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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리스펙트하라
‘옷’에 관해서라면, 사과부터 먼저 한다. 솔직히 별로 말할 게 없다. 나는 속칭 패션 무식자다. 패션의 종류, 패션의 역사, 패션의 위대함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게 거의 전부다.
어쨌든 변호를 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음악, 영화, 게임, 만화 등에 대해서라면 조금은 재미있게 ‘썰’을 풀 자신 있다. 그러나 이 정도가 딱 한계다.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괜히 아는 척하다가 나락행 급행열차 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패션 관련해 쓸 수 있는 소재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다. 적시하자면 나 역시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영화 속 주인공 앤디와 비슷했다. 앤디는 사실상 패션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냥 1년 정도만 스펙을 쌓기 위해 버티기로 한 상태다. 그녀의 꿈은 저널리스트다. 아무리 저 유명한 《런웨이》(《VOGUE》를 모티프로 만든 가상의 잡지)라지만 패션지에서 일하는 것 따위, 미래를 위한 디딤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긴다. 이런 이유로 은근슬쩍 패션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시대를 고민하는 유능한 저널리스트가 되길 원하는 그녀한테 패션이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미란다는 《런웨이》의 깐깐하기로 유명한 편집장인데 대배우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다. 좀 길다.
으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각 잡고 나 자신을 반성했다. 우리는 습관처럼 존중을 내뱉는다. 거의 파블로프의 개라도 되는 것처럼 존중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영화를 보면서 저 대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존중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기실 우리가 향유하는 모든 문화는 다 연결되어 있다. 음악도, 영화도, 패션도, 게임도, 사진도, 미술도, 스포츠도 다 마찬가지다. 속살을 들춰보면 이 문화들은 조금씩 서로의 영역에 걸쳐 있다. 우리가 상대의 영역을 존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 문화에서 교집합이 없는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패션에 별 관심 없다. 그냥 “엉망진창만 아니면 괜찮아.” 정도의 태도를 고수한다. 헤어숍에 가서도 ‘커트’ 이상을 해본 적이 없다. 머리카락에 뭘 바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패션에 해박한 사람들을 동경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어떻게 저걸 다 알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분야든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 반드시 엄존한다. 적어도 내 경험상 ‘정확하게 정통한’ 사람들은 도리어 다른 분야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섣부르게 심판하지 않는다. 끝내 존중을 지킨다. 그래서 나도 언제나 명심하려 한다. 에덴으로 가는 사다리는 오직 한 개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 정보를 보자마자 이 곡 안 썼으면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주인공 앤디가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뉴욕의 거리를 활보할 때 이 곡이 근사하게 흘러나온다. 가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가장 멋진 장면이다. 원래 이 곡은 마돈나가 ‘보깅’ 댄스에 영향을 받아 발표한 음악이다. 원래 보깅은 게이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춤이다. 이후 마돈나의 이 곡 덕분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획득했다.
패션에 관심 있었던 적이 아주 잠깐 있었다. 중학생 시절 NBA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에어 조던 열풍이 처음 불던 때였다. 정말이지 그때는 에어 조던 농구화가 꼭 있어야 했다. 물음표가 트레이드마크인 게스 청바지도 필수였다. 어쨌든 이 곡은 NBA를 보면서 알게 된 노래였다. 바로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소속팀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의 선수 입장 음악이다. 몇 년 전 시카고 불스의 홈 경기장 유나이티드 센터United Center에 가서 이 곡을 직접 들었다. 물론 발에는 에어 조던을 착용한 상태였다.
이 곡이 오프닝 음악으로 등장하는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4) 본 사람, 한국에 특히 많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시리즈는 속칭 ‘슈트빨’로도 화제를 모았다. 나 역시 슈트에 대한 로망 정도는 있다. 언젠가 근사한 슈트 하나 장만하고 싶은데 문제는 역시 나의 하찮은 몸매다.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도 따져야 하지만 패완몸(패션의 완성은 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킹스맨>에서 주인공들이 입는 슈트는 ‘새빌 로Savile Row’산이다. 일명 슈트의 성지라고 불리는 영국 런던의 거리다. 한데 이걸 어쩌나. 처음 새빌 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이게 브랜드 이름인가 싶었다. 이거 봐라. 내가 이렇게 패션 무식자다. 참고로 록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패셔니스트로 꼽히는 뮤지션이 한 명 있다. 바로 롤링 스톤스의 드러머였던 고故 찰리 와츠Charles Watts다. 평생 새빌 로에서 만든 슈트만 고집했다고 한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