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All The Days We’ve Lived

케이코쇼텐 민재기·김윤지

많은 이들이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좋은 식재료로 삼시세끼 차려 먹으며 건강을 유지한다. ‘케이코쇼텐’의 민재기, 김윤지 부부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마음의 건강이다. 부부에게 건강이란 말의 뜻은 ‘스스로, 경험, 좋아하다’의 조합이다. 두 사람이 오래가져온,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경험하는 삶의 태도는 이제 아이에게 온전히 가 닿고 있다.

불편한 아름다움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아날로그적이잖아요. 그런 물건들은 보통 하나뿐이어서 고장 나면 시간을 들이고 발품 팔아 수리해야 하죠. 대체할 게 없으니까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귀찮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어요. 작은 물건에 점점 더 애정이 생기거든요.”

외관부터 내부까지 빈티지 무드로 무장한 곳이네요. 케이코쇼텐을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윤지 안녕하세요. 케이코쇼텐을 운영하는 김윤지예요.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가 일본인이어서 일본 이름이 있어요. 그게 ‘케이코’고, ‘쇼텐’은 상점이라는 뜻이에요. 가게에서 요리도 하지만 굳이 상점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물건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재기 저는 케이코쇼텐을 함께 운영하는 남편 민재기입니다. 매장을 연 지 5년 차가 되었어요. 저희와 잘 어울리는 건물을 찾으려고 서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명동에서 이렇게 멋진 건물을 발견했죠 매장에 둔 물건은 대부분 미국 빈티지고, 가게 열기 전부터 취미로 모은 것들이 많아요.

 

잠시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가게에서 요리도 하신다고요?

윤지 조촐하게요. 아빠가 요리사이신데, 어렸을 때 일본 레스토랑에서 함께 일하면서 요리를 배웠어요. 한국에 와서 그때의 경험을 살린 거죠. 처음에는 브런치 메뉴들도 좀 있었지만 지금은 메인 메뉴인 스마일 카레라이스에 토스트나 샌드위치 메뉴만 조금 추가한 상태예요.

재기 저는 매장 열기 전까지 그래픽 디자너로 일했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 안정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아내에게 스파르타로 요리를 배웠죠.

 

언제부터 빈티지에 빠지게 된 거예요?

재기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중3 겨울 방학 때인가, 지금 극동방송국 있는 쪽에 ‘드럭’이라는 라이브 클럽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대체 저게 뭐지?’ 싶었죠. 장르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니까 60년대 로큰롤에 가 닿더라고요. 그러면서 롤링스톤스 같은 록밴드의 음악에 빠졌어요. 예전 음악 찾아 듣다 보니 뮤지션들이 멋있어 보이고, 옷차림도 따라 하고 싶어졌어요. 가죽 재킷, 청 재킷, 데님… 그런 옷들을 찾는 재미에 빠지면서 빈티지를 접하기 시작했어요. 

윤지 저희 엄마가 80년대 버블 경제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셨어요. 취미 활동이 사치가 아니던 때였죠. 일본은 워낙 마니아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잖아요. 저도 어릴 때 일본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수집 활동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20대 중반에 미국 복식 문화에 관심을 가지다가 옛날, 더 옛날 걸 찾아보게 됐어요. 남편을 만난 후에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비슷하니까 취향을 확장하는게 질리지 않고 마냥 재미있더라고요. 

재기 둘 다 술을 잘 안 마셔서 평소에도 시대 고증이 잘 된 영화를 찾아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놀았어요. 저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 보이시죠? 짐 자무시의 영화 포스터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 하나하나가 다 멋져요.

 

지금은 빈티지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재기 맞아요. 초반에는 집에 모아둔 소품 진열하고, 빈티지 식기에 음식 올려두고 예쁘게 사진 찍으면서 만족했는데 점점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어요. 저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집 안에 두고 보고 사용하는 환경에서 분명 좋은 영향을 받아 왔다고 생각해요.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아날로그적이잖아요. 태엽으로 감는 빈티지 시계같이 주기적으로 사용해 주지 않으면 굳어버리는 물건이 많아요. 그런 물건들은 보통 하나뿐이어서 고장 나면 시간을 들이고 발품 팔아 수리해야 하죠. 대체할 게 없으니까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귀찮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어요. 작은 물건에 점점 더 애정이 생기거든요.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매력적인 물건들이네요. 두 분에게 근사하게 어울리기도 하고요.

