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ritten In Laughter

일러스트레이터 가애

가위를 움켜쥔 두 손가락 사이, 색색의 종이들은 조각 조각 떨어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아이의 웃음 한 번에 눅눅하고 구겨진 마음도 종이를 펼친 듯 한번에 펴지고 그곳엔 사랑이 남는다 말하는 가애 작가. 일도 육아도 그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 집과 작업실을 분리했다. 후암동의 한 평 남짓 작은 공간, 책상 위에도 작업대 곁에도 부엌 선반에도 그녀의 취향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그런 그녀를 꼭 닮은 우진이. 크르릉 쿵쾅 쿵쾅 공룡 흉내를 내고 엄마와 아빠의 책장에서 좋아하는 그림책을 꺼내 읽는다. 방 한가득 채워지는 아이의 커다란 웃음 한 번에 모두가 함께 웃고 또 웃었다.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무얼 하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균형을 잃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wee》 27호에서 일과 육아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셨죠. 사진으로만 봤던 작업실이 늘 궁금했는데,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반가워요. 저 역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길 기다렸어요. 그간 아기 그림책 《방긋, 안녕!》과 동물 그림 카드 《GO WILD》를 만들었고, 여러 그림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우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 맞는 책을 한 해에 하나씩 출간했네요.

 

작업실에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보여요. 소품 하나하나에 추억이 담긴 것 같고요.

제가 맥시멀리스트라 이 좁은 공간에 끝도 없이 물건을 들여오네요(웃음). 출판사 편집자님이 “이 공간의 물건들은 예쁘지 않으면 문턱을 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적 있는데, 맞아요. 온전히 제 취향의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요. 예전엔 가성비 위주로 소비했다면 지금은 나를 얼마나 기분 좋게하느냐에 초점을 맞춰 소비하게 돼요. 그렇게 하나둘 모으다 보니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공간이 됐어요.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여기 있으면 좋아요. 애정 하는 물건들은 벨기에 유학 시절에 사 모은 빈티지예요. 한국에서는 비싸서 모을 수 없었는데, 벨기에의 제가 살던 동네에는 진흙탕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확률로 괜찮은 아이템이 있는 숍들이 있었어요. 빈티지 편집숍이 아니라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물건들이 놓여 있는 창고 같은 곳이죠. 거기서 시간 보내길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곳에 다시 가는 꿈을 자주 꿔요. 돌아갈 시간이 촉박한 그런 꿈이요(웃음). 구입한 물건 중에 특히 좋아하는 건 붓을 씻는 물통으로 쓰는 도기나 믿기지 않을 만큼 싼 가격에 산 십자수 액자예요. 작업실 꾸밀 때 ‘유럽 어딘가에 있는, 코티지한 느낌으로 만들어보자!’ 하고 처음 했던 소비는작업실 천장의 빈티지 조명과 시계고요. 요즘 유행하는 미드 센추리 스타일의 조명은 아니지만 여기에 정말 잘 어울리지 않나요?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는 소품이 없네요! 구경하는 데 하루를 다 쓸 수 있겠어요(웃음).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이곳에 작업실을 따로 마련하신 이유는 일과 생활의 분리를 원해서였나요?

집이라는 공간이 편안한 만큼 일과 쉼의 온오프가 쉽지 않더라고요. 집에서 일할 때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쉬고 있어도 쉬지 않은 거죠. 언제든 앉아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언제나 일어나 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이가 생긴 후 잠시 동안은 집에서 작업했는데, 우진이의 낮잠 시간이 줄어들고 엄마가 하는 걸 같이 하려고 하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시간 날 때마다 작업실공간을 찾아봤는데 마침 괜찮은 곳이 가까이 나온 거예요. 아이를 둘러업고 보러 가서 남편과 상의도 없이 바로 계약했어요. 그때 우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지도 않았고 작업실에 오래 있을 상황도 아니었지만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망설임 없었죠. 지금은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생각해요.

