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 To Meet Me!

잠깐 멈춰도 괜찮아_밑미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불현듯 앞이 캄캄하고 숨이 턱 막히던 시절이 있었다. 팔다리가 저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병원에 갔더니 신경성이라며 스트레스를 받지 말란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받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마음이 좀 힘든가,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두었다. 지켜온 모든 게 다 빠져나갈 것 같아 꽉 부여잡고 안간힘 쓰기를 몇 달째, 더는 안 되겠다 느낀 순간 열 손가락을 펼쳤다. 양손에 그득하던 것들을 놓았더니 지옥은 거짓말처럼 끝이 났다. 만일 그 시절 내가 밑미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얗게 불태우고 남은 것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은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이에요. 너무 힘드니까 잠시 멈출 수 있고, 멈추면 나도 몰랐던 진짜 나를 만나게 돼요. 지금 힘들다면, 나를 만나는 시간이 온 거예요.”


A는 요즘 평소답지 않다.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 잘 맺곤했는데, 최근엔 작은 일도 제대로 해내기가 어렵다. 간단한 사무 처리도 하지 못해 꾸중을 듣고, 실수를 생각하느라 동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심지어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생활마저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친구들과의 관계는 자꾸 틀어지고 집에서도 짜증이 늘었다. 잔병치레가 심해지더니 종종 앓아눕기까지 한다. 밤엔 잠을 못 이루고 아침이 오면 피곤하다. A는 매일 밤 생각한다. ‘나… 어딘가 고장 난 걸까?’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묘한 현상이 있다. 매일 전력을 다해 일하던 사람이 도미노가 쓰러지듯 와르르 무너지고, 의욕에 충만하여 이것저것 몽땅 하려던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증상.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Hervert Freudenberger는 이러한 증상에 ‘번아웃Burn Out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속이 텅 빈 껍데기만 남기까지 몸과 마음은 A에게 수많은 신호를 주었을 테다. 그러나 알아도 모르는 척, 에너지드링크에 기대 꾸역꾸역 버텨온 A는 이제 한계라는 걸 실감한다.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심리상담을 받아볼까 고민하지만 비용이 걱정돼서, 시간이 없어서, 어떤 카운슬러를 만나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차일피일SOS를 미루고만 있다. 그때, 길을 잃고 발만 구르는 A에게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묻는다. “많이 힘들죠?”

일상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잊고 살아간다. 타인의 욕망,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면서 반복적으로 쌓이는 스트레스의 무게감은 생각보다 묵직하다. 밑미는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더욱 즐겁게 ‘진짜 나True Self’를 만날 수 있도록 돕고자 시작됐다. 밑미는 사람들이 진짜 나를 발견했을 때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설계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마음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꺼내 보이고 내 안에 있는 힘과 용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심리상담 플랫폼을 제안한다.

“심리상담은 인생의 이벤트 같은 거지만, 사실 심리문제는 일상적인 데서 와요. 그래서 일상에서 유지될 수 있는 활동과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심리문제와 액티비티를 페어링하는 밑미는 첫 번째 카드로 번아웃 증후군을 꺼냈다. 직장 내 번아웃부터 연애와 사람 관계에서 오는 번아웃까지 밑미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마련했다. 쉽게 꺼내기 힘든 마음속 이야기를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털어놓을 수 있도록 요가, 명상, 요리, 식물, 달리기, 음악 등 일상과 가까운 액티비티를 심리상담과 결합한 형태다. 이 그룹 페어링 프로그램은 번아웃에서 시작하여 점차 더 많은 심리문제로 확장될 예정이다. 밑미는 말한다. “여기는 진짜 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건강하고 행복한 커뮤니티”라고.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중심 잃은 마음들이 밑미로 모여든다. 마음을 당기는 힘이 뭘까 살펴보니 정답은 경험에 있었다. 밑미를 만든 네 명의 친구들은 모두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당사자다. 번아웃을 인정하고 빠져나오면서 이들이 해낸 건 극복만이 아니었다. 분명한 성장이었다.

