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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너머 닿는 것
친구들과 함께 집을 지은 엄마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을 만들었다. 경기도 양평군 ‘공흥리의 생각’ 단지를 계획한 시행사 ‘닿음’ 대표 정아 씨는 마을이 아이를 돌보는데 울타리 역할을 하길 바란다. 전원에서도 아이는 자연스레 동네 친구와 함께 커나가고, 이웃은 서로 배려하며 ‘좋은 눈치’를 챙기게 됐다. ‘단지’라는 형태에 ‘더불어’를 더해 살아가는 가족들. 때로는 친구가, 형제자매가,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가 되기도 한다.
지명 비슷한 외관의 집들이 단지 안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네요. 촬영하면서 살펴본 집 내부는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구조가 다 달랐지만요. 외관 때문인지 공동체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마을이 탄생한 배경에 정아 씨가 있다고요. 단지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정아 네. 이곳은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공흥리의 생각’이라는 단지예요. 저는 이 단지를 만들기 전에 친구들과 여럿이서 같이 집을 지었어요. 당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장재를 통일했는데 다 지어놓고 보니 장점이 많은 거예요. 집마다 예산과 평수가 다 달랐고 원하는 집 모양도 다른데, 동일한 외장재를 선택하면서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 생겼어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과정 속에서 집을 지을 수 있었죠. 이게 장점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다음 단지를 계획할 때도 적용하게 됐어요.
지명 집을 짓겠다는 결심이 쉬운 일은 아닌데, 원하는 외장재를 선택하지 못한다는 부분에서 반발도 있었을 텐데요.
정아 맞아요. 강제 사항이 있지 않고는 쉽지 않은 데다 어느 시점이 되면 흐트러질 거라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집을 짓는 방식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자연스레 모였고, 같은 듯 다른,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 집들이 지어졌어요. 외부는 같은 자재를 공유했기 때문에 서로 간에 위화감이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있었고 피로도가 떨어지는 방식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어요. 타 단지를 다니다 보면 핑크색, 파란색 같은 여러 가지 외장재를 쓴 집들이 많거든요. 아마 그 집 건축주보다 뒷집 건축주가 창문으로 핑크색, 파란색을 더 많이 보게 될 거예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가 건축주 복이 많았죠.
지명 그렇게 모인 이웃들은 결이 비슷한 분들로 이뤄졌겠네요.
정아 따로 얘기하거나 어떤 규칙을 정하지 않더라도 주차 문제나 도로를 사용하는 부분, 다른 집 아이를 같이 봐주거나 하는 부분에서 생각이 비슷한 분들이 단지에 들어오게 됐어요. 부모의 연령대나 아이들 성향도 공통점이 있고요.
지명 단지에 아이가 있는 집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전원생활을 꿈꿔도 아이가 친구를 만나기 힘든 환경이라면 꺼려지기 마련인데, 그런 걱정이 없겠어요.
재희 저녁 먹고 자전거를 타거나 용문산 올라가서 개구리랑 올챙이도 잡고, 집 근처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캐치볼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주말이면 각자 마당에 설치된 수영장에 모여요. “모여라!” 이게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밥 먹고 만나게 돼요. 아이들 없는 집이 거의 없고 연령별로 다 있으니까 이 집 갔다 저 집 갔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요. 호윤이네랑 저흰 아이들이 이제 좀 커서 아빠랑 자전거 타고 갈산공원까지 가기도 하고 물맑은운동장에서 인라인도 타고 축구 시즌 개막하면 양평 FC 경기도 보고 그래요.
지명 세 가족은 어떻게 양평으로 이주하게 됐나요?
