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And Only Companion In Life

웃는 모녀는 다 멋져 : 이슬아 장복희 모녀

대화를 나누다 말고 정신없이 웃었다. 긴 시간 말도 제대로 못 잇고 배를 잡곤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런 밤이 파주에 있었다. 울 때마다 복희의 얼굴이 된다는 슬아는 웃을 때도 복희 얼굴이 된다. 그런 슬아 얼굴과 꼭 닮은 얼굴로 복희도 함께 웃는다. 웃음이 너무 많은 모녀다. 그게 참 멋진 모녀다.

헤엄 출판사

 

2019년 시작한 출판사.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등을 집필한 작가 이슬아가 대표로, 그의 엄마 장복희가 팀장으로 있다. 2019년 11월에는 이슬아의 《심신 단련》,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깨끗한 존경》, 정재윤의 만화 《서울구경》 등을 출간하면서 부지런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H. instagram.com/hey.uhm.book

엄마 장복희 | 딸 이슬아

슬아와 복희 모녀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됐네요.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슬아: 안녕하세요, 저는 장복희 팀장님이랑 헤엄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는 대표 이슬아입니다. 1년 된 모녀 기업의 일원이죠.

복희: 저는… 뭐라고 해야 하지?

슬아: 53세 장복희(웃음).

 

모녀 기업이어서 직함을 부르는 게 낯설 것 같아요.

복희: 출판사와 집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더 그런데요. 일할 땐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생활할 땐 슬아라고 불러요. 사실 일할 때도 무언가 요구할 게 있거나 제가 잘못했을 땐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무언가 요구할 만큼 당당할 땐 슬아라고 부르죠.

슬아: 저는 거의 복희 씨의 이름을 부르거나 엄마라고 할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대외적으로는 ‘장복희 팀장님’이라고 불러요. 거래처 직원분들께 “헤엄 출판사 장복희 팀장님께서 연락드릴 거예요.”라고 말하는 식이에요.

 

책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는 엄마인 복희 씨 이야기가 잔뜩 담겨 있어요. 그런데도 두 분이 함께 인터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시라고요.

복희: 아주 이상하고 낯설어요. 저는 출판사 직원이라기엔 아직 배우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부족하고 서툴지만 그래도 헤엄 출판사에서 일하는 건 정말 좋아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든 나날에 딸과 함께라는 게 무척 보람차죠. 슬아가 고생하는 걸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걱정되고 불안한 맘도 있지만요.

슬아: 엄마는 제가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은 것 같아요. 유명하기 때문에 따르는, 감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나 필연적인 오해 때문이죠. 하지만 이 시대의 창작자는 이름을 알리지 않고는 돈을 벌 방법이 없어요. 저도 유명해지고 싶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보를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유명해지는 쪽을 택하는 모두가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아니니까 운이 따랐다고 생각해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는 지금이 행복하지만 모든 게 어느 순간 깡그리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죠. 이 행운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해도 너무 서운해하지 않기로 하고, 출판사가 망하면 뭘 할지 엄마랑 종종 얘기해보기도 해요(웃음).

 

조금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웃음). ‘헤엄’. 참 예쁜 이름이에요. 어떤 출판사인가요?

슬아: Since 2019…. 이슬아가 대표로 있고 그의 부모를 직원으로 고용한… 이렇게 말하니 꼭 사기 집단 같네요(웃음). 처음부터 출판업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독립 출판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너무 잘 팔려서 대형 서점에 유통하기 위해 급하게 출판사를 세우게 됐거든요. 그때 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제작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아빠 직업이 잠수사인데, 어릴 때 아빠에게 수영과 잠수를 배운 기억이 무척 좋게 남아 있어서 ‘헤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죠.

 

작년 11월에는 책 네 권을 동시에 출간하기도 했어요. 1호 작가 이슬아의 책 세 권, 2호 작가 정재윤의 만화 한 권이었죠.

슬아: 정재윤 작가의 만화를 볼 때마다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만화 한 편을 보았는데 단편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는 이 작가가 절대로 놓치지 않는 어떤 태도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출간 제의도 하게 됐고요. 장기적으로는 다른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해나가고 싶어요. 작년 한 해 출판 일을 하다 보니까 편집자 훈련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거든요. 만화가 아닌 다른 장르로도 아주 천천히 움직여볼 생각이에요.

 

출판 기획도 팀장님과 함께하고 있나요?