하빈의 이야기 

Burn Out | 벼랑 끝의 충만함

“저는 20대 때부터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았어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어 늘 사람을 모아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곤 했죠.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심이 사라진 건 새 회사로 이직하면서부터였어요. 회사 비전과 미션이 제 가치관과 잘 맞아 만족도가 높아지니 사이드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쇼핑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마음 맞는 동료가 승진하면서 팀에 혼자 남게 됐는데, 그때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과한 업무를 혼자서 해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던 때였죠.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에 오열하듯 울면서 지쳤다는 걸 알았어요.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그땐 연애마저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죠.”

 

Overcome | 누군가의 관심으로

“매일매일 바닥을 기다시피 하던 제게 큰 힘이 된 건 주변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힘들어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 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들이 없었다면 번아웃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을 거고 극복도 할 수 없었겠죠. 번아웃은 스스로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 단계에 닿기까지 도와줄 환경과 사람이 필요하죠. 그래서 밑미를 기획했어요. 심리문제로 힘든 사람들에게 “잘 생각해 봐, 너 괜찮아?” 하고 묻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요.”

롤리의 이야기

Burn Out | 좋아하는 일을 파고들다가

“저는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앞뒤 안 보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어요. 게으르고 체력도 약한 사람인데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힘든 줄도 모르고 하는 타입이죠. 그래서 제가 얼마나 지쳤는지 바로바로 체감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몸과 정신이 한 번에 무너지더라고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온몸이 고장 났는데 대학병원을 전전해도 아픈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공황 증세에 허리디스크까지 겹쳐서 한 달을 누워서 지냈죠. 인간관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남편과의 관계도 악화됐어요.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사나 싶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Overcome | 마음을 여는 일

“번아웃은 증후군이에요. 방치하면 우울증이 되고 병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빠르게 빠져나오는 게 좋아요. 저는 두 번의 번아웃을 겪었어요. 첫 번째 번아웃 때는 부부상담의 도움이 컸어요. 한 번 극복하고 나니까 그다음 번아웃이 왔을 땐 금세 알아차리고 극복할 힘이 생기더라고요. 두 번의 번아웃으로 제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하면 안 되고 취약한지를 알게 됐어요. 번아웃 이전의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뭐든 하곤 했는데 지금은 안 되는 거, 못하는 거, 힘든 건 걷어차기도 하죠. 부부상담으로 큰 변화를 겪은 후 좀더 나이가 들면 꼭 심리 공부를 해보겠다고 다짐했는데요. 그런 제게 하빈이 밑미 이야기를 꺼냈고, ‘이건 무조건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지의 이야기 

Burn Out | 넘치던 힘을 잃고

“저는 일하는 게 즐거웠어요. 업무가 재미있었고, 동료들이 좋았고, 그때그때 보상이 있는 것도 만족스러웠어요. 일하는 데 거의 중독된 상태였는데, 번아웃은 승진과 함께 찾아왔어요. 어린 나이에 여자인 제가 승진한 게 많은 사람의 질투를 샀거든요. 저를 믿고 승진시킨 회사에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을 느끼고 엄청난 압박을 받아야 했어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시샘만 받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요. 이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도 내려놓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갑자기 허리디스크가 생겼고 나중엔 무기력까지 오더라고요. 전 언제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땐 하고 싶은 게 단 하나도 없었어요.”

Overcome | 마음을 톺아보는 일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제게 유일하게 안정이 된 건 명상과 보이차였어요. 하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똑같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안식 휴가를 쓰고 두 달 동안 인도로 떠나 요가와 명상에만 집중했어요. 외부와 차단된 채 마음의 소리를 들은 거죠. 그때 제 삶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심리상담과 액티비티를 연결한다는 밑미 기획에 솔깃했어요. 요가나 명상과도 결합한다는 데서 ‘이거 재밌겠는데?’ 싶은 마음이 든 거죠.”

