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뮤지션 안복진

우리 머릿속엔 저마다의 ‘뽀미 언니’가 있다. 발랄한 이야기와 경쾌한 음악이 머릿속을 간지럽히던 <뽀뽀뽀>를 이끌어온 그 뽀미 언니. ‘좋아서하는밴드’ 멤버 안복진은 2013년부터 6년간 <뽀뽀뽀>의 모든 노래를 매만진 음악감독이다. 음원 사이트에서 안복진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동요만 해도 400여 곡. 아코디언을 움직이며 단순하지만 맑은 노랫말을 읊던 해사한 그는 긴 시간 음악을 부유하며 어느덧 엄마가 되었다. 그의 품 안엔 자신의 눈과 꼭 닮은 아이가, 그 옆엔 매일의 행복을 함께 꾸리는 든든한 ‘한솔 씨’가 있다. 작업실에 초대받아 빵 봉지를 안고 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달려 나와 “이게 뭐야?” 하고 묻는다. 빵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고 ‘음~’ 조용히 읊조리는 그 목소리가 어찌나 이름과 닮았는지. 둥글둥글, 보드랍게 발음되는 ‘준우’라는 이름을 혀에 올리고 살금살금 굴려보았다. 달고, 고소하고, 다정하다. 마음결이 어여쁜 가족과 보낸 촘촘한 시간, 길고 긴 대화가 끝날 때쯤 준우는 바닥에 엎드려 잠꼬대를 시작하는데….

좋은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면

“저희도 여느 가족처럼 맛있는 걸 먹고,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에 가요. 그 목적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예요. 저희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 좋은 물건은 결국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거거든요. 결국 세상의 모든 좋은 건 좋은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거더라고요.”

만나서 반가워요.

복진 음악가 안복진이에요. 샌드위치를 좀 사 왔는데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샌드위치를 나눠준다.) 저는 ‘좋아서하는 밴드’(이하 ‘좋아밴’)라는 밴드를 하고 있고, 어린이 프로그램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음악에 관련된 일들이에요. 얼마 전에는 방탄소년단의 ‘Filter’라는 곡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지금 주력하는 건 제 솔로 앨범이죠.

 

오랫동안 음악을 해온 걸로 알아요. 음악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됐어요?

복진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피아노를 사주신 게 시작이었어요. 그때 언니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언니를 쫓아 학원에 다니게 됐거든요. 저는 클래식 피아노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잘하지도 못했어요. 악보를 보고 시키는대로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하는 게 좋았거든요. 낱장으로 된 종이 피스 악보로 대중 가요만 연주하고, 쇼팽을 가르쳐 줘도 연습을 안 해오니까 나중엔 선생님도 그냥 두시더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쭉 한 학원을 다닌 건 선생님이 좋아서였어요. 지금도 선생님이랑은 만나면서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 결혼식에 제가 축가를 부르기까지 했죠(웃음).

 

엄청난 인연이네요. 피아노가 아니라 선생님이 좋았던 건데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복진 고등학생 때 장래 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하는데, 배운게 피아노밖에 없어서 대중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실용음악과를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저는 코드도, 팝도 잘 모르거든요. 그러다 재즈 음악은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재즈음악과에 진학해 재즈 피아니스트가 됐고, 졸업 연주곡을 준비하면서 아코디언을 알게 됐어요. 어느 날은 아르바이트로 모은 200만 원을 들고 ‘젊은 아코디어니스트 모임’이라는 델 찾아갔는데요. 젊은 사람은 저밖에 없는 모임이었는데(웃음)거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한솔 거기서 만난 분이 200만 원으로는 사기 힘든 엄청 좋은 아코디언을 나중에 갚으라면서 그냥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복진 그 아코디언 덕에 대중음악 분야로 들어오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히 뮤지션 이장혁 씨 세션을 하게 되면서 아름다운 가사에 매료되었어요. ‘나도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다가 당시 멤버를 모으던 좋아밴에 함께하게 된 거죠. 좋아밴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곡도 만들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어요.

 

좋아밴의 음악은 따라 부르기도 쉽고, 기교 없이 단순한 음들이 참 친숙하고 정겨워요.

복진 대개 단순한 멜로디에 단순한 코드로 이루어진 곡들이거든요.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아코디언으로 연주할 수 있는 코드가 얼마 없어서 그렇게 됐어요(웃음). 저는 전공이 재즈 피아노여서 사실 연주를 좀 어렵게 하는 편인데, 피아노가 아니라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다 보니 음악이 단순해진 거죠. 다른 멤버들은 음악 전공자가 아니어서 쉽게 만들고, 그러다 보니 좋아밴의 단순하고 쉬운 스타일이 완성된 거예요. 그 덕에 <뽀뽀뽀> 음악감독도 하게 된 것 같아요.

