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piece Story

트롤의 화가,테오도르 키텔센

트롤의 화가, 테오도르 키텔센

작년과 재작년 북유럽 여행에 빠진 나는 한 달간 스웨덴을 다녀와 다시 일을 하고, 돈을 모아 또 핀란드로, 덴마크로 떠나기를 반복하며 북유럽의 미술관을 행복하게 누볐다.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새로운 화가들을 주머니에 참 많이도 채워 왔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테오도르 키텔센Theodor S. Kittelsen’이다. 노르웨이의 작은 도시 베르겐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이 화가를 한국으로 돌아와 책 《아스비에른센과 모에의 노르웨이 옛이야기 1871》에서 다시 만났다. 괴상한 모습의 트롤, 안온한 분위기의 숲, 평범한 사실주의적 그림들…. 책에는 한 사람이 그린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그림이 있었다.

 

테오도르 키텔센, Self-Portrait, 1891, 캔버스에 유화



노르웨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테오도르 키텔센, Andersnatten, 1910, 캔버스에 유화

노르웨이의 전래동화 삽화를 많이 그린 테오도르 키텔센을 두고, 시인인 얀 에리크 볼Jan Erik Vold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 예술가 없이 노르웨이는 노르웨이일 수 없다.”

이 얼마나 멋진 칭찬인가? 적어도 후배 예술가가 선배를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테오도르 키텔센은 풍경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의 동화와 전설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그는 경제적으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십대 후반 추천을 받아 독일 뮌헨으로 미술 유학을 갔으나 형편이 어려워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독일 신문잡지사 직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다시 노력해 188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유학생활을 마친 5년 뒤 노르웨이로 귀국해 미술 활동을 이어갔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아카데믹한 화풍보다는 자신만의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림과 글을 함께 쓰는 작업도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노르웨이에서는 인지도 높고 존경받는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명성이 희미하다. 세상을 떠날 때도 가난에 괴로워하며 삶을 마감했다. 평생 빈곤하게 살다가 떠났음에도 그가 그린 풍경화는 늘 노르웨이 특유의 자연의 풍만함을 선사한다. 그의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삼림욕을 즐기는 나를 발견한다.



머리 빗기를 좋아하는 괴물
‘트롤’을 아시나요?

테오도르 키텔센의 삽화가 수록된 그림책 《아스비에른센과 모에의 노르웨이 옛이야기 1871》을 읽다가 당황스러운 장면을 만난 적이 있다. 어마무시한 괴물인 트롤이 노르웨이 민화 속에서는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덩치가 산만 한 트롤은 때로는 진짜 산처럼 표현되기도 하고,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나는 그가 그린 트롤을 볼 때마다 웃지 않은 적이 없다. 머리를 감지 않아 먼지가 잔뜩 끼어 보이는 외모에, 신발에 구멍이 나 발이 튀어나왔다. 등에는 총총 나무가 자라고, 트롤의 뒤로는 해가 몸을 뉘고 있다. 

오늘 이 트롤의 하루는 어땠을까? 밖에서는 큰소리를 치며 힘을 내던 당당한 사람도 혼자 있는 시간에는 외롭고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늘 힘이 세고, 정이 없고, 무서울 것 같은 괴물이 순수하고 온순하게 표현될 때 나는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트롤같이 강하면서도 서툰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테오도르 키텔센은 한 캐릭터의 양면성을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으면서도 소박하고 따뜻하게 표현해내는 데 재주가 있는 게 분명하다.

 

테오도르 키텔센, 트롤의 머리를 빗겨주는 공주, 1911, 캔버스에 유화

위 그림은 트롤이 마을의 공주를 잡아가 작은 빗을 주고 자신의 털을 빗겨달라고 한 장면이다. 공주까지 납치하는 대범한 행동을 하면서, 고작 한다는 일이 난롯가 앞에서 머리를 빗겨달라는 일이라니, 이 전래동화가 너무 귀여워서, 나 역시 화가 날 때마다 머리를 빗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뜨거운 열이 나는 순간에 스스로 머리를 빗으며 그 빗이 나를 쓰다듬으면, 내 마음도 저 트롤처럼 온순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 트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자기를 쓰다듬어줄 작은 손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테오도르 키텔센의 작품은 늘 자연과 과거 속으로 우리를 침잠하게 만든다. 산속 가득 쌓인 눈밭, 그 눈 속에 파묻힌 소란함,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깊은 숲길…. 진취적이어야 하는 자기계발서에 지칠 때, 세련된 추상미술에 지칠 때,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지칠 때마다 나는 마음 편히 시골에 놀러가듯 그의 그림을 본다. 그리고 그의 그림 속에서 한참을 머물다 나온다.

테오도르 키텔센, December, 1890



BOOK AND MUSIC

북유럽 할머니가 들려주는 듯한 이야기

아스비에른센과 모에의 노르웨이 옛이야기 1871
글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예르겐 모에 | 옮김 이남주 | 오롯

노르웨이의 고원과 숲에서 불어온 북유럽 사람들의 옛날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노르웨이의 그림형제라 불리는 아스비에른센과 모에가 19세기에 펴낸 《새 노르웨이 민담집Norske Folkeeventyr Ny Samling》의 한국판이다. 더불어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테오도르 키텔센의 삽화가 이야기마다 함께 실려 있어 친근감을 가미한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던 북유럽의 전설과 민담이 가득한 이 책을 보는 내내 생경한 북유럽의 역사 속을 여행하게 되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감성 밴드

하이에즈어키트

이름의 뜻을 보고 의아했는데, 사전의 뜻이 맞았다. 술에 완전히 취한 이 밴드는 웅장한 심포니와 전자오르간이 음악 전체를 지배한다. 처음 듣고 놀라서 SNS까지 찾아가 그들의팬이 되었다. 경이로운 보컬은 노르웨이의 산속 어딘가에 나를 가둬버린다. 보컬 헬렌 하빅을 중심으로 결성된 혼성 밴드 하이에즈어키트Highasakite는 앨범 <사일런트 트리트먼트Silent Treatment>로 2014년 노르웨이 음원 차트에서 종합 1위를 한 이후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고, 2016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Lover, Where Do You Live?’를 부르며 더 유명해졌다. 지금도 난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 모두 다 좋지만 추천 곡을 하나 더 언급하자면 ‘Samurai Swords!’

 

장난꾸러기 요정들의 노래

아스크 캐롤Ask Carol은 아스크Ask와 캐롤Karoline이 결성한 2인조 밴드로 아스크는 노르웨이의 전설에 나오는 소년의 이름이다. 노르웨이 전설에 따르면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가 ‘아스크’라고 한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밴드 음악이 대부분 장난꾸러기 소년의 느낌이 강하다. 간혹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도 존재한다. 추천 곡은 ‘Gonna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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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