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ing Your Home] 당신을 아끼는 내 마음을 오래 기억해주세요

성보람 ㅡ 포에지

조그만 선물가게 포에지는 성보람 대표가 엄마에게 받은 편지에서 싹텄다. 시장을 다녀온 엄마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고, 표지를 열면 다정한 진심이 흘러나왔다.

은하수아파트

형태: 아파트
거주: 1년 10개월
나이: 14년

반가워요. 집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안녕하세요. ‘포에지’라는 선물가게를 운영하는 성보람이에요. 

 

강아지가 반가이 맞이해줘서 기뻐요. 보람 씨와 똑 닮았어요. 

그죠? ‘네리’가 사람을 참 좋아해요. 잠시만 남편이 안고 있을게요. 좋아서 오줌을 쌀지도 모르거든요(웃음). 30분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긴 대화를 나누기 전에 집을 먼저 둘러보고 싶어요. 

현관을 들어오면 보이는 곳이 전실인데요, 제가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기도 해요. 옛날 집 특성상 전실이 굉장히 넓어서 한쪽에 수납장을 짜서 복도를 만들었어요. 가족사진과 아끼는 오브제들을 뒀죠. 전실에서 왼쪽으로 향하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엌이 나와요. 요리를 좋아해서 공간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계속 정리정돈을 하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부엌 뒤로는 네리 소파가 있고 맞은편에 침실이 있어요. 호텔처럼 온전히 숙면을 취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아침에 눈 뜨면 좋아하는 그림이 보여서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하죠. 방에서 나가면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이 보여요. 중앙에 식탁을 두어 손님을 맞는 응접실과 홈 오피스, 다이닝룸을 겸하고 있어요. 저희는 티브이를 항상 켜두는 스타일은 아니고 남편이 음악을 좋아해서 거실에 오디오를 뒀어요. 그 사이를 하태웅 디자이너가 결혼 선물로 준 아이슬란드 성당 사진이 중심을 잡아줘요. 아, 티브이 방이 따로 있어요. 일을 끝내고 밤에 같이 영화 보거나 쉬는 공간이에요. 

 

창으로 들어오는 볕이 우드 톤의 가구와 자재를 감싸네요. 따스하고 안온한 분위기예요. 

오래된 아파트라 리모델링을 했지만 갓 공사한 집 특유의 멀끔한 아파트가 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살아온 집처럼 자연스럽고 아늑했으면 해서 오래된 집이 지닌 자재와 정서를 보존하면서 꼭 필요한 것만 고치고 싶었어요. 라이크라이크홈의 손명희 대표님과 의논하여 진행했어요. 

 

부부와 네리가 함께 사는 집인데요, 서로 다른 이들이 생활을 맞춰온 과정이 궁금해요. 

네리는 2020년 겨울, 저희가 결혼식을 올릴 무렵 청주에서 구조된 강아지인데요. 자기 집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짧은 줄에 매여서 방치되어 있었어요. 자기가 싸 놓은 똥들에 둘러싸여 사람들을 반가워하는 동영상을 보고 운명을 느꼈어요. 남편을 설득해 입양신청서를 쓰고,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집에 데려왔어요. 저희 부부는 성격도, 하는 일도 달라요. 저는 선물가게 주인이고, 남편은 부동산 뉴스레터 ‘부딩’ 대표예요. 남편은 현실적이고 예민하고, 자신이 가진 걸 천천히 가꿔가는데, 저는 이상적이고 일이 잘 안 풀려도 ‘결과적으로 나한텐 더 잘된 걸 거야.’ 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죠. 많이 다르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인적 드문 시골, 시를 좋아하는 게 닮았어요. 지금 가장 유행하는 것, 멋진 것보다는 저희다운 것을 먼저 선택하는 부분이 비슷하고요. 취향의 공통점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면을 우선시한 르코르뷔지에의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이 집을 고칠 때, 1934년부터 1965년까지 르코르뷔지에가 살던 파리 16구 아파트에서 착안한 부분이 많아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정말 필요한지 고민하고 집에 잘 어울리는 걸 발견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면서 집을 완성해 왔어요. 

 

집에서 일과 생활을 같이 하는 건가요? 

