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Book]

좀더 자세히 보세요

“좀더 자세히 보세요.” 땅바닥에 모로 누워 개미를 보고 있는 94세의 거장은 자신의 정원을 찾아온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좀더 자세히 본다고 뭐가 달라지는 걸까? 어쩌면 30년째 집 밖으로 나온 적 없이 매일 정원을 탐험하는 이 할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을 뺄 수 있는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보다 더 궁금한 것도 없는 것이다.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그건 싫어요. 피곤하잖아요. 당신은요?”
“나는 몇 번이도 다시 살 거야. 지금도 더 살고 싶은 걸. 사는 게 좋아.”

94세의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는 아내 히데코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오래된 집에는 수풀이 무성해 정글을 방불케 하는 정원이 딸려 있다. 영화 <모리의 정원>(2017)은 1970년대의 어느 여름, 모리의 집과 정원 그리고 그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비춘다.

94년을 살아도 사는 게 좋다는 신선 같은 풍모의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정원 탐험을 나선다. 지팡이 두 개를 양손에 짚고 나막신을 신은 채로 비틀비틀, 느릿느릿. 그러다 문득 경이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뭇잎을 바라보더니 말을 걸기까지 한다. “여태 자라고 있었던가!” 나비를 만나면 나비를 쫓고, 새와 물고기와 고양이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벌레를 보기 위해 엎드려 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풀이 무성한 정원 한가운데에 모리가 홀로 앉아 있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채. 그가 하는 일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움직이는 개미들을 몇 시간씩 꼼짝도 않고 누워서 바라본다. 지치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고 바라본다. 그렇게 자세히 보면 무언가를 알게 된다. 이를테면, 개미는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움직인다는 사실 같은 것들을. 정원 탐험을 마치면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내와 바둑을 둔다. 그리고 밤이 되면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선다. 그의 학교는 집에 딸린 작은 작업실이다. 이제부터가 그림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그의 그림은 마치 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고 투박하다. 그러나 그 그림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란 무엇일까? 그게 무엇인지 나의 빈약한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 무언가를 위해 화가들은, 작가들은, 예술가들은 매일매일을 고뇌에 휩싸인 채로 끊임없는 노동을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리는 그렇게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히데코의 말대로 그에게는 정원이 전부다. 매일 정원에서 마주치는 모든 작은 생명이 그에게는 경이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몇 번이라도 다시 살고 싶다고. 사는 게 좋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귀찮다며 문화훈장까지 단칼에 거절하는 모리에게 중요한 일은 오로지 정원을 탐험하고 학교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다.

자,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한번 보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서 주말 내내 새벽 4시까지 잠도 안 자고 다 봐버렸다.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다시 처음부터 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좋은 이야기란,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인물들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그들을 계속해서 보고 또 보고 싶은 이야기다. 이번에는 다른 관점으로, 좀더 자세히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싶은 이야기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이혁진이 쓴 원작 소설까지 궁금해졌다. 이럴 때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한 번 꽂힌 것은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다시 읽고 다시 보는 책과 영화와 드라마들이 수도 없이 많다. 누군가는 한 번 본 영화는 다시는 못 본다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라면 나에게도 덕후 기질이 있는 것이다.

 

소설 《사랑의 이해》는 한 은행의 작은 지점에서 일하는 상수라는 남자와 수영이라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제목의 ʻ이해’에는 한자 두 개가 덧붙여져 있다. ʻ利害’와 ʻ理解’. 첫째 이해는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그다음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은 사랑의 이익과 손해이기도 하고, 사랑을 분별하여 해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행에서 돈을 다루는 것처럼, 돈을 가졌거나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그들은 사랑 역시 따지고 잰다. 사랑으로 인해서 그들이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한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히 따지고 재고 계산해도 그들의 마음은, 매번 이해를 넘어선다.

MBA 출신의 정규직 행원 상수는 예쁘고 똑똑하고 일 잘하는 수영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그랬다. 그런데 은행 내의 계급도에서 계약직 텔러인 수영의 위치는 말단에 있다. 수영과의 결정적인 데이트 날, 그날따라 은행 일이 끝나지 않아 결국 그녀를 바람맞힌 상수는 얼마 후 수영이 청원경찰 종현과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잘생기고 어린, 그러나 가난하고 미래가 막막한 종현과. 그 사실을 안 상수의 마음은 괴롭기만 하다.

