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o For A Walk

이상하고 아름다운 산책의 세계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산책을 하다 보면 몇 번쯤 걸음을 멈추게 된다. 반려인과 함께 걷는 게 너무 좋은 반려견을 볼 때, 화단에서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살피는 길고양이를 볼 때, 말도 안 되게 하늘이 예쁠 때, 올망졸망 여러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을 때…. 윤예지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책 《산책 가자》에는 팬데믹 시대의 산책 장면들이 담겨 있다. 갈색 푸들을 쫓아 쭐레쭐레 걷다 보면 마스크 쓴 동물, 우아하게 걷는 강아지, 고양이를 부르는 아저씨 뒷모습도 만날 수 있다. 아저씨의 푸짐한 엉덩이까지 귀여워 보이는 책이라니! 보통날에서 길어 올린 귀여운 조각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손길이 있어 우리의 시간은 이토록 풍성해진다.

기묘한 산책길

얼마 전 그림책이 나왔어요. 《산책 가자》라는 귀여운 책이죠. 

독립 출판물로 가볍게 만든 책인데,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간단한 드로잉 기록을 엮어 만든 거여서 제안을 받곤 좀 놀랐어요. ‘이게 어떻게 그림책이 될 수 있지?’ 하고요(웃음). 동시에 글과 그림 모두 제가 창작한 어린이 그림책을 꼭 만들어 보고 싶었기에 제안이 반가웠어요. 사실 너무 잘해 보고 싶은 일이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 독립 출판물로 편안하게 스타트를 끊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산책 가자》는 염원하던 제 첫 번째 그림책이에요.

 

코로나19 시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책이에요. 산책하면서 직접 본 장면들로 구성하셨다고요.

원래는 작업실로 출퇴근할 때 자전거를 이용하곤 했는데, 코로나19 시대에 앉아만 있는 게 갑갑해서 가끔 자전거를 놓고 걸어서 다녔거든요. 오늘은 이 길로, 내일은 저 골목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며 걸어본 거죠. 자전거를 탈 땐 지나치게 되는 것들이 천천히 걸으니까 눈에 보이더라고요. 우선은 주변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어제, 오늘, 내일의 꽃들이 다르다는 것도, 비 온 뒤 생겨나는 버섯도, 가을날 나뭇잎의 밀도와 색의 생생한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산책 나온 동물들 보는 것도 즐거웠고요. 그리고 제가 약간… 귀엽거나 이상한 장면을 잘 발견하는 편이거든요(웃음). 한차례에 그치는 장면도 있지만 계속해서 다시 만나는 광경과 얼굴들도 있는데요. 그런 연속선상 위에 더해지는 변화를 목격하는 게 참 반갑고 재미있었어요. 매일 같지만 매번 다른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생겼죠.

 

“이상한 장면”이라는 건 어떤 거예요?

이상하다기보단 묘한 장면인데요. 예를 하나 들자면, 이 작업실 앞에 ‘경의선숲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종종 바이올린 켜는 여성분을 만나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을 등지고서 연주하시는데, 종종 앵무새랑 강아지가 함께 있기도 해서 뒷모습만 봐도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있어요. 더 신기한 건 혼자가 아니라 앵무새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나온다는 거예요. 앵무새는 어깨 위에서 돌아다니고 작은 강아지는 음악에 맞춰 뱅글뱅글 돌아요. 기묘하지 않나요? 매번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각에 나오시는 건 아니어서 장소도 조금씩 이동하고 시간대도 들쑥날쑥한데도 자주 보게 되어 재미있어요. 대개 오전 시간에 보지만 가끔 새벽일 때도 있고…. 1년이 넘게 그들을 만난 거죠. 이런 기묘한 풍경도 그렇지만, 사실 진짜 기이한 건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코로나19 시대예요. 2020년 한동안 제 드로잉의 주요 테마는 마스크를 쓴 인물들이었어요. 그 기이함 속의 일상을 드로잉으로 기록하고 《These Days》라는 제목으로 독립 출판했죠. 그 책이 《산책 가자》로 탈바꿈한 거고요.

 

어, 그런데 바이올린 켜는 분은 그림책에선 못 본 것 같아요.

기성 출판을 준비하면서 스토리에 흐름을 담아 다듬었는데, 그때 기존 장면 몇몇이 빠지고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게 됐어요. 《These Days》가 단상의 스냅을 모은 책이라면, 《산책 가자》는 큰 흐름에 집중했죠. 사실 거의 모든 장면을 새로 그렸어요.