윤지 감사해요. 아마 이 공간에 있어서 더 잘 어울려 보이는걸 거예요(웃음). 오래된 물건에서 느껴지는 손맛이 참 매력적이에요. 요즘 나오는 물건들은 정말 딱 떨어지잖아요. 빈티지는 그렇게 깔끔하지도 않고 좀 어설픈 면도 있지만 왠지 더 마음이 가요.

재기 어렸을 때부터 손때 묻은 물건들이 좋았어요. 새 운동화를 사면 친구들은 신고식이라고 밟으려고 하고 신발 주인은 피해 다니잖아요. 저는 오히려 새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게 창피해서 일부러 밟아달라고 했어요. 이대 앞 빈티지 숍에도 옷 사러 정말 많이 갔었는데….

 

그 주변에 있는 학교에 다닌 거예요?

재기 아뇨. 저는 4호선 끄트머리에 있는 오이도 쪽에 살았어요. 좋아하는 문화가 홍대 쪽에 있으니까 거리가 먼지도 모르고 그냥 왔다 갔다 한 거죠. 생각해 보면 지하철 안에서 유튜브나 구글로 음악을 디깅한 시간이 참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매장과 집이 가까워서 이동 거리도 짧고,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그때처럼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역시 뭔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따라다니는군요. 꼬집어 말할 취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의미 같아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재기 음…. 남 눈치 보면서 살지는 않았어요. 호불호도, 기준도 확실했어요. 취향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저 친구는 저렇게 하면 더 멋있을 텐데.’ 하면서 제 기준이 맞다고 생각했죠. 정말 안 좋은 습관인데 케이코쇼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유해졌어요. 여기 오는 어린 친구들이 빈티지에 관해 이것저것 물을 때, 이 문화를 잘 몰라서 그렇다는 걸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도 그들의 기준이 있을 텐데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어요. 

윤지 저도 마찬가지예요. 남들이 뭘 하든 어떻게 하고 다니든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 남들도 저에게 큰 관심이 없을 거라고 여겨 왔어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그런 성격 덕을 좀 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하고 내 가게를 차리는 꿈을 꿨는데, 주변의 걱정에 영향을 받기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행복을 찾아가려고 했어요. 

재기 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어요.

 

어떤 면이 달라졌어요? 

재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이 제 자아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어요. 쉬는 날 저희는 무조건 아이가 좋아할 공간을 찾아다니는데, 양보한다거나 아쉽다는 마음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만 들어요.

 

아이가 부모님 취향을 따라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대군요?

재기 누가 누구를 따라간다기보다는 지금은 아이에게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아이가 어린이집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면서 엄마 아빠가 평범하지는 않다는 걸 느끼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좀 신경 쓰이기도 해요.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어린이집 행사에 갈 때는 깔끔한 모습이 좋을 것 같아서 계속 길게 유지하던 머리도 잘랐어요. 

윤지 오늘은 촬영한다고 좀 차려입기는 했지만 (웃음) 사실 가게 하기 전에는 원래도 밖에서 이렇게 입고 잘 돌아다녔거든요. 그런데 케이코쇼텐을 완벽히 우리 스타일로 꾸며 놓았잖아요.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요. 5년 동안 이 공간 안의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해서, 문밖을 나서면 사람들 눈에 잘 띈다는 걸 이제야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재기 이 공간이 저희 삶에 너무 크게 들어와 있나 봐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니 어떻던가요?

윤지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하라는 말들도 많은데, 저는 전혀 싫거나 불편한 점이 없어요. 요리도 공간도 너무 재미있어서 괜찮았어요. 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요. 쉬는 날이 하루뿐이지만 그것도 괜찮아요. 

재기 초반에는 아홉 시까지 장사를 하고 나서도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서 디스플레이를 바꾸고는 했어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못 했을 거예요. 저 역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와서 일하는 건 즐거워요. 새로운 아이템이 생긴 날에는 오히려 빨리 출근해서 소개하고 싶어져요.

윤지 24시간 붙어서 일을 하는 건 처음이라서 합 맞추기까지 꽤 오래 걸리기는 했어요.

