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마추어적인 결혼 생활

My Amateur Marriage

결혼이 무엇인지 알아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다. 결혼을 했어도 결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결혼한 지 15년째, 그러나 여전히 아마추어인 나는 이제야 주례사의 의미를 깨닫는다. 왠지 소름이 돋는다.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내 친구들은 다들 경악했다. 네가 결혼을 하다니. 네가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하다니. 나는 스물여덟살에 결혼했다. 그때는 서른이 되기 전에 빨리 결혼해야 할 것 같아 똥줄이 탔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내가 너무 설레발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승 통로에서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 우사인 볼트처럼 달렸는데 막상 플랫폼에 도착하니 반대편 지하철이었다는 것을 안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어쩔 수 없었다. 배 속에 첫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결혼 생활이란 육아와 같은 것이었다. 2년 후에 둘째가 태어났고,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고상한 것 인지를 깨달았다. 그 시절을 짐승처럼 보내고 나니 우리는 결혼 15년 차의 40대 배불뚝이들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내 결혼의 가장 큰 성취는 아직 이혼하지 않은 것이다. 그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혼의 위기를 넘겼던가. 결혼에 골인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계속 결혼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임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 아, 아니지. 주례사에도 다 있는 얘기지. 아플 때나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그때는 아이구, 이놈의 창의성이라고는 1도 없는 주례사 언제 끝나나 싶어 딴 생각만 했었다.

기분이 좋을 때, 만사가 잘 굴러갈 때, 앞날이 딱히 걱정되지 않을 때, 몸이 건강할 때, 상대가 잘생기고 예뻐 보일 때 서로를 사랑하기란 굉장히 쉽다. 하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앞날에 먹구름과 안개가 잔뜩 끼고 천둥 번개 폭우까지 집중공격을 퍼부을 때, 상대의 얼굴과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을 때, 그때도 상대를 사랑하기란, 아니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려운 일이다. 이때는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전장에서의 의리나 보다 폭넓은 인간애 같은 것들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앤 타일러는 유독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쓰는데, 그 이유가 결혼 생활의 본질, 그러니까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언제나 자신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소설 《아마추어 메리지》에는 폴린과 마이클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남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우연히 사랑에 빠져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다.

폴린은 결혼이란 두 영혼의 엮어짜기라고 믿었지만 마이클은 두 사람이 나란히, 그러나 따로 떨어져서 걸어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당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신의 솔직한 기분을 말해봐요.” 폴린이 마이클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마이클의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마이클이 통화를 하면 꼭 누구와 통화했는지 물었다. 그녀가 입에 달고 사는 ‘맞혀봐요’도 그에겐 일종의 강요로 느껴졌다(“마이클, 맞혀봐요…… 아니, 진짜로, 맞혀보라고요…… 어서. 그냥 짐작해보라니까요…… 틀렸어요. 다시 생각해봐요…… 얼른!”) 그렇게 다른 두 영혼이 어떻게 엮어 짜일 수 있을까? 마이클은 그것만 봐도 자신의 결혼관이 맞는 것 같았다. 

 

-앤 타일러, 《아마추어 메리지》 중에서

앤 타일러가 폴린과 마이클의 결혼 생활에 ‘아마추어 메리지’라는 제목을 지어준 까닭은 그들이 너무도 아마추어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타협안을 찾아나간다. 상대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 날도 있지만, 저 사람 없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중한 날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외향적인 폴린과 신중하고 내향적인 마이클은 결혼 생활 내내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타협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첫째인 딸 린디는 집을 나가 부모와 연을 끊어버린다.

마이클은 사진사가 시키는 대로 한 팔로 폴린의 허리를 감고 그녀의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소맷단 바로 위를 잡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어쩌면 맨살의 스펀지 같은 생경한 감촉이나 익숙지 않은 실크 냄새가) 낯선 사람 옆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 여자가 누구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어떻게 우리가 한 집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인생의 동반자일 수 있지? 그의 겨드랑이를 눌러오는 그녀의 어깨가 생명 없는 물체처럼 느껴졌다. 