 

“산책 중에 만난 기이한 장면”을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음, 최근에는 한 아저씨가 동물을 여럿 담고 나오신 걸 여러 번 봤어요. 여러 품종의 토끼, 작은 앵무새, 그리고 강아지들을 풀어놓고 우리를 쳐둔 뒤 앉아 계시는데 처음엔 동물을 파는 줄 알고 일부러 관심을 안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건너 들어 보니 모든 동물이 아저씨의 식구들이더라고요. 사람들이 물어보면 설명도 해주시고요. “이 토끼는 피자를 좋아하고, 이 토끼는 치킨을 좋아해. 얘는 털이 아주 부드러운데 만져볼래요? 새들은 훈련받아서 안 날아가요. 이 강아지가 얘들의 아빠야. 지금 얘네 모두를 지키고 있는 거야.” 하시면서요. 아, 작년 겨울 산책도 꽤 재미있었는데요. 사람들이 눈사람을 어찌나 창의적으로 만들어 놨는지, 그걸 보려고 꽤 멀리까지 산책하곤 했어요. 다들 눈사람 만들기에 진심이라는 생각도 들고, 제가 다 신이 나서 ‘사람들 진짜 귀엽다.’ 그러면서 걸었죠. 코로나19 때문에 취미의 범주가 좁아지니까 사람들이 이런 거에 더 환호하게 된 거 같아요. 참아왔던 귀여움이 곳곳에서 하얗게 폭발하고 있었어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귀여움이 세상을 구하는구나, 하고 흥분했죠(웃음).

 

특히 어떤 산책길을 좋아해요?

다들 그렇겠지만, 나무와 풀이 있고 길이 너무 좁지 않은 곳을 좋아해요. 자연스럽게 그런 코스에 사람과 동물이 많이 모이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도 걷는 걸 좋아하는데 유독 걷기 힘든 곳들이 있더라고요. 방콕이나 자카르타 같은 나라가 특히 기억나요. 인도가 있기는 한데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폭이 아니고 걷는 사람도 거의 없죠. 걷다 보면 인도가 도로와 합쳐지기도 해서 어느 순간 뻘쭘하게 차도 갓길을 걷게 돼요. 동남아 날씨가 워낙 더워서 현지인들도 오토바이나 차로 이동하거든요. 도보로 이동하는 데 인프라 구축이 안 되어 있달까(웃음). 자동차 옆을 걷는 건 유쾌한 기분은 아니에요. 사람이 많이 걷는 동네는 무엇보다 걸을 만한 길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전 작업이 ‘촘촘’했다면, 《산책 가자》는 ‘느슨’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했죠.

평소 작업들은 한 장의 포스터같이 꽉 채워 밀도 있게 만들었다면 이번 책의 그림들은 드로잉 선을 그대로 살려 편안하게 그렸어요. 어떤 작업들은 하면서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 작업은 독립 출판물로 만들 당시 ‘나는 즐겁게 그렸지만 사람들이 좋아해 줄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정제된 귀여움이 아니라 다소 투박하고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책 속 동물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갈색 푸들의 시선을 따라 여러 동물이 나오죠. 사실 푸들을 주인공 삼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독립 출판물일 땐 몇 장면에만 나오지 딱히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는 아니었거든요. 그림책으로 엮을 때도 주인공이 없는 책이길 바랐는데, 강아지 시선으로 그리다 보니까 주인공처럼 그려지게 되더라고요. 이 책에는 사람이 만지는 걸 경계하는 고양이가 나오는데요. 처음 그림 기록을 시작한 게 자전거 주차장에서 항상 보던 검은 고양이, 노란 고양이 때문이었거든요. ‘검고’, ‘노고’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아이들이죠. 유독 사람을 경계하던 고양이들이라 마음이 쓰였는데 지난가을 둘이 한꺼번에 종적을 감추어서 안타까워요. 이 외에도 길 위에서 만난 얼굴들을 모델로 해서 그린 드로잉이 많아요. 각자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이전부터 작업에 동물을 많이 담아오셔서 당연히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조금 놀랐어요.

고양이나 강아지를 잠시 맡아준 적은 있지만 동물과 함께 살고 있진 않아요. 누군가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기에는 아직 겁이 나고 준비가 안 되어 있나 봐요. 이번에 그림책 작업을 할 때 <환상의 마로나>(2019)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어요. ‘마로나’라는 유기견에 관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거든요. 이 영화 덕분에 동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됐어요. 인간은 동물의 시선에서 건물 크기만큼 커다란 존재일 텐데, 그런 존재가 자신을 귀엽다며 쓰다듬으면 겁나지 않을까요? 근데 어떤 동물들은 그런 인간을 전적으로 믿고 본인을 맡기잖아요. 그게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그런 동물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을 그림책 장면에 담아내려고 했어요.