 

<뽀뽀뽀> 음악감독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어요.

복진 평소 좋아밴 멤버와 친분이 있던 PD님이 제가 만든 노래들을 듣고 어린이 프로그램에 어울릴 거 같다면서 음악감독을 제안해 주셨어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여섯이었거든요. 근데 정신을 차려 보니 6년이 훌쩍 지나 있더라고요. 어느 날 저작권협회에 제 이름을 검색했는데 동요만 400여 곡이 나오는 거예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웃음). 방송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투입돼서 나이 때문에 미숙해 보일까 봐 긴장했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좋은 제작진을 만나서 성숙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동요를 만드는 건 꼭 천직 같았어요. 하나도 어렵지 않고 멜로디가 마구 떠올랐거든요. 물론 힘든 과정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재미있게 400곡을 쌓아온 거죠.

 

그 400곡 중에 교과서에 들어간 곡도 있다고 들었어요.

복진 농담처럼 교과서에나 들어가면 좋겠다, 했는데 진짜 연락이 오더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제가 만든 ‘우리동네 한 바퀴’라는 곡이 실렸어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로 시작하는 ‘동네 한 바퀴’가 좀 오래되어서 교과서가 개편되면서 제 곡이 들어간 거죠. 나중에 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도 이 노래가 교과서에 실려 있으면 좋겠어요.

 

동요를 만드는 것과 좋아밴 활동은 같은 음악이어도 마음가 짐이 달랐을 것 같아요.

복진 좋아밴으로 활동하면서 나름 위기가 있었거든요. 밴드를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창작활동을 하는 데 의미를 찾을 때도 있었고, 뮤지션으로 한 번쯤 왔다 가는 자잘한 고민도 있었어요. 그럴 때 동요 작업에만 몰두하면 뮤지션으로의 걱정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더라고요. 또, 동요작업을 하며 풀어야 할 생각들은 좋아밴 활동을 하며 해결되기도 했고요. 솔직히 말하면, 방송 작업은 돈을 벌어다 주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았죠. 이번 호 키워드가 ‘소비’라고 했죠? 소비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근데, 많은 사람이 음악가는 돈과는 거리가 먼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저도 <뽀뽀뽀> 음악감독을 하기 전까지는 비정기적인 수입 위주였으니 돈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 잘 몰랐던 거 같아요. 근데 고정 수입이 생기니까 이 돈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쓸까 고민하게되더라고요. 돈을 잘 모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좋아밴 포지션도 현실적으로 바뀌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현실감각을 찾아간 것 같아요.

 

<뽀뽀뽀> 음악감독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죠.

복진 처음 음악을 맡은 프로그램 이름은 <뽀뽀뽀>가 아니라 <똑?똑! 키즈스쿨>이었어요. 그러다 딱 준우를 낳을 시즌에, 방송국에서 다시 ‘뽀뽀뽀’라는 이름을 찾아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예정일에 맞추어서 미리 <똑?똑! 키즈스쿨>의 노래 석 달 치를 다 만들어둔 상태였거든요. 근데 갑자기 프로그램이 바뀌면서 만들어 둔 로고송, 효과음 같은 게 전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었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준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유축기를 끼고 <뽀뽀뽀> 음악을 만들었어요(웃음). 아이를 돌봐 주는 선생님들이 뭐 하시는 거냐고 묻고 그랬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방송에 충실한 노래를 만들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준우가 듣는 노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게 돼요. ‘나중에 준우가 이 노래 들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도 많이 하고요. 수백 곡의 동요 중 특히 애정을 가진 노래들을 준우가 따라 부르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준우야, 이거 엄마가 만든 노래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요. 

한솔 진짜 좋은 건 준우가 그런 환경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공연을 보고 다양한 음악을 듣고 엄마 목소리로 된 노래를 듣고…. 준우는 이런 환경이 다른 집에서도 흔한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준우는 음악을 좋아하나요?

복진 그럼요.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요. 준우야, 음악 좋아해?

준우 (어깨춤을 춘다.)

복진 (웃음) 음악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

준우 (어깨춤을 더 흥겹게 춘다.)

 

준우 신나(웃음)? 가족 소개도 들어보고 싶어요.

