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끽다점

세상에 없는 마을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나요? 그렇다면 그 천재가 돈벌이엔 젬병이었다는 건? 제 이름은 김옥희예요. 오빠 이름은 해경이고요. 우리 오빠는 고작 이십칠 년을 살고 죽었어요. 새빨간 피를 토하며 글을 썼고, 책을 봤고, 여자를 만났고, 연심만 떠올렸어요. 할 줄 아는 건 그뿐인 것 같았죠. 그런 사람이 종로, 인사동, 명동을 전전하며 다방 네 개를 개업하고 폐업했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나는 요즘 멜론만 먹어요. 오빠는 멜론이 먹고 싶다면서 죽어갔거든요. 도대체 해경이 누구냐고요? 박제가 된 천재, 이상 몰라요?

1933년 종로, 제비

어느 날 오빠가 그러더군요. 통인동 154-10에 있는 집을 팔았다고요. 거기요? 큰아버지 집이에요. 오빤 어릴 때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우린 어릴 때도 내내 떨어져서 지냈죠. 그래도, 아니 그래서 저는 오빠에게 더 많이 의지할 수 있었어요. 거리감이 있어서 오히려 모든 걸 꺼내 보일 수 있었달까요. 오빠에게만큼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죠. 학교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린 일도, 손바닥에 문제 풀이를 적어 시험 중에 몰래 본 일도 오빠는 다 알아요. 연애편지를 쓰고 오빠에게 검사를 받은 적도 있는걸요. 그런 오빠에게 저는 단 한 번 거짓말을 해봤어요.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사랑하는 K를 따라 북행차로 떠날 채비를 마쳐놓고 K만 떠나는 양 마중 나간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온 적이 있거든요. 도주한 걸 알게 된 오빠가 K에게 연락해 그랬대요. “옥희야! 내게만은 아무런 불안한 생각도 가지지 마라!” 

아, 오빠의 끽다점이 궁금해서 오셨댔죠? 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오빠는 어느 날 백천 온천으로 가야겠다 했어요. 또 무슨 바람이 불어 떠나는가 했는데, 알고 보니 폐병이 생겼다더군요. 각혈도 했대요. 피를 토하는 그거 있잖아요. 뜨거운 덩어리를 툭하면 뱉어댔다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오빨 살리고 싶었지만 그 당시의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죠. 여자도 돈벌이를 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고, 그 돈으로 오빨 살리고 싶었어요. 근데 오빤 제 맘도 모르고 요양 가서는 웬 계집을 하나 데려왔어요. 곱상하게 생긴 게 누가 봐도 물장사를 하는 차림새였죠. 이름은 연심, 금홍이라 불린다더군요. 우습죠. 아파서 한 치 앞도 모르는 사람이 여자를 데리고 왔다니. 그게 1933년의 일이던가요. 아무튼 다방 ‘제비’는 그때 만들어졌어요. 오빠가 대뜸, “가비를 먹고 싶으면 종로로 와라!” 하더군요. 지금은 다들 커피라고 부르지만 당시엔 가비라 했어요. 커피는 가비, 차 마시는 건 끽다喫茶라고 했죠. 오빤 제비에 연심을 마담으로 앉히고 장사를 시작했어요. 저는 제비가 일찌감치 문을 닫을 거라 예감했어요. 평생 글만 쓰던 사람이 무슨 수로 장사란 걸 하겠어요? 그래도 제비는 꽤 근사했죠. 전면이 유리여서 확 트여 보였고, 바깥을 거니는 희한한 차림의 사람들(허리가 잘록한 재킷을 입고 화려한 스타킹을 신은 사람, 이상한 지팡이를 들고 중절모를 쓴 사람)을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런 거리에 자리 잡은 곳이었어요. 

연심. 그 계집은 오빠가 간신히 벌어들인 돈으로 오락이나 해대는 애였어요. 저는 알아요. 저 동네 N도, 일본에서 온 지식인도 전부 연심이랑 놀아났다는 걸요. 오빤 그런 연심을 본 척 만 척, 모른 척하며 사랑했고 나는 그게 퍽 끔찍했어요. 아, 제비요? 맞아요. 우리 제비 얘길 하려고 만났죠. 뭐… 오빤 제 예상대로 장사엔 젬병이었어요. 차를 들여올 돈이 없어서 손님이 와도 차를 내줄 수가 없었거든요. 오빠가 제비에서 한 일이라곤 태준, 태원, 무영, 용만 오빠들이랑 머릴 맞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뿐이었죠. 아무리 들어도 저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 더 듣고 싶어도 그때 전 일하기 바빴어요. 돈을 벌어야 했어요.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고요. 제 힘으로 오빨 살리고 싶었어요. 아, 또 제 얘기로 빠졌네요. 아무튼 제비는 망했어요. 연심 그 계집이 오빨 두고 이 남자 저 남자 쪽쪽 빨아먹고 다니더니 오빨 만신창이로 만들어놨어요. 나쁜 계집, 네가 그러고도 두 다리 쫙 펴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흥!

1935년 인사동, 쓰루

“이 집에는 화가, 신문기자 그리고 동경東京 오사카大阪로 유학하고 도라와서 할 일 업서 양차洋茶나 마시며 소일하는 유한청년有閑靑年들이 만히 다닌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긔분 잇서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喫茶店 중에 가장 이 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일홈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끄은다.”


