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Around Us]

호오 작업실이라

작업실이라고 해봐야 내 집의 내 방. 있는 거라고는 책과 앨범이 전부다. 아, 또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한 기본적인 세팅이다. 앰프와 스피커가 있고,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가 있다. 모두 다 합쳐서 대략 300만 원에 맞춘 결과물이다. 놀라지 마시라. 오디오 쪽에서 이 정도면 그냥 저렴한 것도 아니고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 방구조는 당연히 사각형이다. 그중 2면을 책이, 1면을 CD와 LP가, 창가에 위치한 나머지한 면을 컴퓨터와 오디오 시스템이 채우고 있다.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 집, 되게 작다. 내 작업실은 당연히 더 작다. 내 방에 채 입성하지 못한 CD와 LP, 책과 블루레이 등이 마루 한구석을 빼곡하게 채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몇 년 전 조금 넓은 작업실 따로 내는 걸 고려해 본 적 있다. 발품 팔면서 마땅한 공간이 있는지를 알아봤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일단 시간이 아까웠다. 아무리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결정해도 왔다 갔다 하는 그 시간에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인간의 적응력은 놀랍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 또 거기에 맞춰서 시간을 꾸려나갈 터였다. 그럼에도 기왕에 확보된 공간의 안정성을 흩트리고 싶지 않았다. 이 이유가 제일 컸다. 

나에게 작업실이란 결국 글 쓰는 공간을 뜻한다. 한데 대략 5평쯤 될 이 공간에서 나는 글쓰기 외에도 정말 많은 걸 한다. 음악을 듣고, 책을 본다. 책 보기가 지루해진다 싶으면 만화책을 꺼내서 읽으면 된다. 글쓰기를 잠시 쉴 땐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뉴스를 검색하거나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게임 공략을 영화 관람하듯 감상하는 건 내가 가진 즐거운 취미들 중 하나다.

어쨌든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완전한 나만의 세계를 누릴 수 있다. 앞서 강조했듯 안정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조각해 나갈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20대 시절 나는 진심으로 내가 장악하고 부릴 수 있는 공간을 소유하고 싶었다. 한데 잘 되질 않았다. 《AROUND》이전 호에도 쓴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에게 열망이 있었다면 빼앗긴 내 삶의 컨트롤 키를 어떻게든 되찾아야겠다는 열망, 이거 하나뿐이었다.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요약하면 엉망진창으로 사는 소설가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구도자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한 시간에, 동일한 공간에서 글을 썼다. 철저하게 계획된 타임라인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마치 회사원 같은 인생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적어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루틴’을 이길 묘수는 없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사랑도 정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빌려 나는 내 일도 가능하면 정확하게 완수하고 싶다. 그러려면 그 바탕이 될 작업실이라는 공간부터 안정적이어야 한다. 익숙해서 도리어 일할 맛 나는 곳이어야 한다. 이 세상에 불안정한 정확성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 정확하기 위한 가장 큰 도구는 안정감이다. 바뀌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더욱 좋은 환경이다. 우리는 착각을 하면서 산다. 변화가 곧 ‘선善’이라는 신화에 빠져 있는 사람, 주변을 둘러보면 여럿 있을 것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도 이 세상에는 많다. 예를 들어 <배철수의 음악캠프>같은 방송.

다음은 변하지 않는 내 공간에서 즐겨 듣는 노래 목록이다. 영감을 길어내기 위한 자극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사람 목소리가 없어야 한다는 거다. 즉, 연주곡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글은 기본적으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그걸 꺼내서 적는 행위다. 따라서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간섭 행위가 발생한다. 뭔가가 헝클어진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장르적으로는 재즈와 클래식을 선호하는 편인데 세 곡 모두 재즈로 통일했음을 밝힌다.

‘빛’

김오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배순탁의 B side>에서 김오키의 음악을 자주 선곡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만약 재즈가 어렵다면 그냥 딴 거 하면서 들으세요. 그러다가 이 부분 괜찮은데 싶으면 집중해서 듣다가 또 딴 거 하시면 됩니다. 부담 가질 필요가 조금도 없어요.” 나 역시 그렇다. 

워낙 김오키라는 뮤지션을 애정하는 탓에 그의 곡 여러 개를 걸어놓고 작업하는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이 곡은 작업용으로 최상급이다.

[스트레인지, 트루 뷰티](2021)

‘Starmaker’

Roy Hargrove

글을 읽으면서 만약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면 이 곡, 온 마음을 다해 ‘강추’하고 싶다. 진짜다. 작업용 음악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본보기는 없다고 확신한다. 로이 하그로브는 천재였다. 연주의 천재였고, 무엇보다 작곡에 있어서도 천재였다. 그 천재성이 빛을 발하는 곡을 몇 개 꼽는다면 이 곡은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비단 이 곡만은 아니다. 곡이 실린 음반 전체를 추천한다.

[Earfood](2008)

‘The Dream’

David Sanborn

데이비드 샌본의 연주를 나는 지금도 즐겨 듣는다. 특히 이 곡은 고등학교 시절 최소 수백 번은 돌려 듣던 애청곡들 중 하나였다. 이제 당신은 작업용 곡을 선택하는 나만의 또 다른 기준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하는 와중에 듣는 음악은 무조건 익숙한 곡이어야 한다는 거다. 

공간만큼 음악도 친밀해야 작업에 더 잘 몰두할 수 있다. 어떤 구역으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해주는 까닭이다. 낯선 곡은 그렇지가 못하다. 자꾸 거기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A Change of Heart](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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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