복진 여기는 제 남편이자 제가 제일 존경하는 안사람 (웃음)이한솔 씨예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 영화 아카이브 일을 해왔어요. 영화제에 찾아가서 영화들을 수집하고, 오래된 필름을 복원하며 지낸 아카이버죠. 제가 음악을 해올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올해가 저희 연애한 지 딱 10년째 되는 해여서 오늘 인터뷰가 참 뜻깊어요.

준우 나는 네 살 이준우. 어린이집에서는 하늘반, 선생님 이름은 다영 선생님.

한솔 준우는 요즘 뭐를 제일 좋아하죠?

준우 곤충.

한솔 얼마 전엔 곤충으로 노래도 만들었어요. 이 작업실에서 녹음도 했고요. 제목은 ‘거미가 부끄러운가 봐요’예요(웃음). 거미는 왜 부끄러워?

준우 내가 오니까!

한솔 다른 곤충들도 노래에 많이 나오잖아, 근데 왜 다들 부끄러워해?

준우 내가 무서우니까. 내가 저번에 가까이 갔더니 막 부끄러워했잖아. 숨어버렸잖아.

복진 준우는 동물이랑 곤충, 자연을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흙바닥에 내려놓고 ‘막’ 키웠거든요(웃음). 사람들이 바닥에 이렇게 내려놔도 되냐고 걱정하고 그랬는데, 저흰 그런 게 아무렇지 않았어요.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데다가 자연과 친하게 지내는 게 참 좋아요.

 

준우 이름 뜻이 궁금해지네요.

복진 원래 이름은 ‘대복’이었어요. 태명이었죠. 준우라는 이름은 좋아하는 사주 선생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저희는 종교는 없지만 사주는 믿거든요(웃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저희에겐 처음부터 대복이, 큰 복이었고 지금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죠. 제 이름에도 ‘복’ 자가 들어가는데, 저는 태어날 때 미숙아였대요. 워낙 약하게 태어나서 할머니가 안쓰러워하시면서 복진이라고 부르셨다고 해요. 저는 제 이름에 힘이 있어서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거라고 믿어요. 준우도 이름을 받아놓고 보니까 그 부드러운 느낌이 아이랑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준우가 이름처럼 부드럽고, 둥글둥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친구가 되면 좋겠어요.

 

준우가 태어나고 고양어린이박물관의 <아기산책> 작업도 맡게 됐죠. 어떤 프로젝트였어요?

복진 공간 기획에 참여한 작업인데 정말 재미있었고 저에겐 아주 큰 터닝포인트였어요. 예전에 고양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인연이 된 분이 제 음악감독 경력과 엄마라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서 당시 어린이 전시를 기획 중이던 학예사분을 소개해 주셨어요. 학예사분도 건축가, 미술가, 그리고 음악가인 저까지 세 명에게 공간 기획을 맡긴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공간의 특징은 ‘우리나라에 없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거였어요. 고정관념을 깨고 저희만의 룰을 만들려고 했죠. 저희는 어린이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습성을 생각했어요. 스스로 탐구하고, 무언가 알고 싶어 하고…. 이런 행동엔 목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목적 없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한 거죠. 그래서 ‘아기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고요. 그 안에서 제가 한건 소리 자극에 관한 거였어요. 공간의 틀은 건축가가, 시각적인 건 미술가가, 그리고 저는 청각적인 걸 고민해야 했죠.

 

36개월 영유아를 위한 공간이란 점이 기획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복진 맞아요. 이 공간에서 영유아들이 뭘 얻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처음에 건축가분이 공간을 동그라미 형태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죠. 원은 그 특성상 어디로든 갈 수 있잖아요. 누군가 길을 제시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탐험할 수 있는 공간이란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저와 미술가분은 세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장난감을 구성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장난감의 쓸모를 정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만지고 탐구하면서 가지고 놀 수 있기를 바란 거죠. 그 장난감 안에 아이에게 자극이 될 만한 소리를 넣는 게 제 일이었어요. 전자음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좁쌀을 굴릴 때 나는 소리나 철사를 구부리는 소리, 나무로 내는 소리 같은 아날로그한 소리에 집중했어요. 미술가님이 패브릭 작가여서 패브릭 안에 소리 나는 오브제를 숨겨놓고 아이들이 직접 건드려서 소리를 듣도록 꾸린 거죠. 이 작업을 할 때 준우가 36개월이 안 되었을 때여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냥 기획할 순 없으니 전문 서적도 많이 찾아봤고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이론이 있는데, 우리가 듣는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이런 소리를 다 음악으로 인식한대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소리가 아이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발달을 돕는다는 걸 알고 나니까 미디어에서 좀 멀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엄마로서 들려주고 싶은 것들, 같이 걸으며 듣는 발소리나 잔잔한 생활 소음이 어우러지는 환경을 〈아기산책〉을 통해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엄마로서 느낀 바가 많을 것 같아요.