슬아: 창작과 관련된 기획은 혼자 하고 장 팀장님께 통보하는 식이에요. 저에게는 부모님이 재미있게 읽은 책은 대중에게도 사랑받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책의 꼴이 나오면 출간 전에 부모님께 먼저 보여드리곤 하죠. 엄마·아빠가 웃으면서 끝까지 읽는 책은 좋은 책일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복희: 이쪽 분야에는 아는 게 없어서 기획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함께 책을 만들 사람이 좋고 따뜻한 사람이기를 바라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좋고 따뜻한 사람이라면 책이 잘 안 팔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정재윤 작가는 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책도 재밌었고요. ‘이 아가씨 뭔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부터 모녀가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려고 했나요?

복희: 다른 직원 없이 슬아 혼자 시작한 일인데, 너무 바빠져서 자연스럽게 도와주게 됐어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더 바빠진 딸을 보니 포장이든 택배 발송이든 손을 보태고 싶었어요. 업무가 손에 안 붙으면 밥이라도 해주고 싶었죠. 그러다 이렇게 팀장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슬아: 처음에는 일용직 개념으로 일당을 드렸어요. 일이 많은 날엔 15만 원, 일이 없으면 8만 원, 그보다 더 없을 땐5만 원, 밤새우는 날엔 보너스…. 그런데 일이 점점 더 많아져서 일용직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일당보다 월급을 주는 게 더 나은 수준으로 바빠졌거든요.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가 따를 것 같아요. 갈등도 있을 것 같고요.

슬아: 실수가 정말 많아요. 엄마가 매일 자잘한 사고를 치고 있다면,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큰 사고를 치거든요. 실수도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어서 서로 나무랄 수가 없죠.

복희: 저는 원체 꼼꼼하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한 채로 힘을 주고 일하곤 해요. 업무를 하나 하고 나면 어깨가 아플 정도죠. 실수가 생기면 대체로 제 잘못인데, 그래도 슬아가 나무라거나 추궁하진 않아요. 슬아가 한 달에 한 번씩 치는 사고도 원하지 않았는데 일어난 일이고,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있죠. 우리에겐 다독이고 힘을 주는 게 우선이에요. 체력적으로 정말 힘든 때여서 싸우거나 다툴 정신도 없거든요. 나중에 직원이 생기고 형편이 나아지면 싸울 시간이 생기려나요?

 

대표와 팀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복희: 저는 납품, 도매상과 독립 서점·대형 서점의 입고 목록을 정리해서 본사에 주문 넣기, 택배 포장·발송, 입금, 수금, 정산, 계산서 발행, 간이식 장부 정리, 재고 관리…. 따지고 보니 하는 게 엄청 많네요(웃음)? 그러는 와중에 밥은 먹어야 하니까 밥상도 차리죠. 저희는 채식을 하고 있어서 사 먹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장부를 정리하다 말고 밥을 안치고, 메일을 쓰다 말고 채수를 우리면서 일과 생활을 병행하고 있어요.

슬아: 그러는 와중에 인터뷰한다고 염색도 하셨어요. 정신이 없어서 2시간 30분이나 방치하는 바람에 머리 다 녹는다며 야단이셨죠(웃음). 저는 원고도 마감하고 책도 만들어요. 교정·교열과 편집을 손봐주시는 분이 계신데, 그것 말고는 모든 걸 스스로 하고 있죠. 작년 11월에는 책 네 권을 동시에 출간했는데요. 혼자 과로하다가 혈뇨를 볼 정도로 힘들었어요. 저는 일이 들어올 때 받아야 한다는 주의여서, 학기 중엔 수업도 나가고 행사도 되도록 많이 받으려고 해요.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나갈 때도 있죠. 마케팅과 영업 분야도 제가 담당하고 있어서 할 게 너무 많아요. 게다가 디자이너가 따로 없기 때문에 북 토크를 기획해도 포스터나 리플릿 같은 걸 스스로 다 만들어야 하거든요. 책에도 수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을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혈뇨라뇨…. 직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 건강이 정말 중요하겠어요.

복희: 너무너무 중요해요. 서로 얼굴 보고 아프지 말자는 얘길 수도 없이 해요. 아프기 전에 미리 약을 먹어두기도 하고, 어디 아프진 않은지 안색을 살피는 일도 늘었어요.

 

엄마와 딸이 함께 일한다는 건 생활과 직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일 같기도 해요. 어쩌면 더 명확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복희: 저는 부엌일도 헤엄 출판사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택배 팀장이자 부엌 팀장이자 헤엄 출판사의 팀장인 거죠(웃음).