 

-앤 타일러, 《아마추어 메리지》 중에서

폴린과 마이클처럼 남편과 나는 외모부터 성격, 취향까지 어느하나 맞는 구석이 없다. 하긴, 이렇게 안 맞는데도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야말로, 이렇게 오래 함께 살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기적이라고 봐야겠지. 남편은 내 앞에서 내가 싫어하는 시끄러운 팟캐스트를 틀지 않고, 나는 그가 밤늦게까지 게임 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오랜 싸움 끝에 타협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가끔 내 남편이라는 남자가, 지난 15년간 매일 내 옆에서 잠을 자는 이 남자가, 내 아이들의 아버지인 이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 사실이 섬뜩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당신이 배우자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건 십중팔구 그 배우자 본인도 잘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당신, 내게 진짜 원하는 게 뭐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질문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잘 모르겠는 사람’이 항상 자기 옆에 있고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함께 놀며, 기대고 싶을 땐 의지할 기둥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중에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저씨들 중 하나인 우치다 타츠루는(사실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곤란한 결혼》이라는 책을 통해 결혼의 곤란한 점들과 그럼에도 결혼하면 좋은 이유에 대해 썼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이 좋다. 인생은 별거 없고 사실은 시궁창 같은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는 건 썩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좋다.

사실 우치다 타츠루는 젊은 시절 한 번 이혼을 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 파더였다. 그럼에도 그는 결혼을 통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같은 집에 살면서 오늘의 즐거움과 고충을 나누고, 함께 내일을 걱정하고 기대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꽤 괜찮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혼자보다 둘이 낫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같이 사는 것이지, 상대와 한 마음, 한 몸이 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건강하고 풍요로울 때는 결혼할 필요가 그다지 없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가처분 소득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잖아요. 건강하고 풍요롭다면 독신을 선택하는 것이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플 때’와 ‘궁핍할 때’입니다. 결혼이라는 건 그러한 인생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것입니다. 결혼은 질병과 빈곤을 전제로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중에서

 

나도 가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의 자유가 부럽다.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근사한 식당이나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릴 그들의 자유가 부럽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늘어지게 잘 그들의 자유가 부럽다. 생각나면 어디로든 훌쩍 떠날 그들의 자유가 부럽다. 누구도 그들의 선택에 태클을 걸지 않는 그런 자유가 부럽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해버렸다. 결혼하지 않고 나이 들어가는 한수희의 삶은 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 같은 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 사람이 누릴 자유도, 그 사람이 견뎌야 할 고독도 나는 모른다. 나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나약해서 결혼했다. 내가 보살펴주고, 나를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해서 나는 결혼했다. 요점은 그것이다. 안정적인 관계에 속하고 싶어서 나는 결혼했다.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공적인 제도다. 서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만인의 앞에서 선언하는 이유도, 굳이 혼인신고라는 것을 해야 하는 이유도, 가급적 헤어지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꽤나 모진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의 핵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결혼생활이라는 가장 작은 형태의 사회조직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조직을 배우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소원해지고 신뢰하고 배신당하고 헤어지고 상처받고 치유하고 간호하고… 이 과정에서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지요. (중략) 어른이 되고 싶다면 결혼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결혼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중에서

그렇지만 나는 결혼 신봉자가 아니다. 결혼 따위,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도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왜 인간이 결혼 제도를 계속해서 유지해 왔는지를 묻는 데 있을 것이다. 결혼을 통해 우리는 힘들거나 아플 때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결혼을 통해 우리는 끝없이 상대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공생의 기술을 익히며 인간적으로 성숙해 나간다. 결혼을 통해 사람들은 그런 이득을 얻는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름의 사회적 안전망을 찾으면 된다. 정책과 제도를 요구하고 친구나 사회적 가족을 만들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우리에게는 홀로 견뎌야 할 수만 톤의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바뀝니다. 배우자가 달라지면 발현되는 ‘자신’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날로 먹든 절여 먹든 삶아 먹든 구워 먹든 튀겨 먹든 가지는 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현되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진짜 자신’인 것이지요. 그러니 결혼은 누구랑 해도 상관없으며,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저는 늘 말씀드립니다. 

 

-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중에서

“엄마가 그러셨잖아. 결혼은 과일나무와 같다고. 기억 안 나? 종류가 다른 가지들을 한 나무줄기에 접붙인 거라고. 세월과 함께 그 가지들이 하나가 되어 자라는 거고 사과나무에 복숭아가 열리고 자두나무에 체리가 열려도, 아무리 뒤죽박죽돼도 상관없다고. 그 가지들을 떼어내려고 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고.” 

 

-앤 타일러, 《아마추어 메리지》 중에서

나는 늘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멋지고 잘생겼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어떤 여자의 인스타그램을 훔쳐본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할 텐데, 이제 와서 저렇게 하면 미쳤냐는 소리나 듣겠지. 가끔 남편이 내 불안정하고 이기적인 성격과 무뚝뚝한 언사를 견디지 못해 떠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나와 남편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 수 있을까?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며 이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앞일을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노력하고 있다. 계속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또 가장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믿으면서. 그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구덩이 속으로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 메리지》 앤 타일러 | 시공사
《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 | 민들레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