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Around Us]

일단 앉아보는 거야

 

언제나 붙들고 있는 문장이 있다. 존경하는 소설가 필립 로스Philip Roth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와의 대화에서 필립 로스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아마추어가 영감을 찾아 헤맬 때 프로는 그냥 나가서 일한다.”

과연 그렇다. 비슷한 의미로 글쓰기가 업인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한다.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글을 쓰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엉덩이’다.

우리는 착각을 하면서 산다. 창작을 위한 영감이라는 게 하늘에서 감처럼 뚝 떨어질 거라고 믿는 사람을 여럿 봤다.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신에게 영감을 선물해 주는 건 일하는 과정 그 자체다. 요컨대 음악이 음악을 낳는다. 그림을 그려야 명작은 탄생한다. 글이 글을 쓰게 한다. 비단 내 경험만은 아니다. 글로 일가를 이룬 대부분의 작가들이 동일한 증언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반드시 하루에 매수를 정해놓고 글을 쓴다. 글이 끝내주든 엉망진창이든 그는 이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소설가 김훈 씨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해요. 그래도 어떻게든 씁니다.”

이게 바로 작업실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마땅히 작업실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천성적으로 깔끔한 편이 못 된다. 그럼에도, 절대 어지럽히지 않는 공간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책상이다. 내 책상 위에는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스탠드 조명 그리고 음악을 듣기 위한 스피커가 상주한다. 이게 전부다. 그 외에 책상 위를 허락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커피와 번역 작업 중인 책 정도다. 내가 직접 설정한 일종의 신성불가침 영역인 셈이다.

작업실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건 대개 다음처럼 나뉜다. 내 오른편에는 ‘시디의 벽’이 있다. 엘피는 너무 커서 마루로 빼놨다. 내 왼편과 뒤편에는 만화책과 책이 꽂혀 있다. 글을 쓰다가 영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마치 나를 포위하듯 사방을 꽉 채우고 있는 책과 시디를 둘러본다. 그러면서 감으로 책 하나를 골라서 아무 데나 펼쳐놓고 읽는다. 이거 의외로 효과 있다. 가끔씩 보물찾기처럼 아이디어가 팡 샘솟을 때도 없지 않다. 어디까지나 가끔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음악이 빠질 수는 없다. 40 대 중반까지 살면서 피 같은 내 돈을 가장 많이 투자한 게 시디와 엘피다. 그중에서도 작업할 때 주로 듣는 음악은 우리가 과거에 ‘경음악’이라고 잘못 부르던 연주곡이다. 어쩔 수 없이 클래식과 재즈 위주로 듣게 된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틀지 않는다. 아무래도 집중력을 방해하는 까닭이다. 이 작업실은 어쩌면 나에게 거의 전부다. 내가 사는 집 내부에 있지만 독립된 유일한 나만의 공간이다.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 마치 의식을 치르듯 다음 과정을 수행한다. 먼저 음악을 틀고,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른다. 컴퓨터가 준비될 동안 사방을 쓱 살펴본다. 시간은 대략 밤 1시쯤. 사방이 차분하게 눌러앉아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아주 가끔씩 어떤 존에 진입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존 안에서는 플레이되고 있는 음악도 자연스럽게 삭제된다. 들리는 거라고는 오직 타닥타닥을 반복하는 기계식 키보드 소리뿐. 이 순간을 나는 정말이지 사랑한다. 어쩌면 이러한 정물적 고요함을 더 자주 느끼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디엔가 깊고 조용한, 그래서 자발적 유배지와도 비슷한 공간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글이 잘 써질 때는 분석적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직관에 몸을 맡기면 그뿐이다. 이러한 순간 역시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은 내가 글 쓸 때 틀어놓는 음악 중 일부를 추린 것이다.

‘Body and Soul’

John Lewis

이 곡이 실린 앨범 제목이 일단 좋다. [The Wonderful World of Jazz]. 재즈의 멋진 세계라. 실제 존 루이스는 재즈 역사에서 정말 훌륭한 명연을 여럿 남긴 연주자다. 그중에서도 이 곡은 한껏 나른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절대 듣는 이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다. 연주가 대체로 포근하다. 글을 쓰기 위한 배경 음악으로 이보다 더 나은 선택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The Wonderful World of Jazz](1961)

[50 Classical Masterworks]

V.A

살면서 우리는 꽤 많은 클래식을 듣고 기억에 저장한다. 그럼에도,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면 그 곡들을 다시 꺼내 플레이하기가 아무래도 어렵다. 그런 분들에게 이 음반을 추천한다. 클래식의 명가 ‘도이체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에서 발매한 일종의 컴필레이션이다. 이 음반을 감상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클래식이 꽤 되네.” 정말 기본 중에 기본이라 할 곡들만 수록되어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50 Classical Masterworks](2015)

풍월당 컴필레이션

V.A.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클래식 하면 풍월당, 풍월당 하면 클래식이다. 국내 최대 클래식 매장이자 음악 감상실, 출판사를 겸하고 있는 이곳이 없었다면 국내 클래식의 토양은 지금보다 훨씬 척박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음반을 구매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풍월당과 아무런 이익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냥 여러분이 쓰고 있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풍월당’이라고 치고 여기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중 하나를 골라서 틀면 된다. 글 작업할 때 내가 애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풍월당 컴필레이션 1 - 클래식을 듣는 당신에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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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