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lorful Diary

아티스트 사키

My Colorful Diary

사키

어린 시절 다이어리를 꾸미듯 프레임 안을 다양한 색과 조각들로 채운다.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하는 작가. 사키saki로 활동하는 권은진을 서울역 근처 그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유리문 너머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깔들이 튀어나왔다. 저녁 5시의 지는 태양이 때마침 서쪽 창문으로 들어와 하얀 작업실을 근사하게 비췄다.

Interview
아티스트 사키

“하루하루 다 기억할 수는 없어요. 평범하고 별거 없는 날은 그냥 지나가고요.평범한 날이나 반대로 의미 있고 중요한 순간을 제 손으로, 제 심미안으로 남겨놓을 수 있다는 게 저한텐 큰 의미예요.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해요.”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한 뒤 패션 MD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특이한 경력이죠. 처음 듣는 분들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전업한 거로 생각하시는데, 저는 반대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직장을 오래 다녔죠. 그만두고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했어요. 20대 중·후반에는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이것저것 경험하다 보면 하고 싶은 걸 찾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회사도 다니고 사회 경험도 해본 거죠. 그러다가 ‘아, 이제 그만두고 뭔가를 해봐야겠다.’ 결심해서 개인 작업을 시작한 거예요.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작업인가요?
6개월 이상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한두 달 놀다가 여행도 가고요. 회사 다니니까 아실 것 같은데, 출퇴근만 해도 일이잖아요(웃음).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고, 아무것도 안 해본 적이 없어요. 좋더라고요. 회사 그만두고 나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되려 지금보다 그때가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처음 만든 작품이 궁금해요.
지금 시리즈로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의 시작이 친구들과의 여행이에요. 친구들이랑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국내 작은 지방 도시를 즉흥적으로 가기도 하고요. 어쨌든 아이폰이 있으니까 사진을 남기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보면 남는 게 없더라고요. 사진을 SNS에 올리는 거 정도였어요. 저희끼리 “이거 너무 아깝지 않아?” 하고 얘기하다가 제가 전공자니까, 이걸 한번 판매해보자, 아니 판매가 아니더라도 남길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친구들이랑 사진을 디지털 프린트해서 패브릭으로 만들었어요. 나중에는 뿔뿔이 흩어져 저 혼자 하게 됐지만요. 그게 계기가 되어 여행이나 일상에서 찍은 사진, 제가 작업한 이미지를 패브릭으로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수비니어 패브릭 시리즈SOUVENIR FABRIC Series’였죠? 기념품 모으는 것도 좋아하나요?
엄청난 컬렉터나 수집광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시기나 장소에 관련된 물건은 모아놓는 편이에요. 남들이 봤을 땐 너무 보잘것없어서 “이걸 왜 갖고 있어?” 할 만한 것들인데요. 예를 들면 여행지에서 갔던 카페의 냅킨 같은 거요. 냅킨은 쓰고 버리면 정말 쓰레기가 되잖아요. 그런 걸 계속 가지고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그런 확신은 물론 갖고 있었죠. 음… 논리적으로 저 자신을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가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표현하고 싶은 걸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도 어렵고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제 작업을 설명할 때 조금 힘들다고 하니,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너는 그냥 만드는 사람이지 그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걸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작가는 어때야 한다는 말은 딱히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요. 그냥 자기 걸 만들고 있고, 그게 억지로 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사람이 작가가 아닐까 한다는 거예요. 그 말에 공감했어요. 저 자신과 제 상황을 정말 잘 설명해주는 얘기였거든요.

‘사키’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나는 작가로 활동하고 작가 이름은 이걸로 할 거야, 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패브릭을 판매해볼까?’ 였잖아요. 패브릭을 판매하려면 라벨도 달아야 하고, 그러면 이름이 필요하죠. 알파벳 조합을 봤을 때 이 모양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또 부르기 쉽고 아무 의미도 없고요.