정아 젊을 땐 양평이 잠깐씩 놀러 오는 곳이었고 자그마한 지역인 줄 알았어요. ‘양평에 살면 걷다가 아는 사람 다 만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죠. 아이가 태어나고 네 살쯤인가 펜션에 놀러 왔다가 양평 아이들이 가방 메고 학교로 걸어가는 걸 봤어요. 학교가 가까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는데, 아이들이 걸어서 등교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막연하게 초등학교는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 생각했어요. 어디서, 어떻게 살지 아무 계획도 없었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다가 진우 다섯 살 때 2년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서울 집을 전세 놓고 왔어요. 400평 정도 되는 넓은 주택에 이삿짐 아저씨가 짐을 내려놓고 가시는데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죠. 한 일주일은 불안하고 큰일 났다 싶었어요. 내 발로 온 거니까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요. 한 달 정도 됐을 때 진우가 털신을 신고 혼자 마당에 나가 노는데 털신에 잔디 지푸라기가 많이 박혀서 신발이 커다래진 거예요. 제가 그 신발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기억이 있어요.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싶었는데, 이렇게 흙을 밟는 거구나 생각했죠.
연희 저흰 남편 직업이 군인이라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어요. 경기도 양주, 전라도 광주, 속초, 서울, 홍천으로 이사 다녔는데 근무지가 옮겨지면서 옆 동네 홍천에서 양평으로 자연스레 오가게 됐어요.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져서 제한이 많아지다 보니 예전부터 꿈꾸던 단독주택의 삶을 실행에 옮기게 된 거죠. 양평을 자주 오가다 집 지을 땅을 여러 군데 살펴봤고 아이를 키우기에 여기만 한곳이 없었어요. 남편의 전근 시기와 여러 이유가 맞물려서 갑자기 번갯불에 콩 볶듯 설계를 뽑아내고 시공사를 재촉해서 집을 짓게 된 거예요. 다음 전근 지역은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퇴직하고 나이 들어서 지으려니 그땐 내가 마당의 풀을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그땐 아이들도 독립하고 아파트 들어가 살아도 되는데 싶어서 좀 무리하게 시기를 당겼어요. 모험을 한 거죠. 양평이 강원도 같은 경기도면서 수도권이랑 가까우니까 서울 진입이 수월한 점도 지역 선정에 크게 작용했어요.
재희 저희 부부는 양평이나 전원주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었고 서울에서만 40년 넘게 살았어요. 평소 캠핑을 많이 다니니까 양평은 놀러 갈 때 오는 곳이었죠. 당시 층간 소음 문제가 원인이기도 했는데, 결정적인 건 아이가 확고하고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이에요. 성민이가 “열 살 되기 전에 마당 있는 집에서 강아지 키우며 살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기도 했고 아이의 그런 얘기가 처음엔 들리지 않아서 “그래.” 대답만 하고 말았어요. 일주일 지나고 성민이가 또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흘려듣게 되질 않아서 마침 양평에 사는 지인 집에 가서 한 번 경험해 보자 하고 놀러 갔어요. 그때 아이가 완전히 매료돼 버린 거예요. 동생이랑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하고 물놀이했던 게 재밌었나 봐요. 와서도 계속 얘기했죠.
정아 들들 볶였구나. (일동 웃음)
재희 마침 아는 분도 다시 집을 지으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아 실장님을 소개받았어요. 큰길에 서서 이곳 땅을 바라보는데 그때도 솔직히 ‘서울에서만 살았는데, 너희들이 후회하지 않겠니?’ 하고 생각했어요. 아이의 말 한마디가 양평으로 올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만들어줬지만, 지금은 제가 너무 좋아하게 됐어요. 평소 캠핑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전원생활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아이도 금방 적응했고요.
지명 캠핑이 큰 도움을 줬네요.
재희 큰 몫을 해준 것 같아요. 캠핑도 주택처럼 나가면 바로 눈이나 비가 쏟아지는 환경이고 벌레도 익숙하고요. 집에서도 마당에 불 피워 마시멜로 굽고, 고기 구워 먹고, 수영장 접으면 텐트 치고 놀고. 캠핑에서 늘 하던 걸 집 마당에서 할 수 있게 됐죠.
