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ftover Conversations

대화를 엿들어도 될까요?

어떤 말은 마음에 뿌리를 내려 아름드리 자라나고, 어떤 말은 듣기 전으로 돌아가고만 싶어진다. 누군가 마음에 소중히 품거나 버릴 수 없어 남긴 말들이 궁금했다. 농담이든, 거짓말이든, 참된 말이든, 취중 진담이든… 뭐든 좋았다.

사과나무와 창문

혹은 기린에 관한 어떤 농담

─1년 지났어. 그런데 벌써 살아 있다는 감각이 없어. 내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니까, 사과나무는 사과가 열려야 하는 나무잖아? 그런데 사과가 열리지 않는 사과나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자, 거기까지 마시고. 그래, 비유라 이거지? 그 나무는 사과가 열리기엔 아직 키가 작거나 우리처럼 싹수가 노랬을 수 있지. 어쩌면 사과나무라는 팻말이 잘못 꽂혔을 수도, 사과나무가 아니었을 수도.
─아무튼, 내 열매는 열리지 않았잖아.
─맞아. 사실과 진실은 이런 관계인 거지. 사과나무와 사과가 열리지 않는 사과나무. 그게 한 몸으로 있다는 게 중요하지. 가장 개별적인 사과나무를 알아볼 때야 비로소 살아 있는 사과에 근접할 수 있으니까. 혹시 알아? 나무에서 사과 대신 기린이 열릴지.
─너는 정말 잎만 살았구나…. 새파랗게 이파리만.

2년 전에는 애틀랜타에 사는 이훤 시인이 자기 집 창문 사진을 보내왔다. 쭉 뻗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휘어진 가지 끝이 조금 흐릿했고 그래서 바람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그에게 좋은 창문을 뒀다고, 좋은 사람을 둔 것처럼 부럽다고 말했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우리는 그런 거리감을 담백하고 진중한 안부로 채워갈 줄 아는 사람이었고 어느새 각자 시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가 보내온 창문과 외로움에 관한 각주인 것처럼. 나는 그것으로 시 없이 북적이던 하루를 변호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런 식으로 대화가 놓이는 배경을 그려왔다. 할 수 있는 한 넓고 높게. 그 말의 최선을, 그 사람의 배경에 내 배경을 포개고 덧대어본다. 다 담기지 못한 우리의 어떤 맥락을 이해하려고. 그러면 멀고 가깝다는 물리적 개념과 관계적 비유에 다 포착되지 않는, 그 말이 매달린 어떤 뿌리 깊은 것의 윤곽이 보였다. 지금도 느낄 수 있다. 그 말들의 줄기가 떨어진 채로 얼마나 가깝게 닿아 있는지. 서로를 흐르고 있는지.

세 번째 창문이 보였으면 좋겠다. 내 창문과 당신의 창문이 비추는 우리의 창문이. 창문에 기대어 생각한다. 생이란 삶에 대한 하나의 비유 같다는 생각. 앞으로도 삶과 삶에 대한 비유를 자주 혼동할 것 같다는 예감. 몇 개의 붉은 비유를 위해 줄기를 내어줘도 괜찮은 삶일 거라는 확신. 중력을 거스르는 사과라거나 기린을 웃게 만드는 농담 같은 것일지라도.

지금은 코로나 시대의 추석 연휴, 나는 쉴 때보다 일할 때가 편한 33세, 시인이죠. 카페 구석에서 중얼거려본다. 막상 중얼거릴 때는 하나도 안 웃겼는데 써놓고 보니 조금 웃기다. 고개를 돌리면, 창문 너머 나무에 뭔가 매달려 있다. 기린이다. 그럼 사과는? 사과는, 그 멋진 사과는… 아무래도 저 기린이 먹은 것 같다. 당장 사과해라. 그는 긴 목을 굽혀 꾸벅 사과한다. 사과를 받아주마. 이제 우리는 한 몸으로 뜻 다른 사과다. 농담이다. 진실이다. 생이다.

이설빈
시집 《울타리의 노래》가 있다.

고맙습니다

문을 열게 해준 말 | 음악에 빠져 매일매일 귓속에 이어폰을 꽂고 공연을 보러 다니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우연한 계기로 드럼이라는 악기를 만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머니께 정식으로 드럼 레슨을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대한민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지 1-2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러나 위기는 잠깐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여파는 몇 년을 지속하며 각 가정의 자산을 갉아먹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철없던 난 하루가 멀다하고 졸랐고 어머니의 반대는 강경했다. 당연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드럼이라는 악기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능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내가 마치 이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그 길을 걷겠다고 했으니…. 당신이 아들의 모든 것을 감당해 줄 수 없을 거란 생각, 더군다나 IMF 시기에…. 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끝낸 건 어머니의 한마디 말이었다. “네가 진짜 음악을 할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하게 될 거야.”

