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 To Mom

엄마의 노래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뮤지션들이 ‘마더 프로젝트’를 위해 뜻을 모았다. 아이와 이어졌던 탯줄은 ‘가장 오래된 닻’으로, 엄마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와 딸의 어리광은 ‘엄마, 괜찮아’로, 엄마를 위한 아이의 애정 어린 다짐은 ‘마더’라는 엄마의 노래로 앨범에 담겼다. 스스로 프리랜서 뮤지션 워킹맘이라 부르는 그녀들은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누군가 용기를 얻길 바란다. 당연한 것은 없으며 주변의 많은 것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말하는 뮤지션 엄마들의 일상은 어떤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박혜리 밴드 ‘두번째달’, ‘바드’의 전 멤버. 음악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 일곱 살 윤이의 엄마
임주연 피아노 세션 및 싱어송라이터, 아홉 살 쌍둥이 은이, 율이의 엄마
유발이 출판사 ‘마담꾸꾸’ 대표이자 싱어송라이터, 여섯 살 본이, 네 살 선이의 엄마

함께 웃으며 지켜내는 일상

지명 여기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어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유발이 씨가 나오더라고요. 방송하고 바로 오신 거죠? 아침에 정신없었겠어요.

유발이 맞아요. 아이들 방학 끝난 다음 날이라 집이 엉망이었는데 방송 끝나고 와서 급하게 치웠어요(웃음).

지명 거실에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네요. 집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세 분은 작년 참여한 ‘마더 프로젝트’를 계기로 처음 만났나요?

혜리 아뇨. 서로 안 지는 오래됐어요. 참 놀라워요. 우리가 이렇게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됐구나 하고요. 어리고 신나던 청춘의 시절부터 알고 지냈거든요. 주연이랑 저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기고요.

유발이 셋 다 피아노 베이스의 싱어송라이터니까 캐릭터가 겹쳐서 일로는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서로 경조사 참석하고 가끔 연락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명 ‘마더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주연 동희 언니, 뮤지션 조동희 씨가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프로젝트예요.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같이 뭘 해보고 싶다는 거였죠. 언니랑 친하다 보니 그런 얘기들을 가끔 주고받았었거든요. 저는 남편이랑 이혼하고 애들이랑 한 2년간 떨어져 지냈어요. 아이들과 제가 만날 땐 숙소에서 하루 묵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요. 일곱 살 때쯤 찍은 동영상이 있는데, 첫째가 “내가 나중에 크면 엄마 뭐해줄게.”라고 말하면 둘째가 받아서 “나는 뭐해줄 거야.”라고 말하는 동영상이에요. 동희 언니가 그걸 보고 울음이 빵 터져서 엉엉 울었어요. 제가 “난 괜찮아, 괜찮은데….” 이러고 있는데, 언니가 그간 생각하던 것들이 떠올랐나 봐요. “이제 해야 될 때가 됐다. 곡 쓰고 있어봐. 내가 사람들 모을게.”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혜리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생애 주기를 지나고 있잖아요. 만나면 자연스럽게 육아 얘기하고요. 서로 그 고충을 잘 알기 때문에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죠.

유발이 아홉 명의 뮤지션 엄마들이 만든 각각의 곡과 경기문화재단에서 작사 수업을 통해 나온 결과물 한 곡이 모여 총 열 곡이 수록됐어요.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분야의 뮤지션들이 모여서 ‘엄마’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죠. 앨범이 지난해 두 번에 걸쳐 나왔고 올해는 2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고 알고 있어요. 녹음하는 과정, 공연하는 모습, 만나서 얘기하는 모습들이 나올 예정이에요.

혜리 아이가 어릴 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기가 다 있잖아요. 경력 단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데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님들이 등대 같다고 느꼈어요. 음반을 계속 내주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주는 자체가 위안이 됐고요. 이 프로젝트도 그런 마음이에요. 후배들이 또 아이를 낳고 음악을 만들 때 우리가 용기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요.

지명 프로젝트 과정에서 뮤지션 엄마들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생겼겠어요.

