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ttle Explorers

호주 멀럼빔비의 한승무 가족

자연과 함께 하는 삶

마주 앉아 모래 구멍을 만들며 밤하늘의 별을 기다리고, 나뭇가지를 주워 집을 만들고, 바지가 까매지도록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오르고, 고래 똥과 크리스털을 찾아 헤매는 작은 탐험가들. 그림그리는 예술가 아빠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네모난 사진 속엔 아이의 시간도, 지켜보는 부모의 시간도 함께 흐른다.

반가워요. 먼저 가족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아빠 한승무예요. 같은 일을 하는 아내 이묘와 일곱 살 준지, 여섯 살 준야랑 호주 동쪽 끝 바닷가에 살고 있죠.

 

사진 속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980킬로미터, 브리즈번에서 남쪽으로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멀럼빔비’예요. 바다가 가까우면서 아주 오래전, 약 90만 년 전에 운석충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크레이터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요. 한때 크리스털 광산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한물간 히피들의 마을이죠. 환경을 사랑하고 물질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돈독하게 모여 살아요. 그게 좋아서 오랫동안 천천히 모인 주민들이라 당연하다는 듯 함께 노력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하고, 개발 반대를 위한 시위도 많이하고, 그런 주제로 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옵션을 마련해서 서로를 배려해 주려고 해요. 아이들과 동식물에게 모두 친절하고요. 자연, 환경, 자급자족, 공동체, 명상, 농장,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롭게 실천하고 함께 지속하며 살기 좋은 동네예요. 하지만 그런 마을이 세상에 워낙 많으니 딱히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을의 분위기나 라이프스타일이 작가님 가족에게도 영향을 줬겠어요.

호주에 이민온 지는 9년이 되어 가는데, 처음 몇 년은 브리즈번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살았어요. 이 마을의 정신을 쫓아서 온 건 아니고, 휴가때 친구 따라 이 동네에 놀러왔다가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바다와 적당히 허름하고 한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심심하지만 아이 키우기는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바로 아이가 생겨서 얼른 이사했고요. 적극적으로 동화되고 시위에 앞장서는 편은 아니지만 항상 배우고 조금씩 참여하는 중이에요. 받은 영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내와 제 작업들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멀럼빔비를 배경으로 촬영한 준지, 준야의 사진집 《숲과 바다. 형제. 사진.》이 나온다고요.

네. 아이들 세 살부터 다섯 살 때까지의 유년 시절과 자연 속을 누비고 다닌 사진들, 그 아래 조금씩 적어 둔 저의 짧은 문장들을 모은 책이에요.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집을 내달라는 댓글을 보고 처음 회의를 한 지 3년 만에 키치가치 Kitschygachy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됐어요. 책을 낸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어요.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은, 아름다운 모양으로 마감 중이에요.

 

사진집의 주인공인 준지, 준야는 어떤 친구들인가요?

형제의 캐릭터가 너무 달라서 피곤해요. 꼭 일부러 그런 것처럼 취향도 성격도 반대인데다 특히 한 살 동생 준야는 여러가지로 까다로워서 맞춰주다 보면 제 귀에서 뜨거운 밥통 김이 치-치- 나오죠. 형 준지는 정의롭고 룰을 반드시 지키려는 경찰 타입이라 약간 이탈리아 댄서 같은 기질을 보이는 준야와 마찰이 잦아요. 하지만 대부분 서로 너무 좋아하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재밌게 노는 편이에요. 영감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이들한테 받을 수 있는 영감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아이들과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아빠더라고요. 아름다운 사진 아래 적힌 글에서 육아 고충도 느껴지고요.

아내가 출산과 육아로 하고 싶은 일을 많이 못 했기 때문에 둘 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주로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놀았어요. 덕분에 아이들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어서 행복했죠. 아기 때는 지쳐 잠들 때까지 밀고 당기면서 몸으로 놀아줬고 지금은 산이나 바다에 가서 함께 놀잇감을 찾아요. 처음 10분 정도만 놀아주면 아이들끼리 스스로 놀이에 빠져드는데, 저는 슬그머니 물러나 사진도 찍고 식사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요. 그러다 최근엔 “그건 같이 노는 게 아니야. 우리를 어딘가에 가져다 놓고 옆에 있을 뿐인 거지!”라고 역정을 내서 다시 같이 노느라 조금 피곤해졌어요. 요새는 자전거나 킥보드, 서프보드를 같이 타요. 바다는 다칠 일도 없고 풀어놓아도 멀리까지 잘 보이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기 편한 장소예요. 

