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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 신동숙·원가희

살림가게 ‘숙희’의 소개 글을 읽다 보면 ‘살림이 즐거운 숙희’라는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접 살림을 꾸려 온 ‘숙’과 ‘희’의 만족이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보듬고 아낀다는 건 대상뿐 아니라, 그와 어우러지는 내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닐까.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통해 이대로 충분한 나를 발견했기에 애쓰지 않아도 깊고 오래 이어졌으리라. 둘도 없는 존재로서.

익숙해서 더 마음이 가는 살림처럼

“내 손에 익은 익숙한 질감에 애정을 느끼는 편이에요. 제가 써보고 좋아서 물건을 만들었으니 나른한 느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행주나 앞치마도 빳빳한 새것보다 ‘내가 이거 써봤는데 정말 좋아.’ 하면서 쓱 내미는 게 정감 있잖아요”

‘살림이 즐거운 숙희, 엄마가 행복해지는 숙희’를 꾸려가는 두 분을 만나 기뻐요.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동숙 숙희의 ‘숙’ 신동숙이에요. 숙희에서 만들기를 담당하고 있어요.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고, 성빈, 성원이의 엄마이고, 정수의 아내예요. 

가희 ‘희’ 원가희입니다. 저는 결혼 17년 차이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숙희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동숙 결혼하고 내 살림을 시작하면서 살림이 재밌어졌어요. 아이를 키우며 필요한 걸 원하는 원단으로 만들어오다 숙희를 열게 되었어요. 살림을 성실히 하는 친정 언니나 엄마가 “이럴 때 이거 쓰면 좋아.” 하면서 손에 익은 것들을 건네는 숍이 되고자 해요.

가희 살림을 하다 보면 행주와 수건, 앞치마처럼 평범한 아이템이 필요한데, 의외로 마음에 드는 걸 찾기 쉽지 않아요. 어디서나 팔지만 제 마음에 드는 것은 공을 들여 찾아야 해요. 숙희에 가면 언제나 마음에 드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두 분의 인연은 숙희 이전부터 시작된 거죠?

동숙 맞아요. 큰아이를 낳고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게 힘들더라고요. 일을 그만두고 살림하면서 아이들 용품을 소개하는 사이트 ‘투마이베이비’를 만들었어요. 방 한 칸에서 사이트를 만들고 제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배송을 보냈어요. 그때 가희가 고객이었어요. 블로그로 소식을 주고받다가, 주문서에 쓰인 주소를 보니 가까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으로 초대했어요. 

가희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언니네 집으로 놀러 갔어요. 아이들은 한 살 터울이니까 꼬물꼬물 잘 놀고 저는 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너무 좋았어요. 시댁에 살 때라 언니네에 가면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매일 갔어요.

동숙 그때부터 패브릭 제품을 직접 세탁해서 판매했거든요. 널어놓으면 가희가 놀러 와서 접어주고, 밥을 해서 같이 먹었어요. 나이 들어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처음 만났는데도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 같더라고요. 제 주변에 이렇게 상냥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가희 늘 언니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진짜 언니가 생긴 기분이었어요. 심지어 요리를 잘하는 언니. 아이들 문화센터 수강 신청도 같이 하고, 수업 마치면 장 보고 맛있는 거 해 먹는 나날이었어요. 언니 아이들이 입던 옷도 물려받고요. 언니가 고른 센스 있는 옷을 받는 것도 좋은데 보들보들 딱 입기 좋은 상태라 더 좋았어요. 언니네 첫째가 입던 옷이 우리 집 첫째에게 오고, 다시 언니 둘째에게 가고, 우리 집 막내에게 돌아와요. 아이들이 한 옷을 돌려 입은 사진을 보면 정말 귀여워요. 깨끗한 건 운동화, 팬티까지 돌려 입었어요. 네 명이 입고도 옷 상태가 괜찮으면 다른 친구에게 줬고요.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일도 같이 하게 된 거예요?

동숙 저는 무언가 한 가지를 꾸준하게 하는 성향이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은 편이죠. 투마이베이비는 제작부터 돈 관리까지 혼자 6~7년을 일하다 보니 지치더라고 요.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는데, 가희가 너무 좋은 공간을 발견했다고 저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간을 보러 갔는데, 제가 서촌을 드나들면서 눈여겨본 곳이었어요. 