사실 수영의 말이 맞았다. 망설였다.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 이혁진, 《사랑의 이해》 중에서

아마도 이 은행의 계급도 가장 위쪽에 있을 미경은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부잣집 딸이다. 수영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VIP를 위한 금융상품 판매까지 열심히 하지만, 결국 그 공을 가져가는 사람은 미경이다. 얼마 후 수영은 집안 사정 때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려는 종현을 설득하며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할 줄 알았던 동거 생활은 잠시, 매시간 매분 매초 자신의 눈치를 보는 종현이 수영은 조금씩 불편해진다. 이 가난한 커플에게는 마음 편히 사랑할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종현과 함께 간다는 것은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었고 종현이 쥔 것을 놓지 않게 한다는 것은 대신 수영 자신이 쥐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먹고 사고 쓰던 것을 한 등급씩 낮추고 한 푼 두 푼 쓰는데도 세 번 네 번씩 생각하는, 수영이 지긋지긋하게 잘 알고 있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더는 어리숙하지조차 않은 채. 할 수 있을까?

— 《사랑의 이해》 중에서

수영이 상수의 변치 않는 마음을 외면할 때, 상수에게 호감을 느낀 미경은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상수는 자연스럽게 미경이 가진 것들, 그러니까 미경의 조건들에 흔들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수의 마음은 자꾸만 이해를 떠나 수영 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미경은 좋은 여자였다. 좋은 연애 상대였고 아마 좋은 결혼 상대일 터였다. 좋다고 다 갖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갖고 싶지 않다고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좋다는 것은 그런 뜻이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다음에는 좋은 여자. 어른들이 누누이 얘기하고 부모님이 불경처럼 외며 등골 휘게 깔아 준 철로가, 궤도가 진즉부터 그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지난밤 느닷없이 떠오른 분기점의 의미가 그것이었다. 선택인 듯 보이지만 실은 모두 궤도 위에 이미 존재하는, 안전하고 예정된 과정의 매듭에 불과한 것. 후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 《사랑의 이해》 중에서

그러게, 사랑이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더 이상 어리고 순진하지 않은 나는 그럴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숭고한 사랑도 분명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남편을 사랑한 이유에는 그의 조건들이 분명히 작용했다. 조건 때문에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 중에서, 내 남편이 나를 사랑했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명문대 재학생, 아버지는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기업의 이사. 만약 그런 타이틀이 없었더라도 내가 그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을까? 그가 대기업에 입사해 나를 먹여 살릴 안정적인 미래를 나는 꿈꿨다. 지금껏 혼자서 이 무서운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꿈에서도 겁이 나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제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과 거의 동시에 그 모든 꿈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결혼식 직후 시아버지는 회사에서 쫓겨났으며, 졸업장 말고는 이렇다 할 스펙이 없는 무대책의 남편은 몇 년간 고만고만한 회사를 입사하고 퇴사하고 실직하길 반복하더니 결국 엉망진창인 이력으로 세상 밖으로 내던져졌다(아무래도 내가 천벌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제부터가 사랑의 몫이다. 이전까지는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 사랑에 이해득실이 강하게 작용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사랑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겠느냐던 주례(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의 질문이 뒤늦게 사무쳤다. 그런데 진짜 사랑이 뭐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채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사랑을 분별하고 해석해야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로 이해해야 했다.

 

<모리의 정원> 속 모리의 정원은 모르는 사람 눈에는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수풀 밭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모리는 매일 작지만 깊은 정원을 탐험하면서, 매일 같아 보이지만 매일 다른 잎사귀와 벌레와 돌과 새들에 경이를 느끼면서,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히데코는 그런 남편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지지한다.

남편과 나도 저 나이까지 서로 이해하고 돌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이해가 빠진 자리에 다시 사랑을 채워 넣으려고 노력했을 때,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보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주 꽝은 아니었나 보다.

그 시절에 내가 깨달은 것은 시간이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인간이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의 범위를 넘어선 일들에 대해서는 그저 시간의 힘에 기대본다. 기나긴 시간이 우리를 어느 곳으로 데려다줄지 모른다. 그동안 나는 내 마음을 잘 바라보려 노력한다. 좀더 자세히 보려고 노력한다. 나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이 정한 안전한 궤도가 아닌, 내 행복의 궤도가 어떤 모양인지를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의 마지막,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모리의 집은 어이없을 정도로 작다. 그가 탐험하는 정원 역시 손바닥만 한 수풀 더미로 보일 뿐이다. 그 작은 집에서 조카딸은 손님을 맞고, 히데코는 식사를 준비하고, 모리는 숲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야심 없이 소박한 영화가, 거장의 삶에 소박한 경의를 표하는 이 영화가 정말 좋다. 이 영화가 품은 여러 가지 아름다움들이 종종 무겁고 불안해지곤 하는 내 마음을 뜨거운 여름날 부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가볍게 식혀준다. 아마 매년 이 영화를 다시 틀어볼 것 같다.

Movie—오키타 슈이치 <모리의 정원>(2017)

Book—《사랑의 이해》 이혁진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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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