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piece Story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미술 교육인, 그리고 그들의 그림

Franz Cizek, 위키백과

Friedl Dicker-Brandeis, 위키백과

19세기 후반 다양한 현대 미술의 출발선 위에는 현대 아동 미술 교육도 있었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많은 화가들 중 일부는 훌륭한 미술 교육인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는 스승 베로키오가 있었고, 앙리 마티스에게는 스승 구스타브 모로가 존재했기에 그들은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었다. 반면 미술 교육인들은 교육자로서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질수록 화가로서의 업적은 간과되는 아쉬움도 겪어야 했다. 그중 어린이 미술 교육인들은 더욱 그랬다. 지금은 어린이 중심의 미술관, 어린이를 위한 전시 같은 콘텐츠가 활발한 시대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 늘 보호하고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젊은 화가들은 어린이들의 내재적 자유로움을 인정하고 어른의 간섭 없이 미술적 표현을 하도록 시도했다. 좋은 화가이자 어린이들을 위한 열린 미술 교육이인이었던 예술가의 작품을 살펴보자.

아이들의 그림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

프란츠 치젝

19세기에 이르러 산업 혁명과 정치적 혁명을 거치며 공립.대중 미술 교육이 확산되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미술 교육은 대부분 전문 미술가를 양성하거나 직업 훈련의 범위에 속해 있었다. 아동을 독립된 정신 영역으로 인정하면서 그 성장 과정으로 미술 교육을 바라보는 구성주의적 접근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치젝Franz Cizek의 역할이 구심점이 되었다. 지금의 체코 지역에서 태어난 치젝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화가로 활동하며 아이들이 많은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우연히 만난 어린이들이 성인의 간섭 없이도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며 매우 창조적인 경향을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1897년부터는 어린이와 청소년 미술 수업을 시작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빈 미술공예학교의 ‘아동 미술을 위한 특별과정’에서 7~12세 아동에게 미술 교육을 무료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모더니즘 화가 동료와 후배들이 어린이 미술 교육의 중요성을 느꼈고, 치젝을 따라 이를 알리는 데 힘썼다. 치젝의 가르침을 받은 요하네스 이텐, 빅터 로웬펠드 같은 여러 예술가들은 화가인 동시에 미술 교육가로서 유럽 곳곳에서 활동했다. 치젝은 표현주의가 대두되던 오스트리아에서 화가로 활동했으나 알려진 작품은 많지 않다.

Franz Cizek(Herta Zuckermann age 14), Spring – Summer Wind, 1920, 61.2×58.2cm, 석판화

치젝을 대표하는 이 판화는 그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술을 제대로 된 작품으로 인정했음을 알려준다. 빈의 쿤스트게베르베슐레에 다니던 헤르타 주커만이라는 열네 살 학생이 그린 이 작품은 1920년 치젝의 도움으로 석판화로 제작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바람이 불고 나무가 많은 들판에 부끄러운 듯한 표정의 한 소녀가 꽃을 한 움큼 안고 있다. 치젝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그린 작품을 예술로서 존중하며 작품화해서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안타깝게도 1934년 나치가 학교 문을 강제로 닫으라고 명령하여 치젝은 더 이상 학교에서 어린이 미술 교육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고 1946년 빈에서 80세의 나이로 삶을 마친다.

나치의 학대를 피해 미술을 가르치다

프리들 디커 브랜다이스

치젝의 제자들 중 가장 가슴 아픈 삶을 살다간 미술 교육인은 프리들 디커 브랜다이스Friedl Dicker-Brandeis일 것이다. 디커는 빈 미술공예학교의 치젝 아래에서 어린이 미술 교육의 중요성과 창의성의 원리를 배웠다. 그 후 바우하우스로 이동해 1919년부터 1923년까지 직물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고 여러 잡지 표지와 포스터 디자인을 담당하며 다재다능하게 미적 감각을 드러냈다. 디커는 바우하우스에서 여러 스승을 만나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추상 회화의 거장 파울 클레다. 그녀는 클레의 가르침에 따라 어린이들에게 미술 교육을 할 때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고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거나, 화분을 관찰하며 어린이들이 대상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했다. 그래서인지 디커 본인 역시 초상화나 정물화를 많이 남겼다.