 

그날 남편분 반응이 어땠어요?

싸웠어요(웃음). 저는 느낌이 오면 바로 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두세 번 생각하고 오래 고민하기보다는 결정을 내릴 때 좀 단순한 편이죠. 즉흥적인 면이 많고 하고 싶은 건 바로 해야 되고요. 결정적인 건 여기가 정말 저렴했어요.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런 곳이 없었고 내 주머니에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마침 남편이 파주에 일 때문에 나가있어서 장시간 연락이 안 됐는데 지금 계약 안 하면 금방 나갈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다 계약했어요. 남편은 저랑 성격이 정반대예요. 제가 급하게 뭘 결정하는 데 조금 불만이 있죠. 제가 사고 치면 항상 수습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남편도 여길 잘 써요. 동양철학 박사 과정 중인데, 공부에 집중이 잘되니까 서로 공간을 돌아가며 사용해요. 그간 작업실에서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고 각자 일도 공부도 잘하게 됐으니까, 이젠 제 결정이 맞았구나 하고 뒤늦게 인정하게 됐죠.

집과 작업실에서 작가님의 하루는 어떻게 채워지나요?

두 돌 이후에 우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선택 기준이 아주 단순했어요. 집과 작업실에서 가까운 곳,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곳. 저 역시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끼길 바랐고요. 운 좋게 작업실 바로 옆 어린이집에 대기 없이 들어갔고 여느 집처럼 바쁜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요. 아이를 등원시키면 1분 거리에 있는 옥탑 작업실로 출근해 지난밤 묵혀둔 퀴퀴한 공기를 환기시키고 작업 준비를 해요. 커피를 한 잔 사 올 때도 있고 작업실에서 커피나 차를 내려 마시기도 하고요. 오전엔 주로 메일 답장하고 급한 일정을 처리하는데, 그 시간이 후딱 지나가요. 간단히 점심 먹고 책상에 앉아 작업하다 보면 아이하원 시간인 네 시죠. 날이 좋으면 하원 후에 둘이 산책하거나 빵집에 가요. 집에 돌아와 목욕 후 저녁 먹고 우진이가 이끄는 대로 놀다 보면 잘 시간이에요. 저는 아이가 잠들 때 거의 같이 잠드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밤늦게 작업했는데 이젠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루에 일정 시간이라도 작업시간은 분명 있어야 하지만 하원 시간 이후에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를 위한 일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우진이를 통해 일과 육아 사이 균형을 맞춰가고 계신 거네요.

집까지 일을 가져와서 하면 아이는 잘못한 게 없는데 방해꾼이 될 것이고 저는 아이를 성가시게 느끼겠죠. 그 마음은 자연스레 아이가 느낄 거고요.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원 후 시간은 아이와 함께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나니 오히려 작업에 대한 조급한 마음도 사라지고 아이와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게 됐어요. 무얼 하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균형을 잃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콜라주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물감을 직접 칠한 종이나 색종이를 오려 사용하시던데, 어떻게 선택된 재료인가요?

색종이는 잠든 아이 옆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하고 쉬운 재료였어요.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좋은 재료이기도 하고요. 우진이가 가위질을 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땐 색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게 해줬어요. 제가 자른 별, 달, 새 등의 모양을 가지고 놀게 해주고요. 본격적으로 콜라주 작업을 시작한 뒤론 직접 페인팅한 종이를 잘라 쓰기도 하는데요, 색지나 색종이는 변색이 빠르고 물감만큼 농도가 깊은 색을 전달하기가 힘들어요. 텍스처가 느껴지는 거친 느낌을 좋아해서 아크릴을 페인팅해 만든 텍스처들을 잘라서 쓰고 있어요.