지명 주택 생활을 시작하고 삶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재희 부지런해졌어요. 예전엔 평일엔 일하고 주말에 일어나면 티브이 보다가 아침 겸 점심 먹고 겨우 한 번 놀이터에 나가 놀았죠. 캠핑은 날을 잡아갔으니까요. 여기 오니 자연스럽게 햇빛이랑 새소리에 눈이 떠지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거예요. 꽃이랑 나무도 심고요. 정말 부지런해지고 낮잠을 언제 자봤나 싶을 정도로 하루가 빨리 가요. 습관처럼 어떤 루틴이 생겼다기보다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지 않는 거죠.
연희 뭐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누가 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내가 망치질하고. 지금 안 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자꾸 살피고. 아파트는 직사각형인데다 문 닫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거실에서 모든 곳이 한눈에 다 보이잖아요. 주택은 크기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같이 있다가도 분리되기도 하고 자기들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생기니까 아이들도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게 되고, 그런 부분들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마당 너머 옆집이 보여요. 누구네 나가면 우리도 좀 나갈까 하면서 가족끼리 더 돈독해지고요. 이전에 아파트 살 때는 낙엽 떨어지면 경비 아저씨가 다 치워주셨는데, 요즘은 겨울에 밖에서 득득 소리가 나면 누워 있다가도 다 같이 나가서 눈 쓸어요. 확실히 ‘좋은 눈치’가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옆집과 뒷집을 불편하게 만들진 않는지, 아니면 내가 그들을 더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겠다 하는 눈치요.
정아 저는 친구들이 “양평 살면 어때? 공기 좋아?” 물어봤었는데, 밤 되면 깜깜해지는 게 좋아요. 불야성 같지 않은 거. 내가 밝히는 공간만 밝아지니까 아이에게, 가족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마당에서 아침을 시작해요.
지명 서울로 출퇴근하시는 분들도 있다고요. 직장과의 거리도 거주지를 결정하는 큰 이유가 되는데, 힘들지는 않나요? 실제로 어떤가요?
재희 굉장히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양평으로 와서 운전을 시작했거든요. 회사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니까 처음엔 저녁 일곱 시만 돼도 졸려서 쓰러져 잤어요. 지금은 퇴근하고 팔당 건너올 때가 제일 좋아요. 출근했을 때 빌딩 사이에서 답답하게 있다가 집에 와서 즐기는 것들로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 것 같아요. 집이 주는 게 훨씬 크니까요. 여기서 서울로 출퇴근하시는 분들, 생각보다 되게 많아요.
지명 저는 양평에서 강남까지는 해볼 만하다 싶었어요.
재희 맞아요. 거리 중요하죠. 근데 저희는 중구로 출퇴근하고, 옆집 아빠는 상암으로, 윗집 아빠는 을지로로 가요. 몸은 힘들지만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고 스스로 만족도도 높으니까 할 수 있는 거죠.
정아 그치. 단순히 거리로 환산한 시간보다 어떻게 오가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운전하면서 차에서 노래 듣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예전엔 아빠 직장 위주로 거주지를 정했다면 요즘 아빠들은 가족의 행복에 비중을 두고 더 적극적인 것 같아요.
연희 시절도 한몫했죠. 30평대 아파트면 4인 가족이 충분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이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집에 있게 되니까 층간 소음 문제는 더 심해지고,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지고, 일도 집에서 하고, 학교 수업도 집에서 들으니까, 다른 탈출구를 찾는 계기가 됐어요. 다 가질 수는 없으니, 하나를 내려놔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출퇴근 시간에 수고를 하고 나머지를 갖겠다 이런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정아 직장에 일찍 나가서 근처에서 운동하거나 그 시간을 활용하는 분들도 있어요.