Friedl Dicker-Brandeis, Begonia at the window, 1934~1936, 49.5cmx60.5cm, tempera on paper, Courtesy Jewish Museum, Prague

프라하로 이주한 디커는 좀 더 본격적인 미술 교사로 활동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42년 겨울 남편과 함께 나치 강제 수용소 중 한 곳인 ‘테레진’으로 추방된다. 수용소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녀는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어린이들을 만났고 나치의 눈을 피해 꾸준히 미술을 가르쳤다. 종이와 미술 도구를 밀반입해 수용소로 들여오고, 수용소 밖에 있는 지인을 통해 힘들게 고흐나 베르메르 작품 이미지를 구해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감상 교육도 진행했다. 나아가 아이들이 미술 활동을 마치면 서로의 작품을 보고 토의하는 시간도 만들었다. 공포에 둘러싸여 하루하루가 슬픈 어린이들에게 디커의 미술 수업은 유일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희망을 그리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일찍 떠나보낸 디커는 그렇게 테레진 수용소의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1944년 가을 디커는 결국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동해 삶을 마감한다. 아우슈비츠로 이동되기 전 그녀는 테레진 수용소에서 5천 명의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과 시를 두 개의 여행 가방에 감췄고 10년 뒤 이 가방이 발견되면서 디커의 미술 교육이 세상에 알려진다.

예술의 본질은 ‘자유’다. 나치의 억압과 횡포 속에서도 디커가 만난 어린이들의 그림 속에는 자유가 있었다. 디커는 그 시기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예술의 자유로운 힘을 어린이들의 그림에서 발견하고 그리워한 것 아닐까. 서로가 미술 치료사라고 말하는 요즘, 치료받는 자는 없고 치료해 주겠다는 자만 넘쳐난다. 진정한 미술 치료의 뿌리는 디커의 정신에 있었음을 알리고 싶다.

BOOK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글 안영주 | 안그라픽스

1919년 4월 1일 독일 바이마르에서 개교한 바우하우스는 디자인과 건축, 미술 교육의 지향점으로서 미술 교육인인 나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바우하우스를 통해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요하네스 이텐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한 화가들은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남성 교수나 예술가들이 바우하우스를 이끌어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바우하우스는 설립 당시부터 여성 예술가의 비중이 5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던, 숨겨지고 축소된 바우하우스의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라.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심장이 뛸 테다.

MOVIE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 | 드라마 | 이탈리아 | 116분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가장 좋아한다. 낙천적이고 천진난만한 성격의 주인공 ‘귀도’는 수용소로 끌려와 어린 아들과 함께 산다. 어린 아들을 걱정한 귀도는 아들에게 지금부터 재미있는 게임 여행을 떠나는거라고 말한다. 수많은 고초 속에서도 아들이 상황을 눈치 챌까 봐 재미있는 표정 연기를 하던 귀도. 그는 총살을 당하러 가는 순간까지 아들에게 윙크를 하며 우스꽝스러운걸음을 걷는다. 가장 슬플 때 가장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이라고 했던가? 이세상 모든 영화 속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배역이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라고 할 것이다.

MUSIC

퇴폐 음악

1937년 나치는 자신들의 이상에 맞지 않는 자유로운 미술을 ‘퇴페 미술’로 간주해 <퇴폐미술전>을 열었다. 모순적이게도 그 전시에 포함된 화가들은 샤갈, 콜비츠, 칸딘스키, 뭉크, 피카소, 클레 등 112명이었는데,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훌륭한, 모더니즘의 혁명을 이끈 화가들이었다. 나아가 나치는 1938년 자유로운 음악을 ‘퇴페 음악’으로 간주했다.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 <퇴폐음악전>에 전시된 작곡가들의 모든 음악에 딱지를 붙여 금지시켰다. 하지만 다행히도 데카 레이블에서 출시된 이 음반을 통해 우리는 그 시절 퇴폐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도전해 보자. 90년 전 나치의 귀에는 어떤 음악이 자유롭게 들렸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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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