가희 저는 공간에 애정이 큰 편이에요.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해서 게스트 하우스를 해볼까 했는데 허가가 안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끙끙 앓았어요. ‘이 공간을 놓치기가 싫은데 어떡하지?’ 이 공간을 내가 못 가진다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들 비싸서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때 남편이 제안했어요. “동숙 누님과 동업해 보는 건 어때? 둘 관계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친한 언니 동생으로만 지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못 했거든요. 언니에게 물었더니 흔쾌히 “좋아.”라고 답해줘서 정말 신났어요. 저는 언니가 하던 일이 참 좋았고, 그 일을 계속하길 바랐어요. 언니도 일이 싫어서 그만둔 게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어요.

워낙 친한 사이라 걱정이 되기도 했을 텐데요.

동숙 주변에서 “동업은 친할수록 하지 말아야 해. 가희하고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나중에 안 좋아지면 어떡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는 모든 일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접은 일을 다시 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없지는 않았지만, 파트너가 가희라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는 해왔던 일이었는데 가희는 처음 하는 일이니까 가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함께해서 정말로 신이 났어요. 가희와 함께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다른 파트너였으면 아마 이렇게 오래 못했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편한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가희 주변의 걱정을 알기는 알았는데 저는 정하고 나면 그것만 생각하는 타입이에요. 언니랑 일하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하는 말도 내가 겪은 게 아니잖아요. ‘내가 경험해 봐야 알지. 우리는 괜찮은 사이로 일할 수도 있잖아.’ 대신 주변의 조언은 귀담아들었어요. 동업은 항상 양보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열심히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동숙 지금도 가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각나는 순간이 있어요. 처음에 공간만 얻어놓고 집기나 가구가 없었거든요. 선뜻 살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뭘 하나 사도 신중하게 결정했죠. 그때 가희가 아는 분이 가구를 주신다고 해서, 저와 남편, 가희와 가희 남편, 이렇게 넷이 하남까지 다녀왔어요. 강변을 따라 달리는 차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남편들이 “숙희가 잘 돼서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이야기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가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원하는 차 사줄게.” 그랬거든요.

가희 돌아와서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죠. 우리의 앞날을 모르지만 준비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언니가 쓰던 앵글도 가져다 놓고 집에서 쓰던 집기를 하나하나 넣으면서 매장을 채워갔어요.

 

그때 아이들이 5~10세였다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과 가정을 잘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 갈등이 있었을 거 같아요.

동숙 숙희 매장을 열 때,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였어요. 그때까지 계속 일을 하느라 둘째는 주로 시어머니가 봐주셨는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매장과 저희 집이 멀어서 일주일 내내 일하면 너무 바쁘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화요일, 목요일 주 2회 매장 문을 열고, 배송도 그날만 하기로 정했어요.

가희 사람들이 다 의아해했어요. 매장과 온라인을 같이 운영하려면 일주일 내내 일을 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월세도 내야 하는데 어떻게 유지할 거냐고 걱정해 주는 분들도 있었는데, 욕심내지 않고 시작하기로 한 거죠. 감사하게도 매장을 연 첫 달부터 각자 월급을 가져올 수 있었어요. 동숙 언니가 투마이베이비로 쌓아온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동숙 지금과 비교하면 소소한 매장이었지만 홍보하지 않고 시작한 거로는 괜찮은 성과였어요. 3~4일 일하면 더 벌 수 있겠다는 게 머리에 그려졌지만, 저는 그 균형이 너무 좋았어요. 매일 보는 것보다 화요일, 목요일에 만나니까 더 반갑고 일도 더 즐거운 거예요. 해질 때 되면 집에 가기 싫어요(웃음). 매일 붙어 있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했을까 싶어요. 그렇게 하길 참 잘한 거 같아요.

 

숙희에 오면, ‘맞아, 나 마침 저거 필요했는데.’ 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곤 해요. 상품군을 구성하는 기준이 있나요? 