유발이 다 좋았죠. 대기실에서의 연대도 좋고. 다들 역전의 용사처럼, 육아하며 많은 일을 겪고 와서 어떤 에피소드가 일어나도 웃기고 재밌는 거예요.

혜리 집에서 육아하다가 일하러 나오면 오히려 쉬는 느낌이에요. 모두 엄마이고 그 상황이 뭔지 다 잘 아니까.

유발이 이 만남이 귀하다는 걸 서로 잘 아니까,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거예요.

혜리 얘기를 나눠도 공감이 잘 되고요. 처음 만난 분들과도 서로에 대한 긴장 없이 엄마라는 이름 아래 마음의 벽이 스르르 허물어진 상태였죠.

유발이 이 모임 자체가 힐링이라서 늘 기다리는 스케줄이었어요. 모이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던 상관없이요(웃음).

주연 아이들도 이모들이랑 가끔 통화하고 그러니까 “이모~” 하고 부르면서 좋아하고요. 또 하나의 친정이 생긴 것 같아요.

지명 든든한 이모들이 생겼네요. ‘프리랜서 뮤지션 워킹맘’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해요. 프리랜서지만 지키고 있는 루틴이 있나요?

혜리 어디 속한 곳 없이 말 그대로 일용직이에요. 프로젝트 일은 지속성이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잖아요. 작업은 잘 해내야 하고요. 일에서는 크게 보면 루틴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매번 좀 다르긴 해요. 하지만 일상에서 루틴이 생기도록 해주는 게 육아인 것 같아요. 아이가 생기면서 작업할 시간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아이를 재우고 모니터 앞에 앉아 쪽잠 자면서 일하거든요. 그럼에도 매일 아이 밥 챙기고, 등원시키고, 재우고 이런 리듬들을 맞춰줘야 하는 거… 강력한, 꼭 해야만 하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제 삶을 지탱해 준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아이가 어릴 땐 너무 힘들어서 그냥 다 원망스러웠지만요.

유발이 그래서 내가 화가 많구나.

혜리 풀고 싶어서 화도 냈다가 원망도 했다가 그랬는데,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까 이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구나 알게 됐죠. 영상 작업을 할 때면 음악 작업은 후반 작업이기 때문에 항상 뒤로 몰려요. 앞에 일정에 따라 점점 딜레이 되고 마감은 정해져 있고요. 밤새 일하고 아침 등원시키고 오후에 윤이가 돌아오면 아이한테 충실해야 하고 그게 또 제 할 일이고요. 몸은 고되지만 이게 나에게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결국 날 지탱해 주는 힘인 걸 이제는 알아요. 그전에는 열심히 살긴 했지만 일이 끝나면 찾아오는 공허함이 있어서 가끔 흔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매일 해야 할 일이 있고 지켜야 될 일상이 있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유발이 원래 뮤지션 치고는 자유로움 안에서도 저만의 루틴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도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덜컥 용감하게 둘을 낳았는데… 막내가 아직 어려서 근 5년간 잠을 잘 못 잔 상황이에요. 제겐 지금이 힘든 시기라서 마음속에 내러티브가 많아요. 울컥울컥하고요. 첫째 본이가 규율을 잘 지키고 착한 아이라는걸, 선이가 태어나고 알게 됐어요. 본이를 키울 땐 저만의 룰을 다 지키면서 우아하게 육아를 했다고 생각해요. 둘째 선이 이후로는 그 규율이 없어지고 뭘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아직 헤매는 중이에요. 이게 기울어진 쪽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육아는 끝없는 좌절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지금 정신없을 시기니까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주연 저는 아이들이 집에 와서 같이 생활한 지 이제 10일 정도 됐거든요. 그전에는 작업실에 출근해서 작업도 하고 레슨도 했는데, 아이들이 오고는 몇 번 갈 수가 없더라고요. 렌탈비가 엄청 비싸서 결국 작업실을 뺐어요. 졸지에 이틀은 출장 레슨을 다니고 있는데, 아홉 시에 학교 보내고 아홉 시 반부터 여정을 떠나요. 유랑도 이런 유랑이 없어. 전 지역을! 레슨 끝나면 차 타고 또 레슨 끝나면 차 타고, 너무 힘들더라고요. 우리 애들 어떻게 하고 있나 걱정해야 되지, 레슨 하는 애들 걱정해야 되지. 오늘 나는 뭐 했나 싶고.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와서 눕자마자 암전.

