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nely bookstore

나의 고독한 서점

BOOK&MOVIE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나의 아름다운 책방》

My lonely bookstore

나의 고독한 서점

세상 사람들에게 제각기 자기만의 서점이 있다고 한다면, 나의 서점은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한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서가와 서가 사이를 왈츠를 추듯 걸어 다녔다. 지금도 광화문 교보문고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쓸쓸한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기분이 든다. 이제 나의 서점은 더 이상 예전의 그곳이 아니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우리의 약속 장소는 언제나 서점이었다. 2호선 신촌역 앞 홍익문고나 광화문 교보문고.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늦게 온 남자친구가 쓰윽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곤 했다. 왠지 부끄러워져서 나는 웃지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읽던 책을 들어 보이며 딴소리를 했다. 가끔 그 애는 말했다. 너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또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실은 나는 그 애를 무척 좋아했다. 그 애의 편지가 도착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대문 앞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다 할 만큼. 우편함 속에 그 애의 편지가 들어 있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뻤다. 돌이켜 보면 데이트를 할 때 우리는 늘 서점이나 서점 주변에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점을 중심축으로 움직였다. 어쩌면 서점이 우리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서점의 자기장 안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여자애가 아니었다. 내가 그때 무슨 책을 읽었지? 기억에 남는 책이 거의 없다. 

그 애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종종 자기계발서 코너 앞에 몰려있던 여자애들을 비웃곤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실은 나도 자기계발서를 읽고 싶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가 없는 세상 사는 법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애는 서점에서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찾아서는 기뻐하며 말했다. “나한테 이 책이 있는데 빌려줄게. 도움이 될 거야.” 그 애가 내 약점을 알아챈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 애가 빌려준 그 책을 읽지도 않고 한동안 처박아 두었는데, 헤어지기 얼마 전 그 애는 조금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그 책 돌려줬으면 하는데.” 나는 ‘그깟 책 한 권이 무슨 대수라고’의 마음으로 고깝게 책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을 때 카마이클스 북스토어에 가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특정한 책을 사기 위해 갔으며, 때로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어떤 책이 들어왔나 보러 가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갔다. 그곳은 서점이 가져야 할 조용함, 친절함, 특유의 냄새, 유형성이 있었다. 그곳은 책의 삶이 완벽하게 구현된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내가 생각지 못했거나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책을 발견하는 것, 그 책을 사기로 결정하는 것, 보물처럼 그 책을 사서 집으로 가져오는 것, 친절한 대화를 통한 전 거래 과정을 이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면에서의 즐거움이다. 

– 웬델 베리, 《나의 아름다운 책방》 중에서 

이제 나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할 때 서점을 약속 장소로 정하지 않는다. 나는 보통 서점에 혼자서 가고, 그럴 때의 목적은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만져보고 읽어본 후 집에 가져오기 위해서다. 그렇다. 책을 읽지 않는 여자애였던 나는 책을 읽는 여자가 되었다. 소설도, 에세이도, 사회과학서도, 실용서도, 잡지도, 심지어 자기계발서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 여자가. 

《나의 아름다운 책방》은 많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서점에 대한 짧은 글을 모은 책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서점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서점은 그저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처 같은 장소다. 조용함, 친절함, 특유의 냄새, 유형성.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보는 것이 꿈이던 나는 이제 그 교보문고에 젊은 날의 추억들을 묻어두었다. 그곳은 나에게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장소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광화문 교보문고는 나의 서점이 아니다.

친근한 서점 같은 편안한 장소가 있다면 아마도 할머니의 부엌일 것이다. 온갖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는 선반, 종이 냄새와 커피 향, 누구의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해줄 책 속 주인공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있는 곳. 나는 북 패시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기운을 얻는다. 

