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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도 친구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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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도
친구가 될 수 있나요?
9월. 여름방학이 끝났다. 내내 미뤄둔 탐구 생활을 풀고, 친구의 일기를 몰래 베끼느라 팔이 저리던 나의 방학은 물론 이십 년도 전에 끝이 났다. 그때는 방학이 하나의 경계였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다 지나가면 시작되는 새 학기, 새 교실, 새 친구들. 다시 또 여름방학, 겨울방학. 하루가 다르게 내 키도 나의 세상도 계속해서 자라났다. 지금은 아니다. 성장은 멈추었고, 시간의 경계는 흐릿하기만 하다. 재작년 어딘가의 하루를 복사해서 오늘에 슬쩍 붙여 넣기 한들 나조차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른의 시간에도 경계점이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게 되는 때. 바로 전, 월세 계약 만료일이다. 서울에서는 짧으면 일 년, 길면 이 년마다 이사를 해야 했다. 보라보라 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 이사를 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새 계약서, 헌 집, 새 이웃 그러니까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이라든지, 집 없는 설움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사하자마자 우리 부부에게는 훨씬 흥미로운 동거인이 찾아오셨다. 바로 시어머니다. 그녀와 함께 쓴 밀린 탐구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선행학습의
중요성
전광판을 확인했다. 시어머니가 타고 계실 비행기가 도착하려면 삼십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지금 오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집은 스튜디오(라고 쓰면 있어 보이지만 원룸)였다. 그나마 벽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지 않았으면, 시어머니는 호텔을 예약하셔야 할 뻔했다. 커피라도 마시며 기다리자는 남편을 따라 작은 카페로 갔다. 역시 뜨거운 에스프레소만 팔았다. “왜 일 년 내내 여름인 곳에서 아이스커피를 안 마실까.” 남편은 대답 대신 볼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내가 섬에 산 이래로 백 번 정도 반복한 질문이기도 했고 그가 나고 자랐던 프랑스에서도 아이스커피는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커피=에스프레소’라는 공식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맥주 마실 거지?”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전 아홉 시였다.
시어머니가 들으실 리 없는데도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도착 게이트는 아직 한산했다. “파인애플 주스 주세요.” 카페에 앉아있는 내내, 모기에게 신나게 뜯기는 줄도 모르고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런 말 절대 시어머니 앞에서 하면 안 된다고, 아침부터 맥주 마시는 사람으로 오해하시면 어떻게 하냐고. 히죽히죽 웃기만 하던 그가 말했다. “괜. 찮. 아. 맥주 마시는 게 나쁜 거야? 우리 엄마 편한 사람이야. 너네 부모님 오셨을 때처럼 하면 된다니까.” 정녕 그때처럼 하란 말인가. 밤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소파에 누워서 미드 보다가 맥주를 들고 집을 어슬렁거려도 된다는 말인가. 상상만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시어머니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집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던 나라는 인간이 원망스러웠다. 선행학습의 중요성을 잊고 말다니. 착한 거짓말이 뭔지 모르는 이 남자와 긴긴 대화를 나눴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시어머니가 도착하셨다.
따뜻한 말
한마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내내 남편은 들떠 있었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냄비 옆을 기웃거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시어머니가 가져오신 음식들로 가득 차있었다. 미리 만들어둔 불고기, 참치구이와 함께 시어머니의 음식들을 마저 올리자 식탁에 국경이 생겨났다. 오랜만에 실감이 났다. 우리는 국제결혼을 한 부부라는 것이. 어머니의 국경 쪽에는 고수가 가득했다. 고수라. 이 향긋한 비누 맛의 채소가 쓰인 문장을 나는 적어도 5개 국어로 알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말이었다.
이를테면 ‘부야오 샹차이’라던가 ‘마이싸이 팍치’ 같은. 모두 고수를 넣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 좋아하던데, 나에겐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남편의 음식에만 따로 넣어왔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었다. 부디 남편이 내가 고수를 못 먹는다는 말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포크를 든 시어머니의 오른손 역시 신중했다. 음식을 한 번 드실 때마다 왼손으로는 엄지를 들어주시며 호의를 가득 담은 미소를 보내주셨다. 나도 연신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라고 말하며 젓가락질을 이어갔다. 고수도 어쩐지 괜찮았다.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혀를 포함해 온몸이 초긴장 상태였다. 웃을 때마다 입가가 뻣뻣한 것이 느껴졌다.
남편은 금세 비워진 접시에 양국의 음식을 계속 덜어 먹기 바빴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말했다. “태연이 고수 안 먹어.” 아니라고 먹는다고 손사래 치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는 뜻밖에 웃음이 터지셨다. “사실 나도 이거 처음 먹어본다. 치즈로 만든 거니?” 두부였다. 콩 우유로 만들어졌다고 알려드리니 건강식이라며 좋아하셨다. 반짝이는 눈으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아마도 호기심보다는 사려 깊음일 것이었다. 대답하는 동안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남편은 아직도 접시에 코가 닿을 듯 먹고 있었다. 이 속 편한 남자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니가 만들어 오신 음식은 분명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것들뿐이겠지.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다.