1934년에 문화잡지 《삼천리三千里》에 실린 글이에요. <끽다점평판기喫茶店評判記>라는 제목이었죠. 네? 맞아요. 전 오빠에 대한 건 뭐든 기억하고 있어요. 별건가요. 오빠를 그만큼 사랑했단 증거죠. 아무튼 오빠가 이토록 다정히 여긴 제비가 망한 게 1935년이에요. 2년 만의 폐업이었어요. 저는 그 아름답던 유리창이 박살 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봤어요. 오빤 그 자리에 없었고요. 글쎄요, 어딘가에서 연심이나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요. 음, 아니, 찾아다니면서 그녀의 행적을 좇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또 다른 여자애를 만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게 우리 오빠니까요. 오빤 제비를 말아먹고도 또 다방을 하겠다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돈을 벌어들이지 못해 손님이 와도 차 한 잔 내주지 못해놓고, 또다시 끽다점이라고요? 우리 오빤 하고자 하면 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도 말리지 않았죠. 어차피 말릴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기어코 하고야 말 거란 걸 모두가 알았어요. 잠깐 다른 이야기 좀 해도 되나요? 오빠가 써준 편지가 생각나서요. 이야기를 좀 하는 편이 좋겠어요.


“남매의 막내둥이로 내가 너무 조숙인 데 비해서 너는 응석으로 자라느라고 말하자면 ‘만숙晩熟’이었다. 학교 시대에 인천이나 개성을 선생님께 이끌려 가본 이외에 너는 집 밖으로 10리를 모른다. 그런 네가 지금 국경을 넘어서 가 있구나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어린애로만 생각하던 네가 어느 틈에 그런 엄청난 어른이 되었누.”


오빠가 제게 쓴 편지의 일부예요. 오빠는 저를 언제까지고 어린애로 생각해서 끔찍하게 아꼈어요. 제가 하는 건 다 옳다 했고, 제 얘기라면 들어주려고 했죠. 그런 오빠이기 때문에 저도 오빠를 말리고 싶진 않았어요. 오빠가 망하는 게 오빠에게 태클을 거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 거죠. 아무튼 쓰루鶴는 망했어요. 제비보다 명이 짧은 끽다점이었지만, 저는 쓰루가 제비보다 훨씬 좋더군요. 연심이 없는 다방이라 그랬죠. 당연하잖아요. 저는 그 애가 싫어요. 문란한 계집. 우리 오빠라고 분탕질을 아니 한 건 아니지만, 해경은 내 오빠잖아요. 연심은 저에게 뭣도 아니라고요. 저, 혹시 그 계집이 어디 살고 있는지 아시나요? 저 좀 알려주세요. 내 이 계집을….

1935년 종로 1가, 식스·나인 그리고 명치정, 무기

오빠는 연심을 사랑했지만 그 애만 바라본 순정파는 아니었어요. 오빠가 데려온 여자만 해도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그걸 어찌 다 센담요. 그런 오빠여서 세 번째 끽다점 이름이 식스·나인인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빤 외설적인 농담도 곧잘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의외로 종로 경찰서에서 쉽게 영업 허가를 내주더군요. 직감했죠. 경찰들, 다 머저리구나. 오빤 분홍색, 아니 핑크빛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어요. 영업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경찰들이 영업 중지 공문을 보내왔어요. 그제야 안 거겠죠. 식스·나인의 뜻을.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것들은 월급을 받지 말아야 해요. 도대체 그런 남자들이 어떻게 치안에 앞장선다는 건지 원….

오빤 식스·나인을 접고 금세 또 무기麥라는 끽다점을 차렸어요. 이 모든 게 1935년의 일이죠. 우리 오빠한테 이렇게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문학, 여자, 연심밖에 모르던 사람인지라…. 무기엔 언제나 손님보다 오빠 친구들이 많았어요. “옥희야, 끽다거喫茶去1) !” 하고 껄껄 웃던 사람들이었죠. 물론 수줍게 고갤 내리깔고 연신 무언가 쓰기만 하는 오빠 친구도 있었어요. 전 그 오빠가 퍽 맘에 들었지만, 저에겐 K가 있으니까 뭐 어쩔 수 없죠. 하여간 무기도 금방 망했어요. 이상할 것도 없었고 누구도 안타까워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오빠도요. 쓰루, 식스·나인, 무기를 운영할 동안 연심이 몇 번인가 오빨 찾아왔어요. 제가 아무리 사납게 노려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방으로 쏙 들어가던 계집이었죠. 둘은 몇 밤을 함께 보내기도 했고,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했는데(물론 소리 지르는 쪽은 언제나 연심이었어요. 고얀 것.) 결국은 찢어졌어요. 그럴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중략) 내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 하루 5전 받고 모델 노릇 하여준 옥희, 방탕불효한 이 큰오빠의 단 하나 이해자인 옥희,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그 애인과 함께 만리 이역 사람이 된 옥희, 네 장래를 축복한다.

이틀이나 걸렸다. 쓴 이글이 두서를 잡기 어려울 줄 아나 세상의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여러 오빠들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만을 사다고.

                                                                                  – 닷샛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오빠 쓴다.


오빤 멋대로 떠나버린 제게 편지를 써서 《중앙》에 투고했어요. 이건 그 마지막 부분이고요. 내가 어떻게 이런 오빠를 미워하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빠가 조금 미워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전 이제 끽다점을 차려줄 수도 있을 만큼 돈을 벌었는데 맡길 오빠가 없잖아요. 나중엔 제가 오빠의 엄마로 태어나면 좋겠어요. 양자 같은 건 보내지 않고, 폐병도 금방 고쳐주고, 난 이제 돈 버는 법을 아니까 끽다점으로 성공도 할 수 있게 해줄 거예요. 죄송해요. 오빠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주체할 수가 없네요. 저기요, 당신, 혹시 초능력 같은 거 없나요? 있죠? 그쵸? 하늘에 있는 우리 오빠에게 이 기사를 꼭 보여주세요. 간곡히 부탁 좀 하겠습니다.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1) “차 한 잔 마시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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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추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