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질병

Modern Disease

‘건강하다’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의미한다.

거의 20여 년을 망설인 끝에 치과를 방문했다. 망설임과는 별개로, 이 하얀 공간을 방문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마취와 신경치료, 그리고 중간중간 목구멍에서 콧구멍까지 침이 가득 고일 때마다 떠오르는 걱정들.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는 거 아니겠지?’ 이를 닦지 않아 발생하는 후회와 고통은 어릴 때부터 청소년기를 거치며 꽤 주기적으로 반복된 일이었다. 이미 안락한 치과 의자가 한 단계 더 안락해지기 위해 뒤로 넘어가는 무렵, 후회는 그 무렵에 쏟아져 내리곤 했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의 방문은 후회를 동반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청결함이나 성실함 따위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앞니가 빠지고 새로 돋아나야 할 이가 잇몸 뒤로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왠지 새 이가 주소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하얀 표식은 분명 다른 치아들 사이에서 한발 앞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앞쪽에서 봐도 하얀 새 이의 표식이 보였다. 치아가 잇몸의 아래쪽이 아니라 앞쪽으로 자라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이거 뻐드렁니 되겠는데? 틈날 때마다 자꾸만 밀어 넣어…. 알았지?”

마치 아파트 높은 곳에 서서 서툴게 주차하는 차량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우리 가족은 매일 내 입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라나는 치아의 주차 경로를 예측하곤 했다. 나는 틈나는 대로 치아를 밀어 넣고, 매일 밤 치아가 좀 들어간 거 같은지 물어보았다. 노력과 관심 덕분인지 치아는 아래로 곧게 자라났다. 하지만 앞니와 송곳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하고 한발 앞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른바 덧니라는 것이 생겨버린 얼굴은 개구쟁이 같은 상으로 변해버렸다. 

그 후로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면 치아를 교정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나누곤 했다. 내 생각에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편이었으며, 살짝 튀어나온 덧니를 보고 귀엽다고 한 사람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살짝 어긋난 치아가 삶에 불편을 초래한 경우도 없었기에, 치아를 교정해야 할 동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어느 표정엔 나도 알고 가족들도 아는 어떤 특이함이 있었다. 가족들은 늘 내가 웃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활짝 미소 지으려고 하는 순간 입술이 입가를 맴돌며 전해지는 어떤 감정이 있었다. 비릿함? 안쓰러움? 비굴함? 하지만 그 단어 중 어느 것도 정확히 맞는 것은 없었다. 20여 년이라는 시간은 치아를 교정하는 이유를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치아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과 엑스레이 사진을 번갈아 보며, “그다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네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이 있어서 교정하려는 것인지도 물어봤다. 나는 긴장을 조금 누그러트릴 목적으로, “얼굴이 가난해 보이는 거 같아서요….”라고 이야기했다. 의사는 내 의도를 받아들여서 조금 웃어주었다. 그리고 손으로 아래턱을 잡고 이렇게 저렇게 얼굴을 돌려 본 후 격려하듯, “아무래도… 교정을 하면 더 건강해 보이겠죠.”라고 이야기했다.

이 얼마나 격조 높은 언어생활인지! 그날 드디어 나는 치아를 교정하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의사 선생님은 내가 꺼내놓은, 날카롭게 갈아놓은 ‘가난’이라는 단어를 다시 주워 담아 ‘건강’이라는 ‘건강’한 표현으로 되돌려주었다.

요즘 유독 건강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인스타그램에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스니커즈 광고는 건강한 삶을 이야기하고 교보문고 서가에 놓인 싱그러운 표지의 책에서는 건강한 식탁을 이야기한다. 치약 껍데기에 그려진 미소를 건강한 미소라고 부른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어린 시절 건강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릿속에 연상된 것들은 줄넘기와 우유 그리고 비누와 칫솔 등이었는데, 요즘 건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전과는 부쩍 다른 것들이 연상되곤 한다. 

건강한 삶이란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전하게 사고하고, 원만한 관계를 맺는 좋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삶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가벼운 운동화와 한 손에 둥글게 말아 쥔 가벼운 책 한 권과 결코 싸진 않지만 그 가격에 맞는 값어치는 톡톡히 하는 순면 셔츠까지 포함하는 것일까? 

건강한 식탁은 맵고 달고 짜지 않은, 그래서 신체의 순환에 부담을 주지 않는 좋은 식단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채소를 심는 데 필요한 영국산 모종삽과 투박한 듯 보이는 흙색 자기 그릇, 스테인리스스틸 상판의 싱크대가 자리 잡은 가로로 긴 주방까지도 포함하는 것일까?

‘건강하다’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미 건강한 상태인 나 같은 사람에게 쓰기에는 적절치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만약 건강 때문이 아니었다면, 치아에 고무줄을 감고 육류와 과일을 잘게 썰어 먹어야 했던 2년간의 고생은 과연 무엇 때문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병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닌데도 건강에 대한 욕구가 범람하는 이 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건강을 위해 치아에 고무줄을 감고, 건강을 위해 쇼핑을 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건강이라는 단어를 전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게 아니라면, 요즘은 탈이 쉽게 나는 시대인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미디어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의 등을 떠민다.

학원 전단지에 프린트된 강사의 눈빛은 지금 당장 학원에 가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곤 했다. 학교 사물함에 붙은 각종 기사 시험 리스트는 자격증을 따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촌스러워 보이게 하고,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하기 어렵게 한다. 요즘에 이르러 그런 강요가 자고 먹고 숨 쉬는 데까지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자세를 유지해 주는 메모리폼 매트리스와 비교적 단단한 독립형 스프링 매트리스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깔끔하고 열 전도성이 좋은 법랑 냄비와 열 내열성이 좋은 주물 냄비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어렵게 주물 냄비를 선택한 후에는 그것을 길들이는 방법에 대해 학습하도록 만든다. 통기성이 좋은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오트밀을 직접 굽지 않고, 천연 솔로 된 수세미를 사용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 그런 불안이 현대인에게 쉽게 걸리는 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번 웃을 때마다 떠오르는 어색함과 가난함의 기운을 애써 눌러야 했던 비슷한 증상의 환자로서 그 증상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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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