맞아요. 저희 둘 다 현재 직업을 갖기 전까지는 에디터로 일해왔어요. 10년 넘게 매체에 소속되어 일하다 남편이 먼저 그만두고 부딩을 시작했고, 저도 1년 뒤 퇴사하고 포에지를 열었죠. 둘 다 1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든, 도서관이든 마음에 드는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보통 하루는 어떻게 흐르나요? 

대개 아침 10시쯤 일어나 남편은 네리에게 밥을 주고, 산책을 다녀와요. 그사이 저는 점심을 준비해요. 점심을 천천히 먹으면 1시 정도 되는데 그때부턴 둘 다 테이블에 앉아 일을 시작해요. 저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작업실에 가서 선물을 포장하고 와요. 이른 저녁 가볍게 밥을 차려 먹은 다음 메일을 쓰거나 남은 일을 해요. 각자 일을 하다 10시 정도에 티브이 방에서 만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자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사수하는 시간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부엌이라고 했어요. 포에지의 오브제들도 테이블에 쓰이는 게 많은 것 같아요. 

포에지를 시작하면서 티타임이 더 즐거워졌어요. 작가가 정성 들여 만든 작품으로 상을 차리면, 차린 게 별로 없어도 손님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처럼 느끼거든요. 반찬을 여러 가지 만들어 푸짐하게 내기보단 채소덮밥이나 생선구이, 강된장, 토마토수프, 커리 같은 요리를 하나만 만들어서 간소하게 먹어요. 누군가를 위해 차 한 잔을 내는 것, 따뜻한 음식을 내는 것보다 마음을 깊이 표현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부엌을 좋아해요. 

 

공간을 채운 가구와 물건에도 의미가 있나요? 

부엌만큼이나 좋아하는 침실 이야기를 할게요. 신라호텔 제주의 룸처럼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 발밑에 이탈리안 빈티지 라탄 콘솔을 두고, 그 위엔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의 그림을 올려 두었어요. 세간티니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화가예요. 가난한 농부와 일하다 쉬는 여인들을 주로 그렸는데, 실제로는 자신이 가장 가난한 삶을 살았어요. 형이 불에 타 죽고,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며 평생을 무국적자로 살았거든요.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아픔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알프스의 정서가 가득해요. 아내에게 배운 글로 이런 편지를 썼대요. “매년 봄이 오면 알프스에 핀 첫 제비꽃을 당신에게 바칠 것입니다. 당신이 그 꽃을 받지 못하는 봄이 온다면, 그때는 제가 세상을 떠난 겁니다.” 연꽃은 물 위에서 썩지 않고 수질을 맑게 정화한다고 하잖아요. 그는 평생을 연꽃 같은 삶을 살다 간 거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의 그림이 보이는 침실을 참 아껴요. 커튼도 제가 직접 만들어 달았어요. 거실의 테이블은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빈티지 제품인데요. 작은 거실이라 화이트보단 블랙이 공간의 무게를 잡아줄 거라 생각했고, 확장할 수 있어 손님을 초대할 때 유용해요. 저희는 가구 하나 들일 때도 몹시 신중한 편이라 거실의 JBL 오디오도 수십 곳을 다니며 청음해 보고 취향을 좁혀서 선택했어요. 소파를 들이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를 좋아해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난 달 독일에서 발견했어요. 잘 부풀어 오른 빵처럼 폭신하고 빈티지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요. 실용주의를 따지는 남편도 한번 누워보더니 바로 미소를 짓더라고요.

공들여 채운 집이라 애정이 클 거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지내는 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던가요? 

자세히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기능, 쓰임새와 상관없이 집 곳곳에 포에지 물건들이 있어요. 남편이 반입을 허락해 주어서(웃음), 고운 물건들에 파묻혀 살아요. 한 번은 남편이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좋아하는 작가와 만드는 거 같다며 소꿉놀이하는 거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당시엔 아니라고 발끈했지만 사실 맞아요(웃음). 이름부터 시그니처 컬러, 은방울꽃 심볼, 선물가게라는 업종까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실체화했어요. 사람들이 말하길 집과 브랜드가 저와 똑 닮았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좋은 칭찬이 없다고 생각해요. 집에 두고 싶은 것,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물건들과 매일 눈을 맞추며 살아요. 포에지를 연 뒤부터 에디터 업무를 대폭 줄이고 싶었는데 의뢰가 더 많아졌어요. 표면적으로 괜찮은 브랜드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트렌디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반으로 진정성 있게 브랜딩하고 싶어 하는 곳에서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클라이언트가 레퍼런스로 포에지를 언급할 때마다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려 행복하게 일하고 있어요. 

