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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롭고 깊은 세계
BOOK&MOVIE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패터슨>
Monotonous And Deep World
단조롭고 깊은 세계
그럭저럭 15년간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쓰기와 살아가기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패터슨시에서 버스를 몰며 시를 쓰는 패터슨 씨의 단조롭고 깊은 생활은 내게 귀감이 된다. 살아남는 글을 쓰는 법, 글을 쓰며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우치다 다쓰루 씨의 조언 역시 내게 용기와 힘을 준다.
나는 매일,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보통은 새벽 5시 30분. 좀 이를 때는 4시 30분 정도. 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요기를 하고 거실 창 옆에 붙은 커다란 식탁 앞에 앉는다. 여기가 내 작업실이다. 동이 트기 전에, 아무도 눈을 뜨지 않은 어둑한 집 안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서 이 시간에 가장 집중력이 좋다. 대개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면 그날의 작업은 마무리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너무 많은 일을 몰아서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이 몰리면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적합한 작업 방식이다.
그다음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는 일로, 대충 저녁 6시 정도면 끝이 난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집 안을 청소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나면 밤 10시 정도가 된다. 그제야 나는 책 한 권을 들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술 한 잔을 들고 갈 때도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졸음이 밀려오고 11시가 되기 전에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새벽이다. 나는 식탁으로 가서 일을 시작하고…….
요즘 내 생활은 매일 이런 식이다.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쳇바퀴를 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아주 오랫동안. 아시다시피 인생이라는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때로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쳇바퀴를 돌리며 살게 되자 나의 일, 그러니까 쓰는 일이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게 되었다.
아니, 사실을 고백하자면 즐겁다. 나는 글 쓰는 일이 즐겁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을 찾기도 힘들 것 같다. 물론 쓰는 일이 내내 즐겁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괴로운 부분조차 즐길 수 있다.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가끔은 즐거워 미칠 지경이다. 믿거나 말거나.
얼마 전에 짐 자무시의 새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감독도, 제작자도 아닌 내가 다 긴장이 됐다. 짐 자무시는 1990년대의 스타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괜찮아지는 경우가 드문데 짐 자무시는 어떨까. 초라한 복귀작에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의 새 영화 <패터슨>은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버스 운전기사의 이야기다. 나처럼 이 사람도 매일 시계처럼 똑같은 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시가 있다. 패터슨 씨는 운전을 하는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를 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시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저 버스 운전기사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는 시를 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안도했다. 짐 자무시는 나이를 먹어도, 아니 나이를
먹어서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영화는 아름다우면서 심오했고, 독특하면서 따뜻했다. 보는 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도 즐거웠고, 보고 나서는 기분 좋은 여운이 남았다. 무엇보다 짐 자무시의 새로운 이야기는 땅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땅에 발을 단단히 붙인 사람들을 신뢰한다.
패터슨 씨는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꿈 같은 걸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조용히 버스를 운전하며 승객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걸어가 아내가 만들어주는 괴상한 요리를 먹고, 매일 바뀌는 아내의 꿈을 경청하며, 별로 친하지 않은 강아지를 몰고 산책을 나가는 길에 단골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밤새 아내가 꾼 꿈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는 틈틈이 그는 시를 쓴다. 그의 시는 모두 이 단조로운 생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러게, 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소재를 찾아야만 한다고, 특별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믿는 걸까. 영감은 왜 비일상적인 것에서만 온다고 믿는 걸까. 글 쓰는 게 왜 유별난 일처럼 여겨질까. 어쩌면 더 넓게 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보는 것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집에서 지브리 스튜디오까지를 매일같이 왕복하며 그 안에서 보는 세계가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말했다. 그 익숙한 세계가 창작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독자에 대한 사랑입니다. 독자가 될수록 기분 좋게 술술 읽어주기를 바라는 속 깊은 마음이 ‘설명’에 특별하고도 풍부한 색채를 더해줍니다. 잘 쓰는 것도, 정확하게 쓰는 것도, 논리적으로 쓰는 것도, 제대로 논증하는 것도, 적절한 비유를 섞는 것도, 때때로 ‘커피 타임’ 같은 휴식을 끼워 넣는 것도, 독자가 기분 좋게 읽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중에서
우치다 다쓰루의 책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는 서두에서부터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좋은 작가는 설명을 잘한다. 그런데 그건 설명의 기술이 아니라, 설명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글 쓰는 사람이 설명을 잘하려는 이유는 독자를 배려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타주의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잘 알지는 못해도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그리고 내가 좋아할 수 있을 만한 누군가를 향해 엽서나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고치고 또 고친다. 그게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람, 내가 지금 편지를 쓰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고 우치다 다쓰루는 설명한다. 그 사람은 내 안에 있는 누군가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을 할 때란 비록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 못해도 자기 안에 그 말을 듣고 제대로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자기 안에 자기와는 다른 말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있어 그 사람을 향해 말을 걸 때, 언어는 가장 생기가 넘칩니다. 가장 창조적이 됩니다. 언어를 지어낸다는 것은 내적인 타자와 이루어내는 협동 작업입니다.
–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중에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인격이 혼재한다. 나는 퉁명스러우면서도 친절하고, 비관적이면서도 낙관적이다. 꼼꼼하면서도 허술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차분하고, 내향적이면서도 외향적이다. 심지어 내 안에는 수많은 시절의 나, 유년기의 나, 10대의 나, 20대의 나, 30대의 나 등 다양한 나이의 내가 있다. 또 여자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 돈 버는 사람으로서의 나도 있다. 심지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그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을 내가 만든 세계로 초대해 정성껏 대접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신경 쓰고, 그리하여 그들이 만족스러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렇기에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 앉아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조금도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은 일이 된다.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 씨는 퇴근길에 엄마를 기다리며 시를 쓰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자기가 쓴 시를 읽어주고, 두 사람은 좋아하는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녀는 떠나면서 그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 버스 운전기사라니!”
패터슨 씨는 그 말을 듣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은 그가 마지막으로 쓴 <한 소절The line>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다.
흘러간 노래가 있다.
할아버지가 흥얼거리시던 노래.
이런 질문이 나온다.
“아니면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
같은 노래에 같은 질문이 나온다.
노새와 돼지로 단어만 바꾼.
그런데 종종 내 머릿속에 맴도는 소절은 물고기 부분이다.
딱 그 한 소절만.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
마치 노래의 나머지는 노래 속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처음 빈 종이를 마주할 때 언제나 나는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글쓰기는 즐겁다. 나 같은 사람에게 글쓰기는 산책과도 같다. 패터슨 씨의 버스 노선과 집과 직장과 술집을 오가는 그 산책길처럼.나는 그 길을 나의 리듬과 속도로 걷는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이 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무엇을 마주치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나에게는 언제나 선택권이 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선택권이. 어찌 됐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니까.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생각을, 꿈과 희망과 절망과 고통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겉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분명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안의 타인에게 끝없이 말을 걸고, 가끔은 그 타인한테 응답을 받는다. 그리고 그 대화 덕분에 그의 삶은 풍요롭고 단단해진다. 그는 용기를,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과 속도로 걸어갈 용기를 얻는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 산책은 단조롭고, 깊고, 즐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즐겁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ㅣ원더박스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강의 ‘창조적 글쓰기’를 책으로 엮었다. 어떤 언어가 살아남을까, 반드시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떤 말과 글이 숨을 쉴까 등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패터슨
짐 자무쉬ㅣ2017년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그는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반려동물과 산책을 돌다가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잔을 한다. 일상의 작은 행복과 기쁨을 비밀 노트에 시로 적어 내려가며 하루를 기록한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