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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들로 직진
우리 대부분에게 삶은 개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견디는 것이다. 과연, 일상은 매일 표정을 달리하면서 우리의 불안을 요동치게 한다. 그렇다면 이 불안, 대체 어떻게 해야 잘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음악을 듣고, 미술관에 가서 휴식도 취해본다. 그러나 장담컨대 그 어떤 취미도 따뜻한 한 그릇이 주는 위안에 미치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렇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참으로 양면적인 행위다. 본능과 예술을 모두 아우른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렇지 않나. 먹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 우리에게 필수인 ‘의식주’ 중 채워지지 않으면 나의 생명과 직결되는 요소는 오직 하나, ‘식’뿐이다. 나는 음반을 사기 위해 돈을 번다. 게임을 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목적에 무조건 선행하는 절대자가 있다. 나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힘든 몸뚱이를 부여잡고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이것은 의지라기보다는 본능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폐를 벌어야 한다. 당연한 이치다. 나머지는 있으면 참 좋을 특별 보너스 비슷한 것일 뿐이다.
반면 먹는다는 동사를 행하게 하는 요리는 갈수록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요리는 음악, 벽화와 함께 인류 예술의 오랜 삼대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끼에 10만 원은커녕 20만 원을 호가하는 오마카세에 사람이 몰리고, 밥보다 더 비싼 디저트 카페에 하염없이 줄을 선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리 중 하나가 스시다. 이번 달은 조금 넉넉하다 싶으면 못 가본 스시 오마카세 집을 검색하고, 스시를 즐긴다.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니다. 식당 분위기, 접시 위에 놓인 스시의 아름다운 모양새 등 감상할 거리가 여럿이다. 감상할 거리는 비단 스시뿐만도 아니다. 분야와 무관하게 뛰어난 요리사는 예술가와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 경복궁 옆 베이글 가게를 지나다가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나는 베이글에 큰 관심이 없다. 애초에 빵을 잘 안 먹는다. 그렇지만 깜짝 놀랄지언정 “베이글 따위에 왜 저러는 거야?”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다음과 같다. 베이글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 두 시간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먹는다’는 건 이미 본능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실천적 의지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게 인스타나 유튜브 조회 수를 위한 것이든 어떻든 간에 말이다.
다만 이런 의문은 든다. 어느새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든 낯선 것 즐기기를 점차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목하 평점의 시대다. 우리가 평점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시대에 평점은 마치 동조 압력처럼 작용한다. 당신도 그럴 것이고, 나도 그렇다. 배달 음식이건, 직접 방문이건 평점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남이 좋다고 하는 걸 구입하는 시대라고도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요즘 습관 들인 게 하나 있다. 신경 꺼버리는 거다. 그냥 내 감을 믿고 이순재 아저씨처럼 직진하는 거다. 뭐, 실패할지도 모른다. 음식이 인간적으로 이건 아닌데 싶은 때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한 끼 식사 정도는 실패할 수도 있는 게 인생 아닌가. 사업에 실패하면 곤란하다. 입시에 실패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취향의 영역에서까지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음악 추천 서비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걸 쓰다 보면 어느새 내 취향의 벽에 둘러싸여 갇혀버리는 것 같아서다. 세상에는 내 취향 아닌 음악 중에도 훌륭한 음악이 널려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레알 별로네.” 싶은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천 서비스에 의존하다 보면 같은 이유로 생경한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 놀라운 순간을 거의 만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러닝을 할 때마다 아예 모르는 곡을 틀고 뛴다. 오랜 습관이다. 이 습관을 통해 발견한, 그리하여 나의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순간들을 소개한다.
처음 들어봤을 확률이 높은 이름일 것이다. 영국 런던 출신 재즈 밴드다. 일할 때를 제외하면 나는 거의 예외 없이 모르는 곡만 들으려 노력한다. 그 결과 발견한 보석이 바로 이 곡이다. 어떤 식당에 갈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집은 이거 먹으러 오는 거야.”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 곡은 베이스 들으려고 듣는 거다.” 기가 막힌 그루브가 당신의 몸을 꿀렁이게 할 것이다.
원래 알고 있는 밴드였다. 히츠지분가쿠,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하면 양문학羊文学이다. 처음 이 밴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18년 싱글 ‘Drama’를 통해서였다. 일단 이름이 양문학 아닌가. 대학원까지 영문학과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동안 커리어를 추적하지 않고 있었는데 2023년 공개한 이 곡을 몇 달 전에야 알게 됐다. 히츠지분가쿠는 한국에서도 이미 인기가 대단하다. 내한 공연 티켓이 순식간에 싹 다 팔렸다. 멜로딕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록을 즐기고 싶을 때 이만한 밴드가 진짜 없다. ‘FOOL’, ‘1999’ 등도 추천한다.
존 바티스트, 당연히 잘 안다. ‘What a Wonderful World’를 내가 모를 리 없다. 한데 존 바티스트가 부른 이 버전은 2018년 발매 당시 듣지 못했다. 1년 정도 지난 뒤에야 처음 이 곡을 접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약속이 있어 어디론가 향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 음악이 흐르는 순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가끔 그런 순간을 만난다. 음악을 통해 나의 존재가 완전하게 충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순간. 나에게는 이 곡이 그랬다. 넷플릭스에 있는 존 바티스트 다큐멘터리도 꼭 감상해 보시라.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