 

책 마지막 장 줌Zoom 화면에 등장하는 동물들 드로잉이 재미있었어요. 실제로 아는 동물들이라고요.

네. 대부분 제가 만난 지인들의 고양이와 강아지들이에요. 지금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요. 코로나19로 잘 못 만나니까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렸어요. 줌 화면 아이디어는 코로나19 시대의 대표적인 풍경이라 꼭 넣고 싶었는데요. 작년에 줌으로 운동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한 적이 있어요. 그때 심각하게 운동하는 수강생들 곁을 강아지나 고양이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이건 코로나19 시대의 귀여움이다.’ 싶어서 꼭 한 장면 넣어야지, 생각하다가 모든 참여자가 다 동물이 돼버렸어요(웃음).

 

산책이 모티프여서 그런지 모든 페이지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게 좋았어요.

저는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걸 그리는 게 좋아요. 시간도 그런 속성이 있지 않나 싶어요. 산책도 걸어 나감으로써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장면들이 흐르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마다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 타고 빨리 가는 사람도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더 빨리 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담다 보니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담긴 것 같아요.

이번 호 주제어가 ‘취미’와 ‘여가’예요. 요즘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있어요?

사실 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코로나19 이후로는 사람 만날 일이 잘 없으니까 밤에 퇴근하면 자기 전에 위스키를 한 잔씩 마시며 책을 읽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죠. 아, 올 초 새로 생긴 취미가 하나 있는데요. 평소 같으면 밤에 책을 볼 텐데, 요새는 미국 주식을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요(웃음). 사실 취미가 될 줄 모르고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돈이나 경제에 무딘 편이어서 애플 주식부터 사 봐야겠단 마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경제 뉴스가 재미있어지면서 세상을 좀더 넓게 보게 됐어요. 요새는 주식을 하면서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해요. 여유로운 사람은 더 여유 있어지고, 힘든 사람들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서요. 주변 가게를 보면 마음이 쓰려요. 진짜 어떡하냐, 싶은데 돈이 많은 기업은 계속해서 큰돈을 들여오고 있거든요. 점점 극단으로 흘러가는 걸 느끼죠. 요새 트렌드가 ‘포모Fomo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남들은 부동산과 투자로 벌어들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만 소외된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이래요. 여기 점령되는 마음을 관찰하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해요.

 

주식은 가벼운 취미는 아닌 것 같아요. 돈이 오가다 보니 기분을 좌지우지할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지수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했어요. 엄청 재미있다가도 자괴감이 들기를 반복했죠. 이제 한 10개월 정도 되었는데 이젠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어요. 초반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를 일이 있으면 내리기도 하고, 내리면 또 오른다는 걸 알게 됐죠(웃음). 과욕하지 않고 포기할 줄도 아는 법을 배우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다사다난 했지만 의외로 제가 모르던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모르던 세상의 큰 흐름에 눈을 뜨게 돼서 좋아요.

 

취미는 사람을 기쁘게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취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저는 뭘 정의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하고 싶은 걸 수도 있고,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경계가 좀 애매한 것 같아요. 취미란… 할 때 즐겁고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SNS에 달리기하는 사진을 가끔 올리는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제가 달리기를 매일 즐겁게 하는 줄 알거든요. 사실 저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매일 앉아만 있으니 저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달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은 거죠. 하지만 한강으로 나가기 전까진 움직이기 싫어서 고민해요. 물론 달리고 오면 기분이 무척 좋아요. ‘역시 하길 잘했어.’ 싶지만 가기 전에는 ‘오늘 너무 추운데(혹은 더운데), 마감도 해야 하는데 가지 말까.’ 그런 생각이 저를 지배하죠. 달리기를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런 걸 과연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싶네요. 위스키 마시며 책 읽기는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쉼의 연장인데 달리기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주식도 늘 하고 싶은 휴식 같은 취미는 아니에요. 사실 주말에 장이 안 열리면 마음이 참 편해요.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어떤 면에선 의무가 되어버리기도 한 거죠.

 

취미는 의무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진짜 이상적인 취미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 같아요. 하지만 모든 취미가 이상적일 순 없겠죠. 취미에도 결국 돈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지출과 노력에 힘들어지기도 할 테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취미 때문에 또 다른 굴레에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쭉 그림 그리는 사람이 꿈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린 시절 취미가 업으로 이어진 것 같기도 해요.