문을 닫아준 말 |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서점에 가면 볼 수 있는 잡지는 물론 다양한 광고 사진을 찍는, 규모가 꽤 큰 교수님의 사진 스튜디오였는데 상업 사진을 배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내가 잘하는 분야의 사진이 뭔지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불규칙한 근무 시간 때문에 음악을 병행할 수 없었고 친구를 만나거나 머리를 자르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하기 힘든 날이 지속되었다. 밴드 멤버들에게 갑자기 “오늘 저녁에 시간 될 것 같아! 연습하자.”고 연락할 때도 있었고, 기껏 잡아놓은 약속에 늦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약 1년 뒤 미국발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갈 무렵, 교수님은 내게 위로를 섞어 현실을 마주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많이 힘들지? 시간이 지나면 그 힘든 일들이 줄어들고 없어질 것 같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전보다 훨씬 능숙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아. 오히려 일은 더 복잡하고 많아져. 그러니까 일과 친해져야 해.”

열었던 문을 닫으며 그곳에서의 말 | 20대. 음악으로 번 돈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오히려 돈을 더 많이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버티는 자에게 빛이 온다고 했던가? 서른 무렵 시작한 밴드는 조금씩 사람들이 찾아줬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수입은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제가 하는 밴드를 아시나요?”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그래도 업계 관계자나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좋은 평을 들었고 상을 받는 행운까지 얻었다. 그러나 위기는 예고편이 없다. 얼마 전 동료 중 한 사람이 SNS에 올린 글을 읽었다. 요약하자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상황이 장기화되고 무대가 없어지자 그토록 열심히 연습해 온 지난날이 후회될까 두렵다는 글이었다. 어느 직업이나 기회와 위기가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오고 빠지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안정을 찾기 쉽지 않은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동료가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같은 처지에 있는 나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겐 그렇게 어려움이 반복될 때마다 음악을 들어주고 공연장을 찾아준 소중한 사람들이 내 허름한 손에 안겨준 따뜻한 말들이 있었다. 평범한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문장들. 보이지 않는 서로의 끈을 견고하게 묶어주는 말들. “당신의 음악이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같이 대한민국 이곳저곳을 다녔고 무수히 많은 출근길과 퇴근길을 함께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요.” SNS에 글을 쓴 동료도 나와 같았을까? 그 글이 올라오고 몇 달이 지난 뒤 공연장에서 찍힌 밝은 모습의 사진이 보였다. 수많은 말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이젠 내가 말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유병덕
음악과 사진을 병행하면서 몇 군데 회사를 전전했다. 현재 밴드 9와 숫자들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2017년부터 Boy.D라는 이름의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송라이터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지내냐는 인사

올 한 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사를 했고, 코로나19 시대의 학생이 되었고, 동시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요즘은 끝나지 않는 작업들을 몇 달째 반복하며 지낸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며 이전과는 많이 다른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게 한꺼번에 변화하는 건 내 일상에 흔히 있던 일이 아니라 아직 완벽히 적응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때는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지고, 또 어떤 때는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이유에는 나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여러 개 있겠지만,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단숨에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집에서 혼자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남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빨리 끊어내고 넘겨버려도 되는 생각들을 오래 되짚는다거나 지나간 시간들을 오래 되돌아본다거나 즐거운 일이나 웃을 일을 찾는 것도 피곤해져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다거나. 이런 것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때도 물론 있지만 반년 넘게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서 타인이라는 존재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잦아졌다.

종종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들과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전보다 지쳐 있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많아서 많은 관계들을 지켜나가는게 버겁다고 느껴 머릿속을 텅 비운 채로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이유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나 그리고 또래의 친구들이 동시에 데쳐진 채소처럼 축 늘어져 있는 것 같은 때를 처음 겪어본다. 누구나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단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생소하다.

내가 느끼기에 ‘잘 지내냐’라는 물음은 형식적인 안부 인사쯤 되는 말인데, 요즘은 그 말이 참 마음에 걸린다. 얼마 전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지?” 하는 말에 “응.” 하고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 무슨 일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 생각에 나는 별로 잘 지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서 괜히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할 일이 생길 때도 마찬가지다. 나도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거나, 목소리를 듣게 되거나, 메시지가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잘 지냈냐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안부 인사에 관한 생각이 많아진 이후로는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물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안녕한가? 잘 지내고 있나?

사실 어떻게 지내는 게 잘 지내는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들을 세워둔 적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별거 아닌 말로 치부되는 문장들에 마음 편히 대답을 할 수 없고, 지나가는 말들을 잘 흘려듣지 못하고 자꾸만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잘 지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안부 인사뿐만 아니라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말들을 유연하게 삼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의 나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잘 지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잘 지낸다고 편안히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갈수록 사소한 것들이 사소하지 않게 된다.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된다.)

세아추
마음과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꾸며지지 않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불편한 마음에서 힘을 얻어 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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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글 이설빈, 유병덕, 세아추 일러스트 오하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