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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권민송 가족
반가워요. 제주의 자연 풍경과 가족의 다정한 이야기가 담긴《윤시 아야》 사진 에세이를 보았어요.
감사해요. 저희 부부는 제주 서쪽 끝 바닷가 마을에서 ‘소소오늘’이라는 작은 숙소를 운영하며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다섯 살 윤시, 네 살 아야, 봄에 태어날 막내 나로까지 모두 다섯 가족이죠. 남편은 바쁜 하루의 틈에도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진을 찍어요. 세 권의 사진집을 내고, 전시도 하고요. 사실 먹고사는 일, 가족을 책임지는 일 등의 이유로 자연히 카메라랑 멀어지게 됐지만 남편은 불평 대신 늘 곁에 있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어요. 그 마음이 고마웠죠. 기록들이 모이고, 그 기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싶어 책을 만들게 됐어요. 사진 곁에는 아이를 기르며 들었던 제 감정들의 기록도 더했고요. 육아라는 익숙하고 지나치기 쉬운, 둥둥 떠가는 그 시간들을 사진과 글로 담았고 종이에 꼭꼭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어요. 훌쩍 자란 아이들에게도 어린 날의 기록이 담긴 이 책이 선물이 되길 바라요.
윤시, 아야. 이름이 독특해요.
아이들 이름은 윤슬, 예하예요. 큰아이가 어린 발음으로 자기를 “윤시”라 부르고, 동생을 “아야”라고 불렀어요. 반려견 모리는 “삐야”라고 부르고요. 그게 정감 있고 따뜻하게 느껴져 부모님들, 이웃들 모두 이름 대신 ‘윤시와 아야’라 부르게 됐죠. 예하는 자기 이름이 ‘김아야’인 줄 안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유였네요(웃음). 아이들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연년생 남매로 태어나면서 지금껏 한시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어요. 따로 기관을 다니지 않고 늘 함께해 눈만 뜨면 투닥거리고, 안 보이면 찾는 사이죠. 마을에 아이가 없으니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 같은 존재예요. 동생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면 윤시는 큰 소리로 저를 불러요. “엄마, 아야가 위험해. 도와줘.” 하고요. 반면 아야는 여장부 스타일이라 오빠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탁 하고 쳐내기도 해요. “내가 할 슈 이셔. 저리 가.” 하고요.
제주가 고향이 아니라고요. 윤시, 아야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제주의 어떤 동네인가요?
남편과 저는 육지에서 들어와 정착했고, 윤시와 아야는 이곳에서 태어난 제주 도민이에요. 결혼하고 하루 30분, 얼굴도 겨우 볼 만큼 바쁜 삶을 육지에서 살다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 저희 부부의 행복을 위해 회사를 관두고 제주로 오게 됐어요. 남편이 유학 시절을 보낸 미국의 유타가 제주와 닮았다는 얘기를 종종 했거든요.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그곳 사람들은 늘 평화롭고 느긋했다고요. 제주 역시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고 무언가 시작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지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들이 제주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죠. 이주를 결심한 뒤엔 우리 형편에 맞는 작은 땅을 샀어요. 땅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을 다 갚으면 제주에 가자 하고 딱 2년이 걸렸어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노을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르는 바닷가 마을이에요. 육지에서 살 때와 다르게 매일 하늘을 봐요. 의식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해 질 녘 아이들과 산책하면 자연스레 하늘을 보게 돼요. 늘 다른 빛과 색으로 존재하는 하늘을요. 제주에서는 마을 어르신을 ‘삼춘’이라 부르는데요. 아이와 마을을 산책하다 이따금 만나는 삼춘들이 인사만 나눠도 콜라비, 브로콜리, 잔 파 등을 두 손에 척 하고 올려주세요. 집 대문이 열린 틈으로는 마당에 훌쩍 던져두고 가시는, 그런 마을이에요.
사진 속에 보이는 집이 따뜻하고 포근해 보였어요.
이웃 삼춘의 소개로 오랜 시간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공간을 고쳐 살고 있어요. 오래된 집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대로 두고요. 원래 놓여 있던 할머니 장롱도 아이들 옷장으로 쓰고 있고, 서까래나 흙벽도 목공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했어요. 아이들은 늘 코를 대고 그 냄새를 맡기도 하고, 흙벽 사이의 지푸라기에 자꾸만 손을 대기도 해요. 벽 한 귀퉁이에는 오래전 이 집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자도 군데군데 있어요. “바르고 정직한”, “착하게 살았읍니다.” 같은 문구들이요. 기존에 있던 알루미늄 새시는 다 뜯어내고 모두 목문으로 바꿔 따스한 느낌을 줬어요. 집 뒤에 버려진 텃밭이 작은 정원이 될 수 있게 그쪽으로 통창을 냈고요. 아이들은 텃밭에 익어가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언제 딸 수 있나 기다리기도 하고, 나무에 놀러 온 새를 한참이나 바라봐요. 할머니가 사 온 모종을 함께 심기도 하고, 물을 주며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이 봄과 여름의 일과예요. 열매가 열리면 제일 먼저 따서 자기 입속에 넣고, 배가 부른 날은 “옆집 서점 이모도 줄 거야.”라고 말하고요. 바닥 마루는 남편이 직접 나무를 사 와서 일일이 자르고 사포질하고 칠을 했는데요. 아이들이 밟고 지낼 공간이라 가시가 있는지 손으로 쓸어 꼼꼼히 확인했어요. 작지만 마음이 담긴 따스한 집이에요.