유발이 저는 요즘 동네 이모님 전화번호가 다섯 개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돌발 상황이 많이 생기는데 하나는 어디 맡겨도 둘은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1번부터 5번 이모님까지 차례대로 전화를 돌려요. 한 번은 라디오를 가야 하는데 시간 안에 못 오시겠다고 해서 결국 2번 이모님께 첫째 맡기고 둘은 힘드시다 그래서 3번 이모님께 둘째 맡기고 그랬어요. 10분 안에 어레인지 하는데 땀이 막 나는 거예요. 생방은 당연히 가야 되는 거잖아요. 그날 처음으로 내가 오늘 둘을 데리고 방송국에 가는 날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위기를 넘겼죠. 한 번은 미팅에 애기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일이 일이 아니게 돼서 내내 미안하다고만 말하다 왔어요. 

혜리 애들이 다섯 살까지는 계속 아프잖아요. 열도 너무 많이 나고. 일이 없다가 일주일에 스케줄 두 개 생겼는데 이상하게 꼭 그 이틀에 애가 아파.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항상 그래. 오늘 밤에 꼭 곡을 보내야 하는데, 그날 아프고 밤에 아빠 옆에서 안 잔다고 난리 치고. 그럼 애 재우다 기절… 하하. 새벽 세 시에 눈이 번쩍 뜨여서 일어나 일하고. 멀쩡히 있다가 꼭 중요한 미팅 날 수족구 걸리고(일동 웃음).

주연 수족구!

유발이 빼도 박도 못 하지. 어디 맡길 수도 없고. 이 모임의 장점은 이런 걸 얘기하면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거예요. 하하하. 

혜리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다 겪는 일이잖아요. 그걸 겪고 나니까 다른 일들이 별일 아닌 것처럼 웃게 되더라고요. 

지명 힘들었던 시간들을 함께 웃으며 털어버리니 참 좋네요. 엄마가 되고 난 후 나로서도, 음악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 같아요.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대상도 있을 거고요.

주연 일에 있어서 완성을 해내고 뭔가 이뤄내는 게 성취도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서 그걸 다 할 수 있었던 거구나 알게 됐어요. 어떤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의 신생아 시절 얼굴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저 사람과 내가 상관없는 게 아니라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는걸요. 그럼 스르르 다 허물어지더라고요.

혜리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내면에서 세상을 향한 어떤 불신, 나 자신에 대해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나 우울 같은 게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는 백 퍼센트에 가까운 그 어떤 마음,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전엔 조금 냉소적이었던 게 희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죠. 세상이 나아져야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요. 음악의 경우 이전에는 너무 열심히 하는 건 멋있지 않고 부자연스럽다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고 나니 나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들은 편찮으시고 애는 크고요. 물리적인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앨범 [잃어버린 블루]를 만들 때도 그 어느 때보다 잘 만들고 싶었고요. 20대 땐 피아노 앞에서 곡을 뚝딱 만들었는데 그건 이제 불가능하고 결국 내 마음에 만족스러운 음악이 나올 때까지 스스로 몰아붙이며 울면서 한음 한음 찾아갔어요. 한계에 부딪히는 시간이었고 마침내 찾아냈을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외적인 결과나 성취와 상관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만든 앨범이에요.

주연 나는 그게 반대였어. 20대 땐 곡이 마음에 안 들어서 버리고 또 버리고 했는데, ‘마더’ 작업할 때는 ‘이제 됐어! 그냥 부르면 돼!’ 하고 생각했지.

혜리 이렇게 나 자신의 균형을 맞춰가나 봐. 아이를 낳고 삶이 바뀌는 기점으로.

