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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지금 우리의 놀이터
작가 편성준 · 문화 기획자 윤혜자
작년, 부부는 20년 넘게 굴리던 페달을 더 이상 밟지 않기로 했다. 그런 다음 집을 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삶의 방식이 바뀌었으니 놀 집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곳을 소행성이라 부르며 매일 각자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식사는 늘 함께하고, 종종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신나게 논다. 성북동의 작고 행복한 별은 오늘도 그들만의 궤도로 스스로 빛난다.
성북동 소행성
형태 도심형 한옥
거주 10개월
나이 82년
들어오면서 ‘성북동 소행성’이라 적힌 문패를 봤어요. 어떤 의미예요?
성준 성북동 꼭대기 단독주택에 살 때 붙여둔 이름이에요. 작지만 행복한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을 소, 행복 행, 별성을 썼어요. 한옥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이름을 지을까, 시즌 2를 할까 고민했는데 소행성을 대체할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이름을 가져오고 그 집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왔어요.
혜자 남편이 그 자리에서 뚝딱 지었지만 이름 안에 우리의 가치관과 이 집이 추구하는 게 잘 담겨 있어요. 곱씹을수록 저희 삶의 철학과 잘 맞아요.
그렇네요. 이사를 한다고 삶의 모토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는 거네요.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통해 놀면서 사는 두 분의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논다’라는 행위의 새로운 관점이었어요.
성준 노는 것과 쉬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쉰다’는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서 회복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거나, 너무 피곤해서 하고 싶은 의욕이 안 생기는 거라면, ‘논다’는 더 적극적인 행위예요. 생산적인 일이든 아니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재미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하는 거죠. 20년 가까이 카피라이터로 남들이 시키는 일을 해왔어요.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둘을 구분 짓는 것이 ‘놀이’라고 생각해요.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죠.
혜자 저는 그 놀이에 반드시 창의적인 발상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재미있고 완벽하게 놀 수 있거든요. 기자와 출판기획자로 일을 해온 저에게 기획은 놀이예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고 자발적인 사고가 들어가면서 놀이가 생산적인 과정으로 옮겨져요. 우리는 집을 터전으로 그 놀이를 하는 거예요.
‘놀기’를 먼저 결정한 뒤, ‘놀기’ 좋은 집을 새로 지은 거예요?
혜자 맞아요. 제가 먼저 일을 그만두면서 공유 오피스에 나가 일했는데, 남편도 회사를 그만두면서 두 명이 놀기 좋을 집이 필요해졌어요. 그전 집은 쉬는 집에 가깝다 보니 둘이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마땅한 공간이 없더라고요. 매일 카페에 가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생활과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마침 들어올 돈이 있었고 예전 집을 팔면 20프로 수익이 날 상황이었어요. 성북동을 돌아다니다가 이 집을 몇 번이나 봤어요. 문틈으로도 보고 남편 데려가서도 봤어요. 여기가 빈집으로 6개월 정도 있었대요. 사실 가격이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주차할 공간이 없고, 소방도로가 없어서 증축도 신축도 할 수 없는 조건이었어요. 재산적인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집인 거죠. 저희는 딱 한 채만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아파트에 사는 게 목표가 아니었어요. 강남의 아파트처럼 큰돈을 깔고 사는 게 당장 내 돈도 아닌데 뭐가 좋을까 싶은 거죠. 사는 동안 쾌적하고 만족스럽게 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단독주택에는 살아야겠고 꼭대기는 힘들어서 내려오고 싶고, 차도 없고, 시끄러운 것도 싫어하는 저희에게는 잘 맞는 조건이었어요.