 

가족에게 바다는 특별한 의미겠어요. 특히 자전거를 타고 넓은 모래사장을 달리는 모습은 제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결혼하기 전, 구글 맵도 없던 시절에 15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지금 이 마을에 온 게 처음이었어요.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어떻게 할 수가…. 아무튼, 국도 중간에 길을 잃고 수풀에 다리를 베이며 한참을 헤맸죠. 목적지가 바닷가 동네라는 걸 기억하고 파도 소리를 따라 숲을 헤쳐 나왔을 때 만난, 그 텅 빈 바다는 감동이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영혼이 되어 아름다운 구천을 떠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노을이 지나 어두워지고 나서도 은색 샛별 빛 아래 해안 모랫길을 한참 달렸고 도착한 친구 집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마시고 잠이 들었어요. 아기들이 생기고 나서 제 자전거는 한동안 창고에 처박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무렵 그 해안 모랫길에 데려가 연습시켰죠. 하지만 소금물에 젖은 자전거는 금세 녹이 슬고 부식되어 부스러졌어요.

 

바다와 숲으로 아이들과 떠나는 모험엔 준비할 것이 많죠?

주로 저 혼자 데리고 나가기 때문에 많이 챙기지는 못해요.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만 도시락 세 개, 과일 간식 두 개, 물통 세 개, 아이들 비상용 간식, 밴드, 선크림, 여벌 옷 두 세트, 모자 두 개, 당 충전용 내 비상 간식, 핸드폰, 카메라, 계절 도구 등이 있어요. 그리고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배낭을 좋아해요. 일단 나가면 사 먹을 곳이 없어 음식을 잘 챙겨 나가야 해요. 자세히 계획하고 장소도 정하고 플랜B까지 철저히 짜고 가는 편이죠. 그리고 첫째가 즉흥적인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가야 하는 이유가 충분해야 순순히 따라나서요. 그동안 첫째가 가면 둘째도 가만히 따라왔는데, 최근엔 둘째도 자기를 어느 정도 납득시켜 달라고 해요.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절대 아무것도 계획대로 안 되지만요(웃음). 

 

반대로 집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비가 오거나 누군가 아프면 집에 있어야 하는데요. 집에서는 제가 아이들을 잘 못 돌보는 편이라 엄마가 주로 나서서 베이킹, 피자 만들기, 바느질 인형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하고 이불을 다 꺼내 와서 파도놀이도 하고 그러다 꼭 한두 번은 둘이 싸우고 울고불고해요. 그럴 땐 필살기로 스크린 타임도 갖고 씻고 책 보고 밥 먹고 레고 하다가 재워요.

 

지출 순위에 밀려서 집에 우산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타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 지출에 더 많이 신경 쓰지는 않나요?

다른 지역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비교하기는 어려운데요. 연년생 형제라 모든 육아 비용이 두 배로 들어가는 부분이 힘들어요. 가족이 똘똘 뭉쳐 함께 시간을 보내는 만큼 소득이 많지 않고요.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 살거나 더 많은 일을 따 와서 일하지 않는 대신 극도로 소비를 줄여서 살고 있고요. 인프라가 없어서 돈 쓸 곳이 많지 않기도 하고 비슷한 생활관을 가진 이웃들이 많아서 마음은 편해요. 주로 요리 재료와 육아에 많이 지출하고 학부모들이 자원 운영하는 수영과 럭비 과외비 정도 쓰고 있어요. 갖고 싶은 것도 많지만 주변에 보이지 않아서 깜박깜박 잊고 사는 편이에요. 당시 우산은 없어도 큰 비치파라솔은 있었어요. 그건 여름 바다에 가서 도시락 먹을 때 꼭 필요했거든요. 한참 후에 돈을 모아 우산도 장만했어요. 저희 우산 있어요(웃음).

해변에서 오늘은 집에 뭘 가져갈까 고민하고 채집하는 장면들이 종종 보여요. 고래 똥이 그렇게 값비싸다고요?