복진 아이들은 천재예요. 어른이 애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부모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육아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많은 양육자가 ‘내가 아이에게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요. 예술 교육이나 고급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순 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은 모래알이나 돌멩이 하나만 가지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 아이들을 자극하는 건 값비싼 장난감이 아니라, 마음이에요. 그래서 저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려고 해요. 그래야 말하는 사람도 마음을 다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참, 재밌는 정보를 접했어요. ‘우와’라는 걸 기획 중이라고요?

복진 아(웃음), 6년 동안 <뽀뽀뽀>에서 동요를 만들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시각이 깊어지고,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들을 위해 뭔가 가치 있는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준우가 말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아이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씨를 가지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부모의 역할은 뭘까? 어떤 자극을 줘야 아이가 바르고 따뜻하게 자랄까?’ 그런 생각에서 시작된 게 우와예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복진 우와로 기획한 첫 프로그램은 ‘춤추는 말’이에요. 옹알이를 시작하는 영유아부터 단계적으로 언어가 발달하는 미취학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춤과 노래로 말을 틔울 수 있는 예술 놀이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어요. 아이의 말 한마디에 부모들은 춤을 추잖아요. 이를테면, 어느 날 목욕을 하는데 준우가 저한테 “엄마는 농부 아저씨야.” 그러는 거예요. 그때 제가 되게 일차원적으로 반응했거든요. “엄마 이렇게 예쁜데 무슨 농부 아저씨야!” 하고요. 근데 준우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는 준우를 키우니까.” 그때 아이말이 너무 예뻐서 욕조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어요. 아이가 하는 말에 티가 없고 맑아서, 어떤 태도로 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이런 태도가 유지될까 생각하고 연구 중이에요.

 

오프라인 모임인가요?

복진 원래는 온라인으로 구성했는데, 온라인과 대면 프로그램을 골고루 진행해 볼까 해요. 강사진은 부모 예술가를 포함한 주변의 예술가들로 꾸려보려고요. 사진가, 음악가, 미술가…. 프로그램 내용도 중요하지만, 제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건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요즘은 부모에게 자유를 주는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선생님이 두 시간 정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동안 부모는 자유를 얻는 거죠. 돈이라도 써서 아이와 떨어지는 시간을 마련한 다는 게 저한텐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30분이라도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우와는 아이가 좀더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양육자를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유아발달과 언어 교육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다 보니 단계를 밟는 데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요. 차근차근 구성해서 저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행보를 함께해 보려고요. 부모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아이들에게 최고만을 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 같아요. 저도 준우에게 좋은 것만 사주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근데 경험해 보니 그런 것보다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경험들이 아이에게 감성적으로 더 크게 가 닿더라고요. 돈을 쓰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하는 경험에서 자극을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복진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저희도 여느 가족처럼 맛있는 걸 먹고,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에 가요. 그 목적은 경험을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큰 목적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예요. 저희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 좋은 물건은 결국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거거든요. 결국 세상의 모든 좋은 건 좋은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거더라고요. 이 작업실도 단골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완성된 공간이에요. 거기서 친구가 된 ‘스튜디오노토’에서 낡고 오래된 집을 이렇게 멋지게 탈바꿈해 주었죠.

 

요즘 진짜 인상적인 경험을 하고 있던데요. 카누를 만드신다고요? 이름도 ‘복진 카누’라니!

복진 카누는 요즘 저희 가족의 큰 기쁨이에요. 어느 날 한솔씨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하나 보여줬어요. 카누 사진이었는데, 그 밑에 “잘 빠진 복진이”라는 글귀가 있어서 웃었거든요. 그 카누 이름이 ‘복진’이었고, “복진이 아빠를 모십니다.” 하면서 복진 카누라는 카누 제작 지원자를 모집하는 내용이었어요. 남편이 와이프 이름이 복진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저희 가족이 제작에 진짜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엔 배에 색칠하는 정도인 줄 알고 가볍게 양양으로 갔는데, 나무로 배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거더라고요. 복진 카누의 프로토타입을 함께 만들 사람으로 저희 가족이 선정된 거고요. 복진의 의미는 복을 받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이었대요.