봉봉의 이야기 

Burn Out | 열정에 파묻혀서

“저의 번아웃은 사회초년생 때 찾아왔어요. 저는 첫 직장부터 원하는 곳에 입사해서 좋은 상사를 만났어요. 운이 좋았죠. 제가 헤엄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가이드를 명확하게 주면서 그 안에서라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사회생활이 즐거웠고 의욕도 어마어마했어요. 잘해야 한다는 욕심과 잘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단 압박을 느끼면서 매사에 최선을 다했죠.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가며 열심히 일했어요. 그러다 불쑥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그땐 제가 번아웃 상태라는 것도 모르고 ‘요즘 왜 자꾸 눈물이 나지?’ 그러면서 의아해했어요. 몹시 우울하고 마음이 힘들었죠.”

Overcome | 같이의 가치

“제 번아웃은 상사가 ‘이거 누가 했어? 잘했네!’라고 말해주는 순간 극복되었어요. 저에게 미처 몰랐던 인정 욕구가 있었나 봐요. 저는 남들보다 제 상태를 빨리 알아채는 편이어서 그 이후로는 마음이 힘든 걸 미리 감지할 수 있게 됐어요. 번아웃의 낌새가 보이면 저는 모든 걸 멈추고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요. 저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테니스를 치거나 친구네 집에서 대화를 하는 거죠. 저는 사람과 있을 때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커뮤니티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아주 작은 일에도 칭찬이 오가고 격려가 되는 커뮤니티 덕분에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저는 밑미를 통해 마음이 힘든 사람들한테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지금의 나를 마주하고

진짜 나를 만나는

손하빈·박신후·김은지·이용복
밑미를 만든 사람들

만나서 반가워요.

하빈: 안녕하세요,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 대표 손하빈이에요.

롤리: 반가워요. 저는 밑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롤리, 박신후예요. 오롤리데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있는데 그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함께하게 됐어요. 심리상담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이다 보니 상담으로 크게 성장한 경험이 있는 저한테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요(웃음). 

은지: 저는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내 안에서 답을 찾고, 나로 존재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관심 있는 김은지예요. 다양한 치유, 영성 등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수행하는 매력을 깨닫고, 더 많은 사람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 밑미를 창업하게 됐죠. 

봉봉: 봉봉이라고 불리는 이용복이에요. 저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간의 연결에서 에너지를 받아 왔어요. 건강한 커뮤니티에서 얻는 힘이 크다는 걸 경험한 사람으로서 ‘좋은 건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밑미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론칭이 올해 8월이었죠. 어떻게 시작된 브랜드인가요?

하빈: 밑미의 초기 모델은 심리상담만 다루는 브랜드였어요.저는 살면서 참 많은 활동을 해왔는데 본질적으로는 ‘진짜’를 찾는 걸 좋아했거든요. ‘진짜 나’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심리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하나의 기둥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초기 모델에서 점차 발전하면서 요리, 명상, 요가, 식물 등의 액티비티와 심리상담을 결합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졌어요. 밑미에 가장 먼저 합류한 사람은 이전 회사 동료였던 은지였어요. 기획을 슬쩍 꺼내봤는데 눈동자가 반짝이더라고요(웃음). 이때다 싶어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죠.

은지: 타이밍이 좋았어요. 그즈음 저는 태국으로 이민 갈 준비가 끝난 상태였어요. 번아웃 이후 퇴사를 결심하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업을 해보고자 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할 예정이었거든요. 집도 다 정리하고 부모님 댁에 머물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발목이 잡힌 상태였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하빈에게 밑미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다양한 액티비티와 심리상담이 엮이면서 무대가 커지니까 재밌겠다싶더라고요. 특히 학창 시절부터 명상이나 요가에 관심이 많던 저로서는 그쪽 분야와의 결합에 관심이 생겼어요.

봉봉: 사실 전 이전에 창업을 해본 적이 있지만 끝이 좋지 않았어요. 파트너와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이 꼭 이혼하는 것 같아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기억이 있죠. 그 뒤로 제 인생에 창업은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네요(웃음). 하빈, 은지와는 이전 회사 동료였는데요. 워낙 시너지가 좋았어서 창업 제안을 듣자마자 곧장 “나도 할래!” 그랬어요.