가희 언니가 살림을 부지런히 하다 보니 필요한 걸 잘 찾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설거지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옛날에 할머니들이 그릇을 수건으로 훔쳐서 헹궜잖아. 헹굼행주 같은 걸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 

동숙 살림하면서 만들다 보니, 우리가 만든 것들은 여기 써도 되고 저기 써도 괜찮은 제품들이 대부분이에요. 집에서 생활할 때 급하면 행주로 애들 입도 닦고, 손도 닦고 하잖아요. 면포들은 얼굴을 닦고, 주방에 두고 손을 닦거나 베개 위에 깔아도 되는 것들을 만들어요.

가희 저희는 무지나 심플한 패턴을 좋아하지만 빈티지스러운 패턴이나 꽃무늬가 반응이 더 좋아요.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주로 만들지만 저희가 좋아하는 것도 섞어서 제작해요. 그런데 팔리는 속도가 확실히 달라요. 고객들이 원하는 패턴으로 제작해서 샘플로 사용해 보면 왜 좋아해 주시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활력을 주고 싶을 때, 패턴이 강한 제품을 써요.

모든 제품을 미리 세탁해서 판매한다고 했어요. 이유가 궁금해요.

동숙 저는 새 물건 말고 사용감이 있는 것, 내 손에 익은 익숙한 질감에 애정을 느끼는 편이에요. 옷도 새 옷보다 몇 번씩 빨아서 나른해진 느낌을 좋아해요. 세탁하기 전 샘플을 받아보고 ‘아 어쩌지.’ 싶은 순간이 많거든요. 세탁되지 않은 원단은 발가벗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빨리 구겨줘야 할 것 같고, 빨아야 할 것 같아요. 세탁하면 그제야 마음을 놓아요. 제가 써보고 좋아서 물건을 만들었으니 그 느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행주나 앞치마도 빳빳한 새것보다 “내가 이거 써봤는데 정말 좋아.” 하면서 쓱 내미는 게 정감 있잖아요. 제품 상세 설명에 ‘세탁해서 보내니까 바로 쓰셔도 돼요.’라고 쓰곤 했어요.

가희 지금은 매장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예전에는 세탁을 언니가 담당하다 보니까 일이 많아서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새 물건 나온 걸 보면 언니 마음이 뭔지 알겠어요. 지금은 안 빨면 너무 어색해요. 한 번 빨고 나면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거든요. 지금 이 타월도 새것과 세탁한 것 차이 보이시죠? 느낌이 너무 달라요.

 

요즘 두 분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각자 리듬이 있을 거 같아요.

동숙 숙희에 출근하지 않는 날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재택근무 하는 남편과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 마셔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일하는 시간을 갖죠. 출근하지 않아도 움직여야 돌아가는 일들이 있으니 제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에 가기도 하고, 새로운 상품을 위해 샘플 작업을 하거나 상품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해요. 그러는 사이 아이들 학교와 학원 픽업을 하고 간식을 챙겨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요. 뭘 하는지도 모르게 금방 일주일 되고 한 달 되고 그래요. 숙희에 나오는 날은 늦게 귀가하니까 아침에 부산스럽게 먹을 거 해놓고 출근해요. 출근하면 너무 재미있는데, 오히려 집에 있는 날 할 일이 더 많고 피곤해요.

가희 언니는 정말 부지런해요. 출근하는 날 직접 아이들 도시락을 싸거든요. 도시락마다 아이들 이름을 적고, 메모를 쓰고 나와요. 저는 제 것만 잘 챙겨도 다행이에요(웃음).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숙희 게시판에 들어가서 답을 남기고, 전화 응대를 하고, 다음 날 배송할 것들을 보며 업체에서 받아야 하는 물건을 주문해요. 제가 맡은 일의 대부분은 휴대폰으로 가능한 일들이라 그런 일들을 해치우고 나면 틈틈이 쉬어요. 먼지가 굴러다니면 ‘후’ 불어서 안 보이는 데로 보내고, 빨래를 개어서 옷장까지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아이들이 “엄마, 밥!”이라고 하면 되레 “얘들아, 엄마 밥 차려줘.” 장난을 치며 겨우 차려주죠. 사이사이 낮잠을 자주 자고 일어나서 햇살이 좋으면 제품 사진을 찍고 주변을 정리해요. 저는 일도 살림도 몰아서 하는 편이에요.

