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Into The Mailbox

오늘은 편지를 씁니다

안녕, 잘 지내?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어. 감기에 걸리진 않았는지 걱정스러워. 새삼 안부가 궁금해서 펜을 들었어. 나, 엊그제 따뜻하고 정다운 가게에 가게 됐거든.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어. 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지더라. 이 편지에 그 마음과 분위기가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너와 함께 그곳에 가고 싶어. 곧 만나자. 또 편지할게.

글월

GEULWOLL

편지를 자주 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문득 티슈에, 덜컹덜컹 지하철에서 문득 다이어리에, 공원에서 책을 펼쳐 문득 면지에, 도구가 마땅치 않을 땐 문득 손바닥에…. 오래도록 고민해서 몇 장이고 적어낸 편지부터 자그마한 종잇조각에 괴발개발 끼적인 쪽지까지. 숱하게 써 내려간 각양각색 편지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어느 하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편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연희동의 한 작은 가게에서 편지의 매력은 ‘사랑받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얼굴을, 소리를, 몸짓을, 말투를, 그 마음을 떠올린다.

편지 가게로부터

날아온 편지

“편지 가게를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의 하루를 기록하는 인터뷰를 하고 싶었어요. 에디터로 일하면서 인터뷰의 매력을 느꼈고, 일상의 꼭지를 대신 기록해주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글월은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는 예약제로 운영하며 한 시간 반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만을 만난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미리 전하면, 글월은 질문 스무 개를 준비한 뒤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은 다양한 모양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왈칵 눈물을 보이는 사람, 시원한 미소를 짓는 사람,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사람….

우리는 때때로 복잡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 한다. 가까운 사람은 너무 각별해서, 먼 친구는 데면데면해서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 곪아가는 이야기를 글월에게 털어놓으면, 한 달 뒤 반가운 편지를 한 통 받는다. 글월과 나눈 대화가 정리된 나만을 위한 편지다. “시간을 두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편지의 의미가 커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한 달의 시간을 두고 발송하고 있어요. 연희동 글월에도 본인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 편지 사본이 담겨 있는데, 본인에 한해 언제든 열람할 수 있죠.” 글월은 마음이, 생각이 담겨 머무는 장소다. 어쩔 수 없이 따뜻하고 다정하다.

단정한 편지지에

다정한 마음을 담아

때때로 숱한 편지지와 엽서, 종이 뭉치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게 된다. 오늘은 어디에다 편지를 쓰지? 마음을 담을 재료를 찾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글월의 편지지가 눈에 들었다. “글월 편지지는 창문으로 보이는 ‘연희아파트’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아담한 연보라색 아파트가 포근함과 다정함을 주는 게 좋아서 이곳에 자리 잡게 됐거든요. 좋은 느낌을 주는 색감을 편지지에 옮기고 나니 더 많은 애정이 생겼어요. 앞으로도 일상에 머무는 다정한 색상을 이렇게 편지지로 옮길 생각이에요.” 몇 가지 편지지를 눈앞에 두고 시필해본 뒤 제일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골라 책상에 앉는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마음을 새기고 편지 봉투를 봉했다. 먼 옛날 풍경을 상상하며 아주 오랜만에 우표를 한 장 구입한다. “이제 서대문구에 우표를 판매하는 곳이 얼마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체국 직원에게 우표 판매 승인을 받는데, 직원이 정말 괜찮겠냐며 의아하게 바라보던 얼굴이 잊히지 않아요.”

아무리 예쁜 포장지에 잘 담긴 선물이어도 편지가 없으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된다. 어쩌면 좋은 날 받고 싶은 건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위한 마음일지 모른다. ‘계속 받고 받아도 또 받고 싶은 기쁜 것.’ 글월이 정의한 편지의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도 자그마한 편지를 쓴다. 꾹 참아오던 말들을 종이에 꼭꼭 적어 담아 소중한 당신에게 전하며, 편지의 다정함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해보는 날이다.