슬아: 제가 어디서 이런 사람을 만나겠어요. 밥도 하고, 일도 하고…. 비록 서점 이름이나 중요한 MD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직원이지만요(웃음). 복희 씨는 메일을 쓸 때 꼭 ‘장복희 드림’으로 끝내는데요. 어느 날 보낸 메일을 읽어보면 ‘장복희 드’로 끝나 있고 그래요. 실수투성이죠. 실수가 생기면 사과 메일을 보내는데, 거기다가 ‘저도 제가 싫습니다.’ 같은 문장을 쓰신다니까요(웃음). 엄마 같은 직원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지만, 우리 엄마가 어디 가서 이런 일을 할 수도 없을 거예요. 둘 다 서로에게 감사한 일이죠. 

 

모녀인 슬아X복희와 직장 동료인 대표X팀장에는 사뭇 다른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슬아: 온도 차는 거의 없어요. 복희 씨는 엄마일 때나 팀장일 때나 항상 다정하고 친절하거든요.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팀장일 때 훨씬 긴장한다는 거? 전화 받을 때마다 실수할까 봐 굳어 있는 게 저한테까지 느껴져요.

복희: 슬아와 일하면서 자식이어도 대단하다 싶을 때가 있어요. 대표일 때의 슬아는 과감하고, 책임감도 무척 강하거든요. 무엇보다 놀랐던 건 모든 금전 업무를 선지불로 진행한다는 점이었어요. 결과물을 받기 전에 입금을 먼저 해주는데, 돈을 미리 받으면 작업자도 책임감이 생기잖아요. 저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놀라고 존경스러웠죠.

두 모녀는 평생 함께한 게 참 많아요. 엄마를 소재로 책도 냈고, 같이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고요.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함께해볼 계획인가요?

슬아: 앞으로는 뭘 안 하고 싶어요. 여행도 안 가고 싶고…. 그냥 좀 쉬고 싶어요. 다르게 말하면 바랄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저 아프지 않는 거? 인생에 바라는 건 건강과 평안밖에 없어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이제는 알겠어요.

복희: 슬아랑 같이 영화 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 그동안은 넷플릭스 볼 시간도 없었어요. 우리에게 시간이 생긴다면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요.

 

인생의 긴 시간을 함께해온 셈이잖아요. 앞으로도 함께할 테고요. 모녀의 ‘오늘’엔 어떤 가치가 숨어 있나요?

슬아: 지금 엄마랑 무언가 함께하고 있다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평생 엄마의 돌봄을 받다가 독립하게 된 사람인 반면, 엄마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돌봄이 필요하게 될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귀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전엔 제가 너무 어렸고 10여 년 뒤에는 엄마가 늙을 텐데, 둘 다 독립적인 워커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거워요.

복희: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시간…? 오늘…? 가치…? (일동 폭소)

 

다음 질문으로 빨리 넘어가야겠어요(웃음). 2020년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해요..

슬아: 황급한 마무리(웃음)! 우선 출간되는 책들이 충분히 많이 팔리면 좋겠어요. 부디 책의 수명이 길어지길 바라면서, 올해 초까지는 작년에 만든 책들을 꾸준히 판매할 예정이고 중반부터는 새로운 책을 구상해보려고요. 다만, 집필은 내년부터 하고 싶어요. 2019년에 인풋이 모자란 상태로 아웃풋만 많아서 조금 쉬고 싶거든요. 장기적인 목표는 과로하지 않으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을 만큼 이 일을 유지하는 것. 소박해 보여도 어렵고 대단한 일이잖아요.

복희: 올해는 부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생기면 좋겠어요. 사실 여기서 더 바랄 게 없어요. 그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죠. 밥을 먹고 소화하는 행위가 얼마나 기적처럼 느껴지는지, 아프지만 않는다면 돈을 못 버는 건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슬아가 건강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저 역시 건강해야 할 테고요. 그걸로 충분해요.

밤이 빠르게 찾아오는 파주의 겨울.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요한 밤에도 간간이 울려 퍼질 모녀의 웃음을 생각한다. 잔뜩 예민해진 상태로 밤을 새우는 야근이 아니라, 실수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야근이라면 가끔은 할 만하지 않을까? 슬아와 복희는 닮아 있다. 말하지 않고도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느낀다. 그런 웃음이 깃든 책이라면 수명도 어마어마하게 길 거라고 기대하며, 헤엄치는 마음으로 부유하듯 파주를 벗어난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