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ing Your Home] 내 이름을 넣은, 나와 닮은 내 회사

서윤정회사

작업실은 집보다 더 ‘나’를 투영하는 공간인지 모른다. 타인과 타협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으로 꾸리며 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둥지. 북촌 끝자락, 오래된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서윤정 작가는 나를 닮은 공간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일의 시작을 알리는 커피잔, 쪽잠을 자는 소파, 작업실 창으로 보이는 식물, 일이 안 풀릴 때 들춰보는 책과 옛 작업까지 켜켜이 쌓여있다. 내가 누구인지 흔들리다가도 이곳에 오면 자신을 지키게 된다는 그의 울타리. 기분 좋음은 또 다른 좋은 걸 만들어낸다.

서윤정회사

형태: 적산가옥, 도심형 한옥, 양옥

거주: 4년 6개월 

나이: 62년쯤

인터뷰 전에 공간을 먼저 둘러보고 싶어요. 늘 집을 소개해 왔는데, 작업실은 처음이에요.


이곳은 1960년대에 지어졌대요. 조각가 김정숙 선생님의 자택이었다가 작업실도 증축해서 썼던 걸로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 자택으로 쓴 공간은 적산 가옥과 한옥이 섞인 형태이고, 새로 지은 곳은 양옥이에요. 원래 자택과 작업실 사이에 문이 있었는데, 저는 가벽을 세워 두 공간을 나눠서 쇼룸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전 작업실은 한남동에 있는 작고 허름한 곳이었어요. 우연히 성곡미술관 근처에 왔다가 부동산에 가봤어요. 사장님께서 동네 구경을 시켜주시더니 뷰가 좋은 집이 있다며 이곳을 보여주셨어요. 집이 너무 예쁜 거예요. 마당도 있고요. 어머니가 부동산과 집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여기가 좋겠다며 권유했어요. 사실 작업실로 아주 이상적인 공간은 아닌데 전원생활의 로망이 있어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보수 공사를 하느라 1년 정도 공간을 다듬었고 2008년 3월쯤부터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작년 <May I?>전시를 보러 여기에 와봤어요. 기하학적 무늬의 타일이 있는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오니 튤립과 수국이 가득 피어 있는 정원이 보이더라고요. 넋을 잃고 내부에 들어섰는데, 한옥과 형형색색의 페인팅이 잘 어우러져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정원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처음 왔을 때 아주 오래된 감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공사하기 전부터 와서 감나무 주변으로 수국, 장미, 아스파라거스, 겹벚꽃나무, 체리나무, 복숭아나무, 작약, 튤립 등을 심었어요. 아버지가 식물을 좋아하고, 온 가족이 정원 가꾸는 데 진심이어서 밤낮으로 와서 물 주고, 식물 심고, 주말마다 원예 쇼핑하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어요. 열심히는 했는데 조경에 대한 이해가 없고 하나하나 배우면서 하다 보니까 좀 정글처럼 보이긴 해요(웃음).

 

내 공간에서 전시를 열어보니 어땠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쇼룸을 상시 오픈해 두긴 했어요. 관광객들이 오시거나 아주 가끔 SNS로 궁금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작년에는 코로나19도 있고, 제가 아기를 낳으면서 매일 오픈할 수가 없어서 닫아놓고 있다가 <May I?>전시하면서 다시 열었죠. 함께 기획한 Speakeasy Somthing 이리아 대표는 고등학교 후배예요. 같은 화실 다니며 친하게 지내다가 미국으로 가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서윤정회사’ 시작하고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어요. 몇 년 전 리아의 판화 전시에 갔다가 지나가는 말로 같이 전시하자는 얘기를 나눴어요. 친구가 제 작품과 공간을 마음에 들어 했고, 저도 리아가 가진 빈티지 포스터들이 좋아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좋으니까 편하게 하자고 했는데 공간에 그림을 다 걸고 보니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쇼룸을 찾아오신 분들은 제 작업보다 공간에 관심이 더 많으신 거 같아요. 제 그림들이 크지 않거든요. 공간이 가진 힘이 세서 제 작업이 묻히는가 싶어 조금 서운하거나 속상할 때도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대학원 때는 제 키보다 큰 작업들도 했는데, 여기 와서는 큰 페인팅을 거의 못 했어요. 학교 스튜디오는 넓었고, 지금 제 작업 공간은 작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작은 작업 위주로 하게 된 거 같아요. 또 서윤정회사를 만들면서는 회화 작업 외에 오브제 만드는 작업도 겸하다 보니 하나에 오래 집중하기보다 여러 개를 할 수 있도록 핸들링하기 편한 걸 선택하게 된 것도 있어요. 앞으로는 좀더 큰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얼마 전에 <사물의 풍경>전시도 끝난 거죠? 작년, 여러 작가들과 모여서 다양한 장소에서 전시를 진행한 걸로 알아요.