 

A.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10 403호

H. instagram.com/geulwoll.kr

O. 목-금요일 13:00-20:00, 월-수요일 예약, 토-일요일 휴무

글월이 보내는 마음

글월의 그녀에게 편지를 한 통 부탁했다. “시공간을 초월해도 괜찮아요. 단 한 사람만 떠올리며 마지막 편지를 써주세요.” 그녀가 선택한 시기는 글월이 문을 닫는 먼 훗날. 그녀가 기대온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한 자 한 자 눌러 적은 마음이다.

포스트카드오피스

POSTCARD OFFICE

호주에 있는 단짝에게 오랫동안 편지를 보냈다.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어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야 ‘잘 받았다.’는 연락을 받곤 했던 느린 시간을 기억한다. 친구가 한국에 돌아오고 서너 달쯤 지났을까, 호주로 편지를 날라주던 애틋한 우체통이 사라졌다. 늘 바라보던 풍경에 균열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적적했다. 시간이 흐른 뒤, 3개월 동안 들어오는 우편물이 없는 우체통은 철거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우체통이 사라지고 없을 때면 ‘3개월 동안 쓸쓸했겠구나.’ 하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의도치 않게 내가 생명력을 연장해주던 우체통 생각이 나면서, 우체통은 그립고 미안한 대상이 됐다.

강원도 바다 마을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짙은 초록색 우체국에서 앞으로 7년 후인 2026년까지 원하는 달에 편지를 배송해준다는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7년은 건재하겠구나, 안도하는 마음으로 강릉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를 사이에 끼고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한 포스트카드오피스는 짙은 초록을 띠는 독특한 공간이다. 세상 어디엔가 있을 법한 이 가상의 우체국을 찾아가면, ‘POSTCARD OFFICE’라는 간판을 끌어안고 있는 푸른색 유니폼의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이 남자의 정체는 국장인 레이터 씨. “레이터 씨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경포해변을 거닐던 곱슬머리 외국인에게서 영감을 받은 인물이에요. 3년 정도 저희 작업에 캐릭터로 사용했는데, 포스트카드오피스를 오픈하면서 국장님이란 역할이 생겼죠.” 넉넉한 풍채에 곱슬곱슬한 갈색 수염이 입 주변을 뒤덮은 이국적인 국장님은 포스트카드오피스를 지키면서 성실하게 편지를 배달하는 캐릭터다. ‘DELIVERING HAPPINESS’를 슬로건으로 삼고 엽서와 문구를 판매하면서 배송 서비스까지 운영하는 포스트카드오피스엔 오늘도 다정한 속삭임이 가득하다. 

“가상의 우체국이라도 우체통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체통 서비스를 통해 포스트카드오피스라는 브랜드를 직접 경험할 수 있기도 하고요. 사실, 우체통과 편지 쓰는 책상이 공간을 꽤 차지하고, 배달에 신경 쓰는 것도 쉽지만은 않아요. 그래도 강릉과 여행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덕분인지 많이 이용해주셔서 다행이고 감사해요.”

가벼운 종잇장에 깃든

천천한 행복

내 책상 주변엔 수많은 엽서가 붙어 있다. 한정판 피너츠, 빈티지 미피, 장 자크 상페 삽화 등 좋아하는 것을 한데 모아 엽서로 간편히 진열해두었다. 언젠가부터 엽서는 쓰기보다는 가지고 있으려고 사게 됐는데,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 할 때가 오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엽서들을 펼치고 고민한다. 면면을 살피다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골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엽서야.’라고 첫 문장을 적으면, 마음이 한결 보드라워지는 느낌이다. 편지를 쓸 수 있는 다양한 재료 중 포스트카드오피스가 선택한 것도 바로 이 엽서다. “엽서는 다른 재료에 비해 가벼워요. 무언가 쓰려고 애쓰지 않고도, 소유하고 감상하는 것만으로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죠.” 포스트카드오피스에서는 다양한 엽서, 그리고 편지를 한결 돋보이게 만들어줄 문구 제품을 판매한다. 아담한 매장 한편엔 스티커 아파트와 마스킹 아파트가 건설되어 있는데, 아파트처럼 규격화된 서랍장에 호수가 붙어 있어 굿즈의 집을 방문하는 것 같은 재미가 쏠쏠하다. 이 특별한 우체국을 기념하기 위해 레이터 국장님과 반려견 벼리가 들어간 굿즈를 선택하는 손님도 많다.

