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SING YOU A SONG TONIGHT

노래의 밤

LET ME

SING YOU A SONG

TONIGHT

노래의 밤

여름이 짙어가던 어느 날, 어라운드 식구들과 이른 퇴근을 했다. 가는 길엔 모두 무거운 가방 대신 노래를 한 곡씩 마음속에 쥐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들, 개와 고양이가 오고 가는 북아현동 언덕에 음악이 흘러 나왔고 우리들의 느긋한 밤이 골목 어귀에 천천히 켜졌다.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언젠가 ‘음악감상회’라는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동네 빵집에 모여 주제에 맞춰 골라온 음악을 불빛과 말을 꺼둔 채 듣는 모임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아주 잠깐 적막이 흐르는 영화관 같은 분위기에서 말이다. 처음 모임에 참여했던 나는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첫 번째 곡이 나오고 난 뒤에는 곧 노래만 있는 적막 속에 빠져들었다. 기타에 가려 잘 들을 수 없었던 둔중한 베이스 소리, 가사를 읊조리는 듯 이어지는 현악 연주, 노래하는 이의 숨소리, 그리고 누구나 하나쯤 있는 음악에 얽힌 사연들. 장르도, 국적도 달랐던 음악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어졌다. 그 기억은 내게 꽤 특별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자우림의 ‘반딧불’이라는 곡을 들었을 때, 음악감상회의 기억이 불현듯 살아났다.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떠다니는 별과 같은 우리들, 우리들’ 가사에 자꾸 ‘우리’가 나와서 그랬나. 이건 누군가와 같이 들어야만 좋은 곡이었다.

내게도 ‘우리’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이 몇몇 있지만, 이 곡은 하루에 반나절을, 일주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우리’와 듣고 싶었다. 사무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샤워를 하고 가장 편한 옷을 입고 나선 무방비한 표정으로, 어떤 노래를 들을까. 여름밤, 그들이 마음속에 하나씩 쥐고 있는 노래는 무얼까.

물 한 잔 건네주는 맘으로
이 밤을 지낼 수 있으니

음악감상회의 주제는 ‘밤’이었다.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기다란 테이블 하나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한 명씩 노래를 고른 이유를 말하고 불을 껐다. 스피커에서 음이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발을 까닥였다. 커튼을 쳤지만 해가 길어진 계절 탓에 어렴풋이 서로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노래를 감상하는 얼굴은 평화롭고 잔잔해서 나는 그 모습을 보려 자꾸 감았던 눈을 떴다. 주택가의 작업실에서 모인지라 가끔씩 노래 속에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여들었다. 문에 친 커튼 뒤로는 동네 아이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다가 갔다. 노래를 틀어놓은 채 가만 앉아있는 우리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밝고 풋풋한 노래만 들을 거라 짐작했던 디자이너는 가장 담담한 노래를 꺼내 놓았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추억의 노래를 함께 들었을 땐 무릎을 치며 웃었다. 한 에디터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피곤해지는 날, 집에서 홀로 음악을 듣는 일이 주는 위안에 관해 얘기했다. 늘 분주한 그녀의 조용한 새벽을 떠올랐다. 글 쓸 때 분위기 잡고 싶을 때 듣는 몇 가지 곡들이 있는데, 그 곡을 들으면 오묘한 글이 써지곤 했다는 에디터의 고백도 이어졌다

자신과 닮은 곡을 골랐던 마케터가 가장 좋아한다는 가사는 어느 구절인지 서로 의견을 내기도 했다. 노래는 자연스레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졌고 내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동료들의 얼굴이 그려졌다. 우리는 예리하고 노련한 질문을 통해 답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좋아하는 책이나 물건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날 서로를 이해하게 한 것은 노래였다. 

권나무의 ‘물’이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너무 무언가를 하려하지 말아요/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을텐데/눈물이 고여있는 정도도 좋아요/물 한잔 건네주는 마음으로/이 밤을 지낼 수 있으니’ 누군가 고른 노래를 함께 들어주는 마음이 물 한 잔을 건네는 마음과 비슷하진 않았을까. 준비해온 곡들을 다 듣고 난 뒤에도 우리는 몇 곡을 더 틀었다. 좋다, 라는 말이 계속 입 밖으로 흘러나왔고 나중에는 그 말이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Around Playlist
#Night

Still – Ben Folds
5AM – 양창근
Last Carnival – Acoustic Cafe
Waltz for a Night – July Delpy
반딧불 – 자우림
Wish You’re My girl – 앤드
물 – 권나무
오늘밤 – 로맨틱소울오케스트라
Moon River – Lisa 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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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