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Around Us]

순수는 절대로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 비단 음악만은 아니다. 그 어떤 영역이든, 절대적 순수는 절대로 없다. 그것이 음악이든 그 무엇이든 순수라는 신화를 향한 믿음을 내려놓는 순간 더 넓은 영토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무에서 유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예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한 번쯤 되새김질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예술이라. 뭐랄까. 많은 사람에게 예술을 한다는 행위는 어딘지 모르게 마법 같은 무엇으로 여겨진다. 아무래도 그렇다. 사람들은 “예술을 한다.”는 문장을 칠흑 같은 무에서 유를 건져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과정쯤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빈 캔버스 위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일순간 창조하는 것. 이 순간 예술가와 그의 예술을 향유하는 감상자의 관계는 ‘신-인간’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도 아니라면 예술가는 과거 제사장의 위치를 계승한 존재다. 공연장은 고대 제의의 현대적 변용이고, 예술가는 제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관객을 자신의 예술로 도취시킨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은 ‘예술가가 그렇다면 신이냐, 제사장이냐.’에 위치하지 않는다. 핵심은 ‘왜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를 신 또는 우상처럼 숭배해 왔을까.’에 놓여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예술가는 매혹을 넘어 주술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져 왔다. 우리가 예술적 성취를 가늠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언어가 대개 ‘독창성’이라는 점이 이것을 증명한다. 물론 현대 예술에서 완전히 순수한 형질의 창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창조에 ‘가깝다고 받아들여질수록’ 예술가는 더 높은 찬사를 획득한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정한 예술가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뮤지션이 음악을 만든다면 거기에 이전까지 존재한 음악과 유사한 구석은 가능한 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유사한 구석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불순물 취급을 받고 그 음악은 예술로 인정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대표적으로 ‘샘플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언급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샘플링(기존에 있던 음원의 일부를 그대로 따와서 활용하는 기술)이라는 테크닉을 원본에 종속된 하위 카테고리 정도로 분류할 것이다. 심지어 샘플링이 음악의 순수성을 오염했다는 관점을 지닌 사람도 없지 않다. 이 지점에서 어쩌면 관습에 길들여 있다고 할 우리의 판단 자체를 역전해 봐야 한다. 틀을 깨고 사고해 봐야 한다. 힙합 평론가 김봉현의 성찰을 빌려본다. “샘플링과 시퀀싱(작곡을 가능하게 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창작자를 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순수 창작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으로까지 음악을 확장시켰고, 리얼 세션에 대한 강박과 핸디캡에서 많은 창작자를 해방시켰으며, 과거의 전통과는 또 다른 정체성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게 해줬다.”

좀더 깊게 들어가 보자. 이번에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언어를 추수해 본다. 푸코에 따르면 모든 텍스트를 둘러싼 담론에는 ‘누락’되어 있는 영역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요약하면, 그 자체로 자급자족인 완전한 텍스트 혹은 담론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텍스트라는 뿌리로 회귀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건설적인 누락을 실천해야 한다. 즉, 누락으로 인한 텍스트로의 회귀는 텍스트를 고정하고 텍스트를 완전무결한 고전으로 승격하려는 역사적 보충 같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텍스트를 둘러싼 담론을 끊임없이, 거듭하여 피어오르게 하는 행위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터다. 음악의 진본성, 원본성, 완전성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는 샘플링과 시퀀스가 순수 창작으로는 해낼 수 없는, 어쩌면 더욱 풍요로울 음악과 그 음악을 둘러싼 담론의 장을 일궈낼 가능성의 싹을 틔워보지도 못할 거라는 점이다. 한데 우리는 이미 샘플링과 시퀀스가 달성한 음악적 성취를 수도 없이 경험했던 바 있다. 다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 리스트가 그 증거다.

[골든힛트]

노땐스

혹시 알고 있었나. 이 음반에 ‘리얼 악기 연주’라고는 약간의 기타, 색소폰 외에는 들어 있지 않다. 즉, 대부분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완성된 사운드라고 보면 된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 앨범이 발표될 당시 전자 음악이라고 하면 “진짜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노땐스는 바로 그 잘못된 고정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결성된 프로젝트였다. 이 외에 신해철의 2집 [Myself](1991)와 이후 솔로로 공개한 일렉트로닉 음반들, 그리고 윤상의 음악 중 상당수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창작된 결과물이라는 점 역시 부기해 둔다. 지금은 그 누구도 이 두 뮤지션이 성취해 낸 경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골든힛트](1996)

‘Crazy In Love(Feat. Jay-Z)’

Beyonce

이 곡이 샘플링을 기반으로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팬이 아직도 많다. 혹시 샤이라이츠The Chi-Lites의 ‘Are You My Woman(Tell Me So)’라는 곡을 알고 있나. 물론 샤이라이츠의 음악도 좋은 곡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는 비욘세의 ‘Crazy In Love’를 더 자주 소환할 것이다.

[Dangerously In Love](2003)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Daft Punk

우주 최강 일렉트로닉 듀오였던 다프트 펑크의 대표곡이다. 예전에 윤상과 다프트 펑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는 다프트 펑크의 공연을 다음처럼 묘사했다. “단 두 명이 스타디움 전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경이로웠다.” 이 곡은 에드윈 버드송Edwin Birdsong의 ‘Cola Bottle Baby’(1979)를 샘플링한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다프트 펑크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음악이다.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2007)

‘Stan(feat. Dido)’

Eminem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이도Dido의 ‘Thank You’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거기에는 (그 어떤 곡에도 다 존재하는,) 창조적 변용을 위한 누락의 영역이 있었다. 에미넴은 그 영역으로 과감하게 회귀해서는 결코 잊히지 않을 위대한 시 한 편을 써 내려갔다. 이 곡 덕에 아주 큰 히트곡은 아니었던 ‘Thank You’가 다시 주목받았고, 에미넴을 둘러싼 담론 역시 이 곡을 기점으로 대폭발했다.

[The Marshall Mathers LP]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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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