– 로널드 라이스, 《나의 아름다운 책방》 중에서 

지금 내가 할머니의 부엌처럼 좋아하는 서점은 일본 교토에 있다. 바로 ‘케이분샤’라는 서점이다. 교토의 조용하고 평범한 주택가에 있는 서점인데 겉에서 보면 카페인지 레스토랑인지 알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두운 실내에 빈티지풍의 갓을 씌운 조명들이 노란 불을 밝히고 있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오래된 나무 가구들 위로 표지를 드러낸 채 세우거나 눕혀 놓은 책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삐걱거리는 마루 위를 조용히 걸어 다니며 책들을 들어보고 만져보고 읽어본다. 셔츠를 입고 에이프런을 두른 점원은 있는 듯 없는 듯 계산대에서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손님이 건넨 책의 값을 계산하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봉투에 담아 건넨다. 모두가 각자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빠져 있다. 그리고 서점은 그 세계의 배경이 되어준다. 케이분샤는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로망과도 같은 곳이다. 누군가의 부엌이나 서재 같은 서점. 모든 것이 오래되고 고요하고 느리고 또 고집스러운 장소.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서점은 강원도 속초에 있는 ‘동아서점’이다. 속초가 고향인 부모님이 어린 시절 들르던 서점이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인 아빠에게는 아마 이 서점에서 새 책을 살 기회가 없었겠지만, 넉넉한 집의 맏딸이던 엄마는 동아서점에서 종종 참고서를 사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나 오래된 서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예전의 그 서점은 아니다. 할아버지가 일구고 아버지가 이어오던 서점은 이제 시내의 다른 장소로 이전해 손자가 이끌어가고 있다. 서점의 느낌도 완전히 달라졌다. 

외적으로 보자면 동아서점은 소도시 어디에나 있을 법한 동네 서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서점의 무언가가 나를 건드린다. 불빛은 기분 좋고 실내는 청결하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건 사고 싶은 책이 눈에 띈다. 게다가 그 동글동글한 손글씨 안내판이라니. 이 서점에는 아늑함과 질서가 공존한다. 사실 그 두 가지를 한 공간에 집어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책들을 들추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기묘한 안정감이 드는데, 어쩌면 그건 자부심과 겸손함을 더한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서점은 그 주인을 닮는 것이다.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에는 주위에서 이들을 떠받치는 커다란 우정의 고리가 있었다. 오후 여섯시가 지나면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차례차례 서점으로 찾아왔다. 작가, 시인, 신문기자, 변호사, 대학교수, 고등학교 선생, 성직자 등. 그중에는 카톨릭 사제도, 프랑코의 압정을 피해 밀라노로 망명한 카탈루냐 수도승도, 왈도파 프로테스탄트 목사도, 유대교 랍비도 있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젊은이가 있었다. 병역 복무 중 파견근무를 핑계로 빠져나와 한구석에서 군복 차림으로 문학 책에 빠져 있던 니노. 부모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며 여자친구를 기다리던 고등학생 파스쿠알레. 그런 이들이 귀가 전까지 짧은 시간을 이용해 신간서적이며 사회 정세에 대해 내키는 대로 의견을 나눈다. 다비드가 와 있는 날도 있고, 카밀로만 있는 날도 있다. 판파니냐 넨니냐 하는 정치 논쟁이 꽃을 피운다. 공산단원이 기독교민주당 골수분자를 호되게 공격한다. 누군가가 중재에 나선다. 안 그래도 좁은 입구 통로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통에 서점 안쪽까지 한참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 스가 아쓰코,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중에서 

작가 스가 아쓰코는 30대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보냈다. 그녀는 우연히 다비드 투롤도라는 카톨릭 사제를 만나 그가 끌어나가는 밀라노의 작은 서점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를 알게 된다. 이 서점은 이윤 추구와는 관계없이 1960년대의 지식인, 사회운동가, 이상주의자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스가 아쓰코는 서점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남자 페피노와 결혼하면서 서점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자 이탈리아를 떠나 일본에 자리 잡은 그녀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시절 코르시아 서점을 둘러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담한 필체로 회상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도심의 이 작은 서점과 결혼하고 살게 된 무젤로 거리 6번지의 집을 축으로, 나의 밀라노 생활은 좁고 약간 길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확대되어갔다. 

한 조각 파이 같은 이 작은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는 것이 밀라노 생활의 전부였고, 어울리던 친구들의 집도 대체로 이 구획 안에 있었다. 가끔 파이 바깥으로 나가면 공기마저 희박하게 느껴져서 돌아오는 걸음을 서두르곤 했다. 