<사물의 풍경>은 현대인에게 일상의 감각을 제안하는 주제로 저를 포함해 밍예스 프로젝트, 연진영 작가와 같이 했던 전시예요. 저는 선과선분 김민선 작가와 협업으로 만든 화병과 패브릭 몇 점을 전시했어요. 순수 미술과 디자인 사이 모호한 경계에 있는 작가들과의 전시라 물성은 달라도 조화로웠어요.

서윤정회사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거예요?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2006년 말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대학원 때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을 오래 했어요. 미술은 비 실용 학문이잖아요. 진짜 유명한 작가가 돼서 미술관에 작품이 걸리거나 그림을 팔지 않는 이상 내가 하는 일은 우아한 취미 생활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하며 실용성을 고민하게 된 거죠.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한국에 와서 집 근처에 조그마한 작업실을 얻었어요. 회화 작업은 계속했지만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림이 창고에 쌓여만 가니까요. 처음 이 집을 고칠 땐 양옥은 회화 작업실로 쓰고 옆 동은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을까 했는데, 완성되니까 아깝더라고요. 쇼룸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쓸모 있는 페인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우선 내가 좋아하는 물건 몇 가지를 만들어 보자고 가볍게 시작했어요. 집에서 일상을 보낼 때 나한테 필요한데 구하기 힘든 걸 만들어 보기로 한 거죠.

 

이 공간 덕분에 서윤정회사가 만들어진 거네요. 고민하던 시간을 지나 작업실이 완성되고 여기서 그림을 그렸을 때 기분, 기억나요?

제일 처음에 여기 와서 한 작업이 서윤정회사에 선보일 토트백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토트백에 그림을 그렸는데 상쾌하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이전 작업실은 빛이 안 들어와서 엄청 어두웠는데 여기는 온통 하얗고 밝잖아요. 쨍한 색깔로 페인팅을 했는데 속이 시원했어요. 제가 만든 공간이니까 여기 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오늘은 뭘 해볼까 기대하면서 오는 날이 많았어요. 즐겁게 작업하다가 시간이 돼서 집에 가야 하면 다음 날 아침에 빨리 가고 싶고 그랬죠.

 

저는 재미있는 공간에서 재미있는 시간이 만들어진다고 믿어요. 작업 테이블 앞에 정원이 바로 보여요. 식물의 작은 움직임이나 변화를 관찰하고 해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작업실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나요? 

작업실에서 지내는 루틴이 있어요. 걷는 걸 좋아해서 아침에 버스 타고 국립현대미술관쯤에 내려요. 요 아래 편의점까지 걸어와 그날 먹을 걸 사서 올라와요. 들어오면 정원을 먼저 살피죠. 식물에 물을 주고 새로 핀 꽃을 보거나 변화를 구경하다가 안으로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고 작업을 시작해요. 작업이 잘되는 날은 시간이 엄청 빨리 가요. 그때는 주로 밤까지 작업을 하지만 잘 안 풀리는 날엔 비슷한 작업을 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 나가서 전시를 보고 주변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요.