지명 집을 따로 지어도 되는데, 단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재희 아이가 원해서 왔기 때문에 ‘집 밖에서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어요. “이 집 아이가 몇 살이에요?” 이게 아니라 모두 함께 어울리고, 아이가 혼자 집밖으로 나가도 어디 있는지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는 환경, 그게 제일 컸죠. 함께 자라는 것. 이 단지의 가장 큰 장점이자 여길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예요.
연희 아직은 학령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제한 사항이 많았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제가 혼자 왔다 갔다 하거나 택시든 버스든 타고 다닐 만한 거리인지 고려해서 범위를 좁혀 갔어요. 지도에서 테두리를 그었죠. 그리고 땅을 사서 토목부터 기반을 다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다 참여할 수가 없어서 기반 시설이 되어 있는 단지를 택했어요. 바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편의 시설을 누릴 수 있는 곳인지 기준을 잡았죠.
재희 저흰 땅 구입부터 집 짓는 절차를 하나도 모르고 왔는데, 단지 시행사에서 정리해서 알려주시는 게 편하고 좋았어요.
정아 이 단지 주민들도 그렇고, 아이들도 미취학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비슷한 연령대가 살고 있어요. 간혹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도시 생활에 피로를 느껴서 오는 분들 중에 나 혼자 뚝 떨어져서 집을 짓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데 아이에게도 과연 좋은 공간인가 생각했을 때, 저는 잘 모르겠어요. 크고 멋진 전원주택은 예산만 허락한다면 어디든 지을 수 있지만, 친구는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요. 혼자 떨어져 집을 지으면 친구를 초대할 때 늘 차로 오가야 해요. 대문 밖에서 “누구야 놀자!” 이런 정겨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거죠. 어디에 있는지 보다 어떻게 지내느냐, 어떤 사람들이 어떤 걸 나누면서 지내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다행히 이 단지는 아이들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좋은 마을이 되어가고 있어요. 여기에 좋은 프로그램이 생기면 훨씬 좋겠죠. 아이들 없는 가정 중에서는 뭔가 나누고 싶다 하셔서 본인이 잘 아는 분야인 코딩을 레고를 이용해 가르쳐 주고 싶어 하는 분도 계세요. 내가 갖고 있는 걸 나누려는 어르신들도 있으니 그 안에서 아이들도 예의를 배우게 되고요. 다양한 직업을 가진 구성원이 들어오니 아이들에겐 산 교육이 되는 셈이죠.
지명 어디든 그렇겠지만, 이웃이 중요하네요.
연희 맞아요. 실은 단지의 가장 큰 문제점이 측간 소음이에요. 옆집, 뒷집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다 보니 상호 간에 서로 상식과 예의를 지킨다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좋아서 집을 지었는데 옆집에서 2미터가 넘는 담을 쌓을 수도 있고, 계속 시끄럽게 해서 여름에 창문도 못 열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무슨 일이 생겨날지는 아무도 모르죠. 개인이 지은 집이지만 단지 내에서 서로 배려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어요. 내 집 앞 쓰레기, 내 집 앞 눈 치우기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요. 좋은 점이 불편한 점이 될 수도 있죠.
정아 처음에 친구들이랑 같은 동네에 집 지었을 때 서로가 너무 좋았어요. 아이들도 휴대폰이 없으니까 동네 안에서 누구 집에 가 있는데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고요. 저녁 먹을 시간에 찾아오면 같이 밥도 먹이고요. 그래서 자연스레 규칙도 생겼어요. 여덟 시 반까지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놀러 올 땐 양쪽 집에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다고요. 조금 크니까 그 규칙은 누가 만들었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이도 어른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서로 이해하게 됐어요.
재희 단지에 사람이 많이 살고 있으니까 다 친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래도 잘 맞는 분들은 같이 캠핑도 가고… 얼마 전엔 아이들 데리고 속초도 갔어요. 저희 아이는 외동인데 여기 와서 위로는 형 있고 동갑 친구도 있고 밑으로 동생도 있고 하니까 다양한 경험을 해서 좋아요. 마당에 물 줄 때도 쪼그려 앉아서 밑에 집에 물 안 튀게 조심조심 주려고 애써요. 서로 그런 걸 조심하고 배려하고, 그 안에서 더 친해지고 알게 되고요.