작가님에 대해 찾아보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영감과 기억을 담은 기념품을 만들고자 한 것이 작업의 모티브다.”라고 한 소개 글을 봤어요. ‘수비니어 패브릭 시리즈’에 대한 설명 같기도 한데, 이게 여전히 작가님의 작업을 설명하는 문장일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은 프랑스 어디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하고 작업에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요. (바닥에 펼쳐진 작품을 가리키며) 이건 제가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 해안에서 찍은 사진을 드로잉 한 거예요. 제가 상상력이 뛰어나진 않아요. 경험해보지 못한 것, 본 적 없는 걸 상상하기보다는 제가 겪거나 보고 느낀 걸 일기처럼 남기는 게 편해요. 그게 저한테 맞는 방식 같고, 제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설명이 지금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이나 경험하는 장소에 영향을 받겠어요.
네. 저기 밑에 조금 흥분한 서울역 아저씨들한테도 영향을 받고요. 가끔 베스트드레서 분들이 보이거든요(웃음).

서울역 특유의 분위기가 있죠.
그래서 어떤 분은 여기가 특별히 좋아서 온 거냐고 물어보셨는데, 그건 아니에요. 어쨌든 제가 생활하는 공간이잖아요. 작업실 안이나 작업실 밖 동네나, 평소에 왔다 갔다 하면서 본 풍경을 많이 얘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글에서 ‘한 사람’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께 사람이 가장 흥미로운 대상인가 싶더라고요.
맞아요. 제가 나중에 워크숍을 하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예요. 주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각자의 이야기를 하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 같은 기념할 만한 비주얼 오브제로 콜라주 하는 거거든요. 되게 재미있어요. 저는 혼자 작업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이 되기도 해요.

워크숍은 자주 하시나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하려고 했어요. 작년엔 진짜 꾸준히 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두 번 했네요. 일이… 핑계, 핑계죠. 이번에 여행 다녀와서 꼭 할 거예요.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한 명만 꼽을 수 있을까요?
멋있는 작업을 한 작가들도 많이 좋아하는데요. 한 명을 꼽긴 힘들 것 같아요. 그냥 주변 사람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아요. 지금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는 친구한테도 영향을 받고요. 고집이 센 것 같은데 귀가 얇은 편이거든요. 이렇게 얘기하면 멋이 없을까요?

아니요. 충분해요(웃음). 보통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제가 계획을 별로 안 좋아하고 잘 세우지도 못하는데요.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다 기억할 수는 없잖아요. 평범하고 별거 없는 날은 그냥 지나가고요. 평범한 날이나 반대로 의미 있고 중요한 순간을 제 손으로, 제 심미안으로 남겨놓을 수 있다는 게 저한테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작업의 밑그림이 있을까요? 아니면 조금 즉흥적으로 하는 편인가요?
경우에 따라 달라요. 스케치부터 세밀한 계획에 따라 차곡차곡 올려서 완성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 게 좋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부분 조금 즉흥적으로 한 작업이 나중에 좀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처음에 연습 삼아 한 거나 별로인데 하고 제쳐놓은 것들이요.

즉흥성 안에 작가님만의 규칙이 있나요?
규칙이랄 건 없어요. 다만 봤을 때 너무 인위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것들은 다 배제해요. 그래서 처음에 자연스럽게 연습 삼아 해본 것들이 마음에 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콜라주 작업을 좋아하는데요. 콜라주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사람들이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콜라주에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저도 거기에 영향을 받아 콜라주 작업을 많이 하게 됐고요.

콜라주에 어떤 매력이 있던가요?
제가 사소한 거 수집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원래 있는 오브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공산품도 좋아하고요. 그런 걸 작업에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 콜라주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콜라주는 제 표현 방법의 하나일 뿐이에요.

그 외에 어떤 도구와 방법을 사용하나요?
색연필이나 크레용, 수채나 아크릴 물감을 쓰고요. 디지털 드로잉과 페인팅도 해요.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요. 이걸로만 할 거야, 아니면 계속 새로운 걸 찾아야 해, 이렇게 마음먹고 하지는 않아요.

가장 좋아하는 도구가 있다면요?
그때그때 작업에 따라서 어울리는 게 있고 재미있는 게 있어요. 그렇지만 제일 효율적인 건 디지털이죠. 다른 것들은 물성이 남지만, 디지털은 삭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라지니까요.

