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Book]

편집장님께

지금으로부터 18년쯤 전에 나는 M 잡지사에 입사했다. 편집장님은 40대 중반에 접어드는 아저씨였다. 그리고 그 잡지사에서 일하던 우리 모두는 편집장님을 존경했다.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이게 얼마 만인가요. 우리가 회사를 떠난 후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성실히 흘렀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얼굴을 못 뵌 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가는 듯합니다.

제가 M 잡지사에 입사한 것은 스물일곱 살이 되는 해였습니다. 스물일곱 살이라니, 아득하고 끔찍한 나이네요. 친구 소개로 면접을 보러 갔더니 기원에 앉아 바둑돌이라도 두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편집장님이(실제로도 바둑을 사랑하셨지요.) 예의 심드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다음 달에 망할지도 몰라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뭐, 어쨌든 저는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둘 기회만 엿보던 참이었기에 다음 달에 망하든 내일 망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입사가 결정되었고, 혼란스러운 한 달을 보낸 후 회사는 정말로 망해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더라면 우리의 인연도 거기에서 끝, 제 인생도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여행을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를 다시 열기로 했으니 당장 올라오라는 전화를 받았지요.

그리고 저는 그 잡지를 만들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른이 되고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그때쯤에는 사람의 진을 빼는 이 잡지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더는 계속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퇴사하기 1~2년 전쯤에 편집장님도 퇴사를 하셨고요. 그때 편집장님은 그렇게 말하셨어요. “나는 이런 잡지를 만들기에는 너무 늙었다.” 퇴사의 변은 그게 다였습니다. 그때 편집장님의 나이가 40대 후반 즈음이었을 겁니다. 편집장님. 저는 그 시절, 편집장님과 함께 일한 3년 남짓한 시간을 떠올리며 <행복한 사전>(2013)이라는 영화를 봅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보게 되었는데요, 세 번이나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냐 하면 그런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와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꽤 느긋해지는 영화이기는 합니다.

이 영화는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에서 ‘대도해’라는 일본어 사전을 출간하는 이야기입니다. 으리으리한 신사옥 옆에 붙은 창고처럼 작고 초라한 구사옥에 사전편집부가 있습니다. 팔 토시를 낀 서너 명의 직원들은 자료 더미에 파묻힌 채 하루 종일 사전을 뒤지고, 희고 빳빳한 단어 카드에 새로 발견한 단어들을 적어가며 늙은 짐승처럼 등이 굽어가지요.

사전을 만드는 일은 품이 많이 듭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즐거울 일도 없습니다. 그저 따분하고 고생스럽기만 합니다. 심지어 사전 한 권을 만드는 데 짧게는 7년, 길게는 15년이 걸립니다. 꼼꼼함과 끈기야말로 이 일이 요구하는 덕목입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젊은 청년이 사전편집부에 들어와 결혼을 하고 중년이 될 때까지, 나이 지긋한 선배가 암에 걸려 돌아가실 때까지, 사전 만들기는 계속됩니다.

“단어는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의미가 변하기도 하지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도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이 돼야 합니다.”

― <행복한 사전> 중에서.

영화 속 좁고 어수선한 사전편집부 사무실을 보며 저는 그 옛날 우리가 일하던 잡지사의 사무실을 떠올렸습니다. 영화처럼 편집장님이 가장 위쪽에, 그리고 대여섯 명의 기자들이 그 아래로 나란히 앉은 모양이었지요. 책상 위는 잡지와 책과 자료 더미가 탑처럼 쌓여 있었고, 걸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곳곳에 잡지 더미들이 가득했습니다. 먼지와 쓰레기가 나뒹굴고 때로는 악취까지 났지요. 그런 사무실에서 우리는 “쥐가 나올 것 같아!” 하고 소리치며 전화를 걸고, 자료를 검색하고, 원고를 쓰고, 꾸벅꾸벅 졸고, 취재를 하거나 촬영을 하러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편집장님은 한가로이 잡지를 뒤적이거나 우리가 쓴 원고를 읽거나 해외 편집부에서 온 전화를 무뚝뚝하게 받거나 짬짬이 바둑을 두셨어요. 제가 기억하는 편집장님의 모습은 한 손에 사전이나 책 같은 걸 든 채로 그것을 팔랑팔랑 넘기고 계시던, 그런 모습입니다. 그 비좁은 사무실에서 모두가 미쳐가고 있었지만 편집장님만큼은 유일하게 여유롭고, 또 제정신인 것처럼 보였지요.

편집장님, 술자리에서 몇 번 우스갯소리처럼 고백했듯이, 우리는 모두 편집장님을 존경했습니다. 도대체 왜였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어리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쉽게 존경할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회식 후 노래방에서 상사가 마이크를 잡건 말건 술이나 마시던 부류들이었지요. 그때의 우리는 세상만사에 시니컬하고 의심이 많았으며 출세의 꿈은 꾼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편집장님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만난 유일하게 좋은 어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선배는 언젠가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누가 나를 욕해도 괜찮은데, 편집장님이 나한테 ‘넌 쓰레기야.’라고 하면 내가 정말로 쓰레기일 것 같아서 무서워져.”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호통 한 번 치지 않고도, 화려한 카리스마 없이도 무서울 수 있다는 게 뭔지, 우리는 그 사무실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편집장님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셨지요. 성인군자도 아니셨어요. 솔직히 쪼잔한 구석도 있었고, 음담패설도 장난 아니게 많이 하셨습니다(부인하실 수는 없겠죠?). 그러나 편집장님에게는 정의를 외치지 않아도 정의로운 구석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선비처럼 고고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젊음은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맹목적일 수 있는 시기인데, 편집장님은 그 시기의 우리에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법을 농담처럼 일러 주셨지요. 그러게요, 농담처럼. 그것 때문에 우리는 더 편집장님을 존경했는지도 모릅니다.