애정을 쏟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자리가 있어요?

작업하는 책상이랑 지금 인터뷰하는 자리를 가장 좋아해요. 작업 책상이 있는 곳이 빛이 가장 잘 들어오고, 여기는 조금 어두운 편이에요. 여기서 낮잠도 자고 책도 읽어요. 쇼룸은 제가 늘 쓰는 공간은 아니다 보니 오래 머무는 공간에 애착이 더 많이 가나 봐요. 쇼룸 쪽에 메인 주방이 있어서 친구들과 음식을 같이 해 먹기도 했는데, 저기서 작업을 하진 않아요. 사람들이 오면 쇼룸은 항상 정리돼 있고 꾸며져 있어 예쁘다고 하는데 저는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이 더 좋아요.

 

쇼룸에는 그동안 만든 오브제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요. 도형과 색으로 페인팅한 작품들이 미니멀한 느낌을 주는데, 서윤정회사의 이름도 비슷해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듯 솔직하고 단순해 보여요.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나요? 

지금은 동물이나 도형 등 어떤 형상을 그리기도 하지만, 대학 땐 미니멀리즘에 한창 빠져 있어서 힘 빼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도 꾸며진 느낌이 아니길 바랐고, 제 이름은 꼭 넣고 싶었어요. 또 회사에 다니고 싶더라고요(웃음). 좀 생산적이고 경제 활동을 하는 느낌을 갖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그런데 가끔 약간 오그라들 때가 있어요. 저랑 비슷한 일을 하거나 결이 맞는 친구들한테는 괜찮은데 남편 지인들 만날 때 종종 그래요. 남편은 저와 반대의 성향에다가 회사원이에요. 남편 주변인들이 보기에 서윤정회사가 조금 하찮아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영어로 ‘회사’라고 써놓으면 외국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설명해야 할 때도 있어요.

 

로고도 이름의 초성을 도형으로 형상화한 거죠? 

학부 때는 공간을 표현하는 제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수단에 심취해서, 다른 형태는 안 쓰고 점선면으로 표현하곤 했어요. 지금 작업실 벽에 걸려 있는 무채색 작업들은 학부 때 그린 거예요. 차분한 톤으로 미니멀 아트 작업을 하다가 대학원을 영국으로 갔는데,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이 더 다채롭더라고요. 점이 커지면서 동그라미가 되고, 네 선이 모이면 네모, 세 선이 모이면 세모가 되잖아요. 면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도형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조금 더 선명한 색깔을 쓰게 되었고요.

 

도시가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는 거네요?

네. 저는 공간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아요. 시카고는 제가 느끼기에 무채색 도시 같아요. 여름에는 햇빛 쨍쨍한 날씨지만 건물도 거의 무채색이고 사람들 옷도 대체로 차분해요. 영국은 구름 낀 날씨가 많고 비가 자주 오긴 하지만 회색빛 도시에서 사람들이 색을 다채롭게 쓰더라고요. 대문이나 버스의 강한 색이 환경과 대조를 이루면서 눈에 들어왔어요. 원래 색을 좋아했지만 빨간색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영국 가서 제대로 색에 눈뜨게 된 거죠. 수업 때 배웠다기보다는 학교나 도시의 길가에서 ‘빨강이 이렇게 예쁜 색이구나.’를 느끼고 그 감각을 흡수한 거 같아요. 제가 다닌 학교의 건축물도 참 좋았어요. 아주 오래된 수영장이었던 곳인데, 대학원생들이 스튜디오로 쓸 수 있었어요. 층고가 아주 높고 발코니가 있어요. 그 위로 쏟아지는 햇볕도 좋았고 빛바랜 타일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개인적으로 그때 했던 작업이 제일 좋아요. 색도 과감하게 썼죠. 지금도 색을 쓰지만 똑같이 해보려고 해도 그 느낌이 안 나요. 그 색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때 분위기와 감성이 작품에 녹아들었을 텐데, 그 공간이 재현이 안 되는 거죠. 그 공간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페인팅은 시선을 사로잡는 색과 분위기 덕분에 금세 유쾌한 기분을 주는 거 같아요. 사실 이렇게 색을 매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자칫 과하거나 산만해질 수도 있고요. 색을 쓸 때 즉흥적인 편인가요? 