비밀인데 몇 군데 버려진 크리스털 광산을 알고 있어요. 오래돼서 남은 게 얼마 없지만, 상품성 없는 석영이랑 자수정 부스러기라도 캐면 아이들은 보물처럼 들고 와서 엄마한테 자랑하고 방에 전시도 해요. 그러다 금세 잃어버리지만요. 아이들이 돈에 대한 개념을 배우던 시기에, 유럽 어디 누군가가 귀한 향수 재료로 쓰이는 고래 똥을 주웠는데 그게 20억이 넘었다는 기사를 함께 읽었어요. 그다음부터 준지는 한동안 고래 똥을 찾으면 한국 가는 비행기표 산다고 매일 바다에 가서 비슷한 덩어리들을 모으고 냄새도 맡고 잘라보기도 하다가 지금은 지쳐서 잊어버렸어요. 꾸준히 모으고 있는 건 나뭇가지들이에요. 엄마가 바다에서 예쁘게 생긴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와서 빈티지 소품처럼 꾸미고 행복해하는 걸 보더니 자기들도 맘에 들었는지 바다에 갈 때마다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을 끙끙 용을 쓰며 집으로 가져와요. 차가 모래범벅이 되고 가끔 개미집이 들어 있기도 해서 골치 아픈데 가져오면 반갑게 환영하는 엄마의 대처 방식이 가장 문제네요.

 

사진 외에도 그림, 디자인, 춤,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계시죠?

애니메이터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사회 일을 시작했어요. 아이폰이 한국에 처음 출시되기도 전에 단칸방 오피스에서 아이폰 게임을 개발하던 데브시스터즈Devsisters라는 아주 작은 게임 개발사와 일할 기회가 있어 쿠키런 오리지널 캐릭터와 콘셉트 디자인, 스토리를 개발했어요. 지금 데브시스터즈는 쿠키런을 성장시키고 거대한 게임 회사가 됐죠. 개발자님들께 항상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경력으로 생각해요. 동화책 삽화는 재미있어 하는 일이라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아이가 있기 전에는 편안한 힐링 작업으로 즐기던 부분이 지금은 ‘육퇴’ 후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퀄리티를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전투적으로 일하죠. 올해 초에는 조금 지쳐서 그림책 일은 그만둘까 하고 좌절했는데 뜬금없이 볼로냐에서 ‘2021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어요. 영광스러운 소식에 손 놓고 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 다시 힘을 내고 있어요. 

MMSS는 춤, 공연, 아트워크, 비디오 아트 등 하고 싶었던 모든 작업을 한데 모아놓은 밴드이자 제 놀이터였는데, 관객과 함께하던 아름다운 추억이 그립고 그때 나눠 가진 에너지를 아직도 간직해요. 저는 탈퇴하고 다른 멤버가 외롭지만 재밌게 이어가고 있어요. 어느 날 무료하게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다가 잊고 있던 춤을 추는데 그걸 본 아이들이 춤추지 말고 같이 놀자고 했어요. 조금 억울해져서 “이건 아빠가 좋아하는 거야. 아빠는 지금 좋아하는 걸 하고 있는 거라고.” 살짝 역정을 냈어요. 준지가 “그래? 그럼 계속해. 우리는 아빠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아. 끝나면 얘기해.”라고 무심하게 답해서 가슴이 찡했어요. 그다음부터 춤을 추면 아이들이 제 시간을 지켜줘요. 같이 추는 건 아니지만요. 유튜브 채널 ‘Sem Han Moves’에는 그 시간을 기록한 비디오와 음악 작업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틈틈이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힘들지는 않으세요?

서로의 작업량에 따라 아내와 육아 시간을 조율해 보고 아니면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살아가요.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걱정과 불안도 항상 옆자리에 앉아 있어요. 굳이 그들을 불러서 말을 걸지는 않지만, 누가 그러더군요. 불안은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걱정과 불안을 해소하는 시간,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도 있나요?

거의 없어요. 정말 힘들고 가라앉는 기분이 들면 아내에게 맡기고 잠을 자는 정도. 갑자기 시간이 나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잘 안 되는 건 나를 이미 많이 잃어버려서 그런 건 아닐까, 어쩌면 나를 잃어버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를 이미 많이 잃어버렸다는 말이 공감되네요. 그곳의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위로가 되지는 않나요?

얇고 넓은 바다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마음을 회복하기도 하고 은하수를 바라보며 발로 모래알을 비비면서 ‘지구는 우주에 떠 있구나! 우리는 먼지일 뿐이구나! 이 모든 스트레스가 부질없음이길!’ 바라곤 해요.

 

앞으로 또 어떤 작업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해요.

아내가 그림책 작가여서 멋진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있어요. 그게 좀 부러워서 제가 쓰고 그린 코믹북을 경쟁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게 꿈이에요.

한승무 사진전 – 조금 더 자라면 이곳이 지루해질까
하우스갤러리2303
instagram.com/housegallery_2303
2021. 07. 30.~09. 10.

*코로나19로 일정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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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지명

Photography Sem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