‘띵즈 아이 러브Things I love’ 시리즈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있어 무척 반가웠거든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저의 취향 같은 게 있어요. 브랜드나 영화감독이나, 고유명사는 변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색깔은 같은 거죠. 그런 취향,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재구성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작품들을 보면 다양한 컬러 배합이 눈에 띄어요.
컬러풀한 걸 좋아해요. 저희 엄마가 예전에 그림을 그리셨는데요. 취향이 서로 비슷하진 않지만, 엄마도 눈에 띄는 선명한 것, 컬러의 콘트라스트 같은 걸 선호하시는 편이에요. 그런 영향도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지금 쓰고 있는 이런 컬러 조합을 좋아했어요. 80~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가 경제의 황금기잖아요. 당시의 선명하고 여유 있고 낙천적인 컬러들을 좋아해요. 컬러가 예쁜 유럽 애니메이션도 좋아했고요.

기억나는 애니메이션이 있나요?
EBS에서 방송한 교육용 애니메이션인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프랑스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적이 있는데요. 〈Il était une fois… La Vie(옛날 옛적에… 인생)〉이에요.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은 지금 다시 봐도 좋아요.

색깔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시작하기 전에 색깔을 먼저 떠올리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표현을 하자면 사람이 뭔가를 먹고 싶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예전에 먹었던 맛이나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작업하기 전 컬러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오르면, 그것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색은 너무 많고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삼원색인 레드, 옐로, 블루를 가장 많이 쓰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브랜드들과 협업도 많이 하시죠?
많지는 않아요. 작년 〈샤넬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 전시에 전시와 관련된 내용물 작업을 했었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막스마라 코트> 전시 작업, ‘에딧 서울’이라는 레이블과의 작업이요. 에딧 서울은 제 경력이 아무것도 없을 때 먼저 비주얼 작업을 의뢰해주셨죠. 그리고 최근에 한섬의 여성복 브랜드와 협업했어요.

작업의 시작이 여행이었잖아요.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여행은 다 좋아하는데요. 홍콩을 특히 좋아해요. 도시 자체를요. ‘홍콩’ 하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을 쉽게 떠올리는데, 아까 제가 80~90년대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홍콩에 그런 느낌이 있어요. 한창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요. 네온사인 많고, 고가도로 많고요. 90년대에 상상하던 미래 도시가 그런 이미지였잖아요. 그런데 가보면 아시겠지만, 너무나 20세기거든요. 20세기의 21세기라서 더 좋아요. 그리고 다양한 것들이 뒤섞여 있고, 정신없고, 에너지가 있어요.

내년에 도쿄에서 전시를 한다고 했어요.
내년 초 도쿄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세부적으로 말하긴 어려운데요. 이때까지 보여드린 것과 새로운 것,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 음… 전시와 맞물리는 내용이긴 하네요. 공간을 구성하는 거예요. 지금은 작업이 프레임 하나에서 끝나는데, 뭔가 3차원적인 작업물을 만들어볼까 싶어요. 그게 커지면 공간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계획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혹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어떤 목표를 세우기도 했나요?
저는 큰 목표가 있거나 뭘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하진 않아요. 그냥 단계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는 거예요. 물론 회사에 다닐 때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작업을 하든 뭘 만들든 다른 걸 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목표는 잡지 않았어요. 작가가 될 거야, 이런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으니까요. 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비교적 빨리 찾았죠. 지금 하는 일로 생각하는 목표라면, 좀 길게 하고 싶어요. 제 능력을 많이 보여주고 돈도 많이 벌고요(웃음).

인터뷰가 지면에 나갈 때 이름 앞에 직업이나 직함을 적어요. 작가님 이름 앞엔 뭐라고 적으면 좋을까요? 비주얼 아티스트라고 하기도 하고 콜라주 아티스트라고 하기도 하던데….
비주얼 아티스트… 언제 한번 붙여주신 거긴 한데, 저도 비주얼 아티스트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런데 뭐라고 쓰셔도 저는 상관없어요.

사키 saki
H. instagram.com/saki_s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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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혜원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