가장 쓰고 싶은 색이 있으면 그걸 먼저 쓰고, 블루 톤으로 할지, 핑크 톤으로 할지 등의 톤을 정해요. 그런 다음 ‘이 색과 뭐가 어울릴까?’ 고민하면서 나머지 색들은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색이 궁금해요.

네이비를 가장 좋아해요. 영국에 지낸 이후 작업의 색이 다양해졌지만 친구들은 마치 공식처럼 “서윤정이 고른 건, 네이비랑 화이트야.”라고 말하곤 했어요. 요즘 핑크 옷을 자주 입고 작업에도 종종 쓰는데, 핑크를 보면 사탕을 먹은 거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아이랑 지내면서 알록달록한 색을 접하고, 가끔 기분 전환도 하고 싶으니까 종종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페인팅하는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패브릭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경험해 보고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잘 드러낼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한 편이에요. 도자기 작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초벌된 도기에 페인팅을 하는 방식인데 도자 위에 그린 거랑 구워서 나오는 거랑 다르게 나오기도 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지금 서윤정회사는 크게 패브릭과 도자기류로 나뉘어요. 저의 메인은 회화 작업이고, 파생된 이미지로 실용성이 가미된 제품을 만들어서 서윤정회사에 소개하고 있어요.

 

색과 재료에 대한 감각은 어떻게 키워진 것 같아요? 

여행을 자주 갔어요. 여기저기 걸으며 다양하게 보고 좋아하는 것도 많이 사본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게 워낙 많았거든요. 옷, 가구, 책, 식기, 식물 등등. 어머니가 “몇 개만 사야 해.”라고 설득하기보다는 갖고 싶은 걸 스스로 선택하고 많이 접하게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제하는 능력을 기르진 못한 거 같아요(웃음).

부모님이 믿고 맡겨둔 편 같아요. 진로도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중3 때부터 입시 미술을 권유받아서 배웠는데, 제가 손이 좀 느려요.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도 무조건 시간 내에 완성해야 채점이라도 하는데, 저는 정해진 틀에서 그리는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했어요. 고3 때 수능을 보고 실기를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수능을 너무 잘 본 거예요. 실기를 망치면 재수를 할 거 같은데, 다시 또 할 자신은 없어서 문과에 원서를 냈거든요. 미술 학원 선생님들이 난리가 났어요(웃음). 당시 불문과를 썼는데 부모님에게 프랑스로 유학 가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죠. 원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미술을 시작했거든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미국에 가서 한번 경험을 해보고 선택하라고 제안하셨어요. 미국에서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고 입시 준비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다양하게 그림을 그리고 여러 주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어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이렇게 즐겁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한국에서 입시 미술을 할 때는 빨리 이것만 끝내고 패션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파인 아트 과에 입학해서 패션 디자인 수업을 들어봤는데 생각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똑같은 걸 반복해야 하고, 룰이 있고, 기계도 많이 써야 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좀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아갔어요.

 

나에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 잘 파악하는 편이네요. 그림을 그리고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나의 취향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일 같아요� 취향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경험은 뭐예요?

저는 기질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잘 아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호불호가 강해서 옷을 살 때도 입을 때도 항상 제가 골랐어요. 부모님이 늘 일을 하셔서 제가 하고 싶은 건 혼자 알아보는 일이 많았고요. 열아홉 살 때 타국에서 혼자 살게 되면서 삶의 많은 걸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찾아가 보고, 겉에서 보고 살고 싶은 집이면 노크하고 들어가 물어보곤 했죠. 사는 집부터 수건 한 장까지 다 제가 골라야 하니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실패도 했어요?

