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ice Tuxedo Cat

귀찮고 고맙고 미안하고 좋아해 : 뮤지션 이랑 × 고양이 준이치

이랑의 모든 곳에 준이치가 있다. 앨범 재킷부터 그녀가 쓴 책, 가방, 배지, 그림, 액세서리, 그리고 내가 모르는 곳에도 수두룩하겠지. 이랑만큼 유명한 슈퍼스타 준이치는 대부분 심드렁한 표정이다. 그 얼굴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른다. 매력적인 한 쌍, 15년 차 집사 이랑과 근사한 턱시도 준이치를 만났다. 게슴츠레한 눈이 동그랗게 변할 때마다 우리는 웃었다. 흥분해서 코가 분홍색이 됐을 때도 우리는 웃었다. 준이치와 함께, 우린 내내 웃었다.

멋진 한 쌍을 만났네요. 준이치와 이랑을 소개해 주세요.

준이치는 제가 15년째 열심히 관리해 드리고 있는 고양이과 생명체입니다. 저는 뮤지션이자… 요새는 자영업자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쭈니! 그 방에 가지 마, 이리 와! 준이치도 여기 앉아서 대답해!)

 

준이치가 집사를 소개한다면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나에게 밥을 줘야 하는 사람?

 

준이치는 뭘 제일 좋아해요?

먹는 거, 자는 거, 외롭지 않은 거. 혼자 있는 걸 되게 싫어해요. 저는 음악 활동으로 일본에 종종 나가는데요. 지금은 동거인이 있지만 혼자 살 땐 친구 집에 준이치를 맡겨야 했어요. 돌아오자마자 데리러 가면 항상 화가 나 있었죠. 등 돌리고 앉아서 벽만 보고 저는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작년 가을엔 동거인이랑 같이 떠나야 해서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맡겼는데, 많이 힘들었나 봐요. 제가 돌아오니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나가는 걸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크게 아프기까지 했어요. 준이치 입장에선 제가 다시 오는 건지, 버려진 건지 전혀 모르니까 불안하고 싫은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아팠을 것 같아요. 준이치가 다른 고양이에 비해 특히 더 예민한가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하루 정도 외박해도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큰일 나요. 침대에 일부러 똥을 쌀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어쩌다 밤늦게까지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면 저도 불안해져요. 새벽 2시쯤 되면 ‘준이치 화나는 시간이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게 돼요. 원래는 이렇게까지 예민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 취향, 성격이 세분화되는 것 같아요. 까다로워지는 거죠. 언젠가부터 약간 시아버님 같아졌는데 온종일 기분을 맞춰드려야 해서 좀 귀찮아요(웃음).

 

준이치가 벌써 열다섯 살이에요. 노묘가 되면서 체감한 변화가 있나요?

목소리부터 바뀌었어요. 어릴 땐 맑고 청량하게 ‘냐!’ 했는데, 지금은 허스키하고 힘없이 ‘냐아아-’ 해요. 에너지가 있어야 목소리도 나오는데 기력이 많이 떨어졌죠. 또, 옛날엔 여기저기 잘 뛰어올랐는데 지금은 캣타워도 못 올라가요. 침대에나 겨우 올라올 정도죠. 노묘가 되니까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쉽지 않아요. 고양이들은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악화되니까 병원에서도 데려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전화로 상황을 보고하고 지켜보자고 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죠.

준이치가 스트레스 받는 걸 느낄 때가 있나요?

제가 나갈 때랑 다른 동물들이 있을 때요. 질투가 심하거든요. 준이치가 일곱 살 때 친구네 고양이를 임시 보호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은 집에 와서 그 고양이에게 먼저 인사를 했거든요. 작고 귀여운 게 돌아다니니까 한 번 더 만져준 건데, 준이치가 그날부터 그 고양이를 마구 때리더라고요. 어찌나 괴롭히던지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고양이가 세탁실에서 나오지를 않았어요. 그날 이후로 집에 오면 준이치에게 먼저 인사하고, 만져주고, 충분히 이야기한 뒤에 몰래 다른 고양이를 챙겨줬어요. 그땐 그런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이젠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쓰게 돼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니까요.

 

준이치에게 위로받은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매일, 매일 위로받아요. 눈을 떴을 때 준이치가 살아 있으면 너무 고마워요. 너무 감사해요.

 

준이치는 왜 이렇게까지 고마운 존재일까요?

생명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무 살 때 엄마가 저에게 식물을 사준 적이 있어요. 매일 상태를 관찰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나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준이치는 식물보다 훨씬 직접적이에요. 일단 움직이는 존재잖아요. 저기 있던 애가 이쪽으로 막 달려오고, 배고프다고 알아볼 수 있는 신호도 주고. 식물은 제가 직접 살펴보고 알아서 필요한 걸 해줘야 한다면, 동물은 제 앞에 와서 원하는 걸 턱턱 요구하니까 더 직접적으로 영향받게 돼요.