 

오리고 붙이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간결하면서 귀여운 것들을 표현하고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요! 그림의 의뢰자나 감상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정말 내가 이 그림이 좋은지 자문을 많이 해요. 어딘가 어설프고 모난 마음은 그림에 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혼자 작업하는 작업자의 특성상 누군가의 피드백에 마음이 휩쓸리기 쉬운데, 스스로 자신할 정도로 좋았던 작업은 누군가의 말에도 쉽게 생채기 나지 않더라고요.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았으니까요. 작업이 늘 재밌고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하면 할수록 힘들고 재미없는 작업은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방향성도 잃어요. 간혹 작업하다 길을 잃고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결국 모든 건 마음의 문제라는 점이 어려워요. ‘내가 즐기면 그게 다야!’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일일수록 그런 마음을 갖기 힘들어요. 최대한 놀이처럼 작업을 늘어놓고 추스르는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어떤 방법이 가장 나답고 즐거운가 보는거죠. 초반 작업이 잘 잡히면 뒤는 막힘없는 편이에요.

어린이를 위한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작가님은 어떤 어린이였나요?

평범한 아이였어요. 인사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땅만 보고 걸을 만큼 소심한 아이기도 했고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겐 마음을 다 열어 보일 만큼 수다스러웠지만 그런 친구들은 소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어린 시절엔 시냇가, 계곡,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어요. 가족이 거의 주말마다 밖에 나가 놀았거든요. 아버지가 야외 활동을 좋아하셔서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곤 캠핑을 자주 갔어요. 요즘 사람들의 캠핑보단 조금 덜 세련된 방식이지만 자연스럽게 늘 하던 것이었죠. 어른이 되기 전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이면 자연으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그렇지않았어요. 자연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 제게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는 걸 깨달았고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동생과 늘 재미난 놀이를 개발해서 놀았어요. 우리 자매에겐 언제나 새로운 장난감이 아니라 새로운 놀이가 있었죠.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책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어린이였어요.

 

어릴 때도 손으로 뭘 만들거나 그림 그리는 걸 즐겼어요?

고등학교 때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 전에는 미술학원 문턱도 넘어본 적이 없어요. 아주 어릴 때 집에 있는 달력 뒷면에 그린 그림 정도고요. 미술 시간이 싫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내서 미술 활동을 더 할 만큼 열정적인 아이가 아니었어요. 대신 교과서에 낙서가 가득했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는 제법 그려서 친구들이 그려달라 했던 기억이 나요. 그게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기초가 되면 교과서를 비닐로 감싸고 노트를 사고 했던 그 시간들이에요. 교과별로 콘셉트를 정해서 비닐 안에 넣을 표지를 잡지에서 오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노트를 열심히 골랐어요. 절대 아무거나 하지 않았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지만 스스로 만든 체계 안에서 고르고 세부적으로 정하는 일들을 좋아했어요. 그땐 그저 재밌어서 했는데 나만의 기준을 세워서 만든 거니까 나름 디자인을 하고 있었네요.

 

남편분과의 러브스토리도 궁금해요. 벨기에 초콜릿을 팔던 아가씨와 벨기에 와플을 팔던 총각이 만났다고요.

그 기묘한 인연을 다 얘기하자면 긴데(웃음)…. 남편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예요. 그땐 서로의 존재만 알고 지낸 사이였죠. 대학 때 휴학하고 내려간 대구에서 남편을 다시 만났어요. 아르바이트하던 도넛 가게에서요. 스물두 살 때, 여차저차 연애가 시작되고 저는 대학을 다시 다니면서 홍대 앞 초콜릿 가게 ‘카카오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사장님이 벨기에에서 초콜릿을 직접 배워 오신 한국의 1세대 쇼콜라티에세요. 그때 남편은 벨기에 사람이 운영하던 와플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벨기에는 가본 적 없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나라가 되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 복수전공으로 서양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고 대학교수님 추천으로 벨기에 루벤 대학교로 유학을 결정하게 됐어요. ‘참 인연이 재밌다. 운명이란 게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죠. 비록 우리의 유학 생활은 무척 짧았지만요.

 

왜요?

