지금 맹목적으로 공허해요. 

 

공허함을 지우려면 당신에게도 신용카드가 필요하겠네요. 당장 갖고 싶은 것 세 개를 결제하세요.

일단 ‘캐논 EOS-1D X Mark III’로 아프리카 초원에서 심바 사진을 찍고, ‘지프 랭글러 2도어’로 사파리 느낌을 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DJI 매빅프로’ 드론을 날려서 사자들이 환장하며 쫓아오도록 하고 싶네요.

《대학내일》 에디터

김혜원

잠깐만요, 옷에서 탄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거예요? 

인센스를 태우다가 집에 불이 났어요.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저는 그저 마감이 너무 힘들어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요. 전부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했지, 저‘만’ 망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고요. 인생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화가 나요. 게임이었다면 금방 때려치웠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어디에 화를 내야 하죠? 

 

지금 기분을 묘사한다면?

술에 취해 십년지기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하루아침에 절교당한 기분이에요. 설명하다 보니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슬픈 것 같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말투가 달라졌어요. 

저는 인천 사람이지만 화가 나면 경상도 사투리를 써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표준어도 사투리도 아닌 아주 요상한 억양이라 말을 하면서도 수치스럽지만 저절로 그렇게 나와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걸 말해 봐요. 

일단 맥주부터 주세요. 빈속에 맥주를 마시면 사람이 순해지거든요. 벌컥벌컥 마실 수 있게 ‘빅웨이브 골든 에일’로 부탁드려요. 일단 패키지가 예쁘고(중요), 너무 쓰거나 시지 않아서 안주 없이 마시기 좋거든요. 감정 컨트롤이 안 될 때 맥주로 응급조치하는 건 제 오랜 버릇이에요. 

 

당신과 빅웨이브를 함께 즐길 전용 서버를 지정해 주세요. 누구든 괜찮아요. 어차피 상상이니까요.

일단 남편은 부르고 싶지 않네요. 그는 너무 오랫동안 제 기분을 맞춰왔으니까 인생 최대의 화가 난 오늘 같은 날엔 좀 쉬게 해 주고 싶어요(사실 집을 태워 먹은 걸 들키면 크게 혼날 것 같거든요). 저한테 무관심하게 굴던 사람들을 소환하고 싶어요. 그들과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고요. 한없이 초라해지던 순간들을 보상받고 싶어요. 그들에게 반한 순간 입고 있던 그 차림 그대로예요. 아,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은데요. 

 

그 기분을 이어 신청곡 받을게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의 ‘Love Is No Big Truth’를 부탁해요. 멜로디가 좋지만 가사는 더 좋아요. “사랑은 별게 아니야~” 온 김에 맥주나 한 잔 하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전해줄래요? 

 

당신만을 위한 영화도 한 편 골라주세요.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를 고를게요. 제 말버릇이기도 한데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해요. 그렇게 살면 나중에 외롭다고 훈계하는 남자한테 고현정이 이 렇게 답하거든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살다 보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오해하는 것 같아서 억울할 때가 있잖아요. 너무 속상해서 잠도 안 올 때. 그런 밤에 이 장면을 틀어 놓으면 위안이 돼요. 너무 많이 봐서 이젠 대사도 다 외웠어요. “사람 마음 하나 잡기가 정말 참 힘들죠.” 네! 

 

당신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네요. 뭐든 괜찮으니 골라 봐요.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로 할게요. 세계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아서 여러 번 읽었어요. 읽고 있으면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지거든요. 인생에 환멸이 느껴질 때 소설을 읽으면 좀 나아지더라고요. “등나무 잎을 삶아서 그 물을 마시면 금이 간 부부 사이의 금슬이 다시 좋아진대요. 언제고 우리 틈에 금이 가면 삶아서 마실까요? 라는 말에 당황해서 우리는 부부도 뭣도 아닌데, 라고 얼버무리자 무재 씨가 우산 속에서 싱글벙글 웃었다. 금슬은 잘 모르겠지만 무재 씨, 이렇게 앉아 있으니 배도 따뜻하고, 좋네요. 네. 그냥 좋네요. 하며 밤을 바라보면서 앉아 있었다.”라는 부분을 특히 좋아해요. 

 

좋아요. 만약 한도 무제한 카드를 받았다면 어디에 쓸 거예요? 

일단 옅은 회색의 ‘지프 랭글러 사하라’를 살래요. 바다를 목적지로 두고 달리는 긴 드라이브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여차하면 차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멋진 차를 가지고 싶어요. 떠나기 전에 ‘글렌피딕’을 한 병 사면 완벽하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단종된 ‘아그파 비스타 200’ 필름 한 통을 살게요. 

 

마지막으로 화를 달래는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주세요.

기발하진 않지만 효과는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닌텐도 ‘링 피트 어드벤처(피트니스 게임)’를 한 판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거예요. 아주 힘든 운동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잡생각이 싹 사라져요. 그런 후에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요. 몸을 혹사했기 때문에 스르륵 잠이 들 거예요.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리셋되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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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건태

일러스트 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