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속 아티스트

Music And Artists

방, 확장된 의미로 정의하면 공간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이 결국 사람을 만드는 거라고. 비단 예술가만은 아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게도 공간은 중요하다. 어떤 공간에 기거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어딘가

15년 정도 지났을까. 장소는 서울 어딘가. 식구는 아버지와 나, 단 둘이었다. 지하 1층에 다섯 평 정도 됐을 게다. 그곳은 늘 습기가 가득했고, 볕이 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과 베개 밑이 덜 말린 듯 축축했다. 나는 <기생충>(2019)이 진정한 걸작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그걸 ‘보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이 끊임없이 소환되어 망령처럼 나를 사로잡았던 까닭이다. 내가 ‘보다’가 아닌 ‘보아내다’라는 동사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영화 <매그놀리아>(1999)의 대사처럼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 것이리라.

이 시절의 나는 습하고, 어두운 인간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아르바이트하던 음악 카페나 친구 집에서 자는 경우가 잦았다. 어느 날 집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워크맨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윤상의 ‘이사’가 듣고 싶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봤다. 가사에서처럼 “한낮의 햇빛이 커튼 없는 창가에 눈부신” 집이었다. 이후 좋은 기회가 왔고, 주변의 도움으로 조금씩 내 공간을 바꿀 수 있었다. 운이 좋았고, 그 운이 왔을 때 다행히 나는 준비가 좀 되어 있던 모양이다. 그래. 맞다.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다. 공간의 영향이다.

아티스트의 방과 공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에게 공간은 영감의 원천이 서식하는 수원지다. 어떤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그 아티스트가 창조한 결과물의 결이 달라지고, 속살이 바뀐다. 기왕 윤상을 언급한 김에 예로 들어볼까. 그는 자기 자신을 “레코딩 아티스트”로 정의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레코딩한 소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즉, 윤상은 ‘스튜디오’가 자기 음악의 산파라고 강조한 것이다.

비단 윤상만은 아니다. 모든 작가에게는 근원적인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마치 내 몸처럼 장악하고 부릴 수 있을 때 그 누군가는 작가, 예술가가 된다. 그중에서도 스튜디오는 음악 예술가를 위한 방이요, 공간이다. 여기, 그 목록 중 일부를 살펴본다.

[날 위로하려거든]

윤상

‘날 위로하려거든’(2014)

과장이 아니다. 수많은 후배 뮤지션이 그의 위대함을 앞다투어 증언한다. 유희열의 표현에 따르면 “뮤지션들의 뮤지션”이고, 이적의 찬사를 빌리자면 “한 땀 한 땀 소리를 정성 들여 세공하는 장인”이다.

그렇다. 소리다. ‘좋은 소리’에 대한 그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보다 윤상의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는 ‘듣기’를 넘어 ‘체험하기’에 가깝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영화 같은 음악이다. 음악에도 2D가 있고 3D가 있다. 윤상은 3D를 넘어 음악으로 실재 같은 가상현실을 구현한다. 다름 아닌 이 곡 ‘날 위로하려거든’이 증명한다.

사운드의 입체감이 기가 막힌다. 소리가 360도로 회전하는 와중에 사방팔방에서 별처럼 쏟아지는데 이 모든 소리가 어울림을 일궈내며 듣는 이를 황홀경으로 인도한다. 여기는 그러니까 ‘윤상 존’이다. 작은 우주다. 3분 이후 서서히 몰아치는 빌드-업 구간은 다시 들어도 압도적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를 조각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경이의 눈길로 그의 음악이 탄생하는 공간을 바라본다. 천상계가 있다면 저런 곳이겠지.

[Paranoid Android]

Radiohead

‘Paranoid Android’(1997)

국내든 해외든 대중음악 최후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수많은 걸작들이 발표되었고, 이 걸작들이 거의 대부분 ‘엄청나게’ 팔린 마지막 호시절이란 의미다. 그 걸작의 목록들 중에 라디오헤드의 3집 [OKComputer]를 최정상에 올려놓는 건, 이제 상식 비슷한 게 되어버렸다. 이 앨범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라디오헤드판 ‘Bohemian Rhapsody’라 할 ‘Paranoid Android’만 들어봐도 충분할 테니까.

이 곡은 매혹의 다면체였다. 이 곡에서 라디오헤드는 여러 장르를 섬세하게 탐사한 뒤 이걸 꽉 붙들고 중심에 위치한 블랙홀을 향해 던져버렸다. 그 결과, 혼란스러우면서도 질서가 있고, 질서가 잡혀 있는 와중에 무경계로 뻗어나가는 기이한 곡 하나가 스튜디오에서 탄생했다. 놀라운 것은 곡이 추수한 상업적 성과였다. 한 번의 청취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도무지 대중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 곡에 전 세계가 열광을 보냈다. 뭐랄까. 강렬한 이미지로 구성된 단편 예술 영화 한 편 같은 곡이었다. ‘Paranoid Android’와 [OK Computer]에 바쳐진 찬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전 가끔 라디오헤드는 큰 칼을 들고 길을 만들어줬고, 우리는 그 길에서 상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만약 [OK Computer] 같은 앨범을 만들 수 있다면, 제 몸의 중요한 일부까지 내어줄 수 있어요” 콜드플레이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마틴의 고백이다.

[Dark Side of the Moon]

Pink Floyd

[Dark Side of the Moon](1973)

곡 아닌 앨범도 하나 선택해봤다. 이 경우라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of the Moon]을 집고 싶다. 이 음반은 1973년에 발매되었다. 그러고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 1988년까지 741주 동안 머물러 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741주다. 말이 741주지 1년, 52주로 나누면 무려 14년 넘게 차트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단언컨대, 이런 엄청난 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던 요인의 팔 할 이상은 음반이 품고 있는 혁신적인 사운드였다. 음악 좀 듣는다고 자부하는 사람 전부가 예외 없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한다.

[Dark Side of the Moon]은 마치 하이파이 오디오를 시험하려는 듯 스테레오에 기반을 둔 서라운드 사운드로 듣는 이들에게 장관을 선사했고, 각종 사운드 효과가 좌에서 우로, 게다가 깊고 멀리 날아다녔다. 어디 이뿐인가. 음반의 반주들은 금전 등록기, 비행기 충돌, 유령 같은 배킹 보컬,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효과는 당시 스튜디오 기술로는 녹음하기 어려운 하이 테크닉이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기어코 이를 해내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소리의 새로운 차원을 개방했다. 스튜디오라는 공간에서 마법을 부린 셈이다.

바야흐로 2020년, 이 음반이 발표된 지 대략 47년쯤 되었다. 다시 [Dark Side of the Moon]을 꼼꼼하게 감상해본다. 지금 들어도 새롭고,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앨범이다. 이런 게 바로 클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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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