지명 자연을 곁하며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길 바라나요?
재희 서울에 있을 땐 강아지를 키워본 적도 없고 아이가 말 타고 싶다는 얘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여기 오니까 그런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잘 모르는 곤충이나 동물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봄에 진달래 따서 화전해 먹고, 토마토를 스스로 키워서 가지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같이 얘기 나누는 게 신기했어요. 산에 가서 자연인으로 키워야겠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의 삶이 자연과 밀접해지고 있단 느낌을 받아요. 말을 타거나 낚시를 하고, 마당에 새로운 싹이 나면 이름이 뭔지 관심이 생기고, 뱀이 나오면 대처법이 뭔지 알아보고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아주 작은 것에서 우리가 자연과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정아 손에 닿는 것 같아요. 자연을 글로 배웠는데, 지금은 직접 피부로 느끼고 큰 틀에서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요. 회오리바람이 치면 뭐가 뒤집어지는 것도 보고, 폭우가 와서 물이 넘치는 것도 보고요. 그 안에서 우리가 적응해 가는 걸 배워요.
재희 아이도 엄마, 아빠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마당에서 꽃을 꺾어서 화병에 담으면 아이도 해보고 싶어 하거든요. 계절마다 벌이 오는지, 나비가 오는지, 저 벌이 어떤 종류인지 알게 되고 배워 가요.
지명 아까 보니 아이들이 잡초 뽑기도 함께 하던데요.
연희 저흰 집을 너무 짓고 싶어서 지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아파트에서 살 때와 주택에서 살 때의 차이점, 해야 될 일들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어요. 엊그제 폭우가 왔는데 그날 저한테 애들이 좀 혼났어요. 작년 겨울에 이사 왔으니 처음으로 비가 많이 온 날이었는데, 제가 물 안 빠지는 곳은 물길도 내주고 우수관에 찌꺼기 제거하고 떨어진 타프도 다시 정리하면서 단속을 좀 했어요. 집에 들어오니 아이들이 무신경하게 가만있는 거예요. 집에 있는 물건조차 정리하지 않고요.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엔 뭘 살펴야 하는지 알려줬어요. 엄마, 아빠만의 일이 아니라 너희도 함께 이 집을 가족처럼 살펴줘야 한다고요. 실은 네 식구 모두 배워가는 중이에요.
재희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내 일이 정해지는 느낌이에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빠가 수영장을 설치하려고 꺼내면 모두 붙어서 같이 하고 접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정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죠.
연희 “니 방 치우고 들어가서 공부해.” 이게 아니라,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이 그 상황의 주도권을 잡아서 이리저리 섞이며 같이 해요.
지명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 거네요. 설계할 때 아이들도 의견을 냈나요?
연희 다 같이 얘기했어요.
재희 성민이는 어떤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확고한 의사가 있었어요. 마당과 강아지 입양, 자기 방과 다락은 포기할 수 없는 거라고요.
연희 호윤이랑 가현이는 방 크기가 똑같아요. 하지만 가현이는 창이 두 개고 호윤이는 창이 하나예요. 호윤이는 창이 많은 게 싫고 벽지도 한쪽엔 파란색으로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어요. 위치 선정이나 큰 부분들은 어른들이 결정하고 내 공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건 아이들 의견을 반영했어요.
정아 얼마나 특별한 경험일까 싶어요. 내가 원하는 걸 얘기하고 그걸 반영해서 집을 지으니 집에 더 애착이 가고 공간을 잘 사용하게 되는 거죠.
재희 호사스럽죠(웃음).