자연을 곁 하는 삶이네요. 아이들이 그 속에서 어떤 걸 느끼고 경험했으면 하나요?
육지에서 제 직업은 교사였고, 아동 심리를 심화 전공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엔 ‘육아’, ‘교육’에 대해 저만의 강한 틀이 있었죠. 교사는, 부모는 꼭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답이요. 그때는 틀에 맞춰 옳고 그른 것을 나눴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육아에 정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제주는 자연과 가까워 좋기도 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 가능해서 좋은 것 같아요. 부모는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보다 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생각해요. 이곳엔 많은 것이 있지만 또 없기도 하거든요. 문화센터, 학원, 학습지, 비교 대상이요. 아이들이 해내야 할 일들의 부담이 적은 곳인 것 같아요. 부모의 관심과 욕심은 아이들의 과업과 반비례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선물 받죠. 물론 제 주변의 기준이지만, 아이 자체로 살게 하는 일이 가능해요.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스스로 찾고 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아이를 보며 부모는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아이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어요. 바다와 산, 오름 곁에서요. 자연은 그런 아이를 더 편안하게 해줘요. 늘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잖아요.
두 아이의 자연 놀잇감이 궁금해요.
아이들 주머니에는 늘 돌멩이, 도토리, 솔방울, 빨간 열매가 있고, 차 뒤편엔 긴 나뭇가지가 실려 있어요. 보물이라며 주워 와서 또 금세 잊고 줍기를 반복해요. 집 앞 바닷가에선 해녀 삼춘들이 해변에 던져둔 성게 껍질, 뿔소라 껍질을 주워놀거나 바다에 멀리 던지기도 하고요. 물이 빠지고 드러난 돌멩이 사이에서 보말을 잔뜩 줍기도 해요. 둥둥 떠다니는 미역을 모아 미역국 끓여 먹자며 양손 가득 챙겨 오기도 하고요. 작년 여름에는 긴 대나무 가지에 낚싯줄을 이어 낚싯대를 만들고 새우 미끼를 꽂아 작은 물고기를 잡고 놓아주는 놀이를 즐겨 했어요. 또 마당에 핀 꿀이 든 꽃을 알려줬더니 꽃이 피자마자 세상 구경도 하기 전에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갔어요. 잔디에 벌러덩 누워 하늘도 보고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요. 집 근처 송악산 둘레길과 곶자왈 산책도 좋아해요. 곶자왈은 맑은 날보다 안개가 가득한 날이 좋은데, 걷는 내내 비 냄새와 나뭇잎에 앉은 물방울 보는 일을 좋아해요.
책의 말미에 ‘탄력적 육아’, ‘유동적 육아’에 대해 쓰신 걸 봤어요.
남편과 저는 아이를 함께 기르고 있어요. 누가 누군가의 일을 대신 해주거나 돕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육아’예요. 엄마가 일을 가면 아빠가 아이를 돌보고, 엄마가 아이 곁에 머무를 때면 아빠가 일을 가고요. 보통의 가정과 같지만, 엄마와 아빠의 역할에 구분이 없고 늘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아빠가 엄마보다 된장국을 더 맛깔나게 끓이고, 엄마는 예초기를 돌리는 데 힘쓰고요. 엄마가 무거운 화분을 스스로 옮기거나 아빠가 화분 물 주기를 예민하게 챙겨요. 이건 당신 일이고, 이건 내 일이야 하는 다툼이 없어요. 구분 짓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해내고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해요. 서로 공유하며 일을 하니 상대방에게 무엇을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자연히 들어요.
이제 곧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힘들고 바쁜 나날들이 시작되겠어요.
아이가 셋이 된다니, 믿기지도 않고 어떤 세상일까 궁금해요. 같은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확연히 다른 두 아이를 만나니 태어날 셋째는 어떤 아이일까 기대돼요. 또 세 아이가 되면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에 무뎌질까 싶어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요. 큰아이가 뒤집고 기고 서던 놀랍고 감사했던 일들이 매일이 되고 일상이 되면서 당연한 일이 돼버렸거든요. 아이들의 작은 변화도, 당연해진 아이들의 모습도 낯설게 바라보자 다짐해요.
에디터 황지명
Photography Kim Dal 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