성준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며칠 사이에 결정을 했어요. 숙고하다 보면 기회를 다 놓치니까요. 모험을 한 건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사실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나는 게 대출이에요. 아파트와 단독주택은 대출 조건이 정말 달라요. 아파트는 한창 대출이 잘될 때는 매매가의 60-70프로까지 되었잖아요. 단독주택은 매매가가 아닌 공시가의 40프로밖에 대출이 안 돼요. 게다가 단독주택은 세입자를 받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방 하나 값, 3500만 원을 대출 가능한 총 금액에서 빼고 대출을 해줘요. 현금을 꽤 확보해야 하고 대출 심사도 까다롭죠. 코로나19로 단독주택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높아졌고 시세가 예전보다 올라가고 있지만 사려고 할 때 그런 벽에 부딪혀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도 정말 어렵게 대출을 받았어요. 남들은 한옥에 살아서 좋겠다 하지만 달마다 이자 나가는 거 생각하면 속이 타요. 그렇다고 이런 모험을 안 하고 꼭대기에서 계속 사는 게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사는 곳도 기획과 도전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활에도 모험이 필요하다는 말, 좋네요. 놀기 위한 집은 어떻게 기획한 거예요?
혜자 한옥은 살림집이니까 방이 많아요. 이 작은 집에 조그만방이 네 개가 있었어요. 저희는 한정된 공간에서 효용성 있게 놀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잖아요. 제일 작은 곳을 침실로 하고, 나머지 공간은 일자로 터서 다용도실을 만들기로 했어요. 커뮤니티를 기획하여 워크숍을 하려고 이 공간에 큰 테이블을 놓았어요. 여기가 공적 공간, 다목적 공간의 역할을 해요. 친분이 있는 한옥 목수님에게 ‘식’의 공간, ‘문’의 공간, 그 둘이 만나는 공간을 그려서 설명했는데 너무 잘 이해하시고 구현해 주셨어요.
집에 맞춰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맞는 집을 만든 거네요.
성준 신혼 때 아파트에 산 적이 있어요. 그때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몸을 맞추며 살았죠. 층층마다 비슷한 시간에 쪼르르 화장실에 앉아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해요. 규격화된 일을 하고 남들이 하라는 것에 맞추다 일을 그만뒀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공간이 필요했고, 그곳에서 뭘 하든 새로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이라는 기준을 우리가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저희가 무용한 것의 쓸모를 좋아해요. 텅 빈 마당이 그 예인데요, 마당에 화단을 가꾸라거나 의자를 놓으라는 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비어 있는 게 좋아요. 꽉 차 있는 부분들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곳이라면 마당은 목적 없이 움직이고 늘 옆에 있는 거죠. 텅 빈 곳 자체로요.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명상이 되거든요. 지난여름 새벽에 일어나 낚시 의자를 마당에 두고 책을 읽으니 굉장히 좋았어요. 세상은 조용하고 공기는 선선히 들어오고요.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요. 이곳에서의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해, 하는 게 없어요.
혜자 한옥이지만 거실을 나무 바닥으로 하지 않았어요. 시멘트 위에 에폭시 도장으로 마감했어요. 한옥의 틀에 맞추기보다 청소와 관리가 편한 방식을 선택한 거예요. 사람들이 많이 오려면 정리가 간편해야 하잖아요. 행복의 틀을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구획된 공간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의 기준을 그리거나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공간의 다름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곳은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순간이라도 외부 공기를 만나게 되어 있어요. 택배를 가지러 가더라도 비를 맞아야 해요. 어떤 사람은 “불편하게 거기서 왜 살아?” 하는데 그게 저희에겐 행복인 거죠.
마당에 장독대와 메주가 있는 걸 봤어요. 집에서 직접 장과 김치를 담그는 거예요?