유발이 저는 엄마가 되고 나니까 나의 엄마가 보여서, 엄마의 곡을 쓰게 됐어요. 그전엔 엄마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내가 삶의 중심에 있었고 제가 해석한 것으로 엄마의 삶을 끝내 버렸죠.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봐야 해요. 모든 엄마들이 다시 보이게 됐어요.

지명 세 분은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가요? 혜리 씨는 책을 통해 아이와 생각을 나누는 것 같던데요?

혜리 윤이가 유치원에서 친구가 가져온 뽀로로 샘물을 보고 저도 사고 싶었나 봐요. 물병을 들고 다니다가 그걸 매일 사줬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렇게 쌓여가면 안 될 것 같아.” 하고 아이를 설득했는데 안되더라고요. 윤이가 대출하고 반납하는 재미로 계속 도서관에 다니는데, 우연히 든 책이 《플라스틱 섬》이었어요. 아이가 이 책을 읽더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스스로 깨달아야 변하고요. 아이지만 어리다고 모르는 게 아니고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르친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느끼기에 좋은 것들을 나눠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주연 저는 쌍둥이 자매에게 아홉 살 친구 같은 엄마예요. 둘이서 편먹고 장난칠 때가 있는데, 애들 앞에서 바로 울어버려요. 그럼 아이들이 제 손을 치워서 확인하고는 “야, 엄마 진짜 울어~” “엄마, 미안해.” 하고 사과하고요.

유발이 아, 그냥 울어야 하는구나.

주연 한번 울음이 터지면 서럽게 울게 되잖아. 그럼 나도 좀 풀리거든. 화해하고 서로 꼭 안고 상황이 종료되는 거지.

유발이 쓸데없는 잔소리 안 해도 돼서 괜찮네. 오늘부터 해봐야겠다.

주연 한번 해봐. 이렇게 하면 엄마도 우는구나 하고 아이들도 알게 돼. 엄마를 아프게 하면 안 되겠다 하고. 

유발이 전 제가 괜찮은 엄마인 줄 알았어요. 지금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죠.

주연 내가 느끼는 넌 아이들을 감성적인 부분으로 잘 케어하는 엄마라고 생각했어. 어떤 일이 있으면 애들이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꼈을까,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하고 표현하고. 역시 유발이는 음악 하는 엄마구나 생각했었어.

유발이 어떤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들을 하잖아요. 근데 아이를 낳고 아이의 성향에 따라 바뀌는 거 같아요. 과격한 아이를 둔 엄마는 그것을 버티기 위해 바뀌고, 또 예민한 아이를 둔 엄마는 무딘 사람이었더라도 예민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하고 설명해 주려 하고요.

지명 아이를 낳고 뮤지션으로 다시 서게 된 날을 기억하나요? 그날의 기억을 조금 끄집어내 들려주세요.

혜리 저는 첫 스케줄이 네이버 온스테이지였어요. 아이 백일도 안 돼서 출연했는데, 예전엔 “한 번만 더 할게요.” 계속 부탁하던 게 그날은 한 번에 다 끝냈어요. 긴장하고 그러던 게 많이 없어졌죠.

유발이 엄마는 용감하다.

주연 나는 오히려 애 낳기 전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가 애 낳고 잠깐 생겼었어. 첫 스케줄이 박정현 언니 공연이었거든. 몸도 못 풀고 연말 투어 연습 들어가야 되는데 ‘사람들이 내가 애 낳고 연주가 전보다 떨어진다 생각하면 어쩌지?’ 싶고, 몇 년을 치던 곡인데 틀릴까 불안한 거야. 그럼 꼭 틀리거든. 미치겠는 거야. 근데 다른 사람은 별 신경 안 쓰더라고. 애 낳고 뼈가 다 벌어진 상태로 너무 아픈데, 티 내면 안 되는데… 출산 후 한 달 만에 열한 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했지.

혜리 유축도 했어?

주연 다 했지.