한솔 올리버선박이란 곳에서 만들고 있는데요. 사실 이것도 사람 때문에 시작한 일이에요. 올리버선박 대표님이 진짜 매력적인 분이거든요. 그곳은 정말 동화 같은 공간이고, 그 안엔 동화에 나올 법한 사람이 살고 있어요. 그분은 카누가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대요. 꿈을 현실로 실현해 주는 도구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요즘은 2주일에 한 번씩 양양에 가서 배를 만들고 있어요. 카누가 모양을 갖추어 갈수록 이 과정이 끝나면 어떡하나 벌써 아쉬워하고 있죠. 합리적인 금액으로 카누 만드는 경험을 해보고자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건데, 이것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멋진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소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하잖아요. 복진 님의 노동은 창작이면서 누군가에게 소비되는 작업물이기도 해요.

복진 누군가 제 음악을 소비해 준다는 걸로 너무 고마워요. 2018년에 좋아밴 10주년 공연을 했는데, 그때 고마운 마음을 크게 느꼈어요. 사람들이 제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들었든 앨범을 사서 들었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소비는 시간과 노력과 수고와 돈이 뭉쳐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전기세나 수도세 같은 건 소비가 아니라고 봐요. 소비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음원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앨범을 구매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그리고 2분 30초든, 한 시간이든 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수고도 해야 하고요. 10주년 공연 때 관객분들이 좋아밴 처음 본 나이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 노래로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무척 이상했어요. 

한솔 저는 어릴 때 가수 김장훈 씨를 정말 좋아했는데, 소극장 공연에 가서 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순수한 마음이 확 느껴져서 꺼이꺼이 운 적이 있거든요. ‘그 마음을 왜 잊고 있었지?’ 싶어지면서 북받쳐 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 관객분들 마음 이해해요.

 

준우도 뭔가를 좋아하게 되고 차차 소비도 하게 되겠죠?

한솔 소비는 어릴 때부터 많이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준우랑 돈을 잘 쓰러 다녀요(웃음). 저는 준우가 뭘 보고, 만지고, 듣고, 입고 지내는지 어릴 때부터 관심있게 생각하고 잘 알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결국 취향이 되는 거니까 더 많이 경험했으면 싶죠. 경험을 통해 어떤 것에 돈을 쓰고 싶은지, 내 취향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준우에게 알려주고 싶은 경험이 있어요?

복진 세상에 경계가 많지 않다는 거요. 세상엔 준우가 못 할 것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할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면 좋겠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나이 때문에 어려워하지 않기를 바라고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만나면 “이 이모는, 이 삼촌은 어디가 예뻐?” 하고 꼭 물어봐요. 준우야, 이 포토그래퍼 삼촌은 어디가 예뻐?

준우 음…. (눈을 가리킨다.)

복진 거기가 예뻐?

준우 (끄덕)

복진 말로 해줘야지.

준우 눈이 예뻐!

복진 이렇게요(웃음).

 

준우도 무럭무럭 자라 언젠간 이 책을 펼쳐보게 될 텐데, 준우에게 비밀 메시지를 남겨 볼까요?

한솔 준우야, 엄마, 아빠가 연애할 때 아빠가 제일 많이 한 말이 “복진이 마음대로 해.”였어. 준우도 뭐든 마음대로 하면서 살게 되면 좋겠어. 결국 네가 경험하는 거고, 네가 책임지는 거니까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지내자.

복진 엄마는 네가 뭐든 우리랑 의논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네가 나에게 종종 “야, 안복진!” 하고 부르는데 나는 네가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아.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부모님은 이런 말 싫어할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민 없이 모든 말을 들려주는 친구 같은 사이면 좋겠어. 이걸 읽을 때쯤, 네 맘속에 있는 모든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있다면 기쁠 거야. 준우야, 너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 중 제일 좋아하는 거야.

FAMILY’S BRAND RECOMENATION

이웃과 함께하는 건강한 소비, 비옥한

우리 가족의 건강한 먹거리는 이웃사촌인 ‘비옥한’과 함께하고 있어요. 청정 제주에서 나고 자란 바른 먹거리를 판매하는 브랜드인데, 초여름을 맞아 초당옥수수를 주문하고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기꺼이 돈과 마음을 소비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 보일 거예요.

instagram.com/beokhan

오감으로하는 경험 소비, 고양어린이박물관 <아기산책>

3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스스로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이 공간은 아이들을 시인이자 예술가, 방랑가로 바라보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아이들을 지켜봐 주세요.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중로 26
goyangcm.or.kr/exhibition/forestbaby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