 

성향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동숙 뭘 어떻게 잘해보려고 하기보다 생활이라 하는 거예요.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일을 하는 게 일상이니 열심히 하는 거죠. 저도 피곤하고 귀찮은 날이 많아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투덜거리면서 해요. 가끔 ‘어떻게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고 살림하고 강아지를 돌보고 시부모님과 같이 사느냐’고 물어보시는데, 그저 제 할 일만 하거든요. 모두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하는 건데 그걸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게 오히려 신기해요.

가희 저는 투덜대지 않고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일은 다른 사람과 연결된 거라서 부지런하게 하는데 개인적인 성향은 게을러요.

 

서로의 다른 성향이 일할 때 어떻게 드러나나요?

가희 저는 틀을 정하고 지키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고, 말투와는 다르게 약간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말수도 적고요. 어떤 일이 마음에 들 때 “언니 이거 정말 잘한 거 같아요. 좋아요. 최고!”라는 리액션을 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가 그런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동숙 저는 양은 냄비 같은 사람이라 쉽게 끓어올랐다가 금방 사그라들어요. 우리 일이 제가 열심히 만들어 가희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물으며 제품을 출시하는 식으로 진행돼요. 저는 주변 몇 사람이 예쁘다고 해도 가희가 좋다고 해야 정말 좋은 거거든요. 그런데 가희가 좋다고 안 하는 거예요. 그럼 속상해요. ‘다 예쁘다고 하는데 왜 아무 말이 없지?’ 생각하며 섭섭함이 정점에 다다를 즈음, 가희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요. 그러면 쌓이려고 했던 앙금이 사르르 녹아요(웃음). 또 일을 하다 정해진 길로 간다 싶으면 지루해져서 ‘좀 틀어서 가도 되는데, 왜 이렇게 해야만 해?’ 하면서 투덜대죠. 불평하면서 상대가 하자는 대로 따르고 지나고 나면 ‘그래, 그게 맞았어.’ 이해해요. 하지만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오면 저 과정을 반복해요 (웃음).

 

다른 모습을 발견해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거 같아요.

동숙 저는 일도 그렇지만 관계도 너무 애쓰거나 노력하면 어색해지고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집안일할 때도 제작을 할 때도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 관계가 더 힘들어요. 아이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바로 하는 게 제일 편해요. 속내를 숨기고 전전긍긍해 봤자 저는 다 드러나는 사람이라서 괜히 주변만 불편하게 해버린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괜찮게 해주는 사람이 제일 좋아요. 가희가 딱 그런 사람이죠.

가희 우리는 있는 그대로 지내도 괜찮은 사이가 맞아요.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건 억지로 바꾼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성장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 지내며 더 성장한 셈이죠.

관계에 위기는 없었나요?

동숙 일을 하며 크게 싸운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숙희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숙희가 더 알려져서 주문도 많고 바쁜 시기였는데, 몸과 마음이 자꾸 지치더라고요. 이제는 정말 그만해야 하는 때가 온 거 같다는 마음과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같이 있었나 봐요. 평소 제가 조금 지친 기색을 내비칠 때마다 가희가 “이렇게 해결해 봐요.” 하면서 붙잡아줬는데, 그때는 “그래요.” 하는 거예요. 한 번을 붙잡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잘 정리할까, ‘박수 칠 때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가희 저는 원칙주의자예요. 제가 처음 언니와 동업하면서 다짐한 것이 예스맨이 되자는 거였어요. 그동안 작은 일에 예스를 했으니 이렇게 중요한 일에도 예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작 일이 정말 힘들잖아요. 공장 사장님들 연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사장님하고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언니가 그걸 다 해내고 계신 거예요. 많이 힘드셨으니까 그만하자는 말을 꺼낸 건데, 그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같이 즐거워야 동업이고 숙희인 건데, 내 동업자가 하지 말자고 하면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어떻게 다시 유지하기로 마음을 바꾼 거예요?

동숙 그때 가희와 처음으로 일에 대해 솔직한 마음을 나누었어요. 함께 일하던 스태프분들도 정말 아쉬워하던 상황이었는데, 둘이 이야기를 깊이 나누고 조금 더 해보기로 마음을 바꿨어요. 법인으로 바꾸고, 공간도 안국동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이 변해서 다시 모두가 ‘으쌰으쌰’ 하게 되었어요.

