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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이 아빠는 미국인
이룸은 태어난 지 25개월이 지나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등원하는 날 교실 안에서 또래보다 우뚝 솟아있던 아이를 기억한다. 이름은 ‘룩’이다. 석 달이 지나자 하원 후 집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생겼다. 이룸과 룩은 하원 시간이 비슷해 근처 공원으로 옮겨 놀다가 헤어지곤 했다. 그저 함께 뛰고 멈춰서 나뭇가지로 바닥을 긋거나 나뭇잎을 살피고 킥보드를 타는 날들이었다. 햇볕을 피해 솟아 있는 나무 아래에 쉴 때면 아이들 얼굴에 나뭇잎이 일렁댔다. 어느 여름날이었을 거다. 집에 가는 길에 이룸이 토끼눈을 하며 말했다. “엄마 룩이가 그러는데, 룩이 아빠는 미국 사람이래.”
아이들이 네 살이 되자, 약속을 정하고 여러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점을 가고 전시를 보거나 공원에 가고 박물관엘 갔다. 그사이 알게 된 공통점들이 쌓여갔다. 둘은 채소를 잘 먹고 군것질을 자주 하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고 역할놀이를 즐긴다. 관심사는 달랐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투덕거리는 일이 적었고, 싸우더라도 각자 엄마의 설명을 들으면 금세 화해했다. 덕분에 나와 룩이 엄마는 서로의 육아를 구원해줄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던 건 아니다. 낮잠을 자지 않는 날 룩이는 여지없이 여섯 시만 되면 울상이 되었다. 이룸이 룩의 의자에 앉아서, 이룸이 먼저 밥을 먹어서 등 평소에는 괜찮은 일도 그 시간만 되면 눈물이 날만큼 속상해지곤 했다. 이룸은 이동 중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고 툴툴거리거나 차 안이 너무 덥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둘은 서로 좋으면서도 서로 때문에 화가 나는, 아직은 덜 영글고 서툴기만 한 어린이였다.
하원 후 룩이네 집으로 향하는 날이 많아졌다. 놀다가 룩이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면 서재 의자를 끌어와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이룸에게 룩이 아빠는 안경을 쓰고 괴물 놀이를 잘해주면서 (아빠와 다르게) 영어를 잘하는 삼촌이다.
가끔 남편도 룩이네로 퇴근을 하면 우리는 더 촘촘히 앉아 저녁을 먹었다. 일상의 관계가 형성되던 즈음 아이들의 유치원 원서 접수 기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함께 처음학교로 접수 방법부터 1, 2, 3순위를 의논했다. 결과가 발표되던 날, 이룸은 1지망 유치원에 선발되었고, 룩이는 대기 70번이었다. 그때 룩이 엄마가 한 말을 기억한다.
“이룸이가 되어서 다행이야. 룩이는 몇 년 뒤에 미국에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오래 다닐 수 있는 이룸이가 되길 바랐어.”
그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 대답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이 나도 모르게 겪어오던 비교와 경쟁, 시기와 질투, 훈계와 충고에서 벗어나 있었다. 자신이 날마다 기도해온 소망을 상대가 이뤘음에도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 그건 진심이라는 걸 나는 안다.
늦여름이 되었다. 룩이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캠핑 페어에서 급하게 텐트를 샀다고, 같이 캠핑을 가자고 말이다. 그날부터 우리의 대화에는 캠핑이 추가되었다. 나는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들이지 못한 캠핑용품들을 추천했고, 룩이 엄마는 성실하게 질렀다.캠핑장에 도착했다. 아빠들이 텐트를 치고 엄마들은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했다. 아이들은 조금 돕다 돌을 줍고 흙덩이를 벗 삼고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놀았다. 룩이 아빠가 준비해온 미국 숯에 남편이 사 온 고기를 얹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빈 접시와 포크를 손에 들고 불 앞에 조르르 앉았다. 식사를 마치고 멍하게 불을 바라보다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불꽃놀이도 했다. 그리고 룩이네 텐트에서 함께 잠을 잤다. 히터로 데워진 훈훈한 공기 속에서 듣던 대로 룩이 아빠는 코를 골았고 이룸인 덥다고 이불을 걷어찼다. 가을이 깊어간다.