 

세 분은 이전에 함께 일하던 사이였군요. 그럼 롤리 님은요?

하빈: 사실 롤리는 자기 사업인 오롤리데이도 하고 있고 워낙 바쁜 친구라 창업 멤버로 제안한 건 아니었어요. 저희에게 부족한 디자인 분야를 보완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컬래버레이션 굿즈를 제안해 보려고 했죠. 가능하다면 웹페이지 디자인까지 제안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창업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엄청 좋았고 그만큼 놀랐어요. 신난 상태로 은지랑 봉봉에게 “우리 같은 애가 한 명 더 있어!” 하면서 롤리를 소개한 기억이 나요(웃음).

롤리: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면 추진부터 하는 스타일이에요. 하빈에게 밑미 이야기를 듣는순간 ‘같이 안 하면 분명히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부부상담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한테 ‘상담을 받아보고 싶은데 어디서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지인들이 참 많았는데요. 이런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빈: 오롤리데이를 하면서 같이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잠 안 자고 할게.” 그러더라고요(웃음). 고맙고 든든했어요.

 

가까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데는 위험 부담도 크잖아요. 관계가 깨질까 봐 걱정되진 않았어요?

하빈: 오히려 힘을 많이 얻었어요. 만일 제가 혼자 시작했거나 다른 파트너를 만났다면 8월에 론칭하지 못했을 거예요.밑미가 오픈되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진행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희 넷은 시너지가 좋은 조합 같아요. 이전에 함께 일해본 적 있는 저, 은지, 봉봉이 브랜드 내부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롤리는 그걸 눈에 보이도록 강조해 줘요. 네 개의 퍼즐 조각이 딱 맞아떨어진 거죠. 

은지: 론칭 당일까지 두 달간 합숙했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관계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어요.합숙하면서 이 친구가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지, 어떨 때 컨디션이 안 좋은지, 어떤 버릇이 있는지 서로의 생활까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거든요.

봉봉: 제주도 워크숍도 큰 역할을 했어요. 저희 관계와 브랜드의 뿌리가 단단해지는 시간이었거든요. 워크숍에서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넷이 머리를 합쳐 고민했어요. 비전, 미션, 일하는 방식, 로고…. 밑미만의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밑미’라는 이름이 이 브랜드를 잘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요. 

하빈: 브랜드 이름에도 고충이 많았어요. 밑미는 거의 막바지에 뒤집혀서 결정된 이름이었죠. 초기에 저 혼자 심리상담 플랫폼을 기획했을 때 이름은 ‘마음을 심는다’는 의미의 ‘심심’이었어요. 롤리가 듣자마자 상표 등록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줘서 ‘아하모먼츠’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이름 역시 이미 상표권 등록이 되어 있어서 또 다른 이름을 고민해야 했어요.

봉봉: 그 이후에 가장 오래 쓴 게 ‘마슬로’예요. 브랜드의 꼴이 갖춰졌을 때 정해진 이름이라 거의 확정 상태였어요. 카운슬러와 미팅할 때도 “마슬로입니다.” 하고 소개했거든요. 마슬로라는 이름은 저희 비즈니스 모델에 큰 축이 된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왔어요.롤리가 학자 이름에 아포스트로피를 찍어서 Ma’slow를 만들면서 짓게 된 거였죠. ‘나의 속도’라는 의미도 좋고 상징성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제 입에 그 이름이 잘 안 붙었어요. “마슬로 이용복입니다.” 하고 소개한 지 꽤 되는 시점에 불쑥 정이안 간다고 고백하고 말았죠.

롤리: 다들 엄청 놀랐어요. 근데 사실 저도 마슬로의 발음이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럴 바엔 차라리 네이밍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일주일 동안 각자 고민해보기로 했는데, 제가 문득 ‘나이스 투 밑미Nice To Meet Me!’라는 문장을 떠올렸고 다들 이 말을 마음에 들어 해서 순식간에 ‘밑미’로 브랜드 이름이 결정됐어요. ‘나이스 투밑미!’는 슬로건이 됐고요.