– 스가 아쓰코,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중에서

그다지 두껍지 않은 이 책은 스가 아쓰코 에세이 시리즈의 한 편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유럽에서의 체류 경험담을 지나치게 낭만적인 색채로 그려낸 그렇고 그런 일본 여성 작가들의 에세이 중 하나가 아닐까. 예상과는 달리 이 작가는 어떤 인물과 상황도 애써 미화하지 않고 가능한 한 정직하게 그려낸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단단하고 맑은 언어로 그 시절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들에 대해서 쓰고, 그 중요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는지에 대해 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나면 스가 아쓰코의 다른 글들이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 교보문고를 나의 서점으로 삼던 시절에 인도의 오로빌이라는 공동체 마을에 간 적이 있다. 젊고 무모한 겁쟁이였던 나는 함께 일하고 소득을 나누는 평화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꿈꿨다. 아마 남자친구가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내게 빌려준 건 ‘그것이 네가 꿈꾸는 삶인 걸 알고 있어. 그리고 나도 그런 삶에 관심이 있어’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오로빌에 도착해서 나는 제대로 된 오로빌 사람을 만나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발등에 화상만 입은 채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때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런 곳에서 살 수 없어. 이상적인 삶이 나를 거부하는걸. 아마도 그것에 너무 좌절했던 나머지 남자친구에게도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이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 자체인 양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상향을 그려갔다. 서점을 처음 시작한 다비드도, 그의 주위를 지키던 친구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젊은 우리는 각자 마음속 서점의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외곬으로 나아가려고만 했다.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젊은 날 마음속에 그린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 

– 스가 아쓰코,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중에서

지금 나는 오랫동안 그 남자애의 소식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첫사랑이 다 그러하듯이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은 첫사랑과 결혼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다행 중의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스가 아쓰코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와 나의 관계에 적합한 문장을 찾아낸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젊은 우리는 각자 마음속의 사랑이라든지, 삶에 대한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우리가 지닌 차이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적어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광화문 교보문고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이다. 

글은 작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독자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둘 사이의 중간쯤 반짝이는 수평면에 존재한다. 조우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책이다. 책은 물리적 사물이자 사람이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과 같은 물리적 현상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책을 불러와 전자책을 읽을 순 있지만, 이러한 경험은 진짜로 중요한 것을 교환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이다. 책을 읽는 것은 물리적으로 책을 소유하고 책과 어울리는 것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마치 자랑스러운 친구나 보여주기에 민망하지 않은 상처를 떳떳하게 드러내듯 대중 속에서 그 경험을 내보이고 서로 공유해야 한다. 왓충 북셀러스에는 책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삶의 리듬이 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이런 서점은 아이들이 넓은 독서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책에 대해 나누는 얘기가 들리고, 둘러보는 사람들의 조용한 콧노래와 계산대에서 선물 포장지를 자르고 싸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있다. 또한 책 냄새가 난다. 그 신선하고 은근히 유혹적인 냄새가. 

– 이안 프레이지어, 《나의 아름다운 책방》 중에서 

서점에 가면 내가 쓴 책들이 있다. 간혹 없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놀라운 일 앞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 심지어 나는 서점에 잘 가지도 않는다. 내 책이 나왔다는 이유로 서점에 구경을 가지도 않는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내 책을 발견하면 ‘으음, 다행이네’라고 생각하고는 곧장 다른 책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닌다. 서점을 나서면서는 내 책을 두고 오는 것이 마치 내 자식이나 아니면 내 팔이나 다리 한 짝을 두고 오는 기분이 들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책은 책이고 나는 나니까. 

그런데 그 기분은 마치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내가 어릴 때 사랑했던 사람과 자극적인 숨바꼭질을 하던 서가 사이를, 나이 들고 무덤덤해진 채로 홀로 돌아다니는 기분과 꼭 같다. 이 모든 게 거짓말 같고 또, 아무렇지도 않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ㅣ문학동네ㅣ232쪽

1960년대 밀라노, 신부이자 시인 다비드 투롤도를 중심으로 코르시아 서점에 모인 젊은이들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저자는 멀리서 그들을 관찰하며 이탈리아 귀족사회의 단면을 무던하게 이야기한다. 짤막한 열한 편의 이야기가 모여 각자 다른 얼굴과 표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나의 아름다운 책방
로널드 라이스 외 83명ㅣ현암사ㅣ524쪽

84명의 작가들이 아끼는 자기만의 책방을 소개했다. 누군가의 포근하고 익숙하고 다정한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왠지 모르게 설렌다. 작가들 각자 서점과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지 돌이켜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책이 있는 곳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한수희

일러스트 박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