지명 진우도 성민이도 외동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집들이 모여 살면서 형제처럼 같이 자란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아 또래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옆집 아이가 잘 자라는 과정을 부모도 아이들도 옆에서 지켜보는 게 그 어떤 특별한 교육 방식보다도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양평에 있으면서 조급증이 안 나는 건 아니거든요. 가끔 확 올라올 때가 있어요.
재희 밖에서 누굴 만나고 오면(웃음).
정아 서울에 갔다가 누가 뭘 하는지 보고 오면, 내가 굉장히 마이너하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이 있어요. 혼자였으면 훨씬 더 불안했겠지만 주변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니까 좀 덜해요. 혁신학교나 대안학교처럼 특별한 교육을 생각하고 양평으로 오는 분들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나중에 서울에 다시 못 가게 되지는 않을지, 중·고등학교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항상 내 아이를 못 믿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방향을 결정해 주고 답을 주려고 하는 것들요. 불안한 거죠. 어른들도 집 지을까, 땅 살까 하는 과정에서 불안해하는 이유가 실패할까 걱정하는 거잖아요.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 아닐까 봐.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키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틀린 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아이들 내면의 힘을 믿고 지켜봐 주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타고난 아이의 성향을 발전시켜주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지명 어디에 살고 있든 교육은 부모와 아이의 선택에 따라 이뤄질 텐데요. 양평이라서 할 수 있는 교육도 있죠?
재희 성민이도 영어 학원이나 수학 학원을 다녀요. 다만 여기 와서 바뀐 건 평상시에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고 승마도 본인이 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최근엔 색소폰도 배우고 싶다고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한다는 게 바뀐 점이에요. 중·고등학생이었으면 또 달랐겠죠. 선수할 것도 아닌데 말을 왜 타냐 했을지도 몰라요. 양평이니까 승마장이 집에서 10분 거리고, 경기도 교육 지원도 되고, 취미로도 할 수 있으니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환경인 거예요. 스키장도 가까워서 겨울이면 스키 타러 가고 집 앞이 남한강이니 카약이나 제트스키도 타고요. 학교에서도 목공 수업, 합창 수업, 미술수업하는데 ‘아직은 초등학생이니까 괜찮아.’ 지금이 아니라면 이 경험을 못 할 거라는 생각으로 기다려줘요.
연희 부모가 어떤 학교를 가서, 어떤 직업으로 살아보니까 이렇더라가 아이 교육에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흰 ‘우리 벌이로 사교육 비용부터 주거 비용까지 모든 걸 감당하며 지금 양평에서 누리는 것들을 다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아이들이 다 내려놓고 학교고 교육이고 없이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학교 친구들 보면서 누군 이걸 잘해 얘기하고 자신의 위치와 뭘 해야 할지를 찾아가거든요. 옆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그런 과정 속에서 배우고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 아빠가 보태주는 거죠. 너무 터무니없는 게 아니라면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요. 많은 걸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예전에 부대 근처에서 살 때는 아이들이 육사를 갈까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 양평으로 이사 오고 환경이 달라지니까 생각도 달라지는 거예요. 시야가 더 넓어지는 거죠. 물론 중학교 가서 성적이 바닥에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과 불안은 있어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무책임하지는 않을 거예요.
재희 요새 느끼는 건 많이 놀아본 아이, 많이 경험해 본 아이가 그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연희 저는 요즘 짜이지 않은 시간 내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시간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아무것도 할 게 없고 시간이 많을 때 ‘뭐 하지?’ 생각하잖아요. 심심하면 그 시간에 잠을 잘 수도 있고, 바닥에 굴러다닐 수도 있고, 뭔가를 할 수도 있고, 자기 탐색 시간이 되는 거죠. 저는 그걸 제일 가르쳐주고 싶어요. 놀든지, 배우든지, 쉬든지, 선택해서 할 수 있게. 그 안에서 시간을 쪼개 쓸 수 있게. 그러다 보면 스스로 계획을 하게 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노력이 들어가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요.