 

저는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이름으로 불릴 때 따듯한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만의 이름도 있나요? 

집의 일상 사진을 SNS에 올릴 때 해시태그로 #milkywayhome을 사용해요. 은하수를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딱 한 번 꿈에 나온 적이 있어요. 대학교 다닐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휴대폰이 정지되었어요. 친구들과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어느 날 꿈에 은하수가 나왔어요. 눈 앞에 펼쳐지는 은하수의 인상이 찬란하고 아름다웠죠. 아직도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해요. 그 꿈을 꾼 다음 날 휴대폰을 다시 쓰게 되었어요.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나서 은하수를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남편이 제일 아끼는 책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고, 조카 이름도 ‘성은하’로 지어줄 정도로 은하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별 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 상징적인 존재로요. 우리 가족의 삶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는 의미에서 밀키웨이홈, 은하수 아파트라고 부르고 싶어요. 

 

에디터로 일하며 나만의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온 거 같아요.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과정이 궁금해요. 

《Noblesse》, 《marie claire》 등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로 오래 일해왔어요. 아파트멘터리라는 인테리어 스타트업에서도 일했고요. 그때는 제 취향이 크게 돋보일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재능이 뛰어나고 색이 또렷한 연예인이나 스태프가 돋보이게 만드는 판을 짜주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다들 바쁜 분들이니 어느 한 사람도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눈치도 많이 봤어요. 매체 소속 에디터로 일할 땐 파리에서 좋아하는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 곁에 앉아 식사할 만큼 황송한 경험도 했지만, 반면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이 사람들은 왜 나를 여기까지 초대했을까?’, ‘왜 이 사람은 나한테 이렇게 긴 시간을 할애해 인터뷰를 해줄까?’ 점점 매체의 인지도에 의존하지 않고 저라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떤 매체의 이름도 기억 못 할 기자로서가 아니라, 성보람이라는 이유로 꼭 시간을 내 이야기해 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 욕구가 커지면서 포에지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도 내고, 명함 한 장 없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찾아가 보면서 온라인 상점을 열었어요. 누구에게도 컨펌받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만 바라보고 직진하다 보니 자연히 제 취향으로 이루어진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왜 선물가게였어요? 

엄마 영향이 커요. 저는 다섯 살 때부터 엄마한테 편지를 받았어요. 엄마가 시장에 나갈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사다 주셨는데, 책 표지 안쪽에 엄마는 어릴 때 이 책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이 책을 골랐는지 등을 적어 주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책이 아니라 엄마의 편지를 기다렸던 거예요.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사랑받는 아이’라는 행복이 컸어요. 그래서 선물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어떤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 물건을 고르고 그 사람이 뭘 좋아할지, 어떻게 쓸지 물건 하나를 두고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을 매일 볼 수 있는 선물가게를 차리고 싶었어요. 재작년에 결혼하면서 유독 마음을 표현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제 마음을 담아낼 선물을 고르기가 퍽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선물을 직접 만들어보자 했죠. 

 

포에지의 뜻과 의미가 궁금해요. 

포에지Poésie는 불어로 시의 운율이나 시의 세계가 가지는 정취를 뜻해요. 마음을 잇는 작은 매개를 고르는 과정이 시를 짓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포에지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어요. 포에지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상품은 작가들 작품이에요. 기획과 제작, 브랜딩 전반에서 ‘정성’으로 감싼 물건은 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온라인 포에지 숍에는 세라믹, 섬유, 금속, 나무, 유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어요. 

 

포에지를 구성한 선물 컬렉션은 어떻게 채워나가요? 

집에서 지내면서,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르면서 ‘이런 게 있으면 좋겠구나.’ 싶은 걸 만들어보고 있어요. 선물해야 하는 사람이 다양한 것처럼 소재와 품목도 끝이 없거든요. 단, 선물이라 크기가 너무 큰 것보다는 가볍게 들고 갈 수 있는 게 좋긴 하죠. 가격대도 3-5만 원대의 선물이면 더 좋고요. 한데 모든 게 제 마음처럼 쉽진 않아요. 요즘 젊은 작가들은 협업에 굉장히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는데 개인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야 하기에 시간 조절과 체력 관리가 관건이에요. 작가들과 기획 미팅을 할 때,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어떤 걸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은지 많이 물어봐요. 그런 마음으로 손수 만드는 선물인데, 만드는 사람들이 지치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해야 작가들이 포에지 작업이 고되다 느껴지지 않을까, 재미와 환기를 불러오는 작업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어요. 

