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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독자가 되어주세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와 함께 온 학부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어린이는 꿈이 작가라고 할 만큼 쓰기를 좋아했어요.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었죠. 문제는 엄마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부모가 SNS에 어린이의 일기를 자주 포스팅했는데 자녀가 싫어한다는 겁니다. 어린이는 엄마가 일기를 못 찾도록 여기저기 쪽글을 쓰기 시작했고 매일 쓰기마저 주춤해졌다고 합니다. 부모는 진지한 얼굴로 저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부모의 얼굴에서 ‘글을 잘 쓴다고 자랑하는 건데 뭐가 잘못일까?’ 하는 마음이 엿보였어요.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어른이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한 번도 어린이였던 적 없이 어른이 된 것처럼 구니까요. 어린이를 거쳐 어른이 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 시절을 깡그리 잊을 수 있을까요. 사춘기는 ‘비밀’과 함께 옵니다. 어제까지 엄마와 공유했던 일이 이제는 비밀이 되지요. 특히 일기는 비밀을 먹고 자랍니다. 엄마 옆에 앉은 어린이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공개는 싫다.”고 자기 의견을 솔직히 말해주었어요. 아마도 어린이는 부모에게 싫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겠지요. 한데도 부모는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할까요. 우선은 정말 자녀가 기특하고 대견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또 어린이가 쓴 글이 그리 큰 비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학교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며 10대가 된 어린이가 고민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일이 부모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더 큰 비밀과 더 작은 비밀이란 없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되는 사람과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의 써 내려간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어린이의 읽기와 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점에는 어린이의 쓰기 실력을 빠르게 향상시키거나 공부머리를 만들어준다는 책도 많습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을 위해 읽고 쓰는 법을 다룬 책은 더 많아요. 이 모든 책이 들려주는 조언은 이유가 있고, 꾸준히 실천하면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른이건 어린이건 글을 못 쓰고 안 쓰고 싫어하는 이유가 방법론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특히 어린이의 글쓰기는 방법론보다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그 특별한 시간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린이의 글쓰기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부터 되돌아봐야 합니다.
제가 글쓰기에 관해 부모에게 거듭해서 부탁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어린이의 글을 정성스럽게 읽어주세요.”라는 주문입니다. 뭐가 어려울까 싶겠지만 실은 어렵습니다. 어린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일기와 독서록을 쓰기 시작해요. 당연히 어린이가 쓴 글은 서툴지요.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글자도 삐뚤빼뚤합니다. 이런 글을 보면 부모는 불편합니다. 어린이를 미숙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녀가 뛰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가르쳤는데도 고쳐지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어린이가 쓴 글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이 시야를 흐리게 합니다. 혹은 일기나 독서록을 검사만 할 뿐 읽어보지는 않습니다.
어른과 어린이의 쓰기는 출발선이 다릅니다. 어른은 십수 년동안 학교 교육을 받고 이런저런 글쓰기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면 어린이는 이제 막 시작했어요. 아직 서툽니다. 게다가 쓰기는 참으로 느리게 성장합니다. 한데 어른이 조급해하며 매번 지적하거나 주제 쓰기를 강요하면 글쓰기는 재미없는 일이 됩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나는 못 쓰는 사람이야.”라며 글쓰기에서 마음이 떠나버리게 돼요.
‘정성스럽게 읽는다’는 것은 어린이가 쓴 글의 독자가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딱 그 나이에만 쓸 수 있는 어린이의 글을 대우해 달라는 말입니다. 어른이 쓴 글도 다른 사람이 읽으면 이해되지 않거나 이상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훈련이 되지 않았다면 누구나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어린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린이의 글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질문하면 더 좋습니다. 만약 어린이가 “루이스처럼 작으면 힘들 것 같아요.”라고만 썼다면 “루이스가 얼마나 작아?”라고 궁금해하고, “루이스는 어떻게 힘들었는데?” 하고 묻고 잘 들어주세요. 질문이란 결국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나오는 법이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말하기는 즐거워집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한 말을 기록하면 그게 바로 쓰기 연습입니다. 이 과정에서 말이 글이 된다는 걸 어린이가 느끼게 됩니다.
자유롭고 솔직하게 말하는 ‘어린이는 모두가 시인’입니다. 어린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박문희 선생이 쓴 《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어린이가 친구에게 맞고 들어오니까 할머니가 “너도 때리면 되잖아.”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어린이가 “나는 때리는 손 없어!”라며 울었어요.
신기한 건 학교에 입학해 진짜로 글을 써야 할 때 어린이는 심드렁한 글만 써댑니다. 인디 뮤지션 이랑에게 자기 마음을 리듬으로 표현하는 어린이 워크숍에 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린이는 놀라운 표현력을 지녔다고 했어요. 한데 말끝에 “제도 교육에 익숙해지면 자유로운 표현이 사라지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쓰기 표현도 비슷합니다. 어린이는 부모와 교사가 원하는 글이 어떤지 알면 그렇게 씁니다. 쓰지 말아야 할 글이 무엇인지도 눈치챕니다. 쓰기가 하기 싫은 숙제일 때 대충 해야 한다는 것도 체득합니다. 그래서 초등 3~4학년 정도가 되면 많은 어린이의 글이 천편일률적으로 변합니다. 글에서 언제나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남발하고 입에 발린 반성을 합니다. 어른들이 언제나 글 마지막에는 ‘느낀 점’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으니까요.
소설가 앤 라모트가 쓴 에세이 《쓰기의 감각》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앤은 자기 외모가 좀 볼품없다고 여겼는지 남자애들이 흉을 보면 “총에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어요. 주위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아이였나 봅니다. 이런 앤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선생님이 앤이 쓴 시를 반 아이들 모두에게 큰 소리로 읽어준 겁니다. 앤은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친구들이 “유일하게 운전할 줄 아는 아이처럼 존경의 눈으로” 앤을 바라보았어요. 게다가 앤이 쓴 시는 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문집에까지 실렸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앤과 비슷한 일화를 한두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이런 경험 없이 쓰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어린이는 새싹처럼 여립니다. 험한 손짓과 날카로운 말에 금방 시들고 맙니다. 새싹이 자라 꽃을 피우려면 북돋아 주는 손이 필요합니다. 어린이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즐거워하려면 읽고 감탄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는지 글 아래 메모를 남겨주면 어린이는 더 힘을 내요. 세상 모든 작가는 자기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쓰는 법입니다.
부모가 어린이의 글을 지도하기란 어렵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정이 앞서거든요. 전문 교사라도 자녀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굴지 않아도 초등부터 대학까지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치는 동안 차근차근 읽기와 쓰기를 배웁니다. 어린이가 지긋지긋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읽고 쓰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쓰기에서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잘 쓰는 법이 아닙니다. 쓰기는 힘들지만 쓰고 나면 뿌듯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쁨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에디터 이명주
글 한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