유학이 결정되고 자연스레 결혼 날짜도 정해졌어요. 사실 떠나기 전에 이 벨기에행이 10년 이상의 장기전이 될 것이냐, 아니면 단기전이 될 것이냐, 가서 살아보고 결정하자 얘기했었거든요. 남편이 한국에선 석사과정 때부터 대학원 내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장학금도 받고 생활비를 벌어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벨기에에 가서도 학교 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런 환경이 아니었어요. 결혼까지 해서 유학 갔는데 돈은 벌지 못하고 공부만 해야 하는 환경에 죄책감이 컸나 봐요. 남편은 삶의 어떤 부분에서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숨긴다기보다는 보통 사람보다 감정과 신체가 느끼는 통증의 감도가 무딘 편이죠. 그런 사람의 얼굴이 점점 흙빛이 되더라고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알았기에 두말하지 않고 짐 싸서 돌아가자고 했어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준비 과정도 힘들었고 적응하는 과정도 너무 힘들었기에 몇 년만 더 버텨보자 설득해야 당연한 일이잖아요. 제 커리어를 생각해 보면 더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후회 없는 성격을 가진 덕분인지 가끔 벨기에가 그리울 때 빼곤 그때 결정을 후회하진 않아요.

온 세상이 너를 환영해

“그림책은 우리만의 추억과 언제든 돌아가서 쉴 만한 어떤 공간을 만들어주는, 마음의 공간인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 후암동에서 우진이를 갖게 됐어요. 임신했을 때 조산기가 있어서 병원에 누워 지낸 기간이 길었다고요.

태어나서 입원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땐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두려웠어요. 그 시간을 버티는 법은 이기적인 방법뿐이었죠. ‘옆에 누워서 대소변을 보는 산모보단 내가 희망적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아가보다는 지금 상태가 희망적이다.’라고 긍정 또 긍정해야 했죠. 가족들이 매 순간 곁에 있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고요. 그때 남편이 사준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면서 입원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절망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걱정거리 없는 따뜻하고 밝은 그림들을 그렸죠. 제 안에 어떤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리며 힘겨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때 그림이 얼마 전《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의 책 표지로 나왔어요.

 

우진이 태명이 ‘해달’이죠?

맞아요. 아이를 가지고 싶다 생각하던 어느 날, 우연히 동영상에서 해달을 보고 푹 빠지게 됐어요. 엄마 배 위에 누워 평화롭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아가 해달 동영상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이상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해달사진이랑 동영상을 모았고 말 그대로 ‘덕질’을 시작했죠. 털이 삐죽삐죽, 북실북실 동그란 얼굴의 아가 해달 같은 아기가 태어났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얼마 뒤 아기가 생겼고 망설임 없이 태명을 해달이라 부르게 됐어요. 낮과 밤에 해와 달이 아이를 지켜줄 것 같다는 중의적 의미도 되는 것 같아 더 좋았어요.

 

촬영할 때 우진이 방을 보니 공룡 장난감이 정말 많더라고요. 공룡을 좋아하는 우진이는 어떤 친구인가요?

임신과 출산 과정이 힘겨웠던 것과는 반대로 태어나서 힘들게 하는 것 없는 순둥이였어요. 엄마, 아빠의 큰 노력 없이도 먹고 자고 놀고 순하게 잘 커서 육아도 수월하게 하고 일도 할 수 있었죠. 지금은 엄청난 장난꾸러기예요. 말이 트일 무렵부터 공룡에 빠져 어눌한 발음으로 공룡 이름을 술술 외우고 기승전 공룡으로 끝나는 대화를 할 때마다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나요. 쿵쾅쿵쾅 공룡 싸움을 하고 공룡처럼 박치기를 하는 아이지만 정반대의 면도 가지고 있어요. 혼자 조용히 책 보는 시간을 꼭 가지는 걸 보면요.