룩이네는 우리에게 한국계 미국인인 매튜, 스칼렛 가족을 소개해줬다. 파주의 캠핑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나와 남편은 각자의 이름을 질문받고 크게 놀랐다. 그동안 부모로서 자신의 이름을 말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이의 엄마, 아빠로 만나 끝내 이름을 모르고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 이야길 했더니 신선해하는 건 오히려 그쪽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로 흘러갔다.
스칼렛은 미국을 자유로운 나라라 여겼던 나에게 “이렇게 아이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참 좋네요.”라고 했다. 또 한국을 정이 많은 나라로 생각하던 우리에게 “미국은 캠핑장에서 음식을 각자 해 먹지 않아요. 미국이었으면 지금쯤 캠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었을걸요?”라고 말했다.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편견과 경험을 흥미롭게 나누었다. 나는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아이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보다 1인칭 화법으로 나의 성격은 어떤 유형인지,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말한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 놀란 사실이 있다. 매튜와 스칼렛의 나이가 우리보다 무려 열두 살이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말했다.
“아, 고기를 내가 구웠어야 했는데….”
태어난 나라도 환경도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 아이 덕분에 만났다. 나이나 직장보다 더 위인 것은 같은 시대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워내며 습득한 감성 아닐까. 비슷한 처지를 기반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바라는 것 없이 자신을 드러내니, 든든한 아군이 될 수밖에 없다. 내친김에 룩이 엄마와 아빠에게도 이름을 불러봐야겠다. 안녕 진주! 안녕 데이비드!
앤디는 영국인이고 유니스는 한국인이다. 유니스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살다 이민 갔지만 한국이 그리워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윤서와 아람을 낳았다. 윤서와 아람, 룩과 이룸이 만났다. 첫 만남인데 ‘아이들이 잘 놀까’를 고민하지 않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윤서는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룸은 윤서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커다란 눈에 갈색 머리, 큰 키, 핑크색 리본 핀, 레인보우 운동화. 이룸 눈에 완벽해 보이기 충분했다.
각자 자기 부모의 손을 잡아끌거나 안기면서 서로를 힐끔 관찰했다. 별수 없다. 어른이나 아이나 먼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다가가게 되어 있다. 이룸은 챙겨 간 WEE DOO 스티커를 윤서에게 내밀었다. 석연치 않은 표정의 이룸이 나한테 다가와서 말했다.
“저 언니가 고맙다고 안 해. 이름도 물어봤는데 얘기 안 해줘. 나랑 친구 하기 싫은 거야?”
“이룸도 부끄러운 적 있지?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이룸은 스티커 한 개를 더 달라고 했다. 윤서 옷에 붙여주고 싶다고 말했고 윤서는 자신의 옷에 동그라미 두 개가 부착되길 허락했다. 이룸이 조금 더 용기를 내본다.
“언니 우리 손 잡을까?”
윤서는 내심 바라고 있었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더니 둘은 손을 꼭 잡고 나무 길 사이로 사라졌다. 소개팅 주선자가 된, 나의 소임은 끝났다.룩과 아람은 축구를 하고 윤서와 이룸은 나뭇잎을 탐색하더니 앤디의 등장으로 아이들은 모두 모여든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앤디는 괴물이 되어야 했다. 아까 이룸이 분명 작은 목소리로, ‘저 삼촌은 머리가 노랗고 영어 말만 써서 좀 부끄럽다’고 했던 거 같은데 누구보다 열심히 앤디의 팔을 잡아끈다.넷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숨바꼭질을 할 때도 윤서의 가슴팍에는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공원을 나와 밥을 먹고 차에 타려고 손을 흔들 때까지도. 이룸은 알까? 이룸이 건넨 동그라미가 얼마나 큰 용기였으며, 그 동그라미가 엄마인 나에게도 붙여졌다는 것을.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을 이룸에게 배운다. 그리고 다짐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이룸에게 받은 동그란 용기를 꺼내보겠다고.
글·사진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