혜자 네. 맛있고 좋은 걸 먹는 데 관심이 없었는데, 아침밥을 먹는 사람과 결혼을 하니 하루 한 끼 정도는 만들어주고 싶더라고요. ‘끼니’라는 황교익 선생님이 조합장으로 있는 사단법인에서 음식 인문학 수업을 들었어요. 음식을 왜 이렇게 먹어야 하고 이런 음식에는 어떤 가치가 들어 있는지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음식활동가 고은정 선생님도 알게 되었어요. 요리를 정말 쉽게 하시는데 담백해서 딱 제 입맛이더라고요. 제가 2016년 가을부터 한 달에 한 번 지리산1박 2일 코스로 ‘고은정의 제철 음식 학교’를 기획·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생님에게 요리를 배웠어요.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1년에 스물네 가지의 밥과 김치, 국과 반찬을 만들었어요. 그때 우리나라 음식의 근간을 터득한 거예요. 습관이 배이면서 스스로 장과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만 있으니까 반찬이 많을 필요가 없어서 제철 식재료를 1년 동안 먹는 식이에요. 몸의 균형이 맞으면서 무엇보다 맛있어요. 제가 단독을 고집한 이유 중 하나가 장 때문이었어요. 아파트에 살던 해에 베란다에서 장을 담갔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거예요. 2월에 장을 담그면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계속 돌봐줘야 하는데 제가 아무리 신경 써도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통풍이 잘 안 되더라고요. 집을 나가면 30초 만에 한강변에 도착하는 아파트지만 사람이 먹는 장도 잘 안 익는데 이게 좋은 공간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단독으로 이사 와서 장을 담갔는데 관리랄 게 없는 거예요. 마당에 두고 일주일에 한 번만 들여다보면 잘 익어요. 소행성에서 작년 김치를 담갔고 곧 장을 담글 건데 기대돼요. 내 손으로 정성을 들여 끼니를 만들 때 오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정말 커요. 먹을 때 엄청 행복하고 잘난 척도 할 수 있죠(웃음).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도 내 기준을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먹는 거대로 공간도 옮겨 간 거고요. 오늘 제가 밥과 된장국, 겉절이 해드릴게요. 드시고 가세요(웃음).
오호, 소행성 쌔비의 집밥을 맛보는 건가요? (그녀는 SNS에 ‘the_ savvy_table’이라는 계정으로 매일의 식탁을 기록한다.) 소행성은 두 분을 만족시키는 놀이터 같아요. 대개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혜자 논다고 해서 아침 늦게까지 자거나 주말, 주중 없이 생활하거나 하진 않아요. 저희가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해와서 규칙적인 습관이 몸에 배어 있거든요. 남편은 새벽 4-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이것저것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저는 아무리 늦어도 10시에는 나와서 밥을 준비해요. 최근 저희는 루틴을 조정해, 하루에 두 끼만 먹기로 했어요. 아침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나면 곧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서, 각자 누리는 오전 시간이 사라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아침 시간을 조금 더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 11시에 아침을 먹고, 6시에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오후에는 거의 집중해서 일을 하는 편이에요. 정해진 일은 없지만 정부 지원사업에 기획안을 쓰거나 위크숍을 기획하는 등의 일을 만들어 하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식사 시간을 기준으로 스케줄을 짜면 좋을 것 같아요. 보통 밥 먹는 시간 앞뒤로 시간이 많이 깨지더라고요. 저희는 손님이 와도 밥 먹는 시간을 기준으로 스케줄을 조절해요.
성준 해야 하는 일이 없으면 내가 정하면 돼요. 리모델링한 건물을 보러 갈까, 산책을 좀 멀리 갈까, 연극을 볼까, 하면서 예전에는 주말에만 했던 일을 주중에 하거나 주중에만 했던 일을 주말에 하면서 시간을 자유롭게 써요. 최근에 했던 행복한 놀이는 김민정 시인이 추천한 신춘문예 작품을 찾아본 거예요. 읽어보니 재미있어서 리뷰를 써서 SNS에 올렸어요. 사람들이 많이 읽었고, 작가에게 고맙다는 메시지가 왔어요. 신기하게도 그 작가가 제가 얼마 전 인터뷰한 잡지에 기자로 있었대요. 출판사 사장님과 인연이 있어서 제 책이 나오기 직전에 조판된 PDF를 읽었고, 너무 좋아서 그 잡지사에 저를 연결해 줬다는 거예요. 서로 모르는 상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게 놀라웠어요. 목적을 가지고 한 게 아니고 좋아서 한 건데 그렇게 만나게 되더라고요. 지금 당장 결과가 있는 행위들이 아니지만 그런 게 재미있어요. 계속 연결되다가 좋은 인연이 되고 흥미로운 일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성준 작가님의 글대로, 그동안 한껏 조였던 나사를 풀고 느슨하게 사는 모습이에요. 현실적인 불안함도 있을 텐데요.
