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hampo-Espace Jacques Tati

파리 중심부를 따라 흐르는 센 강의 왼편, 5구와 6구에는 프랑스 교육의 산실인 소르본 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교육기관이 밀집돼 있다. 중세시대부터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이 지역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교수 및 학생들이 많다는 이유로 카르티에 라탱(Le Quartier Latin)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여러 대학과 그에 걸맞은 서점, 카페, 문화시설이 즐비한 이곳에 크고 작은 예술영화관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하다. 사실 센 강의 왼쪽이니 카르티에 라탱이니 하는 설명보다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출연한 영화 <비포 선셋>에 등장해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필수코스로 자리 잡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뒷골목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쉽게 와닿을 것 같다.

1938년 6월, 오래된 서점 부지가 르 샹포라는 극장으로 재탄생한다. 소르본 대학에서 도보로 5분, 길모퉁이에 위치한 극장의 입구가 유독 눈에 띈다. 출입문 위와 양옆 코너에는 현재 상영 중인 특별전 포스터가 붙어 있고, 상영작에 관한 정보와 상영 스케줄이 적혀 있다. 르 샹포는 50주년을 맞이하던 해, 자크 타티에게 리셉션 홀을 헌정한다. 할리우드에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이 있는 것처럼, 프랑스 무성영화와 코미디 영화를 대표하는 이가 바로 자크 타티다. 그는 할리우드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는데, 특히 길게 뺀 목과 구부정한 허리, 어딘가 어색하고도 기묘한 걸음걸이를 선보이는 윌로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그가 연출한 6편의 영화 중 4편에서 직접 마임을 연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영관 입구의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윌로 캐릭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크 타티의 공간이라 불리고, 프랑수아 트뤼포가 본부라 명한, 클로드 샤브롤이 제2의 대학으로 칭하는 극장. 앞서 언급한 세 감독뿐 아니라 장 뤽 고다르, 클로드 를루슈, 르네 클레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파리의 영화 애호가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영화관이 바로 이곳, 르 샹포다. 르 샹포는 2000년 4월 11일 자로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다. 국가 문화재에 등재된 극장이라니, 과연 영화의 나라 프랑스답다.

2017년 1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아주 오랜만에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를 봤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두근거리는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나 정말 영화 좋아하는구나’하고 한참을 극장 로비에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영화를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2019년 9월, 르 샹포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두 감독 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별전의 여러 작품 중 내가 방문했던 날의 곧 시작하는 영화가 마침 <안녕하세요>였다. 대로변을 사이에 두고 극장과 마주하고 있는 르 소르본이라는 카페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는데 <안녕하세요>를 보고 나왔던 2017년 1월, 극장 로비에서 느꼈던 설렘이 그대로 떠올랐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중첩되는 기운에 무척 신이 나면서도 묘했다. 길거리를 걷던 이들은 자연스레 극장에 붙어 있는 시간표와 상영작을 확인하고, 발권을 위해 하나둘씩 줄을 서기 시작한다.

오즈 야스지로는 상실과 단절, 결혼과 취업, 삶과 죽음에서 파생하는 관계와 가족 그리고 당대의 삶을 영위하던 일본인들의 일상과 일본(특히 도쿄)의 풍경을 영화에 녹여냈다. 또한 그 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숏 구성, 특유의 촬영과 편집 리듬, 형식미를 추구하던 연출가였다. 1903년 12월 12일에 태어나 60년을 살고 같은 날짜에 타계한 그는 35년간의 활동 기간 중 무려 53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 오즈의 후반작에 속하는 <안녕하세요>(6편밖에 되지 않는 컬러 영화 중 하나다)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1950년대에 접어들며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도 텔레비전이 등장한다. 이웃을 통해 가까이서 보게 된 텔레비전이 갖고 싶은 미노루, 이사무 형제는 집안의 어른들을 향해 침묵의 시위를 시작한다. 이들의 귀여운 항쟁 이후로 벌어지는 엉뚱한 소동극을 통해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상을 그린다. 맥락은 없지만, 언제고 “아이 러브 유”를 외쳐대는 이사무를 보며 절로 띄워지는 미소는 덤이다. 이 영화가 오즈 야스지로의 최고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나뉘겠지만, 인간을 향한 애정과 선의를 잃지 않으며 긍정할 만한 에너지를 전하는 영화라는 점에는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한여름만큼은 아니지만 해가 길고, 적당한 일조량을 자랑하면서도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선선한 9월의 파리는 산책하기에 무척이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파리의 날씨를 마음껏 누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센 강변을 따라 걸으며 퐁네프 다리, 생트샤펠 성당, 노트르담 대성당(전 세계인들이 손 모아 기도했던 2019년 4월의 화재에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한다)을 마음껏 눈에 담은 이후라도 극장을 찾기에 늦지 않았다. 늦은 오후와 저녁 시간에도 카르티에 라탱의 수많은 극장과 영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취향대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운이 좋으면 평소 좋아했던 감독의 특별전과 마주하거나, 국내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유명 감독의 신작이나 도통 극장에서 보기 힘든 고전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다. 적어도 파리에서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리는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마음껏 영화를 관람하기에 최적화된 도시다.

 

Le Champo-Espace Jacques Tati

 

A. 51, rue des Écoles 75005 Paris, France

H. cinema-lechampo.com

T. +33 1 43 54 51 60

We Around Project

내가 사랑한 유럽의 극장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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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나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