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ng Day

이사 가는 날

“집을 바꾸는 건 너무나도 대단한 일이야. 애인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생애 처음 이사를 했다. 이사를 결심한 그 날로부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어느덧 이사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해야 할 일들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짐을 싸고, 짐을 싣고, 다시 짐을 내리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산해야 할 요금들, 전화로 미리 알려야 할 것들, 반복되는 계좌이체, 문자와 은행 앱을 번갈아 보며 계좌번호를 적는 번거로움, 버릴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건들…. 이전에도 몇 차례 거처를 옮긴 적은 많았지만, 그것에 수반하는 번거로움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이사는 등교하는 곳과 하교하는 곳이 다른 날이었다. 친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작별하고 다음 날 새로운 학교에 등교하기 전에 굳은 다짐으로 가방을 싸는 날이었다. 정들었던 소중한 집에게 애석한 마음을 전할 여유도 없이 도망치듯 나와버리며 나는 이것이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이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귀여운 내 집은 바위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1980년대, 깊게 파고든 서울의 골짜기를 따라 집을 짓고, 또 짓다가, 더 이상 지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짜기에 다다라 마지막으로 지은 아파트. 그곳이 내 집이었다. 경사가 급하고, 주차가 불편하고, 가끔씩 옆집에서 텔레비전소리가 새어 들려와도 상관없었다. 철마다 날씨마다 바뀌는 집 앞의 자연을 볼 때마다 이 풍경을 온몸으로 안아줄 수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둥근 바위와 푸른 하늘에 둘러싸여 있음에 행복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집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언제라도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래서 언제라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많은 짐을 들여놓지 않았는데도, 이 집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내 소중한 집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불안과 불쾌함에 휩싸이고 말았다. 조심스러운 척,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사람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 둘러보고 나가길 기다리며 내 집에서 서성이고 싶지 않았다. 이 집의 사랑스러움을 들켜버릴까 조마조마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과는 반대로 행동했다. 내키지 않지만 집을 깨끗이 치우고, 누구에게라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치장해 주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공인중개사에게 알려주었다. -문단속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마침표를 찍지 않은 쌀쌀맞은 문자를 남겼다. 며칠 뒤 부동산한테서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계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사란 이런 것이었다. 이 집이 내 것이 아닌 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몹시 분한 마음을 삭일 수가 없었다.

난 모든 것이 보통에 비해 느린 편이다. 학업과 꿈과 사랑 등 아주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진행 역시 매우 더딘 편이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나, 그 늦은 경험을 새로운 것인 양 떠드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 있게 떠들던 무지한 생각들. 그 무지하던 시절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나는 고향을 떠나와 서울에서 홀로 사는 친구들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때로는 우월감을 느꼈다. 집을 알아보고, 이삿짐을 싸고, 또 이삿짐을 풀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생략된 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보다 더 괜찮은 것처럼 여긴 적도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는 친구가 이삿짐 싸는 걸 도와주었다. 그때도 나는 이 귀찮은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친구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는 곳을 바꾼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나는 궁금해하는 척 친구를 연민했다. 친구는 생각하느라 잠시 짐 싸는 걸 멈추었다가 다시 상자를 열어 물건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집을 바꾼다는 건 너무나도 대단한 일이야. 애인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친구는 그 대단한 걸 모르고 사는 나를 오히려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에겐 친구의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에게 애인은 어떤 의미이고, 집은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무엇이든 대단할 것까지야…. 그런데 나는 이번에 이사를 준비하면서 친구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집을 바꾼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애인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3년 전 소중한 내 집을 처음 마주했을 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널어놓은 것처럼,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뭉글뭉글한 햇빛 한 덩이만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당시에는 설렘이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런 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곳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생각하면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바닥에 털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바닥에 카펫을 깔았다. 한 개씩 가구를 만들어 집 안에 들여놓고, 위치를 옮기고, 좋았던 시간과 외로움에 뒹굴었던 시간이 한 시간씩 한 시간씩 채워져 갔다.

이사하는 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은행과 집과 새로 이사 갈 집을 반복해서 돌아다니며 이삿짐 정리하는 분들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으로 계좌를 이체하며 한 손으로 물건을 옮겼다.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내 마음은 석별의 아쉬움은 잊고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두 계단씩 뛰어 계단을 올라가고, 이사에 필요한 금액을 지불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짐을 모두 꾸렸다는 이삿짐센터 사장님의 연락을 받고,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내 집은 하얗게 비워져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빈집이 되었다. 맨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무렵처럼 뒷산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푸른색 유리창을 통과한 이 집의 소다 같은 햇빛을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인데도 왠지 슬픈 예감처럼 느껴졌다. 이삿짐에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청소기 하나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고개를 숙여 청소기 줄을 길게 빼 콘센트에 연결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듯이 바닥을 깨끗이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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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 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