정말 많이 했어요. 유학 시절에는 어렸으니까 질적인 면은 고려 안 하고 눈에 혹하면 일단 샀는데 그런 게 계속 쌓이는 거예요. 한 개를 사도 좋은 걸 사서 평생 쓰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안타깝게도 많이 사고 버리면서 배웠어요. 지금도 혹하는 걸 사긴 하는데, 취향이 계속 자라서 품질과 신뢰가 보장되는 브랜드에서 쇼핑을 하니까 실패할 학률이 낮아요. 예전에는 이 공간에 어울리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예쁘니까 무조건 소장해야 해.’ 하면서 집으로 들이곤 했어요. 그게 잘 어울리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에 넣어둬요. 이제는 뭔가를 사기 전에 혼자서 머릿속에 그려봐요. 어떤 틀이 있는 구조보다는 여러 물성과 색이 섞이는 공간을 좋아해요. 고민하다가 나름의 확신이 들면 사는데 아직도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게 분명히 예쁘다고 생각했고 지금 봐도 어울리기는 하는데 아름다운 건 계속 새롭게 나타나니까요(웃음).

 

요즘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무얼 해요?

최대한 제 스케줄에 아이를 맞추려고 애써요. 보고 싶은 전시 있으면 미술관도 함께 가고, 작업실에도 같이 나와요. 그리고 한 번씩 시부모님이 아기 봐주시면 여기로 와서 쉬어요. 작업실에 와서 뭐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요즘은 잘 못 오니까 여기 오는 게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집은 아이랑 남편 물건도 많으니까 여기가 더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지겠어요. 작업실에 애정을 많이 쏟다 보면 집에 대한 애착은 좀 줄던가요?

결혼하기 전에는 집에 애착이 컸어요. 우리 가족이 오랜 시간 아파트에 살다가 처음으로 살게 된 단독주택이거든요. 그 집은 저한텐 가장 이상적인 집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자전거 타고 30초만 내려가면 좋아하는 카페가 있고 맛있는 음식점과 갤러리도 많아요. 그때는 집은 집대로 좋고 작업실은 여기 나름대로 편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작업실에 애착이 더 많이 가는 거 같아요. 여기 오면 본연의 내 모습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저는 채광이 중요한 사람인데 집은 빛이 잘 안 들어오고, 아파트이고 제 소유가 아니다 보니 바꾸기에도 한계가 있어요. 주변에 제가 가고 싶은 곳도 없는 동네라서 작업실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더 그리워요.

삶의 흐름에 따라 작품도 변해가는 모습이에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동물이나 과일, 자연물을 활용한 페인팅이 많아진 거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심적인 변화가 있거나 시각이 달라진 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를 보면 아기 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를 자주 그리게 되나 봐요. 아이 책이나 장난감, 놀이 도구를 보면 색이 많잖아요. 그림책을 함께 보며 다양한 작가의 그림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나다운 작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어요.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찾다 보면, 나를 잘 살피는 일이 중요할 거 같아요.

맞아요.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나 자체를 지키자’예요. 원래 제가 가진 모습들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거든요.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원래 나를 되찾고 싶어요. 예전의 저는 좋아하는 것을 취하는데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었어요. 지금은 아기와 남편에 맞춰 정말 많은 타협을 해요. 집만 봐도 그래요. 옛날 같았으면 절대 못 볼 꼴인데 맞추다 보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고심하여 고르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찾아듣고, 그 내면의 스토리를 공부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다 귀찮아진 거예요.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둔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조금 느슨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계속 시간이 흐를까 봐 불안해요. 제가 공백기를 가지고 있을 때, 계속 잘하는 친구들이 나오고, SNS에는 매일 새로운 작업들이 올라와요. 그럼 더 조바심을 느끼죠.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육체적인 노동과 힘듦보다 정신적으로 내가 도태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어요. 좀 예리해져도 가족과 생활에 무리가 없는지 한번 해보려고요. 가족과 나, 일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 같아요.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추스러요?

