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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글쓰기 수업: 당신이 일기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단순한 질문에 단순한 대답을 할 수 없는 당신에게 시간여행을 권한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모월 모일 어느 하루로 돌아간다면 적어도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좋아했던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정확한 시간여행법을 알려주고 싶다. 일단 일기장을 펼칠 것.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 것. 어떤 장면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는지, 얼마만큼의 애정과 감정으로 하루를 살았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이 나를 알려준다. 우리의 기억은 똑똑하지 않아서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선명히 알고 싶은 나라는 사람, 내가 살았던 인생은, 기록할 때만 기억될 수 있다. 일기를 쓸 때마다 나는 나를 만난다. 나는 나를 기억한다. 매일이 나의 역사입니다. 해가 뜨면 새롭게 시작되고, 자정이 되면 사라져 버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무엇이든 기록해 주세요. 매일 기록하는 사람은 하루도 자신을 잊지 않습니다. 그건 곧, 하루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과 같아요.
–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기록에 성실한 작가는 아니었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서른 즈음부터였으니까. 가끔 메모를 끄적이거나 일기를 쓰긴 했지만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놓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남아 있는 기록들 거의가 우울하고 슬프고 엉망이어서,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알고 보면 그것 말고도 나에겐 다채로운 감정과 생생한 일상이 살아 있었을 텐데. 유년과 청춘과 사랑하는 이들과 보낸 시간을 성실히 기록했다면 나에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을까. 지나간 그때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 그 틈새의 사유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서, 이제 와 기록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몹시 후회한다.
지난해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일과 일상이 모두 무너져버렸다. 업무가 취소되고 사람과 멀어지고 만남이 사라졌다. 보육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 돌봄이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 되어버렸다. 자가격리 수준으로 아이들과 집에만 머무는 날들. 코로나 블루가 짙어졌다. 안팎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날들을 견디려면, 그저 나를 단단히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의 일상을 기록하자고, 일기를 쓰기로 했다.
먼저 5년 일기장을 샀다. 클래식한 하드커버에 잉크 번짐이 적은 종이, 고무 밴드와 가름끈이 실용적인 일기장을 골랐다. 5년 일기장이라서 쓰는 칸이 작고, 1년마다 이전 해에 쓴 일기를 확인할 수 있기에 꾸준히 쓰는 동기부여도 될 것 같았다. 공들여 펜도 골랐다. 매일 쓰는 물건이야말로 마음에 쏙 들어야 오래 쓸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다소 거창하고도 진심인 과정을 거쳐서 2020년 5월 28일부터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필 5월 28일이라서 좋았다. 무언갈 시작하기에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날이었고, 새 노트의 첫 페이지부터 쓸 필요가 없으니 부담이 없었다. 잘 고른 펜은 손에 꼭 맞게 부드럽게 움직였다. 나의 첫 일기는 이랬다. “해가 뜨는 걸 지켜보았다. 아침에 혼자 글을 쓰고 있다. 밤이 오고 다시 아침이 온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날마다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이어서 좋아하는 문장을 꾹꾹 눌러적었다. 무너지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꾸욱.