유발이 맞아, 그럴 땐 애한테 미안해서 더 하게 돼. 저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출산 후 2주 있다가 프랑스로 <더 보이스> 촬영을 갔어요. 아이한테 미안해서 완모를 하겠다 다짐하고 비행기에서도 수유하고 유축하고 그랬어요. 근데 유축해서 비닐에 넣어둔 모유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거예요. 비행기 안에 익숙한 엄마의 냄새가 나는데… 힘들게 유축한 걸 다 흘려서 너무 아까웠어요(웃음). 프랑스 도착해서는 방송을 열몇 시간 대기하며 네 시간마다 유축을 했는데요. 서양 스태프들은 엄마가 애 낳자마자 방송 촬영한다고 “멋있어. 난 널 응원해. 넌 멋진 엄마야.” 하면서 응원해 줬어요. 오픈하고 표현해 줘서 고마웠죠. 문제는 참가자들 움직임 통제한다고 스태프 100명이 제 유축 시간을 계속 공유하는 거예요. “유발이 유축 간다. 유발이 유축!” 100명이! 또 유축하고 나오면, “유축 잘했어?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 그걸 하루 종일 들으니까(일동 웃음). 그만 듣고 싶었어…. “이게 네 유축 가방이야?” 그러고.

지명 출산 후 겪는 신체 변화가 참 크고 힘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뮤지션으로서 어떻게 음악 작업을 이어왔나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주연 개인이 이어 오려고 했다기보단 주변의 도움이나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제가 추어탕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아직 어린애들을 놔두고 여기저기 일하러 다니긴 그렇고 잠깐만 할 게 없을까 싶어 낮 시간 동안 꼬박 5개월을 주 6일 나갔어요. 거긴 어르신들이 보양식 먹으러 많이 오시는데 매일 있다 보면 주기적으로 오는 분들은 다 파악되거든요. 국수 소면만 네 개 아저씨, 밥은 안 드시고. 저기 걸어오시는 초록색 모자 할머니, 부추 많이. 벙거지 모자 아저씨는 산 타고 오셔서 인삼주. 미리 세팅해 놓으면 그걸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가끔 어르신들이 용돈도 주시고 쌍둥이 엄마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말들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아, 내가 음악이 아닌 다른 걸 해도 행복할 수 있구나 싶었고요. 나중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돌아왔을 때도 내가 지키겠다고 아등바등 한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 음악 하는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생각했죠.

유발이 주변에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고마운 게 많아져요. 합주란 이런 거였구나. 모두가 함께 시간을 맞추고 누군가가 열심히 악보를 편곡해 주는…!

지명 육아가 음악 작업에 영향을 준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마담꾸꾸 사운드북도 그렇게 만들어졌나요?

유발이 네. 육아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들을 음악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음악을 좋아하는데 사운드북이라는 장난감 책을 반복해 듣는 걸 보며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거든요. 음악적으로도 사운드적으로도 상업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가상 악기로 녹음되거나 반복적이고 자극적인 단순한 음악들이었죠. ‘조금 더 낭만적인 음악을 들려줄 수 없을까? 다양한 음악을 들려줄 수 없을까?’라고 생각하다 자연스럽게 제가 만들게 된 거죠. 엄마, 아빠와 함께 듣기에도 아름다운 다양한 매력의 음악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요. 사실 마음먹으면 금방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1년 반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만들었어요. 사운드북에 들어간 곡 중에 ‘살라드 드 프휫Salade de Fruits’이라는 노래를 본이, 선이가 좋아해서 정말 어렵게 저작권을 샀어요. 녹음실 갈 때까지는 좋았죠. 애들이 사탕 먹고 싶다 그래서 사러 가면 사탕 안 사고 초콜릿 사고 그러잖아요. 애를 다그쳐서 부르게 할 순 없으니까 집에서 연습을 많이 시켰어요. 그러면서 아이는 이 노래가 지겨워진 거죠. 돈 주고 녹음실을 빌렸는데 어두워, 낯설어, 다 칙칙한 옷 입은 아저씨들이야, 이 노래가 싫어진 거야… 녹음을 겨우 했지만 녹음분을 쓸 수가 없었어요. 애들은 끊어 갈 수가 없으니까 통으로 녹음을 했는데, 결국엔 집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는 걸 찍어둔 영상에서 음원을 추출했어요. 목소리가 그게 제일 예쁘더라고요. 문제는 애들이 이젠 안 들으려고 하는 거예요. 1년 6개월을 못 자고 만든 건데! 좌절했어요. 다행히 디자이너 분이 그림이랑 영상을 예쁘게 만들어주셔서 다시 또 듣게 됐지만요. 그런 힘든 과정들이 있었지만 가장 뿌듯했던 작업이에요. 앞으로 몇 년간 헌신해서 계속 하고픈 작업이고 격려와 애정이 필요해요. 올해는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이에요. 코로나19로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 전환된 해외 북페어에 나가거나 국내에선 유아교육전에 참여해 볼 생각이고요.