 

살아 있어서 고마운 존재가 나이 들어가는 걸 볼 땐 어때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인간과 동물의 수명에 왜 이렇게 차이가 있는지. 동물이랑 같이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 사실에 크게 좌절해요. 특히 동물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일수록 더 그래요. 저는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평균 수명엔 차이가 있고, 왜 먼저 보내야 하는 걸까요?

 

긴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준이치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생에 크게 의지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준이치가 그런 제 생명을 연장해 주며 15년을 살아왔는데, 준이치가 없으면… 그 이후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동거인이 가끔 그래요. “준이치 죽으면 세계여행 가자.” 잘은 모르겠지만 준이치가 죽으면 세계여행을 갈 것 같아요. 미래는 거기서 생각해 볼 것 같고요.

 

이상적인 집사, 이상적인 반려동물이라는 게 있을까요?

준이치랑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인간이 만든 도시, 인간이 만든 주거 형태… 결국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집 안에서 함께 살기 적당한 반려동물을 골라온 게 아닐까 싶어요. 같이 살기 좋 다고 생각하는 적당한 사이즈의 동물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한 것들, 그중에서도 인간 눈에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걸 테니까요. 오로지 인간 기준으로 반려동물을 고른다고 생각하니 ‘인간이 뭐가 그렇게 잘났지?’ 싶은 맘도 들어요. 만약 우리가 이런 형태로 살아오지 않았다면 기린이나 코뿔소 같은 동물과 함께 살았을 수도 있겠죠? 모든 건 인간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사람이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동물을 위해서 집사의 인식을 높일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얼마 전에 SNS에서 예비 집사를 위한 테스트 용지를 봤어요. 진짜 있는 건지, 누군가 임의로 만든 건지는 알 수 없는데요.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전에 이 동물을 데려올 준비가 되었는지 항목별로 체크하도록 만들어둔 문서였어요.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동물과 놀아줄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하루에 집에 몇 시간 머무는지, 동물을 위해 월급의 어느 정도나 사용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자격시험을 보듯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좀 낫지 않을까요? 

 

만약에 15년 전에 자격시험이 있었다면….

전 탈락했죠. 준이치 못 데려왔을 거예요.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고양이별로 돌아간다는 속설이 있잖아요. 나중에 준이치는 고양이별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요?

저는 그런 말 안 믿어요. 죽음 이후의 이야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위안을 찾으려고, 마음 편하자고 만든 이야기 같아요. 물론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저는 믿지 않을 뿐이죠. 

 

혹시 고양이들에게도 100세 시대가 찾아오길 바라나요?

그것도 인간 기준이어서 함부로 말하기가 미안해요. 다만, 저는 언제나 제 생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유언장을 새로 만들고 있는데요. 되도록 구체적으로 다양한 항목을 적어뒀어요. 집 보증금부터 시작해서 자산, 사망 전 수익과 사후 발표 수익에 관한 내용까지도요. 그리고 항상 준이치에 관한 내용도 써놔요. 제가 준이치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죽으면 준이치에게 갈 유산이나 준이치 앞으로 들어둔 적금 같은 것도 세세하게 적어놨는데, 유언장을 새로 쓸 때마다 그걸 관리해 줄 사람을 신중하게 떠올려요. 지금은 동거인으로 써놨지만 동거인이 저랑 같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까 매번 적당한 사람을 골라 전화해서 물어보죠. “내 유언장에 사망 시 준이치 보호자로 네 이름 써도 돼?” 

 

죽음은 두렵고, 생각할수록 이상하죠.

얼마 전에 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주인이 새보다 먼저 죽으면 새들은 새 보호소라는 곳으로 보내진대요. 거기서 앵무새과 새들이 주인 이름을 부르거나 주인과 함께했던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반려동물보다 먼저 죽는 게 이 존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주인은 노쇠해서 요양원에 가게 됐는데, 거긴 새를 데리고 갈 수가 없잖아요. 아들이 새랑 같이 면회를 갔더니 노인과 다시 만난 새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계속 지저귀어요. 제 눈에도 좋아하는 게 보일 정도로요. 그러다 면회가 끝나고 다시 헤어지는데, 새는 모르잖아요. 왜 노인과 헤어져야 하는지. 그걸 보니까 가슴이 정말 아팠어요. 제가 건강하게 산다고 치면 저보다 준이치가 먼저 죽을 텐데 준이치가 죽은 다음엔 그 타격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제가 먼저 죽으면…. 기분이 너무 이상하네요.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준이치랑 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너무 많죠.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주고, 따뜻한 걸 좋아하니까 저녁엔 난로를 켜주고, 간식 먹을 때마다 챙겨주고, 발톱 깎을 때가 되면 깎아주고, 일상을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그리고 옥상에도 함께 올라가고 싶은데….

 

우리는 준이치와 함께 옥상에 올랐다. 준이치는 사진을 몇 방 찍고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높은 울음소릴 내며 집으로 먼저 내려갔다. 준이치의 모든 행동이 신기해 동그란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나보다 더 재밌어하며 준이치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던 이랑. 그녀는 준이치가 살아 있어서 행복해 보였다. 정말 그래 보였다. 그걸 보는 게,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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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