비슷한 작업 하는 친구랑 대화를 많이 해요. 작업 얘기를 한참 하다 보면 ‘맞아, 나 이제 정신 차리고 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전시나 책에서 좋은 작업을 보고 시각적인 자극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열정이 꿈틀대잖아요. ‘나도 이런 거 만들고 싶은데!’ 하면서 그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기복이 심해서 잘될 때는 계속 작업하고 안 될 때는 손 놓고 지냈는데 이제는 저만의 시간을 오롯이 쓸 수가 없으니까 속도나 루틴이 정말 필요해요. 지금은 더디고 느릴 수밖에 없지만 쉬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봄을 기다리며 지내요.

 

왜 봄을 기다려요?

사계절 중에 겨울을 제일 좋아해요. 눈이 오면 도시가 하얗고 차분해지는 계절의 분위기를 좋아했는데, 봄이 오면 작업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욕구가 되살아나더라고요. 정원에 꽃이 피고 색들이 생기니까 봄이 오길 기다리는 게 제일 설레요. 어서 꽃도 보고 싶고요. 3월부터는 아기가 작업실 바로 앞 어린이집에 다니거든요. 제가 매일 여기 올 수 있으니 출근하면 친구들이랑 차도 마시고 저의 작업 루틴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도 계속하고 싶은 거죠?

19년 정도 그림을 그렸어요. 처음 5년 정도는 입시니까 억지로 한 거라 즐겁지 않았는데 스무 살 쯤부터 내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어요.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는 힘은 자아도취 같아요. 내 손으로 이걸 그리고 만들었을 때 너무 뿌듯해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네.’라는 만족감이 원동력이에요. 저는 오감 중에 시각적 자극에 가장 민감한 편이라 보이는 즐거움을 만들어 낼 때 너무 즐거워요.

 

다가오는 봄에 여기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구체적인 전시 계획은 없지만 혼자 생각하는 건 많아요. 기회가 되면 리아랑 한 번 더 전시를 열고 싶고, 제가 상주하는 시간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볼 수 있게 열어두려고 해요. 코로나19 전에는 두세 명 모집해서 클래스도 했거든요. 도자기 그림 그리기와 가방 페인팅하기를 했는데, 재밌어서 또 하고 싶어요. 그리고 공간 한쪽에 아이의 키즈 랩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어린이집 다니면서 아이 친구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나를 닮은 물건의 숨은 이야기

 1. 빈티지 램프

런던에 살 때 브로드웨이 마켓이 주말마다 열렸는데 빈티지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거기서 제가 처음으로 산 빈티지 램프예요. 지금은 불이 들어오지 않지만 이 램프 보면 그 당시 영국에서의 제가 많이 떠올라요.

2. 해머 모양 시계

2006년 말에 친구들이랑 베를린 여행을 갔다가 친구들은 먼저 가고 저 혼자 이틀 정도 더 머물렀어요. 돌아다니다가 ‘뮤지엄 아이랜드’라는 동네 길에서 빈티지 가게를 발견했죠. 예뻐서 샀는데 작동이 안 되더라고요. 시계로는 못 썼지만 작업할 때 망치로 쓰고 문진으로 쓰고, 다용도로 잘 썼어요.

3. Richard Rezac Address Richard Rezac Address

학부 때 저를 가르쳐주신 교수님의 작업이 담긴 책이에요. 4년 동안 유일하게 스승이라 생각된 분이거든요. 졸업 후 한국에 와서 아마존으로 구매한 건데 좋아하는 교수님의 책이라서 저에게 특별해요..

4. 백화등

식물은 제가 늘 책임져야 하는 존재 같아요. 쇼룸 2층에 자스민나무가 있었어요. 덩굴 식물인데 제가 관리를 못해서 죽었죠. 이후에 아버지가 사주신 나무인데 꽃 피면 향기도 좋대요. 백화등을 심으려고 달항아리 모양의 도자기를 일부러 만들었어요. 신경 써서 심은 식물인데 잘 자라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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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