가희 이 일을 겪고 나서 제가 또 하나 배운 게 있어요. 저의 원칙주의적인 성격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겠구나, 언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가 한 번 더 물어봐 줘야겠구나. 언니에게도 힘들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나한테 편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거기에 맞출 수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건 우리가 물리적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언니는 저보다 다섯 살이 더 많아서 제가 체력이 떨어지면 언니는 더 떨어지겠구나 싶은 거죠. 마음이 안 맞아서의 힘듦이 아니라 체력의 힘듦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직원을 구해도 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더 나가서 해도 되니까 편하게 이야기하기로 약속을 했죠.

 

두 분의 지인들이 숙희의 모델이 되어주거나 배송을 도와준 걸로 알아요. 함께 일하는 분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동숙 맞아요. 바쁠 때는 주변 친구들이 도와주곤 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매장을 둘이서 운영하기 벅차더라고요. 그래서 개인 SNS로 스태프를 모집했어요. 서너 명 정도 같이 일하다가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시면 미리 연락 주신 분들에게 ‘같이 일하실 수 있어요?’ 여쭈어서 충원했어요.

가희 매장을 옮기면서 화~토요일까지 영업을 하는데 저희가 주 2회 출근하려면 스태프가 필요했어요. 스태프 일곱 명이 돌아가면서 주 1~2회 근무해요. 일주일 내내 일하는 게 아니라서 급여가 많지 않지만, 다들 엄마이고 가정이 있으니까 매여서 일하기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괜찮은 조건 같아요. 다들 아이가 있어서 서로 이해한다는 것도 좋아요.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플 때가 많았잖아요. 그런 경우 언제든지 편하게 이야기하고, 여행 일정 잡으면 쉴 수도 있어요. 다른 분이 흔쾌히 나오겠다고 하시거든요. 다들 일하면서 맛있는 거 먹고, 포장하면서 고민거리도 이야기하고, 서로 배려하며 재미있게 일하시는 거 같아요.

나답게 스며드는 사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성실히 일해서 취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일하는 시간을 컨트롤해서 방학을 갖고, 둘이 충전 여행을 가고,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배우러 갈 수도 있죠. 이런 것들을 항상 함께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요.”

이미 형성된 관계 안에서 많은 일을 꾸려오고 있네요. 관계를 새로 맺는 것보다 유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편 같아요. 

가희 맞아요. 제가 먼저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편은 아닌데 누군가가 제가 좋다고 표현해 주면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오래된 관계를 더 좋아하지만 오래된 관계가 지금부터 시작될 수도 있는 거라서 오는 사람을 막지는 않아요. 관계가 식으면 그대로 두면 되고, 오래 유지되면 감사한 거죠. 제가 좋아하는 오래된 관계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에 대한 갈증은 없어요.

동숙 가정을 꾸리며 살다 보니까 우리 식구들한테 집중하는 시간도 많지 않은데 타인에게 신경 쓰기 쉽지 않아요. 주변에 알려주고 나누고 싶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해요. 제 굴레 안에서 해야 하는 일과 생활이 있고, 가족들이 우선인 삶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거의 정해져 있어서 오래된 관계가 더 많아요. 자연스럽게 늘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요.

 

무례한 사람들도 종종 마주칠 텐데요, 어떻게 대처하는 편이에요?

가희 저는 누군가에게 무례를 겪으면 내가 먼저 예의 없이 대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성격이에요. 하지만 종종 이유 없는 무례를 겪기도 하지요. 가끔 SNS에 위선이 읽히는 조언이나 선을 넘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다이렉트 메시지로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요. 그리고 조용히 차단해요. 대체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는 한데 내가 불편한 사람에게까지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의 의미가 모든 걸 다 허용하고 받아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동숙 저는 가희의 이런 면이 참 부러워요. 무례하다고 느껴지면 친절하고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되는데 저는 그렇게 못 하거든요. 그래서 제 개인적인 피드에 “저는 친절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많아요.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정답게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가 친절하지 않다고 부러 말하는 건 저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에요. 오지랖이 넓어서 한번 친절하기 시작하면 끝을 낼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거든요. 저에게 서운해하거나 안 좋은 인상을 가질 수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부모가 삶을 사는 태도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텐데요. 자녀들에게 관계, 우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주려 하는지 궁금해요.