 

포에지 상세 페이지에는 작가마다 인터뷰가 소개되어 있어요. 아티스트들이 시어 하나를 선택하여 작업하는 방식 같던데요. 

맞아요. 포에지가 작가에게 몇 가지 시어를 제시한 다음 같이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해요. 작가는 고른 시어와 ‘선물’이라는 따스한 의식을 연결 지으며 작업하고요. 그렇게 만든 선물들은 모두 포에지에서만 만날 수 있고요. 협업 방식은 작품이나 작가마다 다른데, 은방울꽃 세라믹 컬렉션의 경우 제 그림이 굉장히 명확한 편이었어요. 이걸 잘 표현할 거라 확신이 든 박혜성 작가에게 은방울꽃으로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분명하게 요청했고요. 반면 최한올 작가와의 협업은 전혀 달랐어요. ‘달’이라는 시어를 제시하고 미팅을 두어 번 한 뒤 첫 샘플이 나오는 날 어떤 작품인지 알게 되었어요. 작가가 만들고 싶은 선물이 궁금했거든요. 온전히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와서 첫 샘플이 바로 상품화됐죠. 이 형태를 발전시켜 매거진 화보 작업을 하기도 해요. 작가가 작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작품을 주제로 기획한 화보가 작년 《artnow》 매거진 겨울 호에 실렸어요. 포에지는 편지와 선물, 발행된 책을 전달하는 큐피드 역할을 했죠. 

 

포에지에서 물건을 구매해 본 분들은 지금껏 받아본 선물 중 가장 정성스러운 포장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선물을 둘러싼 감동적인 경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1년 가까이 포에지를 운영하면서, 이 일로 돈을 많이 벌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작가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을 값싸게 사 올 순 없고, 선물가게 특성상 가격이 너무 높으면 안 되죠. 그럼에도 포에지가 선물 포장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건 물질적인 만족 이상으로 선물을 받고 풀어보는 과정의 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포장이 너무 예뻐서 하루는 택배 박스를 열고 그다음 날 그 안의 선물 포장을 푸느라 언패킹에만 이틀이 걸렸다는 어떤 분의 후기만 생각하면 감사해서 미소가 지어져요. 포에지는 물건과 함께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카드를 같이 보내드리는데요, 브랜드 소개 카드를 넣는 봉투를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 선물할 일이 있을 때 메시지 카드로 한 번 더 사용되었으면 해요.

기억에 남는 선물가게가 있어요? 

아주 오래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남편과 일본을 여행하다 한 세컨드핸드 숍에 우연히 들어갔어요. 작은 물건 하나에도 태그가 붙어 있었는데요. 가령 ‘나는 런던에서 글 쓰는 일을 한다. 이 주전자는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물려주신 주전자이니, 나보다 더 필요한 이가 가져가서 소중하게 다뤄주길.’ 같은 글이 적혀 있었죠. 그 소소한 브랜딩에 매료돼 가게에서 오랫동안 나오질 못했고, 결국 남편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은 자수 핸드백과 빈티지 접시를 받았어요. 저는 단지 아름답고 실용적이고 만듦새가 좋아서 무언가를 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처럼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사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봐요. 포에지 상세 페이지에 인터뷰를 실은 것도 이것을 누가, 어떻게, 어떤 생각을 하며 만들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작가의 정성이 담긴 작품을 귀하게 포장해 줄 수 있는 요소가 뭘까, 포에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감동에는 뭐가 있을까 많이 고민해요. 

 

포에지를 꾸린 뒤 첫 선물은 누구에게 했어요? 

엄마에게 포에지 첫 작품인 은방울꽃 잔을 선물해 드렸어요.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같이 좋아해 주거든요. 춘천 집에 엄마의 친한 친구들이 오면 잘 넣어두었던 그 잔을 꺼내실 거예요.  