 

브랜드 이름을 보고 한눈에 어떤 의미인지 알았어요. ‘밋미’가 아니라 ‘밑미’여서 더 직관적이었죠.

은지: 브랜드 이름에 의미가 담겨 있어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어요. 오픈하자마자 고유명사처럼 “저도 밑미하고 싶어요.” 같은 피드백이 많은 것도 기뻤죠.

롤리: 벌써 많은 사람이 “밑미하세요.”라든지 “너 힘들어? 밑미해 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하빈: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이 “하빈 씨 회사”라고 이야기해왔는데 이름이 생기니까 다들 “밑미가”라고 하는 걸 보고 잘 지었구나 싶었어요. 입에 잘 붙는다는 피드백도 많았고요. 여러 이름을 거쳐 오면서 브랜드 네이밍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봉봉: 슬로건도 그렇죠. ‘나를 만나서 반가워’라는 의미의 ‘나이스 투 밑미!’에는 ‘진짜 나True Self’를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 담겨 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진짜 나는 행복한 나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슬픈 나, 좌절하는 나, 화난 나도 모두 소중한 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밑미를 통해 내 모습, 내감정, 내 생각, 내 욕망을 솔직하게 들여다봄으로써 가장 나다운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기존의 심리상담 이미지와는 달리 발랄한 느낌이 있어요. 채도 높은 색감이나 손글씨, 손그림을 사용해서 친근한 느낌도 들고요.

하빈: 밑미는 고루한 심리상담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색감이 더 밝게 나올 수 있었어요. 로고도 무척 빠르게 완성됐는데요. 롤리는 인사이트가 있어서인지 디자인할 때 진득하게 붙잡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밑미 로고도 ‘나이스 투 밑미!’가 나오자마자 쓱쓱 그린 건데, 보자마자 저희 모두 마음에 들어 했어요. 지금 로고는 초기 시안 거의 그대로죠.

롤리: 마우스를 사용해서 떠오르는 대로 그렸는데 삐뚤빼뚤한 느낌이 좋더라고요. 매끄럽게 다듬으면 이 느낌이 남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살렸어요. 모양만 보면 네 사람이 양손을 잡고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을 위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해요.연대한다는 느낌도 있고, 여럿이 손을 잡아도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 같기도 하죠. 수영을 못하는 어떤 분은 자기를 위해 튜브를 던져준 것 같다고도 했는데 저희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의미처럼 들리더라고요. 각자 다른 해석이었지만 모두 의미 있는 내용이어서 잘 만든 로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봉: 카운슬러들도 해석이 다 달라요. 주황과 파랑의 조화를 두고 긍정과 우울이 공존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어요. 저희가 삐뚤빼뚤한 원을 좋아한 건 자연스러움 때문이 었는데 많은 분이 ‘불완전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 의미도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우리 로고가 더 마음에 들어요.

밑미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꼭 필요한 구조예요. 심리상담 전문가부터 액티비티를 함께할 카운슬러도 모집해야 했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 왔나요? 

하빈: 카운슬러는 작년부터 컨택하고 만나기 시작했어요. 모든 시장이 그렇듯 심리상담 분야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더라고요. 저희가 기준으로 삼은 건 10년 이상 심리상담을 진행한 전문가였죠. 어떤 분야든 10년이면 인사이트가 생긴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는 유명한 심리 카운슬러와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밑미와 뜻을 같이하고 우리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금까지는 미팅을 통해 저희와 잘 맞는 분들을 컨택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면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카운슬러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지금의 과제죠.

 

온라인 리추얼도 재미있어요.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비해 가볍게 접근할 수 있기도 하고요.

