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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과 음악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성정 자체가 겁보인지라 서울을 여러 번 벗어나기는 했으되 그건 대개 ‘일’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진짜 그렇다. 서울을 넘어 모국을 뒤로하고 해외로 향한 건 대부분 출장이었거나 (놀랍게도) 나를 중심으로 하는 여행 상품(그것도 아프리카와 미국 딱 두 번) 덕이었다. 이걸 제외하면 휴식을 위한 ‘어브로드’는 현재 스코어 15회가량의 일본 여행이 전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나는 서울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죽을 것이다. 나만한 ‘서울러Seouler’ 또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도시형 인간이다. 시골에 가면 처음에는 제법 좋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갑함을 느끼면서 서울의 밤거리를 그리워한다. 그래, 맞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대도시의 인간은 거의 예외 없이 네온사인에 중독된 상태다. 그 번쩍거림에 취해 밤거리를 쏘다니면서 외로움을 해갈한다. 20대의 나도 그랬다. 모교인 홍익대학교 부근에서 내가 바로 이 세상의 주인공인 양 크게 웃으며 거의 날마다 대취했다. 제법 유쾌했던 그 시절은 이제 지났고, 나는 내가 주인공은커녕 단역조차 맡기 어려운 인간임을 아무런 불만 없이 인정한다. 세월이 선물해 준 가장 큰 교훈이다.
기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건 ‘집콕’이다. 이유는 별거 없다. 친구가 많지 않은 터라 나갈 일이 좀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외출을 해야 한다면 낮보다는 역시 밤이 좋다. 한적한 골목길보다는 사람이 그래도 좀 모이는 장소가 더 끌린다. 물론 20대 시절과는 다르다. 홍대나 강남처럼 사람이 인간적으로 너무 많은 곳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역시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세월이 선물해 준 두번째로 큰 교훈이다.
서울의 브랜드는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울의 밤은 특별하다. 그렇지 않나. (코로나 이전까지) 전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서울처럼 잠들지 않는 밤을 지닌 대도시는 없었다. 갑자기 처음 유럽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스물아홉 살,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음반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 덕에 프랑스 칸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미뎀MIDEM이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기실 서울에 관한 노래는 아니다. 밤에 대한 찬가다. 관능적인 이소라의 목소리가 흐르고 농염한 연주가 등장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밤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이 곡이 발표된 건 25년 전인 1996년이었다. 무려 사반세기 나이 먹은 곡인 셈이다.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갑자기 슬퍼진다. 어쨌든 당시 술집에 입성하면 아니나 다를까 이 곡이 흘러나왔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 들어봐도 이 곡에서는 촌스러움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명곡은 이렇게 시간을 먹는다. 세월마저 이겨내면서 유혹적으로 흐른다. 마치 서울의 밤처럼.
아마 오늘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릴 곡이다. 세련된 리듬 위로 흐르는 빈지노의 래핑과 어반자카파의 흥겨운 멜로디, 여기에 서울의 밤을 마치 사진처럼 포착한 노랫말까지, 만약 당신이 서울의 밤에 어울릴만한 사운드트랙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냥 이 곡을 틀면 된다. 길게 말할 필요 없다. 가사 중 일부로 설명을 대신하는 게 훨씬 낫다.
서울은 도쿄와도 다르다. 훨씬 시끌벅적하다. 욕망으로 펄펄 끓는 용광로와도 같다. 아예 도시 자체가 소음 덩어리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한데 그렇지 않나. 가끔씩 우리는 소음에 둘러싸일 때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헤비메탈이나 펑크 같은 음악을 감상할 때 도리어 평안함에 이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연 그렇다. 대도시가 끊임없이 뿜어내는 밤의 에너지를 강렬하게 체험하고 싶다면 서울이 정답이다. 코로나 때문에 기세가 많이 죽긴 했지만 언젠가 코로나가 해결되면 서울은 다시 대폭발할 것이다. 리비도로 들썩일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서울의 밤을 즐기기 위해 젊은이들이 몰려들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제법 놀랐다. 해가 지고 밤 9시쯤 됐을까. 알코올이 좀더 필요해서 주변을 쭉 산책해 봤는데 어디 문 연 데가 없었다. 진짜 하나도 없었다. 치안도 문제였다. 프랑스어라고는 ‘봉쥬르’와 ‘메흐시’밖에 할 줄 모르는 이방인이어서가 아니었다. 뭐랄까. “너 이렇게 계속 싸돌아다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나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글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서울만큼 밤과 새벽 시간에 꽤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대도시는 도쿄 정도 제외하면 없다고 봐야 한다.
예전에 한 후배가 이 곡에 대해 이런 얘길 한 게 기억난다. “우리 아빠가 돈 벌려고 서울로 상경하고 난 뒤에 이 곡을 진짜 많이 들었대. 그저 음악 한 곡일 뿐인데 정말 큰 힘이 됐대. 아마 우리 아빠 같은 사람 그 당시에 진짜 많지 않았을까?”
1991년. 한국은 여전히 고도 경제성장 중이었다. 모두가 각자 꿈을 안고 서울로 몰려들어 직장을 구했다. 밤낮 없이 일하면서 월급을 받았다. 쉽지는 않았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건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고 좌절한 부모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준 노래 딱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이견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들어도 벅찬 감동을 전하는 이 곡, 조용필의 ‘꿈’이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