정아 여기 엄마들은 ‘어느 학원 누구 선생님이 잘 가르치니까 보내야 한다.’가 아니라 잘 노는 법을 많이 신경 쓰고 얘기를 나누기 때문에 분명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있다 생각해요.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서 행복하게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아이들에게도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되면 좋겠어요.
지명 양평이 혁신 교육 지구로 선정됐는데, 오래전부터 혁신교육을 이어온 학교들도 있죠. 실제 교육 현장에서 느껴지는 남다른 교육 방식이 있나요?
재희 양평이어서 그런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세 가족 모두 아이들이 양평 내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성민이 학교는 확실히 다름이 느껴져요. 한 학년에 한 반씩 밖에 없어서 전교생이 서로 얼굴을 다 알고 학교 행사도 마을과 학교가 공동체가 되어서 함께 하고요. 학부모들이나 마을 어른들이 참여하는 행사도 많아서 비교하자면 끝이 없죠. 아마 양평 내에서도 다른 학교들과 환경이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해요. 수업 방식도 그룹으로 진행되고 선생님들이 아이들 개개인의 의견을 다 반영해 주시고 혁신 교육에 대한 학습도 따로 받으시고요. 최근에 학년별로 공개수업을 했는데 선생님들도 수업 연구를 끊임없이 하시더라고요. 학교 공사도 학부모들이 참여해서 어떤 방향으로 할지 개개인의 의견을 다 받아서 함께 논의하는데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작은 학교여서 참여율이 높은가 생각했는데 그 학교의 특성이더라고요.
정아 진우네 반에선 아이들이 각자 특성에 맞게 역할을 하나씩 맡았더라고요. 예를 들면 탐정 역할을 맡은 아이는 의뢰를 받아서 일을 하고 가상화폐를 받아 교실 내 벼룩시장이 열릴 때 사용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욕을 하면 돈을 회수해가기도 하고요. 진우는 지금 사촌 형인 재준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재준이는 학교에서 DJ 역할을 맡았대요. 친구들 고민을 상담해 주는 친구도 있고요. 재준이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작년 겨울에 이사 왔는데 처음엔 친구들이랑 헤어져야 하니까 전학 오길 싫어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하니까 지금은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있다고 해요. 왜소하고 키가 또래보다 작은 편이라 친구들이 오라 하면 따라가는 아이였는데, 이젠 자신감이 붙어서 자기표현이나 하고 싶은 얘기를 잘하게 됐어요. 혁신 수업의 일환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주고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거요.
지명 집을 짓는다는 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죠. 고학년이 된 아이들과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낼지 여러 생각과 계획이 있을 것 같아요.
연희 단지에서 제일 큰 아이가 호윤이에요. 헛발질하지 않고 스타트를 잘 끊어주면 다음에 성민이랑 가현이도 잘 따라가지 않을까(웃음).
재희 큰 아이들이 잘 지내주면 그게 본보기가 되잖아요.
연희 크는 과정 속에 아이들이 스스로 이건 해야겠다 하는 생각들은 다 있더라고요. 잘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정아 양평에서 공부를 못하면 인문계를 못 가고 타지역 고등학교를 가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비평준화 지역이거든요.
재희 와, 아이 키우면서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는데….
연희 면에서 양평읍으로 아이들이 모이거든요. 아이한테 정신 바짝 차리라고 했어요. 고등학교는 성적이라고. 저 멀리 면으로 가면 난 안 태워줄 거야, 해요. 아이들도 알아요. 그 속에서 나름 치열하거든요. 학교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아이들이 어느 정도 하는지도 알고요. 뒤처지기 싫고 잘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있으면 되는 거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너무 먼 미래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정아 다른 면으로 서로 자극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저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치네, 저 형은 종이접기를 잘하네, 이런 것들이 아이에게 자극이 되고 ‘그럼 나는 잘하는 게 뭘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
연희 그래서 양평에 뼈를 묻는 걸로. (일동 웃음)
에디터 황지명
포토그래퍼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