 

선물 고르는 시간을 왜 좋아하는 거예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보람 씨가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선물은 어떻게 보면 ‘내가 너를 좋아해. 너에게 많이 고마워. 너를 아끼는 내 마음을 오래 기억해줘.’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는 표현을 중시해요. 고맙다, 사랑한다, 내가 곁에 있다고 말하는 데 약간의 용기 말고 어떤 게 필요한가요? 돈이나 체력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말 고마운 사람에게 내 능력이 닿는 한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선물은 내 마음을 더 곱게 감싸는 선물 포장 같은 거예요. 그래서 포에지 선물 기획과 제작, 포장 전반에 정성을 들이고 싶은 거고요. 그저 물질적인 선물이 필요한 사람은 포에지에선 살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웃음). 

 

선물을 고르는 건 ‘나’의 마음도 담지만 타인의 상황, 기분. 감정을 헤아리는 일이잖아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맞아요. 저는 선물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지인에게 선물한다면, 지인의 가족 관계, 직업, 패션 스타일, 선호하는 인테리어 풍, 하물며 건강 상태까지 알아야 해요. 이것만 해도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데, 그 선물을 받는 상황까지 헤아리죠. 친구가 사무실에서 한창 야근 중인데 무겁거나 손상되기 쉬운 짐이 도착하면 집에 가지고 갈 때 얼마나 거추장스럽겠어요. 고심 끝에 선물을 골랐어도 그저 처리하기 난감한 물건이 되어버리겠죠. 선물은 이 모든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하는 행위예요. 관계에서 상처받고 울 때도 많지만, 금세 잊어버려요. 사람들을 좋아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낙천적인 성향이라 선물가게에 진심을 담고 있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영향을 준 관계가 있나요? 

엄마요. 엄마는 저의 가장 좋은 친구이고 스승이고 저의 팬이에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를 항상 응원해 주셨어요. 포에지 할 때, 현실적인 남편이나 주변인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될 거야.”라면서 걱정을 많이 하는데, 엄마는 항상 힘이 되어 줘요. “그냥 해봐. 그렇게 위험한 일 아니야. 엄마도 옛날에 비슷한 일을 해봤는데,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야. 해보면 네가 뭘 잘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넌 좋아할 것 같아.”라면서요. 마냥 사랑만 받고 자란 것처럼 씩씩한 엄마가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저라면 자신을 가엽게 생각했을 거예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는 달랐어요. 부모님들이 생전에 좋은 것만 먹이고, 가장 좋은 것만 입혀주셨다고, 곁에 있어 준 시간은 짧았지만 큰 사랑을 받았다고 말해요. 저는 엄마처럼 맑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최근 ‘엄마와의 펜팔’이라는 리추얼을 하고 있다고요. 왜 편지 쓰기를 시작했어요. 

엄마가 제 분신 같은 존재라서 평소 엄마의 죽음을 자주 걱정해요. 특히 견디기 힘들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엄마의 죽음을 떠올려요.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플 게 분명한, 그런 일도 겪을 텐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내거든요. 작년에 엄마와 통화를 하다 엄마에게 일기 쓰듯 편지를 써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어요. 엄마도 제 부탁의 이유를 어렴풋이 아셨는지 “그래. 너에게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를 많이 남겨주고 싶어.”라고 대답하셨어요. 서로 바쁘게 지내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고요 님이 밑미에서 엄마와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받는 리추얼을 진행한다는 포스팅을 봤어요.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메일 보내는 법을 알려주었죠. 먼저 엄마에게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빨강 머리 앤》의 앤과 다이애나처럼 편지를 주고받고 싶었거든요. 엄마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꼭 제가 엄마의 엄마가 된 것 같아 묘하고 행복했어요. 눈이 침침하시고 이메일 사용법에 아직 많이 서투셔서 노트에 편지를 써서 사진으로 찍어 이메일로 전송해 주고 계세요. 

 

주로 어떤 내용을 주고받아요? 

일상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춘천에 사시는 다이애나가 산책하면서 본 것들, 아빠와 어떻게 지내는지 같은 이야기요. 통화로 매일 하는 이야기지만 편지로 읽으면 느낌이 많이 달라요. 그것도 엄마가 보낸 이메일이라는 것부터가 재미있잖아요. 최근에는 다이애나의 어린 시절을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어느 날의 편지엔 방과 후 할머니가 키우는 아기 돼지들이 보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단 얘기가 있었어요. 《빨강 머리 앤》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편지로 상상하며, 당장이라도 어린 다이애나를 찾아가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엄마와 솔직하고 다정한 편지를 주고받는 일상이 부러워요. 편지를 쓰면서 나를 알아가고,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도 커질 텐데요. 둘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일 거 같아요. 