성준 카피라이터 할 땐 아이디어 하나 내려면 딴 거를 못 했어요. 거기에 매달려 있으니 집에 와서도 다른 걸 펼칠 수가 없는 거예요. 책을 내기로 한 것도 5년 전에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썼어요. 자전거 페달을 밟는 거와 비슷해요. 페달을 밟으니까 월급이 나오고, 안 밟으면 넘어지죠. 그런데 어느 순간 페달을 밟지 않기로 선택한 거예요. 현실적으론 예전에 비해서 수입이 많이 줄었고 고정적인 일이 없어서 힘들 때도 있어요. 작년에는 주민센터에 희망근로를 신청해서 학교 방역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침 7시부터 네 시간동안 매일 학생들이 머무는 곳을 소독하는 일이에요. 1월 초에는 올리브 오일을 수입하는 이웃 분을 도와 9일 정도 택배포장도 했고요. 종종 카피 쓰는 일도 하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도 해요.
혜자 직장 다닐 땐 생각하지 않았던 푼돈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어요. 내가 하지 않았던 일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더라고요. 제 친구 말이 예전에는 5-10만 원짜리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난달 5만 원짜리 일부터 시작했더니 한 달에 800만 원을 벌었대요. 삶의 방식이 바뀌었으니 예전 수입에 기준을 두면 안 돼요. 지금은 적게 버니까 대출금 내고 나면 돈이 없어 다시 빚을 지기도 하거든요. 무리했지만 지금 이 공간, 이 삶을 누릴 수 있으니 버틸 수 있어요. 삶의 기준을 나의 지금에 두고 살아요.
다시 조여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성준 계속 풀어져서 살고 싶어요. 저는 남들에게 모범을 보이거나 그들보다 더 잘 살아야지 하는 게 아니고 다르게 살고 싶어요. 지금 나에게 맞는 삶을 알아가고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예전에는 그 자리에서,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찾았다면 지금은 직장이 아닌 곳에서, 내 집에서 찾는 거니까 시각도 달라지더라고요. 인생의 목표를 성공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성공하기로 바꿨어요.
혜자 저희가 놀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거든요. 몇 년은 놀아야 부가가치가 붙는 거죠. 직장도 처음 일을 시작했으면 최소 3년은 견뎌야 하잖아요. 그때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견뎠는데 지금은 놀이잖아요. 바로 돈이 되는 놀이는 없으니까요. 그때까지는 창의성과 자발적인 사고를 집어넣으면서 놀다 보면 내공이 쌓이고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단계예요. 스테이지가 바뀌었는데 그 정도는 기다려봐야죠.
성준 종종 그런 질문을 받아요. ‘우리는 이제 새로 시작하는 30대 부부인데 놀면 좋을까요?’ 안 된다고 했어요. 처음부터 놀면 안 돼요. 어떤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을 해서 경험이 쌓여야 다른 쪽으로 전환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겨요. 그다음에 제대로 놀 수 있고요. 저는 카피라이터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10년이상 워커의 시간이 쌓여야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어요.
혜자 조이는 시간도 한정된다고 생각하거든요. 20-30대는 나사를 조이고 내공을 다지는 시간 같아요. 충분히 인풋을 쌓으면 50대에 놀고 싶을 때 그 아웃풋이 하나씩 나오는거죠. 관계의 아웃풋, 능력의 아웃풋, 창의력의 아웃풋. 만약 20-30대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하고 다른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나에게 인풋이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되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 싸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다르게 해보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면서 근력이 생기는 거죠. 좋은 직장, 좋은 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고 지금 하는 일에 흠뻑 빠졌으면 좋겠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프로세스를 좋게 바꿔보거나 이벤트를 기획해 볼 수 있잖아요. 저는 20대 후반부터 직장 생활해서 40대 초반까지 내공을 쌓은 친구들은 그 즈음 하고 싶은 일을 해봐도 좋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은퇴라는 개념이 사라질 거예요. 직장 내에서 내가 목표하는 자리가 있다면 가봐야겠지만, 놀이에 진입할 수 있는 나이가 당겨질 수 있을 거예요. 치열한 시간을 견디면 나이 들어서 무엇을 이루었더라도 당당하지 않을까요? 그 당당함이 자존감을 높일 것이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불행할 일이 없거든요.