 

우진이가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이 SNS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흥미로운 건 아이 눈높이에 맞춘 책만이 아니라 글이 가득한 책도 있고, 원서로 된 《찰리 브라운》 책은 너덜너덜해졌던데요. 우진이의 책 사랑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아이 방을 따로 만들기 전엔 거실에 큰 책장이 있었어요. 그게 우진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본 장면이었을 거예요. 아이가 손 닿는 곳에 제가 모아온 그림책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모든 책들이 정신없이 꽂혀 있었죠. 자연스레 책을 꺼내만지고 놀았어요. 처음엔 책을 앞뒤로 넘겨보는 걸 좋아했어요. 페이지를 휙휙 넘기다가도 꼭 한 번 표지를 확인하고 뒤표지엔 뭐가 있나 살펴봤어요. 겨우 앉을 수 있을 때도 책을 절대 거꾸로 보는 일이 없어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해요. 일부러 거꾸로 건네줘도 힘겹게 똑바로 돌려서 보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찰리 브라운》은 제가 사놓고 잊어버린 책이었는데 아들의 첫 번째 최애 책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고사리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 귀여운 캐릭터들이 계속 나오는 점이 아이 마음을 사로잡았나 봐요. 그 책을 정말 오래 좋아했거든요. 책을 일부러 찢은게 아니라 정말 많이 봐서 찢어졌어요. 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없다고 봐요. 공룡에 빠져 책에서 조금 멀어지기 전까지 책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담았고 나중에 모아놓고 보려고 시기별로 정리도 해봤어요.

요즘 우진이가 즐겨 보는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림책은 아니지만 《고래 – 고래와 돌고래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무겁고 커다란 고래 책을 제일 자주 봐요. 제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볼 때 옆에서 고래가 나오는 장면을 몇 번 보더니 고래에 더 빠졌나 봐요. 어디선가 혹등고래, 향유고래 같은 말을 배워와서 정확하게 말하고요. 잠자리에서 항상 읽어달라는 책은 《Little Witch Hazel》이에요. 제가 SNS로 알게 돼서 좋아하게 된 미국 작가인데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사 와서 우진이와 함께 읽었어요. 영어 원서 그림책의 좋은 점은 글에 구애받지 않고 매번 다양하게 지어내서 읽어줄 수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우진이에겐 뭐 그렇게 좋은 점인가 싶기도 하지만 읽어주는 전 재밌어요. 마음대로 읽어주다가 천천히 다시 번역해 보면 이런 내용이었나 하는 부분도 있고요. 매번 지어내는 재미가 있어서 읽어주는 제가 지루하지 않아요.

 

그림책을 통해 작가님이 우진이와 나누었던 것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우진이는 지금 역할놀이에 빠져 있어요. 책 한 장을 넘기기가 힘들죠. 책 속에 어떤 장면이 있으면 그걸 다 외워서 ‘엄마는 이거, 나는 이거 할게.’ 하고 잠시 그 역할을 하고 넘어가야 해요. 어떤 위기가 닥치고 그걸 헤쳐 나가고 친구를 도와주는 상황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책이 없을 때도 그 책을 함께 읽은 저와 우진이만의 놀이가 가능하죠. 그림책은 우리만의 추억과 언제든 돌아가서 쉴 만한 어떤 공간을 만들어주는, 마음의 공간인 것 같아요.

 

방긋, 안녕!》은 우진이에게 웃는 얼굴을 그려주다 더미북을 만들게 됐죠?

맞아요. 아기 우진이는 어떤 얼굴이든 제가 웃는 얼굴만 그려주면 깔깔 웃으며 좋아했어요. “우진아, 안녕!” 하고 다양한 톤의 목소리로 소리 내는 것도 필수였고요. 여기저기 그려주다가 어느 날 집에서 쓰지 않는 노트를 발견하고는 거기 웃는 얼굴을 가득 그려주고 싶었어요. 혼자 맥주 한잔하며 완성했는데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아요. 역시 너무나 좋아했고요. SNS에도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우진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그렸지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죠. 그림책 제안을 받고 너무 기뻤어요.