동숙 제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둘째가 어릴 때 부모님이 뭐 하시냐는 질문에, 아빠는 나무에다 못질하고 엄마는 숙희에서 바느질하고 이불을 만든다고 했대요. 정말 정확하게 본 거라 웃음이 나면서도 부모가 성실히 일하고 내 일을 좋아하는 걸 아이들은 성장하는 내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굳이 제가 어떻게 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가는 게 조금씩 보여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맞다 틀리다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저도 여전히 실수하며 살고 있는데요. 묵묵히 아이 생각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믿어주는 일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 같아요.

가희 저는 공중도덕에 엄격한 편이에요. 애들한테는 매일 들어 잔소리겠지만 ‘길에 쓰레기 버리지 마라. 길에 침 뱉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마라.’처럼 예전 부모님이 하시던 말씀들을 저도 계속하게 되네요. 또 ‘친구 셋이 놀 때 한 사람 소외하지 마라.’ 같은 기본적인 이야기 외에는 아이들한테 해주는 얘기는 별로 없어요. 융통성 없는 제 모습이 아이한테서 보이면 걱정도 되지만 다행히 남편 피가 섞여서 그런지 저보다 나은 것 같거든요.

10대가 되면 관계의 밀도가 높아지는 거 같아요. 아이마다 고민도 다를 텐데요. 

동숙 저희 아이들은 사람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성향이라는 걸 알았어요. 대개 여자아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놀잖아요. 유치원 때는 “걔랑 걔랑 둘만 친해도 상관없어. 우리는 친구니까.”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사실 상처를 받고 있는데 엄마가 걱정할까 봐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가 싶어서 걱정이 좀 됐어요. 근데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보니까 그런 성향의 아이더라고요.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요. 혼자 있을 때 친구가 카톡 보내면 반갑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걸 못 해 불편해하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 스스로 조율하더라고요. 요즘은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끼리 친해져서 조금 더 편해졌고요. 둘째는 상황이 또 다른데요, 중성적이라 남자아이들과 잘 맞고 여자 친구들이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하는 거예요. 속상해서 너도 노력해 보라고 이런저런 방법을 이야기하면 “나도 그렇게 한단 말이야.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 편만 들고 내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해?” 하니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내버려 뒀어요. 올해 중학생이 되는데, “엄마 그 친구들 결국 다 찢어졌어.” 하며 세상을 달관한 듯이 말해서 정말 웃겼어요. 

아이들은 지켜봐 주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요. 부모가 많이 개입하면 어른의 생각이 들어가서 아이들이 자꾸 흔들리는 거 같아요. 아이들도 혼란스러워서 이쪽에다가 이 얘기 하고 저쪽에다 저 얘기를 하게 되죠. 어른들도 그럴 때 있잖아요. 나중에 저희보다 더 현명하게 답을 찾아서 잘 가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남편의 영향이 커요. 제가 종종 “쟤는 정말 왜 저러지?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하소연을 하거든요. 그러면 남편이 “성빈이는 정말 멋지게 클 거야.”라고 얘기해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며, 속상해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지 말라는 거예요. 긍정적인 남편의 말이 참 좋더라고요. 저도 애들한테 생각 없이 내뱉는 말 말고 좋은 말, 멋진 말 하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잘 안되네요(웃음).

