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S STYLE 두 남자의 스타일

『작지만 확실한 행복』, 『죽기 위해 사는 법』

『작지만 확실한 행복』, 『죽기 위해 사는 법』

두 남자의 스타일

옷 잘 입는 사람은 많아도 진정한 스타일이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든 때에 독특한 두 아저씨의 글을 읽으며 스타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일하는 게 죽기보다 싫어지거나 복잡한 세상사나 버거운 의무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 사람들은 뭘 할까? 그럴 때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뜬 스타들의 공항패션을 미친 듯이 클릭하고 있다. 좀 더 필을 받아 할리우드 파파라치 사진까지 찾아보면 어느덧 하루가 훌쩍 간다. 이런 나를 누가 볼까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옷 잘 입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정말 밤낮으로 노력했다. 쇼핑도 할 만큼 했고 패션잡지도 볼 만큼 봤다. 벽에는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들을 잔뜩 붙여두었고 짬이 날 때마다 옷장 속의 옷을 꺼내 패션쇼를 했다. 반드시 사야 할 패션 아이템 리스트를 매일같이 수정했으며 아침이면 옷을 여러 벌씩 갈아입느라 지각도 많이 했다. 그렇게 10년쯤 지난 어느 날 나름대로 시크하게 꾸민 만족스러운 차림으로 당당하게 거리를 걷다가 어느 가게 앞에 붙은 거울에 비친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저 허름한 아줌마는 대체 누군가.

내가 10년을 노력하고도 겨우 허름한 아줌마의 비주얼을 갖게 된 이유는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케이트 모스의 록 시크 패션이야말로 나에게는 쥐약이었다. 나는 케이트 모스와 닮은 구석도 없고 그 여자처럼 말라비틀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차이가 그토록 극명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인생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재미가 없었던 반면에, 케이트 모스의 인생은 그 자체로 록 시크라는 점이었다. 록 시크 스타일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그 여자처럼 나이 어린 뮤지션과 지옥 연애도 하고,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애도 낳아보고, 철마다 록페스티벌에 가서 담배를 물거나, 심지어 마약까지 해봐야 느낌이 살 텐데, 내 배짱으로는 그러고 살 자신이 없던 것이다. 

스타일이라는 것이 패션에 그 사람의 삶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을 깨우친 뒤에는 ‘옷한테 밀리면 안 돼!’라는 기개로 가득 찬 사람보다 옷이 피부인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간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건축가 승효상의 사진을 볼 때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안경부터 웃는 모습까지, 어느 하나 튀는 곳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나 같은 사람처럼 옷장 서랍을 매일 같이 뒤지면서 ‘오늘은 대체 뭘 걸치고 나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일도 아마 없겠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구겨진 셔츠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녀도 어떻게 그렇게 멋질 수 있는 건가요? 

여자가 세 명 있으면 일정도 세 배가 된다. 신경 쓰는 것도 세 배, 선물도 세 배,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전부 세 배가 필요하니, 웬만큼 능력 있는 남자가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다.
확실히 그렇게까지 굉장한 일을 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 남자는 아무래도 일도 다른 사람의 세 배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젊은 첩을 만드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반사회적 행위일지 모르지만, 고생하는 여자에게 용돈을 주거나 보살피거나 하는 것은 사회복지가 아닌가.

– 『죽기 위해 사는 법』 중에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저씨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징그러운 노인네? 재수 없는 마초? 일본의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책을 읽다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게 진담인 걸까, 농담인 걸까. 그러다 나는 영화 속의 기타노 다케시를 떠올린다.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을 비틀면서 웃는 그의 잔혹한 표정을. 그래, 이건 그냥 기타노 다케시야. 그가 내뱉는 말은 진담인 동시에 농담이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질 바에야 그냥 나나 잘살자는 생각이 든다. 아마 기타노 다케시 역시 남들이 그러기를 원할 것이다.