포스트카드오피스에 머물던 손님들은 묵직해진 장바구니를 끌어안고 엽서를 쓰기 시작한다. 등을 보인 채 글씨를 적는 그들 중에는 “엽서 처음 써봐요.” 하고 수줍게 입을 떼는 분도 있다. “그 순간의 마음을 솔직하게 써낸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은 편지를 쓸 수 있어요. ‘미안’이라는 두 글자, ‘고마워’라는 세 글자, ‘사랑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로도 충분하잖아요.” 포스트카드오피스는 엽서에 마음을 담으며 숨을 고르는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점차 발달하는 세상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편지를 받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종이의 촉감일 테다. 종이가 지닌 그 다정한 감각이 오래도록 남아 있길 바라는 포스트카드오피스는 편지를 쓰고 부치는 일을 이렇게 말한다. ‘지나가는 마음에 모양을 내어 건네주는 일’이라고. 


A. 강원 강릉시 화부산로 40번길 29 풍림아이원 상가

H. Instagram.com/postcard.office

O. 월요일, 목-일요일 10:00-19:00(브레이크타임 12:00-13:00), 화-수요일 휴무

편지 나라를 보았니?

포스트카드오피스가 편지로만 소통하는 편지 나라에 우체국을 세웠다. 편지 나라가 궁금해 레이터 씨를 불렀다. “국장님! 편지 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편지 나라를 소개해주세요.

여기는 초록 숲으로 뒤덮인 넓고 예쁜 나라예요. 여유와 인내로 똘똘 뭉친 국민들이 살고 있고, 집들은 전부 멀찌감치 자리하고 있어요. 아파트가 뭐죠?

 

국민들은 편지로만 소통하는 것을 답답해하진 않나요?

그럼요. 날 때부터 익숙한걸요. 소통이 잘 안 된다 싶으면 몇 통이고 다시 보내면 되고요.

 

레이터 씨는 편지 나라의 어떤 장소를 가장 많이 애용하나요?

바다 마을 카페요. 편지 나라 국민들은 동네 카페에서 자기 편지를 찾아가고 있거든요. 여긴 워낙 넓어서 모든 집을 찾아다니려면 업무가 끝도 없을 거예요. 저는 바다와 커피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서 바다 마을 카페에 꼭 다시 들르곤 하죠.

 

편지를 배달하기 싫은 장소도 있어요?

이웃 나라인 ‘톡톡 나라’요. 그곳은 모든 것이 빨라서 어지러워요. 힘들게 편지를 전하는 저를 옛날 사람 보듯 고리타분하다고 여기죠.

 

끔찍한 상상을 해봤어요. 우편물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다면….

아악! 당장… 편지를 써야겠네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사과할 거예요. 부끄러우니 배달은 다른 우체부에게. 

 

편지 나라에서는 어떤 엽서가 가장 인기가 많은가요?

편지 나라 화가가 그려주는 초상화 엽서요. 손수 그려주는 하나뿐인 엽서, 너무 멋지지 않나요?

 

편지 나라를 자랑해주세요.

여기는 차보다 자전거가 많아 공기가 좋은 곳이자 사람을 천천히 기다려 주는 곳이에요. 편지 나라로 오세요. 편지를 못 써도 걱정하지 말아요. 변호사보다 대필가가 많은 곳이 편지 나라입니다. 아, 모든 편지는 공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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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사진 글월, 포스트카드오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