지금까지 문제없이 그림을 그려온 걸 보면 확실히 운이 좋았어요. 진로에 관해서는 고민이 크게 없었거든요. 어릴 때 장래희망을 물으면 화가라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 대학에 갔죠. 졸업하고 나서 부모님은 제게 ‘그래도 회사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으셨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취직할 수가 없으니 프리랜서로 계속 일해보겠다고 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거 라는 확신이 계속 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은 소중한 감각이죠. 근데 좋아하는 걸 일로 삼으면 스트레스가 크다고도 하잖아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근데 저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더 큰 스트레스일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취미와 일이 합쳐져 있기도 하죠. 낙서도 제 취미 중 하난데, 《산책 가자》는 낙서가 그림책이 된 작업이니까요. 이제는 취미와 일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거네요.

네, 주변 사람들이 “너는 왜 맨날 작업실에 있어, 좀 쉬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저는 작업실에서 쉬기도 하거든요. 낙서하거나 어떤 생각을 하거나… 하는 것도 제겐 다 쉬는 건데 작업실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일만 하는 줄 알더라고요. 취미와 생활과 일이 어떤 부분에선 좀 섞여버린 상태여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코로나19 이후로는 사람들의 취미 생활도 재정비된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때요?

저는 여행도 되게 좋아하는데, 여행 못 가는 것도 코로나19초반부엔 사실 괜찮았거든요. 사람들이 “너 여행 못 가서 어떡해?” 하고 물으면 “어차피 못 간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괜찮은데?” 그랬어요. 하지만 그건 팬데믹이 끝날 걸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나 봐요. 요새는 앞으로 2년이 아니라 5년, 10년까지도 이 상태가 지속되겠단 생각이 드니까 갑갑함이 슬슬 몰려오고 있어요.

 

여행은 자의로 그만둔 게 아니라 상황 때문에 그만둔 취미일텐데, 혹시 하다가 그만둔 취미나 실패한 취미도 있나요?

음, 일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작년에 애니메이션을 조금 배웠거든요. 취미 삼아 ‘그림을 좀 움직여야지.’ 하고 두 달가량 배웠는데 막상 해보려니까 노력과 시간이 너무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데, 간단하게만 하려고 해도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드는 취미라 섣불리 도전하기가 어려워요. 취미라는 건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일보다 더 큰일이 돼버려서 하던 중에 놓아버린 취미가 됐어요.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취미를 찾으면서 지내요. 왜 우리는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걸까요?

왜 그럴까요? 음… 지루하지 않으려고? 계속 누워 있다가도 지루하니까 다른 것 좀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변화를 주고, 환기하고 싶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취미나 시도해 보고 싶은 재미있는 일이 있나요?

저는 안 해본 거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한 가지만 꾸준하게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 꾸준함과 동시에 새로운 걸 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거든요. 요즘은 새롭게 해보고 싶은 운동들이 생겼는데, 클라이밍이랑 서핑이에요. 최근에는 테니스에도 입문해 보았는데, 역시 새로운 배움과 도전은 재미있더라고요. 아, 그리고 이건 취미는 아닌데 운전면허도 꼭 따고 싶어요. 국내 여행은 뚜벅이에게 한계가 있어서 면허를 따고 싶은데, 동네를 잘 안 벗어나다 보니 꼭 운전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만 계속되는 상태예요. 십 몇년째(웃음).

 

그 덕에 산책을 더 많이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여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산책 가자》도 누군가의 시간을 채우고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가 닿길 바라나요?

사실 산책은 누구나 다 하잖아요. 다들 산책할 때 무슨 생각으로 하는지 궁금해요. 이 책을 보면서 길 위의 일상에서 발견하는 웃음과 마음의 울림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어요. 일상의 디테일을 발견할 계기가 되길 바라고요. 코로나19가 주변을 좀더 돌아보게 해준 것 같고, 그래서 저도 이 책을 만들었지만… 인제 좀 끝이 나면 좋겠어요. 깊게 볼 만큼 본 것같거든요(웃음).

아침이라 입이 안 풀렸다던 그는 찬찬한 말씨로 느리게 산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급하지 않은 말씨와 둥그런 음색은 꼭 대화로 하는 산책 같았다. 시간을 들여 산책 이야기를 듣고 끄덕이는 동안 두 발이 어서 걷고 싶다고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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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