지명 마담꾸꾸가 올해도 아이들과 엄마들의 사랑을 듬뿍 받겠어요. 혜리 씨는 유튜브에 피아노 악보를 올리고 있죠?

혜리 저는 스트레스 안 받고 아름답게 들리는 음악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해서 연주하기 쉬운 피아노 악보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어요.

지명 영상 보면서 따라 해봤는데 괜히 제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 같고 기분 좋더라고요.

혜리 맞아요. 나를 조금 다듬고 돌보는 시간이 필요할 때 따라 해보면 좋아요. 그리고 아이랑 뭘 해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두 명이 같이 연주할 수 있는 연탄곡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가 피아노를 잘 몰라도 귀엽고 재밌게 쳐볼 수 있는 걸 만들어서 판매도 해보려고요. ‘젓가락 행진곡’이나 ‘고양이 왈츠’ 같은 귀엽고 쉽게 칠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어요. 

지명 꼭 만들어주세요! 책이 나오면 아이와 함께 쳐보고 싶어요(웃음). 이번 호의 주제가 리추얼이에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나를 위해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하는 습관이 있다면요?

혜리 나다운 시간을 가지기 위해 제가 꼭 사수하고 싶은 건 이국의 향을 태우고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에요. 반드시 아무도 집에 없는 시간, 빈집이어야 하고요. 그리고 고요한 산책. 최근에 또 시작한 건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의 책을 원서로 10분씩 짧게라도 필사하는 거예요. 멋진 단어를 발견하게 되거나 익숙한 표현이 새로운 뉘앙스로 다가올 때 참 좋더라고요.

유발이 저는 아직은 틈이 없어요. 원래 자기 전에 스트레칭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모든 게 다 무너져서… 집이 20평, 30평 되어도 잘 때는 아이들 틈에 껴서 30센티 안에 웅크리고 자잖아요. 그 시간에 괴로움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주연 저는 매일 기도하는 거, 그리고 아침에 락 음악으로 애들 깨우는 거예요. 메탈로 시끄럽게 소리 빡 올려서. 그럼 애들이 콩벌레처럼 이불을 뒤집어써요. 전 노래 따라 부르면서 애들 깨우고요(웃음).

지명 와, 좋은 방법인데요? 이불을 돌돌 말고 꿈틀대며 일어나는 아이들도 귀엽고요. 마지막으로 유발이 씨의 노래 가사를 빌어 질문하고 싶어요. “행복은 무얼까? 사랑은 무얼까? 사는 건 무얼까?”

유발이 삶은 이런 거지하다가 결국 모르겠어서 스스로 질문하는 가사를 썼어요. 제가 오히려 그 답을 듣고 싶어요.

주연 행복도 사랑도 내 걸 나눠서 같이 즐거울 때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는 것도 똑같고요. 더불어 사는 거니까. 나 혼자 사는 거 아니고.

혜리 요즘 제가 느끼는 행복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거, 가까이 손에 잡히는 거, 자고 있는 아이의 이마를 쓸어내리거나 편안한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거, 지친 하루 끝 안전한 이불 속에서 이만하면 충분하다 느끼는 거, 지키기 위해 늘 책임과 대가가 따르는 거, 그래서 늘 성실하게 찾고 가꿔야 하는 거? 이 모든 걸 알아차릴 때 비로소 내게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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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지명

포토그래퍼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