가희 큰아이가 초등학교 땐 단짝이 있었어요. 저 우정 오래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가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더라고요. 정말 영원할 것 같은 우정이어서 그 아이와 소원해진 게 저는 조금 아쉬워요. 하지만 그건 제 마음인 거고 아이들 세계는 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요즘은 나갈 때마다 함께 가는 친구의 이름이 바뀌어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너 친구 한 명인데 엄마한테 이름 바꿔서 말하는 거냐고 물어요(웃음). 둘째는 유치원에 다니던 시기부터 셋이 노는 경우가 잦아요. 그럴 경우엔 한 명이 눈물 나는 일이 늘 생겨서 그 부분은 많이 경계하는 편이에요. 세 친구에게 늘 이야기해 줘요. 너희가 놀다가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셋이 놀 땐 누군가 한 명이 서운한 일은 생기지 않는 게 제일 좋다고요. 아이가 어느 날 친구 때문에 서운한 게 있어서 “나는 외톨이야. 다 나만 따돌리고 놀아.”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그럴 때 아이가 감정적으로 하는 말들은 온전히 믿지 않는 편이에요. 그건 자신의 감정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법이고요. 저도 어릴 때 엄마한테 덜 혼나고 싶어서 나한테 유리하게 말해본 적이 있으니까요. 자기 아이가 제일 귀하니까 내 아이 말만 믿으면 다른 아이한테 서운함이 생길 수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엄마가 다른 친구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알 수 있겠네.”라고 말을 해요. 한편으로 아이가 ‘엄마는 완전한 내 편은 아니네.’라고 생각할까 봐, 그 부분은 조금 미안해요.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다 보니 여러 시도를 하면서 나한테 맞는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거 같아요. 동숙 씨는 캠핑이 보편화되기 전부터 캠핑을 즐겼고, 가희 씨는 한옥에 살며 시골에 오두막도 지었어요. 외부 기준보다 나에게 좋은 환경을 찾아가는 모습이에요.

동숙 저는 크고 좋은 집에 살고, 럭셔리한 것들을 누리며 사는 것이 행복의 기준은 아니에요. 캠핑은 남편과 소소하게 누리던 취미생활이었고,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함께하며 즐겁게 따라다닌 거죠. 우리는 목표를 정해 살기보다 그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금에 만족하며 건강하게 살려고 해요. 남편은 본업 외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목수 일을 찾았고, 작은 작업실에서 나무를 만지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저도 집 근처 작업실이 있거든요. 거기에 오롯이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 남이 보면 쓰잘머리 없는 것들을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펼쳐놓고 혼자 힐링해요. 바쁜 일상에 젖어 지내다 ‘아 맞다. 나 작업실 있지.’ 하면서 슬리퍼 끌고 작업실로 가요. 그렇게 일상이 아닌 곳에 있다 오는 게 정말 좋아요. 한 번은 첫째가 제 작업실 열쇠를 달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서 친구들이랑 시험공부하고, 저 없을 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친구들과 만들고 싶다고요. 참 흐뭇해서 언제든지 친구들 데려다가 숙제하고 놀게 둬요. 이제 큰아이는 캠핑에 잘 안 따라와요. 처음엔 좀 서운했지만 이해해 주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 마치고 캠핑을 가는데요, 오랜만에 큰아이도 따라나서서 좀 설레요.

가희 저는 작은 일은 고민과 생각을 깊이 하는데, 큰일은 금방 결정하고 실행하는 편이에요. 한옥에 살고 싶으면 ‘미루지 말고 지금 살아보자.’ 그러다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집을 지어볼까?’ 하면서 그때 상황에 맞춰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며 살았어요. 실패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요. ‘한번 하고 안 되면 접지 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면 일단 해보자.’ 제가 시도한 것들이 큰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생각을 조금 바꾸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지금 세 번째 한옥에 살고 있어요. 다시 한옥으로 돌아온 이유는 한옥에서의 첫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에요. 우리 형편이 한옥을 장만할 정도는 안 되니까 빌려서 살고 있어요. 시골에 땅을 구하는 것도 서울에 조그만 땅을 구해서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 시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땅에 무언가를 짓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구나. 설계와 시공 전문가들이 도와주신다는 걸 경험해 봤으니까요. 시골 땅은 서울 땅에 비해서 적은 돈으로 살 수 있고요. 저는 숙희에서 열심히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남편이 번 돈은 차곡차곡 모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죠.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다 보니까 교육을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동숙 별로 많지 않아요. 이만큼 나이 들고 보니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하며 살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제가 애를 쓰기보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선택했는데, 열심히 하지 않고 꾀를 부리려고 할 때는 혼을 내요. 좋아하는 게 공부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으니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았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과정에서 부모로써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고 있고요.