편집장님, 혹시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집을 읽어 보셨나요? 이 유쾌하면서 씁쓸한 소설집을 읽으면서 또 한 번 저의 오래된 회사 생활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책 속에는 이런 젊은이들이 등장합니다. 눈치 없고 얄미운 동료 때문에 짜증이 한가득인 사람, 사소한 실수로 경영자에게 찍혀 월급을 포인트로 받으면서도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하는 사람, 큰맘 먹고 청소를 맡긴 도우미 아주머니의 갈수록 불성실한 일 처리에 분노한 사람.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들 속에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부딪치는 타인은 있지만, 무언가를 알려주고 이끌어주는 연장자라든가 선배 같은 존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연장자라는 존재는 어쩐지 세상살이의 씁쓸함만을 깨닫게 하는 존재인 듯해요. 사람들은 서로 금전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착취합니다. 삶은 각개전투일 뿐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길을 잃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슬픈 먹이사슬의 끝에 매달린 사람들은 무척 짧지만 분명히 기쁨이라고 불릴 만한 연결의 순간들을 찾아내곤 합니다.

나는 언니의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대체 왜 저렇게 하지, 하고 생각했다. 정말 왜 저렇게 할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 사람들과 메신저로 업무를 주고받는데. 거기에 남자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이 떠 있으면 얼마나 프로답지 못해 보일지, 한 번쯤 생각을 해볼 텐데. 나라면 내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는 사적인 인간이라는 거, 최대한 떠올리지 못하게 할 텐데. 매일 오분씩 지각하지 않을 텐데. 어차피 오 분 동안 일을 더 하거나 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라면 그냥 오분 일찍 일어날 텐데. 나라면 머리를 좀 짧게 자를 텐데.

―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저에게 일은 어려웠습니다. 잡지의 페이지들을 만들어내기에 제 능력은 너무 부족했지요. 매달 너무 많은 기사를 써야 해서,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태반이었습니다. 울면서 밤을 새워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 기나긴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편집장님, 너무너무 이상한 주제로도 써야 했기 때문에(가장 황당했던 아이템은 ‘무도인 최배달’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에게는 어떤 주제로도 원고 하나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버렸습니다. 제가 쓴 문장들로 누군가를 웃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요, 허세를 부리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의 중요함도 배웠습니다.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일종의 훈련처럼 느껴지다니 그거 참 재미있는 일이지요. 

또한 저는 회사에서 살아가는 법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에 채 못 배운 것들을, 서로 미묘하게 적대적이던 이전 직장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에요. 좋은 어른이 맨 윗자리에 앉아서 한가롭게 팔랑팔랑 책을 넘기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무서우면서도 대단히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편집장님이라는 존재 덕분에 우리는 본질과는 관계없는 기싸움으로 감정을 소모하지도 않았고,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치장할 필요도, 무장할 필요도 없었고, 여러 가지 외적인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담백하게 일하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편집장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저는 편집장님과 일한 그 회사에서 다 배운 것 같습니다.

편집장님. 우리의 회사는 결국 망했습니다. 망해가는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월급이 밀리고, 진행비를 줄여야 하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정력을 바쳐 일했음에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편집장님은 별로 슬퍼하지 않으셨지요. 그래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그 시절의 편집장님에게서 패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인간이 지닌, 일종의 세련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구질구질 하기보다는 서글픈, 그러나 또 기이하게도 우아한 구석이 있는 아름다움을 말이에요.

20대에 성공이 아니라 실패부터 배운 것이, 망하기부터 시작한 것이 한 인간의 인생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초년에 너무 성공했더라면 저는 엄청나게 재수 없는 인간이 되었거나 아니면 일중독자가 되었거나, 그로 인해 피폐해졌을지도 모르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후에 저는 좀 허무해지기도 했고 홀가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그 시절 편집장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편집장님처럼 좋은 어른이 되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편집장님, 이렇게 저는 오랜만에 편집장님께 장황한 안부를 전합니다. 편집장님은 건강하신가요? 요즘은 무얼 하고 계신가요? 무슨 책을 읽고 계신지, 여전히 말러의 음악을 듣고 계신지, 바둑을 즐기시는지, 위스키에 은행 안주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그 시절 생각은 하시는지, 우리 생각도 하시는지, 여러 가지 것들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편집장님, 아마 저는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 이런 편지, 너무 쑥스럽잖아요. 대신 조만간 얼굴 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편집장님, 그때 놀라지 말아주세요. 저 정말 아줌마가 다 됐거든요!

한수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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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