재기 의견 차이도 있고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니 트러블이 생길 때가 있었죠. 아내는 행동과 판단이 빠르고 쳐낼 건 바로바로 쳐내는 스타일인 반면, 저는 좀 느리고 완벽을 기하는 성향이에요. 완전히 반대죠. 그래도 대화로 많이 풀었어요. 가게 마감하고 서로 힘들고 서운한 부분 이야기하고, 웬만하면 감정을 집까지 가져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아이가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니 아내는 주방, 저는 홀 관리와 디스플레이를 중점적으로 맡으면서 역할이 나뉘었고 서로의 영역은 터치하지 않게 됐어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믿어주는 거죠.

 

아이가 어릴 때 매장을 오픈한 거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재기 경두가 세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했는데, 힘들 걸 알면서도 우리가 좋아하는 걸 그 시기에 꼭 하고 싶어서 일을 벌였어요. 처음 5개월 정도는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겼고, 어린이집을 좀 일찍부터 보냈어요. 그때부터는 제가 아침에 등원시키고 나서 출근을 했고요. 오픈 준비와 요리엔 아내가 저보다 훨씬 숙련되어 있으니까 오픈을 아내가, 마감을 제가 하기로 정했어요.

윤지 매장 준비할 때 공사가 계속 미뤄지고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면서 건강이 다 망가졌어요. 오픈 이후에도 계속 바빠서 건강 관리를 못 하고 지내다가 흐지부지 지금까지 왔네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이렇다 할 휴식 기간이 없었던 거네요. 잠깐씩이라도 컨디션을 회복해야 했을 텐데요.

재기 저는 그냥 많이 잤어요. 단순하지만 그게 제일 강력한 회복 방법이었어요.

윤지 저는 몸보다는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어요. 그럴 때면 뜨개질을 하거나 조그맣게 뭔가를 만들었어요. 손을 움직이고 집중하다 보면 걱정 고민이 떨쳐지는 느낌이 들어요.

재기 아내 성격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좀 힘들어 보이면 마음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아서 계속 말 걸고 전화하고 그랬어요. 가만히 혼자 둬야 풀리는 스타일인데 그걸 모르고(웃음)…. 지금은 서로가 ‘아 지금 말 걸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상태를 알아채고 시간을 주고는 해요.

 

요즘 하루 일과는 어때요?

재기 맞아요. 오픈 초반에 둘의 출퇴근 시간을 다르게 정한 걸 여전히 이어오고 있어요. 저는 아침에 여덟 시 반쯤 일어나서 아이를 깨우고,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같이 먹어요. 아이 씻기고 옷을 입혀서 어린이집까지 데리고 가죠. 그리고 가게로 출근해요. 아내가 먼저 퇴근하면 혼자 저녁 장사를 마치고 퇴근해요.

윤지 저는 일곱 시 반에서 여덟 시 사이에 일어나요. 아침 준비하고 가게로 출근하죠. 오픈 전까지 확실하게 세팅을 마치고 아이 하원 시간인 네 시까지 열심히 일해요. 아이랑 같이 집에 가는 길에 놀이터에 들를 때도 있어요. 집에 와서 저녁을 차려 먹고, 남편이 올 때까지 둘이 시간을 보내죠.

재기 둘이 너무 잘 놀아요. 닌텐도도 열심히 하고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요. 저는 아이랑 같이 건담 조립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다른 아빠들 보면 아들이랑 공놀이를 그렇게 하던데, 활동적인 부분은 아내가 더 잘 맞춰줘요. 아, 그렇다고 매일 둘만 나가고 저만 혼자 남아 있는 건 아니고요(웃음).

일단 해보고 깨닫는 거야

“산을 오르다가 어려운 코스가 나오면 둘 다 너무 힘든 상태에서도 서로 손을 잡아주거든요. 경두가 “엄마 여기 잡아! 엄마 여기 밟으면 안전해!” 하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 뭉클했어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부부의 육아 스타일은 어때요? 

재기 일단 둘 다 교육열은 없어요(웃음). 제가 어릴 때 엄마, 아빠한테 공부하라는 압박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 반감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윤지 공부는 하고 싶어 하면 물론 시키겠지만 아직까지 하고 싶단 얘기는 없네요(웃음). 경두가 독립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서 거기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외출할 때 옷을 스스로 고르게 하는 편인데요. 아이의 패션 감각을 키워주겠다는 의도라기보다는 생각하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오늘 밖에 날씨가 추우니까 따뜻하게 있으려면 이 옷을 입어야겠다.’ 하는, 사고가 이어지는 과정을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엄마, 아빠가 의견을 주입하는 걸 경계해야 할 텐데 쉽지 않아요.