하빈: 많은 카운슬러가 이런 제안을 해요. “5분이라도 걸어보세요.”라든지 “물이라도 꼭 드세요.” 같은 거요. 진짜 힘들 때는 사소한 움직임도 마음처럼 잘 안 되거든요. 근데 리추얼로 특정 습관을 몸에 익혀온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연스럽게 하던 행동을 하게 돼요.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당장 심리문제를 겪는 사람을 위한 거라면, 온라인 리추얼은 건강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기획이에요. 미리 나를 단련하는 거죠. 리추얼을 혼자 할 수 없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훈련된 리추얼메이커와 함께한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특정 분야에 이미 훈련된 리추얼메이커가 리추얼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시스템으로 구성했죠.

롤리: 저는 번아웃을 극복하면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 활동들로 리추얼을 경험해 본 적도 있죠. 매일 아침 두 시간씩 저만을 위한 시간을 스스로 꾸린 건데요. 달리기, 독서, 글쓰기, 요가 같은 것들을 50일 정도 반복했는데 그 시간이 쌓이니 놀랍게도 제가 진짜 건강해져 있더라고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에너지가 가장 넘치던 시기였어요. 재미있는 건,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거예요. 저는 리추얼을 할 때마다 SNS에 그 과정을 기록했는데, 사람들이 “언니가 뛰어서 저도 뛰었어요.” 라든지 “오늘은 안 하려고 했는데 저도 해야겠어요.” 같은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그때 리추얼메이커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함께하는 데서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봉봉: 저희는 밑미로 프로그램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리추얼 문화도 그중 하나고요.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리추얼 프로젝트는 챌린지 형태가 많은 것같아요. ‘5킬로그램 감량하기’, ‘마라톤 완주하기’처럼 성공과 직결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죠. 밑미는 정복하기 위한 리추얼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오늘 하루 리추얼을 못 했다고 자책하거나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위축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밑미 리추얼의 목적은 챌린지가 아니라 트라이예요. 

은지: 리추얼메이커의 도움을 받아 각자 자리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하는 거니까 부담도 덜할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명이 함께하는 리추얼이지만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해나갈 수 있길 바라고 있죠. 요즘 시대에 연대는 꼭 필요하지만 최근엔 연대가 평준화되어 간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밑미는 최대한 연대하되, 나만의 방식대로 리추얼을 쌓아갈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똘똘 뭉쳐 숨 막히는 커뮤니티가 아니라 느슨한 커뮤니티, 문화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어요.

 

진짜 나를 찾는 일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해나가야 하는 일 같아요. 네 분은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하빈: 밑미를 하기 전에 저는 ‘다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저를 소개하곤 했어요.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사실 겉핥기만 하고 그만두는 분야도 많았거든요. 꾸준히 하는 게 없다는 이유로 꾸중을 듣기도 했죠. 그러다 어떤 책에서 ‘모든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진짜 원하는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찾기 시작했어요. 가만 보니 저는 물건이든, 장소든 오랫동안 시간이 쌓인 것들을 좋아하더라고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 멋져 보이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만의 철학을 꾸준히 쌓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롤리: 저는 대체로 행복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에요. 그런 제가 무너지는 경우는 주변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감지했을때죠. 그럴 때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제 고민으로 그 사람이 나아지는 걸 보면 큰 희열을 느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나 저 자신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 행복해져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부터가 단단해져야겠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계속해서 저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봉봉: 혼자서만 잘 사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행복해도 함께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완전히 행복해질 수가 없거든요. 저는 더불어 살면서 주변과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꿈꿔요. 모두가 안정적인 삶을 누릴 때, 그 안에서 진짜 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지: 저는 오래전부터 제 존재에 대해 고민해 왔어요. 자기소개를 할 때도 나를 설명하는 많은 것이 과연 진짜 나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죠. 제 이름, 제가 속한 회사, 제 직함, 제가 사는 곳…. 만일 이것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저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진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명상이나 요가로 자아를 탐구하곤 해요. 저를 둘러싼 표피 안에 진짜 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페르소나 속에 있는 진정한 자아를 찾고 나면 진정한 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H. nicetomeetme.kr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