식사가 끝나자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는 너무 달라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겠구나.” 아. 따뜻한 말 한마디. 그녀와 나 사이엔 분명 국경이 있다. 하지만 이 남자도 있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우리의 공통점은 결코 힘이 약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지붕 아래 40일의 동거. 예감이 아주 좋다.
이 모든
전달 불가능
예감이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잘 지낼 수 없을 것만 같다. 거실과 주방의 배치를 다 바꾸시고, 남편과 나를 따라다니시면서 불 끄시고, 코드 뽑으시고, 세제를 희석해서 쓰시는 것들은 다 좋았다. 감사했다. 그런데 서랍장 깊숙하게 넣어둔 고지서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다.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기타 등등의 고지서들. 넓고 넓은 바다 위에 혼자 떠 있는 보라보라 섬이니 각종 ‘세’들이 저렴할 리 없었다.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계셨던 것을 숫자로 확인하신 날 시어머니는 적잖은 충격을 받으셨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는 아들을 나무라셨다. 바람에 머리를 말리고 있던 내게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감는 것이 제일 좋다더라.”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으셨다. 집 안의 온도가 점점 올라갔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참을 만했다. 다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어라. 사실 나는 원래도 잘 안 씻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시어머니는 질문을 던지셨고, 그것은 이곳에선 금기어였다.
“이렇게 비싼 인터넷을 꼭 해야겠니?”
친구들은 내가 날마다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아 저녁을 준비하고, 모닥불 옆에 누워 별을 보는 생활을 하는 줄 안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섬에도 그 이상의 현실이 있었다. 일과 사람에 시달리고 피부색으로 차별을 받기도 하고 수입은 통장을 중간 경유지로 알고 금방 갈아타 버린다. 이곳에는 시장도, 극장도, 서점도, 도서관도, 아이스라테를 파는 카페도 없다. 그 없음을 대신하는 것이 인터넷이었다.
아마존에서 베개 솜을 사고, 친구가 나온 드라마를 보고, e-book으로 책을 읽었다. 섬에 산 지 6년 차인데 우리보다 오래 산 친구들이 없었다. 단조로운 생활과 고립감에 지쳐 모두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도 인터넷이다. 바다 건너에 있는 친구와 영상 통화하며 마시는 맥주,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왕좌의 게임이 주는 기쁨은 싱그러운 야자수, 바다 수영, 그리고 별자리가 주는 위로에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인터넷을 끊자고 하셨을 때 나는 차마 그러자고 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인터넷을 끊었다가, 가시고 나서 다시 연결하자는 나에게 남편은 더 괜찮은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패드를 켜고 시어머니를 불렀다. 옆에 꼭 붙어 앉아서 인터넷을 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프랑스에 있는 형들과 페이스타임 하는 법,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찾는 법, 구글에서 궁금한 걸 검색하는 법. 시어머니는 집 주소를 입력하면 당신의 집 2층창가에 심어둔 꽃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구글맵과 ‘외롭다’고 말하면 위로해주는 ‘시리’에 가장 놀라셨다(“사탄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건강에 유용한 강연들이 업데이트되는 사이트를 찾아내신 시어머니는 마침내 당신의 마음을 조금 내어주셨다. 지금도 내 옆에서 ‘헬리코박터균이 왜 위험한가’에 대한 강연을 보고 계신다. 덕분에 인터넷 선은 아직 잘리지 않고 있다. 코드를 다 뽑아두시지만, 아이패드는 놔두신다. 어쩌면 예감이 완전히 틀리진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시어머니가 프랑스로 돌아가시고 나면, 함께 영상통화를 하며 맥주를 마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의 레시피를 하나씩 배우고 있다. 남편이 어릴 때부터 좋아한 음식들. 그런데 우리가 만들면 맛이 달랐다. 배운 대로 하는데도 그랬다. 감칠맛이 없었다. 좁은 부엌에 세 사람이 있으면 금방 더워졌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나는 둘이서만 종종 산책을 했다. 집 바로 뒤편의 숲으로 갔다. 야자수 아래를 걸었다. 시어머니는 성큼성큼 나를 앞서 걸으며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셨다. 사진을 찍어드렸다. 카메라 액정에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몇 번이나 확인하셨다. 그러다 카메라를 들어 나를 찍어주셨다. 여러 컷을 찍어주셨는데, 초점이 다 나가 있었다. 이런 기계를 다루기에 너무 늙었다며 건네주신 카메라를 보니, 포커스를 수동으로 맞추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남편의 흉내를 냈다.
일단 카메라를 자동으로 맞추었다. 옆에 꼭 붙었다. “이 버튼을 살짝 누르면 포커스가 자동으로 맞춰져요. 그때 다시 세게 누르면 찍혀요.” 시어머니는 그렇게 자동모드로 야자수 사진을 담으셨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시며. 마침내 포커스가 맞는 사진을 확인하고 신나 하셨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 참 아이 같다.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는 요리 교실의 마지막 비법을 알려주셨다. 모 브랜드의 치킨 스톡을 넣으신다고. 우리로 치면 다시다였다. MSG라니. 아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서로의 어깨를 맞대어가며 깔깔 웃었다. 둘만 아는 작은 비밀이 생겼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음식, 다른 생활방식, 다른 세대. 이 모든 전달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라건대. 어쩌면.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