재기 제 기준에서 좋다고 느끼는 걸 강요하는 순간들이 생길 때마다 자제하려고 노력해요. 저는 경두가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알고, 찾았으면 좋겠어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스타일이 있었으면 해요. 본인이 뚜렷하게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게 뭐든 지지해 주고 싶어요.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걸어간다는 건 정신이 건강하다는 뜻인 것 같아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는 감정 표현도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경두는 어떤 아이예요?

재기 에너지가 넘치는 일곱 살이에요. 눈 뜨고 자기 전까지 텐션이 저 위에 있어요. 참 밝아서 좋은데 요즘 들어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아요. 

윤지 밝고 따뜻한 아이예요. 엄마, 아빠를 많이 생각해 주고요.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서 경두에게 제가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줬어요. 그랬더니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엄마도 추운 거 아니야? 엄마 귀가 빨개졌어!” 조잘조잘하더라고요(웃음). 안 우는 건 저도 좀 걱정하고 있었어요. 슬퍼서, 기뻐서, 울 이유는 많은데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사실 최근에 제가 일부러 한번 울려 봤어요.

재기 응? 어떻게?

윤지 혼낼 일이 있어서 평소보다 좀 세게 혼냈어요. 그랬더니 울더라고요.

 

음… 다행인 거죠?

지 네(웃음). 그런데 원래 어두운 면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자라기를 바라서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현상의 좋은 면을 먼저 보게 하려고 하는데, 제 노력이 효과가 있으면 좋겠네요.

매장에도 가끔 함께 오는 것 같아요.

윤지 경두가 여기 오는 걸 좋아해서 주말마다 와요. 1층에서 주문을 받고 2층에 홀이 있는 구조인데, 바쁠 때는 1층에 앉아서 혼자 게임하거나 태블릿으로 영상을 봐요. 그림도 그리고요. 처음엔 저희도 불안했는데 요즘엔 그냥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 와서 놀게 둬요.

재기 어린이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가족 구성원으로 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스스로 가게 안에서 역할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요즘엔 손님들이 오시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는 기본으로 해요. 가족 단위 손님이 오시면 경두가 아이들이랑 1층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요. 오시는 분들도 좋아하시니 다행이에요.

윤지 엄마, 아빠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여기 오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어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엄마, 아빠랑 같이라면 뭐든 좋을 나이니까요. 요즘은 자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케이코쇼텐 했으면 좋겠다고, 나중에 같이 일하고 싶다는 얘기도 해요.

 

세 식구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재기 산책하면서 바람 쐬는 거 좋아해요. 저희가 지금 경복궁 옆쪽에 살아서 청와대 광장에서 킥보드,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RC카를 조종하고 놀아요.

윤지 경복궁 담 따라서 돌다가 어린이 박물관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요. 거기가 잔디라서 경두랑 남편이 몸으로 뒹굴면서 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거든요.

 

같이 땀 흘리면서 함께하는 운동도 있어요?

윤지 예전에는 등산도 종종 했어요. 경두가 다섯 살 때 처음 인왕산 정상까지 갔죠. 그냥 같이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가봤는데 재밌더라고요. 경두도 초반에는 힘들어하다가 다 오르고 나서 많이 뿌듯해했어요. 유대감도 더 끈끈해지고 성취감도 생기는 게 참 건강한 취미 생활인 것 같아요. 산을 오르다가 어려운 코스가 나오면 둘 다 너무 힘든 상태에서도 서로 손을 잡아주거든요. 경두가 “엄마 여기 잡아! 엄마 여기 밟으면 안전해!” 하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 뭉클했어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재기 저는 같이 자전거 타는 거 좋아해요. 집에 전기 자전거가 있는데, 쉬는 날 뒤에 경두를 태우고 청계천 길을 쭉 라이딩하면서 동대문 완구 거리까지 가요. 개인적으로 종로를 좋아하거든요. 매력적인 공간, 간판들, 사람들이 많은 동네예요. 경두에게 종로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는 해요.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어린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시키기 위해 일부러 운동학원에 보내기도 하던데, 경두는 아직 따로 뭘 배우지는 않나 봐요.