인터뷰할 때 “나만큼 돈을 벌고, 나만큼 행복해지면 된다. 남들이야 아무래도 좋다”라고 말하면, 옛날 기자들을 깔깔 웃었다. 그런 인정머리 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모두 갖고 있었으므로, 예사로 웃어주었다.
하지만 요즘은 걸핏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진지한 얼굴로 듣는 기자들이 있다. ‘어, 이 기자는 진짜로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기는 건가.’ 그럴 때 “지금 한 말은 개그였네” 하고 정정할 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중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서문에서 지난 몇 년간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기타노 다케시를 꼽으면서, ‘우파들이 진화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라 평했다. 기타노 다케시는 선하고 정의로운 무언가를 주장하는 대신 자신의 삶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나는 도박만은 하지 않겠다, 이런 식의 터부를 굳이 내 속에 만든다”고 말하면서 “뭐든지 안 가리고 하면서 자신을 바겐 세일하는 건 싫으니까”라고 이유를 댄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없기에 작은 일로도 큰 소동을 피운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기 나름의 법이 있고, 그건 남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쪽이 좋다는 게 아니다. 내게는 나의 삶이 있고, 벽에 부딪혔다고 그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얼마나 자유롭게 사는가 하는 것은 얼마나 자신을 규제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틀이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다. 자유는 공짜로 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이다.

– 『죽기 위해 사는 법』 중에서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품에 끌어안은 공을 빼앗으려는 다른 선수들의 태클을 몸으로 막아가며 끝도 없이 달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에게는 사는 게 쉽거나 편할 리가 없다. 실제로 기타노 다케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쓴 신문사를 찾아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기도 했고, 불륜 사진이 주간지에 실리자 열이 받아 만취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큰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 그의 얼굴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도 그 사고 때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세상과 불화하는 것을 불사하고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하면서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삶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스타일이라는 것은 옷차림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기타노 다케시가 말했듯이 ‘사는 것이 왜 가치가 있는지를 일반 인간이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건 웃긴 얘기’임에도 ‘결론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 자체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는 각 챕터의 앞장을 그가 자주 가는 식당 주인의 짧은 글로 시작한다. 구마 씨라고 하는 식당 주인은 자신이 가까이서 본 기타노 다케시는 상식적이고 배려가 넘치고 부드럽고 겸허하며 눈물도 많은 남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후배를 위해 식사비를 계산하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몰래 자리를 떠버리는 사람이고,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온 그의 팬클럽 회장(그래 봤자 그냥 시골 청년)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함께 가라오케에서 신나게 노는 사람인 동시에, 가장 더러운 곳이 가장 깨끗해야 한다고 믿기에 지저분하다면 남의 가게 화장실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스타일 있는 꼰대 아저씨, 무진장 멋있는 데다 섹시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케이트 모스가 처음으로 패션이 무엇인지를 배웠던 순간이 클럽에 가서 사람들이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입은 걸 본 순간이라고 대답했다면, 내가 진짜 패션에 관해서 배운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을 때라고 대답하겠다.

이 작가는 첫 소설로 신인상을 받게 됐을 때 전혀 작가답지 않은 복장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일부러 세탁기에 넣고 돌려서 구겨지게 만든 정장에 스니커즈를 신은 차림으로 말이다. 

‘어떤 면도질에도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는 말 역시 내가 매우 좋아하는 격언에 해당하는 예문 중의 하나다. (중략) 요컨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날마다 계속하고 있노라면 거기에 저절로 철학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렇게 풀이를 해주면 ‘뭐 별것도 아니구먼’ 하고 생각해버리지만, “어떤 면도질에도 그 나름의 철학이 있다”고 말하면 묘하게도 “응, 그래” 하고 설득당해 버리는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에서

대부분 작가가 술을 퍼마시고 밤에 글을 쓰고 막살아야 제대로 된 소설이 나온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이 작가는 새벽에 일어나 마치 노동자처럼 성실하게 글을 쓰고 남는 시간에는 마라톤을 했다. 그게 바로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의 스타일이었다.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알아나가는 것이 스타일을 갖기 위한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라는 얘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세상은 본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곳이지만, 종종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비정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든,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든, 그럴 때를 대비해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 같은 자신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서랍 속의 그 팬츠들이야말로 당신을 지탱해줄 것이고, 결국 그것이 우리에게 스타일이 필요한 진짜 이유일 테니까 말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 | 366쪽 | 148x210mm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하는 일상의 행복. 맥주와 두부를 즐겨 먹고, 개미를 무서워하고, 이사하는 걸 좋아하고, 정든 고양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그의 모습을 책 한 권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무얼까’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죽기 위해 사는 법
기타노 다케시 지음 | 씨네21 | 236쪽 | 148x210mm

일본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병상 에세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1년 정도를 병상에서 보내며 그가 쓴 글.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고비인데, 그는 그 고비 안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상을 면밀하게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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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디터 박선아

글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