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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가들의 봄날
옛 사람들에게 그림은 여가이면서 놀이였다. 우리네 선비들은 글을 쓰다가도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가 시를 쓰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그림을 그려놓고 친구들과 모여 풍요로운 감상을 즐겼고, 자신들의 감상을 그림 곁에 차곡차곡 글로 남겼다. 그들은 그림에 있어서는 늘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감상자였다. 봄기운이 가득한 우리의 옛 그림을 통해 창작자와 감상자의 마음을 오가며 노닐어보자.
윤두서, 쑥 캐기, 17세기, 25×30.2cm, 모시에 수묵, 개인 소장
봄을 주제로 한 옛 그림 중 제일 아끼는 작품은 윤두서의 ‘쑥 캐기’다. 실제 윤두서는 정신세계를 잘 표출한 자화상으로 유명하지만 하층민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서민풍속화를 많이 그렸기에 조선 회화사에 있어 업적이 크다. 가파른 언덕길에서 땅을 두리번거리며 쑥을 찾는 아낙들의 눈빛과 손에 이미 봄이 가득하다. 두 여인 모두 치맛자락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쑥 캐기에 나섰다. 한 여인은 혹시나 자신이 놓친 쑥이 있을까 봐 내려오던 언덕을 목을 젖혀 돌아보고, 한 여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닥에 보물처럼 숨겨진 쑥을 캐기 직전이다.
이 그림에는 꽃도 없고, 색도 없다. 하지만 그림을 넌지시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봄 내음이 난다. 하늘도 산도 여백을 한가득 내어줬다. 넘치는 그림은 보는 이가 앉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데 비어 있는 그림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앉고 싶게 만든다. 우리 옛 그림은 늘 넘치지 않아서 좋다. 비어 있는 봄 하늘을 가르는 제비 한 마리 덕분에 그림은 비로소 조화로워진다.
이인문, 소년행락, 27.5x21cm, 비단에 담채, 간송미술관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이 오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옛 그림 중 ‘소년행少年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이인문의 이 작품도 그중 하나다. 봄날의 오후 한 청년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가는 걸까. 말의 움직임까지도 경쾌하다. 날씨 좋은 봄날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달리는 이 청년에게 ‘벚꽃 엔딩’을 배경음악으로 틀어주고 싶다.
조선의 화가들 중에는 소년행을 주제로 그림을 남긴 이가 많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은 ‘소년시절 행락’을 시로 읊었다. 소년이 비단옷을 입고 호기롭게 백마를 타고 여인을 만나러 간다는 내용의 이 시는 나이가 들면 누릴 수 없는 젊은 날의 행복을 강조한다. 그 행복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 아닐까?
소년행(少年行) – 이백(李白) –
오릉의 소년들 금시 동쪽을 지날 때
은안장 백마 타고 봄바람을 가르네
떨어진 꽃 짓밟고서 어디로 놀러가나
웃으면서 들어가니 호희의 술집이네
五陵年少金市東
銀鞍白馬度春風
落花踏盡遊何處
笑入胡姬酒肆中
현진, 낚시질, 연대 미상, 37.5×63.1cm,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여유가 가득한 밤이다. 처음 그림을 볼 때는 밤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그저 계곡 어디선가 낚시를 하는 한 남자가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니 이 장소는 높은 산 같은 곳이고, 남자는 절벽 아래에서 허공을 향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그림의 중앙에 있는 둥근 달이다. 허공을 향해 낚시질을 하는 이 남자는 지금 물에서 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봄밤에 달을 낚고 있는 것이다. 물에 비친 달의 그림자일지, 진실로 절벽 옆에 뜬 달일지 상상하기 나름일 터, 하염없이 낚싯대를 들고 기다려 봐도 봄밤이 다 지나가도록 달은 잡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는 시간을 낚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은 ‘현진’이다. 실제 현진이 이름인지 호인지는 안타깝게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미술사에서 사라진 화가의 그림이 너무 뛰어날 때 오히려 안심이 된다. 존재마저도 신비로운 화가의 발자취를 오로지 그림으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봄밤에 만날 우리의 보름달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본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
카롤린느 샹페띠에 | 드라마 | 프랑스 | 99분
한국의 서민적 풍속화가 꽃피운 시기를 조선 후기로 본다면, 프랑스 미술이 꽃피던 시기는 1870년대 이후 인상파가 활동하던 시기가 아닐까? 프랑스 인상파의 여성 아티스트 베르트 모리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베르트 모리조와 에두아르 마네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열어두는데, 두 사람의 내면과 함께 등장하는 많은 장면들이 곧 작품이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화가라는 직업을 이어나가길 포기해야 했지만, 베르트 모리조는 언니들과는 다르게 결혼보다는 화가라는 삶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이겨내야 했던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가족과 사회적 시선이 올곧이 느껴지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의뭉스럽게 남겨진 마네와의 스캔들도 서술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가 아닌, 마네의 동생과 결혼했다는 점!
옛 그림 읽는 법: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
글 이종수 | 유유
멀게만 느껴지는 옛 그림, 이 책 하나면 얼마든지 자신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저자는 모든 그림의 첫인상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림의 첫인상…. 너무 따뜻한 표현이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옛 그림들의 첫인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독서가 될 것이다.
<모던민요>
송소희 X 두번째달
뉴에이지 밴드 두번째달과 국악 소녀 송소희의 콜라보 <모던민요>는 경기민요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편곡해 만든 앨범이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국악은 어렵거나 따분하다는 고정관념 자체가 무너진다. 송소희는 좀더 새로운 국악을 표현하고 싶어 밴드 두번째달에게 콜라보를 제안했다고 한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과 송소희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울려 봄밤과 함께 듣기 딱이다.
에디터 이다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