재기 학원은 아니지만, 작년에는 스케이트보드에 슬쩍 발을 담가보기도 했어요. 가게에 오는 친구 중에 프로 급으로 보드를 타는 친구가 있는데, 경두가 보드에 관심 있어 하던 차에 마침 보드를 선물해 줬어요. 운동 신경은 별로 없지만 경두가 원할 때는 요 앞 공원에 가서 같이 중심 잡아주면서 타는 걸 도와줘요.

윤지 안 그래도 지금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셋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안 보내고 있어요. 대신 집에서, 가게에서, 밖에서 충분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 중이에요. 초등학교 들어가면 학원에 보내준다고 약속했으니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사실 저도 어릴 때 태권도를 좀 오래 해서 검은 띠까지 땄거든요. 나중에 새롭게 같이 배울 운동을 생각하면 태권도보다는 수영을 가르치고 싶어요. 원하는 악기도 하나 배우게 해주려고요.

경두의 건강을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윤지 특별하게 뭘 해주지 않아도 다행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어요. 음…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 집 밥을 많이 차려 주기는 해요. 평일에는 거의 집에서 해 먹고 주말이나 쉬는 날에만 가끔 나가서 사 먹는 정도인데, 그것도 방법일까요(웃음)? 경두가 저를 닮아 비염이 있는데, 심할 땐 컨디션이 저조해져서 자연 성분 오일을 발라줘요. 매번 약을 처방받는 방법도 있지만 계속 먹이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럼 부부에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어떻게 풀어요?

재기 스트레스를 잘 안 받아요. 받아도 금방 까먹고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니 어찌 보면 축복이죠. 문제가 닥쳐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안 되면 다른 방법으로 하지 뭐.’ 하는 편이에요.

윤지 저는 작은 문제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에요. 제가 경두랑 뭔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물론 둘의 관계에도 좋겠지만 스트레스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퇴근하고 같이 요리를 한다거나 잠깐이라도 청소를 해요. 같이 작은 걸 해내고 ‘요리를 했더니 맛있는 음식이 나왔네! 청소를 했더니 여기가 깨끗해졌네!’ 하고 성취를 맛보는 거죠. 참, 집에서 식물도 많이 키워요. 큰 이유가 있어서 식물을 들인 건 아니지만 돌보다 보니 정신 건강에 너무 이로워요. 파릇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싱그럽고 상쾌해요. 물을 주면 처져있던 잎이 다시 올라오는 모습도, 햇빛을 많이 보면 꽃을 피워주는 모습도 너무 기특하고 예뻐요.

 

마음의 건강도 아주 중요한 문제죠. 경두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데 부모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싶어요? 

재기 좋든 나쁘든 웬만하면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게 하고 싶어요. 불법적인 일이나 거짓말 빼고는 뭐든지 오케이예요. 예를 들어 학교 다니면서 담배를 피운다면 밖에서 말고 집에서 피우라고 할 거예요. 그게 해로운 일이라는 걸 직접 깨닫도록 기회를 주는 거죠.

윤지 부모가 못 하게 해도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어떻게든 할 거거든요. 몰래 하는 것보다 엄마, 아빠가 알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재기 저희 때는 학교에서 형식적인 교육을 받았던 것 같아요. 공부는 물론이고 흡연, 성교육처럼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더욱이요. 경두가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데 제가 느끼기엔 지금도 그리 많이 바뀐 것 같지가 않아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집에서 알려주고 싶어요. 무조건 어린이의 시선에 맞추기보다 때가 되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투명하게 알려주려고요.

 

가족이 지키려는 가치는 경험이네요. 앞으로 10년 뒤 세 식구는 어떤 모습일까요?

윤지 이 공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케이코쇼텐은 계속하고 있을 거예요. 경두가 진지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같이 가게를 운영할 수도 있겠죠. 작은 꿈이 있다면, 남편이 그리는 그림으로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어요.

재기 10년 뒤면 경두가 고등학생이네요. 그때쯤이면 지금보다는 시간이 날 테니 그림 활동을 좀더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아이를 케어하는 게 최우선이고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