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다음엔 커피 그리고 음악

Music In Drink

맥주를 좋아한다. 그 목 넘김의 쾌감을 사랑한다. 소주도 가끔 마시긴 한다. 예를 들어 어복쟁반을 안주로 시켰는데 맥주를 마시는 건 어복쟁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여름이 다 지났다. 날은 곧 서늘해질 것이다. 서늘해지면 어복쟁반만큼 매력적인 음식도 몇 없다.

커피를 좋아한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나는 혹한이 몰아쳐도 오직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고집한다. 요즘 말로 하면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략 10년도 전부터 실천해왔다. 이유는 별거 없다. 뜨거운 커피를 아침에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느낌이 덜한 까닭이다. 전형적인 플라세보 효과다. 한데 이런 플라세보 효과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패턴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거의 매일 맥주를 즐긴다. 일주일 단위로 집에서는 4회, 밖에서는 2회, 양심상 휴식 1회 정도가 될 것이다. 과음을 하는 건 역시 밖에서 마실 때다. 나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 포기했는데 술만 마셨다 하면 어떻게든 ‘음악 바’에 가서 음악을 들어야 하는, 매우 기괴한 강박을 지니고 있다.

사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집에서 술 마시며 듣는 것과 바에서 듣는 음악이 같을 수는 없다. 우선 방음장치 하나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집에서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무엇보다 사운드의 크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술의 양과 소리의 볼륨은 정확하게 정비례한다. 술이 쭉쭉 들어가면 음악 팬을 자처하는 인간은 대개 더 큰 소리를 원하게 되어 있다.

나도 안다. 헤드폰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헤드폰을 오래 쓰면 귀가 아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나는 게임을 할 때도 헤드폰을 쓰고 길을 걸을 때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즉, 내 귀의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설픈 변명이다. 구멍 난 알리바이다. 나는 그저 술 취하면 음악이 듣고 싶고, 그 음악을 빵빵한 사운드로 즐기고 싶을 뿐이다. 뭐, 이렇게 맥주와 음악을 즐기고 나면 다음 날 남는 건 아무래도 숙취와 후회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한텐 비장의 무기, 커피가 있다. 출근과 동시에 구입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쭉 빨면 정신이 서서히 제 위치로 원대복귀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아무 커피나 마시는 건 절대 아니다. 나에게 별다방 커피는 너무 쓰고 탄 맛이 과하게 난다. 브랜드로 한정하자면 폴 바셋 쪽이 내 입맛에는 더 맞는 것 같다. 진짜다. 오죽하면 MBC 건물 1층 폴 바셋 직원들이 내가 가면 주문도 안 듣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릴 준비부터 하겠나. 맥주나 커피와 관련된 곡은 역사적으로 부지기수다. 그중에서도 맥주를 마시며 들으면 더 흥이 날 게 분명한 음악, 커피와 어울릴 만한 음악을 골라봤다. 맥주는 친구와의 수다가, 커피는 책 한 권이 더해지면 더 좋을 것이다.

[The Foundation]

‘Chicken Fried’(2008)

Zac Brown Band

역시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미상까지 수상한 잭 브라운 밴드의 ‘Chicken Fried’다. 이 곡은 가사부터가 그야말로 맥주를 부른다. 노랫말을 먼저 보라.

You know I like my a chicken fried / Cold beer on a Friday night / A pair of jeans that fit just right / And the radio up(금요일 밤에 시원한 맥주 한잔과 프라이드 치킨 좋아. 핏이 좋은 청바지를 입고, 라디오 볼륨을 높이자고.)

어떤가. 곧장 전화기를 들고 뭔가 막 들뜬 목소리로 주문하고 싶지 않나. “여기 치킨 한 마리요.” 잭 브라운 밴드는 미국 출신이니까 나라면 보스턴의 명품 라거 맥주 ‘사무엘 아담스Samuel Adams’를 선택해 치킨과 함께할 것이다. 치킨에 사무엘 아담스라니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괴는 황홀한 광경이다. 단, 치킨은 미국이 아닌 한국산이어야만 한다. 미국에 가서 맛있다는 치킨 먹어봤는데 치킨은 역시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이 세계 제일이다.

[The Men Of The 3M]

‘맥주는 술이 아니야’(2005)

바비빌


한국에도 맥주 노래는 있다. 쿨의 ‘맥주와 땅콩’이 있고, 키썸의 ‘맥주 두 잔’도 꽤나 알려진 맥주송 중에 하나다. 이 외에도 인터넷에 ‘맥주 노래’라고 치면 꽤나 많은 가수들이 맥주를 노래했음을 알 수 있다. 컨트리 밴드 바비빌Bobbyville의 ‘맥주는 술이 아니야’는 그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치는 곡이다. 성인이 되기 전 아버지에게 배운 맥주 한잔을 꽤나 절절하게 노래한다.

한데 맥주가 술이 아니라고 주장한 건 비단 바비빌만은 아니었다.《작가와 술》이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 (금주를 선언한 그에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진을 안 마신다는 의미였을 테고 진을 안 마시는 대신 하루에 맥주를 스무 병쯤 들이켰다.”

하하. 어디 가서 애주가라고 하기가 겁난다. 어쨌든 이 책, 정말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 만에 뚝딱 읽어버렸다. 술이라는 뮤즈가 위대한 작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제공했는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나도 맥주를 다섯 병 이상 마시는 건 일주일에 이틀 정도밖에 안 된다.

[The Boy Who Never] 

‘Falling In Love At A Coffee Shop’(2009)

Landon Pigg


이 곡, 커피숍에서 처음 들었다. 진짜다. 멜로디가 마음에 쏙 들어 스마트폰 어플로 곧장 찾아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커피숍 주인을 해볼 계획은 없지만 혹시라도 커피숍을 차리게 된다면 이 곡을 매일 아침 첫 곡으로 틀면서 문을 열고 싶다. 가게 내부가 따스한 공기로 꽉 찰 것 같은 노래인 까닭이다. 다음 가사를 보라. 

I never knew / just what it was about this old coffee shop I love so much / All of the while I never knew(예전엔 몰랐죠 /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이 커피숍에서 이렇게 사랑에 빠질 줄은 / 정말 몰랐어요)

사랑에 빠진 연인이 있고, 그 연인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곡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게 만든다. 대개의 아름다운 노래가 이렇다. 

“맥주든 커피든 거기서 거기야. 그냥 마셔.”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런 논리라면 어디 가서 “프라이드 치킨은 한국이 1위야.”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아니, 그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이런 거다. 그것이 음악이든, 맥주든, 커피든 상관없다. 애정을 바탕으로 선호하는 것 하나라도 지니고 있는 인생의 궤적과 하나도 지니고 있지 못하는 인생의 궤적은 (어쩌면 지금 보기에는 미미한 차이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꽤나 큰 차이를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좀 거창하게 설명하자면 우리 모두는 ‘끝없는 일상이라는 감각’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일이라고 뭐 달라질까.” 싶은, 일종의 무기력증인 셈이다. 이 무기력증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 의외로 맛있는 맥주나 커피 한잔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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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작가)

포토그래퍼 김지수 장소 협조 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