어떻게 견디면 좋을까요?
혜자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본인이 만족해하는 취미생활이 하나 꼭 있으면 좋겠어요. 세상 무용하다고 하는 거, 남들이 왜 배우니, 하는 거 있잖아요. 아는 동생이 일을 정말 열심히 해요. “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 물어보니까 “언니 나 다이빙 가야 해. 드라이 수트도 사야 해.” 하더라고요. 그 취미가 다른 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열심히 일하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는 예의 바르게 사는 거 중요하지만 눈치보면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야 하는 일을 충실히 명확하게 했다면 ‘이거 해도 될까, 저거 해도 될까?’ 하면서 내 기분을 주변에 세우지 않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기준도 내가 갖고, 꾸준히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준도 내가 두는 거예요. 그래야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어요.
성준 놀 때 뭘 하고 노는지가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해요. 일할 때는 똑같이 열심히 하는데 노는 시간이 생기면 다 다르게 놀잖아요. 넷플릭스에 탐닉하는 게 제일 쉽겠지만 그것 말고도 가치 있는 일이 많아요.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은 열심히 해도 덜 힘든 경우가 많아요. 내가 할 수 있어서 하는 거니까요.
하는 일도 사는 집도 기준을 나한테 두는 게 아주 중요한 일같아요.
혜자 ‘이런 집에 살아라.’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정해진 수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저도 그랬지만 20-30대는 원룸에 사는 게 보편적이잖아요. 그럼 거기서 내가 지배할 수 있는 걸 만들면 좋죠. 일단 욕실부터 깨끗하게 닦아서 쾌적하게 만들고 나를 위한 식기 정도는 예쁘고 깨끗한 걸 마련하는 거예요. 마음에 드는 식기에 밥을 먹는 것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 일이고 내가 밥 먹는 행위를 지배하는 거잖아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주어진 환경에서 나에게 맞추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요? 지저분한 주방을 닦으면 내가 주방을 다스리는 거고, 침구를 정리하면 침실을 지배하는 거죠.
성준 저는 혼자 살 때 쓰레기통이 여기 있는데 그게 귀찮아서 주변에 던져놓은 적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현관에서 안방까지 복도처럼 길이 나더라고요. 그럼 제가 거길 안 가는 거예요. 공간이 나를 지배하더라고요. ‘내 삶을 만들어가려면 내 집을 사야 해.’가 아니에요. 그러면 자꾸 미루게 돼요. 그때가 될 때까지 그냥 대충 살고, 그때가 되면 내 공간을 꾸며야지, 하면 내 행복을 미뤄두는 거와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좋아하는 게 자꾸만 늘어날 것 같아요. 요즘 두 분의 관심사는 뭐예요?
성준 좋아하는 일들이 연결되는 게 재미있어요. 최근 제 책을 읽은 사업가분이 자신이 아는 사람과 연결을 해주셔서 브랜딩을 할 일이 생길 거 같아서 설레네요. 다음 책도 기획해 볼 예정이고요.
혜자 저희가 좋아하는 화가분이 매니지먼트를 해달라고 제안해 주셔서 적극적으로 해보겠다고 했어요. 책 내기, 글쓰기 워크숍을 6개월 과정으로 마련할 생각이고 마당에서 1인 콘서트나 북토크도 해보고 싶어요.
소행성의 미래를 그려본 적 있나요?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요?
혜자 여기서 10년까지 살까요? 어느 순간 지루해져서 동굴로 들어가고 싶을지도 몰라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눈에 보이고 가치관이 바뀐다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는 공간을 찾을 거 같아요.
성준 그 전에 죽을 수도 있을걸요(웃음)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편성준 | 몽스북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