평소 우리가 정말 앤과 다이애나 사이 같단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 그 관계가 더 애틋하게 다가와요.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남편과 강아지가 잠들고 난 뒤 조용한 곳에 앉아 이메일을 쓰거든요. 온전히 엄마의 삶, 엄마의 행복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시간이죠. 전화는 편지에 비해 쉬워요. 엄마는 지금 뭐 할까, 그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전화하잖아요. 사랑스럽고 씩씩하게, 베풀며 살아가는 다이애나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이 펜팔을 계속 이어가려고 해요.

엄마의 편지로 하루하루가 설레고 풍성하게 느껴지겠어요. 또 해보고 싶은 설레는 일이 있어요?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막연하게 엄마들을 위한 일을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엄마가 아닌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엄마들이요. 남편과 자식을 돌보느라 자신의 꿈을 마음속에만 간직해 온 엄마들이 활짝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들은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수익금이 생긴다면 전부 엄마들에게 써서 엄마들이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지만 가족을 위해 포기한 무언가를 선물하는 데 쓰면 좋겠어요. 

 

포에지가 곧 1년을 맞이한다고요. 좋아하는 일이지만 매 순간 혼자 결정하고 길을 만들어 걷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을 거 같아요. 

가끔 너무 포화된 시장에 뛰어들어서 혼자 이걸 다 하고 있나, 누가 알아줄까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누군가 곁에서 힘이 되는 말을 해줘요. 어떤 손님은 90세 넘은 할머니께서 최근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셔서 많이 상심해 있다며, 할아버지와 살던 집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던 은방울꽃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한데 은방울꽃은 시드니까 은방울꽃이 새겨진 찻잔과 접시를 선물하셨거든요. 포에지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는 데 쓰였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최근 다기를 만든 손세은 작가는 포에지가 꼭 크리스마스 같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할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 떠오르는 크리스마스처럼, 포에지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있다고요. 저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서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고 좋은 시기를 기다리며 일을 하려 해요. 공장처럼 일률적으로 일하면 지치기 일쑤고 그러다 소홀해지면 작가한테도 미안하니까 멀리 보며 균형을 잘 잡아보려고 해요. 시간이 쌓여 언젠가 포에지 오프라인을 만드는 게 가장 큰 꿈이에요.

H. poesie.kr

‘은하수아파트’ 곳곳의 선물들

1. 지난 연말 최한올 작가가 엄마와 함께 담은 생강청을 선물해줬어요. 광목을 손수 바느질한 주머니에 생강청이 담겨 있었어요. 깊은 정성이 느껴져서 끈 푸는 것도 아까웠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다이어리를 넣고 다녀요.

2. 박혜성 작가가 초롱꽃을 새기고 러프한 질감을 살려 만든 세라믹 바구니를 보자마자 엄마에게 선물했어요. 눈이 어두우신 엄마가 자꾸 깜박하는 일이 생긴다며 수첩에 메모를 하시거든요. 펜과 안경을 넣어두기를 바라며 선물했어요.

3. 여름의 콩, 가을의 도토리, 겨울의 유자 모빌이에요. 최희주 작가 덕분에 계절을 더 짙게 감각해요. 이렇게 고운 열매 모빌을 선물하는 것으로 새 계절이 왔다고 알려주었거든요. 사랑스러운 네리가 잠드는 공간 문틀에 달아주었어요.

4. 아이보리 패브릭 갓과 오크 보디로 조합된 침실 조명은 오래전 남편이 선물한 거예요. 남편과 헤어질 뻔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남편이 이별을 고하면서도 집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며 마음 썼거든요. 화해하자마자 무인양품에 데려가 이 조명을 사주었어요. 평범해 보이지만 끝까지 버리지 못할 소중한 선물이에요.

5. 베란다에 있는 큰 나무는 제가 결혼할 때 준다고 엄마가 살뜰히 키우신 올리브나무예요. 열매가 열린 작은 올리브나무는 결혼한 다음 하나 더 놓아주신 거고요. 두 그루의 올리브나무를 보며 늘 저희 기도뿐인 엄마의 바람처럼 웃을 일 많이 만들고 단정하게 살아야겠단 생각을 해요.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