가희 저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타협하며 지내는 게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염색을 하는 거예요. 제가 흰머리가 굉장히 많은 편이거든요. 저는 염색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머릿결도 상해서 그냥 이대로 살고 싶은데, 큰아이가 제가 염색하기를 원했어요. 저한테 많은 걸 바라는 아이가 아닌데, 그렇게 말하니까 ‘그쯤은 내가 해줄게.’ 싶어서 열심히 염색을 해요. 남들에겐 소소해 보여도 한 달에 한 번 염색하는 건 제 인생에서 큰 결심이에요.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도 참 많을 거 같아요.

동숙 저희가 2년 전쯤 비슷한 시기에 장롱면허를 벗어났어요. 요즘에야 운전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게 별거야 하겠지만 저는 운전이 필요한 시기에 자전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했거든요. 물론 그 시간들도 좋은 추억이죠. 그런데 가희가 운전을 배운다는 말에 저도 해보고 싶어졌어요. 운전을 시작하면서 갈 수 있는 곳,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저 자신을 많이 칭찬하고 싶어요.

가희 저한테는 큰 계기가 있었어요. 전에는 동네에서 다 해결이 되니까 필요를 못 느꼈는데, 오두막을 지으면서 양평을 오가야 했거든요. 언니는 바로 장롱면허를 탈출했지만 저는 겁이 많아서 도로 연수를 60시간 받았어요. 연수 받으면서 선생님한테 그랬어요. 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고요(웃음). 그만큼 저는 운전이 두려웠는데, 극복한 우리가 정말 대견해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성실히 일해서 취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일하는 시간을 컨트롤 해서 방학을 갖고, 둘이 충전 여행을 가고,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배우러 갈 수도 있죠. 이런 것들을 항상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요.

요즘 두 분을 기쁘게 하는 일은 뭐예요?

가희 저는 언니랑 소도시 여행 가는 게 재미있어요. 다음엔 해남에 가기로 했어요. 작은 도시에서 예쁜 것들 찾아보고 소소하게 사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기분 전환을 해요. 여행하면서도 우리는 정말 좋은 여행 파트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여행을 또 계획해요. 아이들과 남편 없이 친구랑 가는 여행, 정말 추천해요. 가족 신경 안 쓰고 온전히 먹고 쉬는 거예요. 아이들이 크니까 엄마가 여행 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좋다고 믿으며 또 가려고요.

동숙 전 요즘 40분 정도 걸리는 출근 시간이 좋아요. 음악을 들으며 혼자 생각하면 해소되는 게 있어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리하기도 하고요. 퇴근하고 나서도 생각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집으로 들어가요. 운전하는 시간이 나를 충전하는 순간이 되었죠. 그 외에는 제품 개발 일을 하다 보니 계속해서 뭔가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어서 잡지를 살펴보고 다른 사람이 만든 살림살이도 잘 사요. 여러 가지 써보고 저한테 필요 없는 건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팔죠. 그렇게 사서 써보는 걸 너무 좋아해요.

 

긴 인터뷰 동안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나답게 스며든 우정을 살펴볼 수 있어 즐거웠어요.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궁금해요.

가희 언니도 저도 나이 드는 걸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소소한 거에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같이 말해요. 숙희를 하면서 지금처럼 꾸준히 살자는 게 기본 마음이에요. 큰 부침 없이 일하고 개인적인 삶도 누리며 가정과 일 사이의 균형을 계속 잘 지키고 싶어요. 커다란 꿈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런 소소한 브랜드가 오래 남기 힘들다는 걸 점점 알게 돼요. 우리 일이라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지나고 경기 안 좋은 시기를 지나면서 서로 칭찬해 주고 우리 대견한 거였구나 다독여요.

동숙 체력이 계속 떨어지는 걸 느끼면서 서로 ‘건강하자’는 이야기를 늘 해요. 저희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친구들,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꾸준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탄탄한 일터와 거래처가 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기보다 멈춰 있지 않고 조금씩 계속 움직이며 일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숙희의 마지막은 저희가 할머니가 돼서 ‘이제 더는 못 하겠다.’고 하는 날이 아닐까요? 

가희 숙희가 언제까지 갈지 저도 참 궁금해요. 저희는 일이 최우선 순위는 아니기 때문에 목표를 정하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 상황에 맞춰서 일을 하거든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 늙어가고 싶어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