일기장은 아무 데나 가까이 두고서 썼다. 누가 봐도 상관없었다. 처음엔 예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갈수록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잔뜩이어서 다른 사람이 펼쳐본다 해도 해독하기 힘들 터였다. 너무 잘 쓰려는 마음을 버리고, 소소해도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했다. 일기 쓸 때만 쓰던 펜은 5개월마다 닳았고, 커버가 반들반들해진 일기장은 좋아하는 옷처럼 편해졌다. 요즘은 일기장을 아무데나 들고 다니면서 쓰거나 읽는다. 거기에 내 인생이 다 들어 있는데, 시시콜콜 그렇게 재밌고 뭉클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는 바쁘고 나는 게을러서 일기는 곧잘 밀렸다. 그래서 ‘밀린 일기 쓰기’라는 이상한 취미도 생겼다. 메모처럼 대충 쓰더라도 매일을 기록해 두겠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밀린 일기 쓰기’라는 취미를 만들어 본 건데, 의외로 즐거운 취미활동이었다. 어제, 그제, 엊그제. 밀린 일기를 역순으로 거꾸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거꾸로 다시 살아보면, 완전히 최악이라 생각했던 하루도 어쩌다 짓궂었던 하루 정도로 순해졌다. 심난했던 기분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나아져 있었다. 심지어는 엊그제 내가 왜 그렇게 심각했더라 이유조차 까먹어 버리기 일쑤였다. 거꾸로 일주일 치 일기를 써보면, 그렇게 일주일을 다시 살아보면, 불과 일주일 전의 일들이 옛일처럼 아득해졌다. 밀린 일기를 쓰기 위해서라도 매일의 날씨와 영감, 인상 깊은 장면과 간직하고 싶은 대화 같은 것들을 메모해 두었다. 일기를 쓸 때면 초콜릿을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 칸칸이 하루를 채우며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동그란 테이블에 일토금목수화월의 ‘나’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가끔 일기를 쓸 때는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이 대부분이었는데, 매일을 기록하다 보니 담담하고도 단단한 말들이 생겨났다. 오늘을 살고 기록하고, 또 내일을 살고 기록할 생각을 하면, 힘들거나 우울해도 그저 머물러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아주 선명한 오늘의 감각. 별거 아닌 하루치 인생을 기록하며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는 의지랄까, 그런 힘도 생겼다. 이토록 성실하게 나의 일상을 기록한 적이 있었던가.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내가 살았던 시간들은 선명하게 남았다.
평생 일기를 썼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라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든다. 그 사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시간. 시시하고 사소할지라도 애써서 지키고 살아낸 나의 하루를 기억하고 싶다. 하루에 깃든 나의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을 일기장에 모조리 적고 덮어두었다가 열어볼 때마다 기억해 내고 다시 살아보고 싶다. 일기 쓰기는 가장 좋은 시간여행법이자 가장 좋은 인생여행법이다.
당신도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든다. 그러나 우리의 어제들은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다른 모든 하루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하루, 그걸 놓치지 않고 붙잡아 쓰는 사람. 매일 조금씩 다른 하루를 사는 사람. 기록하며 기억하는 사람. 그렇게 우리는 내 인생의 작가가 된다.
사소하거나 평범하거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의 하루를 써봅시다. 지난 시간에 소개했던 아침 리추얼 글쓰기 기억하시나요? 그 시간에 저는 주로 일기를 씁니다. ‘일기’ 하면 어린 시절 선생님께 검사받던 글, 숙제로 꾸역꾸역 쓰던 글, 방학이 끝날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쓰던 밀린 일기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어요. 매일매일 꾸준히 쓸 수 있을까 하는 강박과 부담 때문에 일기 쓰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홀가분하게 고백하자면, 작가인 저도 자주 실패합니다. ‘밀린 일기 쓰기’라는 취미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흘 치 일기가 밀려 있네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오래 꾸준히 쓰려면, ‘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가야 한다.”고요.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시’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매일 다시 시작되는 아침처럼, 매일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겁니다. ‘다시’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어요. 매일 쓰기가 어렵다면, 저처럼 ‘밀린 일기 쓰기’ 취미를 가져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어제 일기 쓰기 가이드
준비물: 내 마음에 꼭 드는 예쁜 일기장과 손에 잘 맞는 필기구
나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일기장부터 골라주세요.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하거나 부담 없이 꾸준한 재미로 일기 쓰기를 원한다면, 3년 일기장이나 5년 일기장을 추천합니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일기 쓰기 팁
• 기억이 가장 선명한 어제의 일부터 씁니다.
• 어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나를 따라다닌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 어제 나는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사람을 마주쳤나요?
• 어제 나는 어떤 날씨를 경험했고, 어떤 풍경을 보았고, 어떤 생각에 빠져 있었나요?
• 어제 나는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요? 인상 깊은 대화가 있다면 꼭 기록해 주세요. 마음에 남은 누군가의 말은 아주 특별한 글감이나 영감이 됩니다.
• 밀린 일기를 쓸 때는 휴대폰에 남은 사진, 메시지, 메모, SNS 등을 단서 삼아 추리하며 역순으로 씁니다.
• 꾸준히 오래 쓰려면 즐거워야 해요. 일기를 쓰는 동안에는 따뜻하고 달콤한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하루치 ‘소확행’을 일기 쓰기로 누려보길 바랍니다.
에디터 이다은
글 고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