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Around Us]

사소한 것들부터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 따뜻해지는 동시에 좀 슬퍼진다. 이유는 여러분이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생전 해드리지 못한 일들 때문이다. 마음 한구석에 고인 후회의 찌꺼기가 좀체 지워지질 않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꽤 잘살았다. 집에는 레고와 게임이 넘쳐났다. 1980년대 중반이었다. 레고와 패미컴으로 대표되는 가정용 게임기는 곧 권력이었다. 또래 친구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유혹의 기술이었다. 아이들은 우리 집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내가 좋아서는 물론 아니었다. 게임 한 판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런 우리 집이 몰락한 시기는 정확히 IMF와 맞물린다. 집안 경제가 무너지고, 부모님의 결별이 이어졌다.

20대 중반부터 7-8년간 아빠랑 지하 단칸방에서 쭉 살았다. ‘가족’ 하면 이제는 세상을 떠난 내 아빠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들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 아빠는 정말이지 “사람이 이렇게 좋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선한 사람이었다. 장담하건대 47년 평생 아빠보다 착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업이 번창할 때 그가 행한 나눔을 잊지 못한다. 그랬던 그가, 경제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점차 ‘식물’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치매가 왔고, 뭐 하나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내가 그나마 먹고살 만해진 건 아빠의 죽음 뒤부터였다. 그가 나를 위해 남긴 마지막 축복이라 여기고 있다.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른다. 어느 날 아빠가 아들이 신는 구두를 열심히 닦아놓으셨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 구두가 선명한 노란 줄로 유명한 그 브랜드였다는 거다. 구두약을 하도 꼼꼼히 바르신 덕에 노란 줄이 다 꺼멓게 되어버렸다. 되돌릴 수 없었다. 그걸 목격한 순간 아빠에게 짜증과 화를 엄청나게 냈던 게 기억난다.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나를 후회에 빠트리는 기억은 뭐 거창한 게 아니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끝내 잊히지 않는다. 마치 발작처럼 찾아와서 사람 울컥하게 만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한심하다. 참으로 한심하고, 멍청하다.

나도 알고 있다. 저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가정은 서로 다른 이유가 있다.”라는 진실을 모르지 않는다. 요컨대 만약 당신의 가족이 어느 정도는 행복한 상태라면 부디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인간이란 참 교활하다.

정작 잘해줘야 할 대상에게는 ‘편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던 경험,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고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 따위 없다. 너나없이 우리는 모두 선택적 분노의 노예다.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살다 보면 후회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다만 그 깊이를 조금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사소한 것들부터 지켜야 한다. 과연, 우리를 구원하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다. 사소함이다. 가족과 관련해서라도 이것은 보편타당한 진리일 것이다.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Poco Allegretto’

Herbert von Karajan, Wiener Philharmoniker

내가 클래식을 그나마 조금 알고 있는 건 모두 아빠 덕이다. 어린 시절부터 늘 가곡이나 클래식을 틀어놓으셨다. 그중에서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구나.” 싶었다. 혹시 클래식을 잘 모르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곡이 시작하자마자 “이 곡은 나도 알지.” 싶을 정도로 친숙한 선율이 흐를 테니까.

[Karajan: The Legendary Decca Recordings](2008)

‘Hero’

Family Of The Year

영화 <보이후드>(2014)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노래다. 대강의 스토리는 이렇다. 한 가족이 있다.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고 아들과 딸은 엄마와 살고 있다. 가끔 아빠가 찾아와서 같이 논다. 그런 아들과 딸이 어느덧 성장하고, 아들은 집을 떠나 대학에 갈 준비를 한다. 이게 전부다. 영화의 탁월한 점은 아들이 시간이 흐른 뒤 특별한 사람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엄마는 혼자 자식 둘을 키운 고된 세월을 돌아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떠나려는 아들을 향해 이렇게 내뱉는다. “I just thought there would be more(난 (내 인생에)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인생이 다 이런 거 아니겠나. 이 작품의 끝에 이 곡이 흐르는 이유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를 그냥 보내줘요 / 당신의 영웅이 되고 싶진 않아요 / 중요한 사람이 되길 원한 것도 아니고요”

[Loma Vista](2012)

‘Dance with My Father’

Richard Marx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의 버전으로 유명한 노래다. 아마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데 곡을 창작한 사람은 루더 밴드로스 혼자가 아니다. 바로 리처드 막스Richard Marx와 공동으로 만들었다. 난 이 곡을 자주 찾아 듣지는 않는다. 내 눈물 버튼이 바로 눌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후회의 찌꺼기가 다시 불타오르면 아무래도 좀 힘들다. 어쨌든 이 곡, 루더 밴드로스를 주고도 좀 미련이 남았나 보다. 본인이 직접 부른 버전이 있다. 이 버전도 들어보기를 권한다.

[Dance With My Fath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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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