 

더미북에서 책이 완성되기까지 변한 과정도 궁금해요.

좀더 아기 그림책다운 모습으로 완성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어요. 쓰고 그린 책으로는 처음이라 어려움도 많았고요. 아기 그림책은 평소 즐겨 보던 그림책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어요. 무엇을 더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빼는 일이 많았거든요. 기교를 부린 그림보다 아기가 오해하지 않도록 간결한 그림과 문체가 어울렸죠. 그림책 시선도 한정적이고요. 아기들은 옆모습이나 뒷모습 같은 걸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이제껏 뭐든 채워 넣기만 하던 제 그림 방식과 달라서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편집자님과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으며 책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내 생각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때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었고요. 더미북을 보고 처음 주신 의견이 “온 세상이 아이를 환영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거였어요. 그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 처음 그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끝까지 노력했죠.

책장을 넘기는 동안 우진이에게도 독자들에게도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됐을 것 같아요. 

책이 나오는 데 1년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그사이 우진이에게 《방긋, 안녕!》은 너무 쉬운 책이 되어버렸고 아기 책에 흥미를 잃어버렸죠. 그래서 독자분들이 책을 즐겨 보고 있다는 아이 사진을 보내주시면 너무 기뻐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예상과 다르게 큰 감동을 받았다는 ‘어른’ 독자예요. 뜻하지 않은 책에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는 말로 시작하셨는데, 책을 보며 얼마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나서 많이 우셨다고 했어요. 아기와 함께 사계절을 다 보내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했던 이별인데, 책에 나오는 모든 존재들이 건네는 인사말이 어머님이 아이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졌다고요. 살아생전에 유난히 꽃과 풀을 사랑하셨고 옹알이도 못 하던 아이에게 늘 노래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해요. 눈사람들이 녹아내리는 이별의 안녕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요. 다시 봄이 오고 방긋 웃으며 아이와 다시 만난 새싹 장면에서 그분이 위로를 받으셨을까요? 그 후기를 보고 책이란 독자에 의해 끝도 없이 확장되는 존재라는 걸 가슴 깊이 새기게 됐어요.

 

가족 안에서 우진이가 배웠으면 하는 삶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가 처음 겪는 사회가 가정이잖아요.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다져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요. 엄마, 아빠를 신뢰하게 되면서 시작된 믿음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 믿음만 있다면 살아가며 뭐든 헤쳐나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자신의 감정도 건강하게 잘 표현하는 법을 알고요. 부모인 저희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노력해야겠죠. 

 

“설명하기 힘든 행복감이 언제나 길게 늘어놓을 수 있는 고됨과 힘듦을 이긴다. 언제나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라고 SNS에 남긴 말이 와닿았어요.

이상하게 살면서 불만들은 아주 디테일하고 길게 늘어놓을 수 있는데, 제가 아이 때문에 느끼는 행복감은 어떤 단어로도 잘 표현이 안 돼요. 조금 상투적이고 실제 느끼는 감정보다 부족한 것 같거든요. 어떤 날은 불만을 랩퍼처럼 속사포로 한바탕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한테 안 질 자신이 있다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아이의 커다란 웃음 한 번, “사랑해.” 말 한 번, 재롱 한 번이 눅눅하고 구겨진 마음을 한 번에 쫙 펴줘요. 사랑은 너무나 크고 따뜻해요.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어요. 힘든 순간은 그저 어깨너머로 지나갈 뿐이에요. 사랑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요. 

 

마지막으로 우진이에게 남기고 싶은 사랑의 말들이 있나요? 

아들, 너를 바라볼 때면 엄마는 가끔 꿈꾸지 못했던 소망이 이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물론 그렇지 않은 날들도 있지. 하지만 그런 날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만큼이고, 너로 인해 느끼는 완전한 기쁨의 날들은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아. 사랑한다는 말은 엄마의 마음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네. 그 말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너에게 보낼게.

에디터 황지명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