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A Long Time

아주 오래갈 이야기
물건연구소 임정주·김순영

7년 동안 친구로 지내던 둘은 1년 반을 연애하고 결혼해 8년 차 부부가 되었다.서로 모르고 지낸 날보다 알고 지낸 날이 더 긴 사이,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가 더 많은 사이. 이들은 친구이자 부부로, 인생의 짝지이자 작업 파트너로 오랜시간 함께했다. 두 사람이 나무라면 거기엔 성실히 원을 그린 겹겹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을 테다. 닿을 듯하면서도 엉키지 않는, 정연한 질서의 둥근 나이테. 순영과 정주가 아름드리나무를 정성껏 가꿔낼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대문 너머

또 다른 세계

홍제천에서 오래된 시장을 지나 오르막길을 숨찰 때까지 오르니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똑똑, 인기척을 보내고 나이 먹은 2층 주택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은은한 조명, 간결한 오브제로 가득한 세상, 바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문 안과 밖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예요. 꼭 시공간을 이동한 기분이네요.

순영: 동네가 좀 오래되었죠? 만나서 반가워요.

정주: 이것저것 직접 만든 것들을 들이면서 집 안이 좀 독특한 분위기가 되었어요. 집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바퀴 둘러보실래요? 1층에는 거실과 부엌, 저희가 작업하는 방이 있어요. 거실은 온전히 쉴 수 있는 무드를 만들기 위해 조도가 낮은 조명만 켜두고 지내죠. 2층으로 올라가면 침실과 화장실이 있는데요. 침실엔 빛이 지나치게 잘 들어서 한낮엔 숨도 못 쉴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라요. 그래서 해가 있을 땐 보통 1층에서 지내고 있어요.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가꾸며 채소를 키우는데, 나름 수확이 잘되어서 가지나 고추 같은 작물로 이것저것 해 먹고 있죠.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 집엔 붙박이장 말곤 가구가 달리 없어요. 기껏해야 책상이나 책장 정도인데 그것도 직접 만든 것들이에요.

 

그러고 보니 가구보단 소품이 훨씬 많네요.

정주: 파티션이나 조명도 전부 저희가 만들었어요. 주로 전시하고 집으로 가져온 작품들이죠. 저는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 손작업으로 제작하고 있는데요. 올해 상반기는 개인전도 단체전도 많아서 작업에 매진하다 보니 정신없이 바빴어요.

 

전시는 임정주 본명으로 하던데, 물건연구소 작업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주: 작가 임정주든 물건연구소든 저희 부부가 함께 하는 작업이에요. 차이가 있다면, 물건연구소는 디자인 스튜디오이고 작가 임정주는 오브제를 만들고 전시하는 역할이죠. 물건연구소가 처음부터 디자인 스튜디오는 아니었어요. 원래 물건을 연구하고 만들어서 판매하는 브랜드였는데, 둘이서 제작부터 공급, 마케팅, 재고, 회계 등을 전부 처리하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브랜드는 좀 뒤에 두고 지금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클라이언트 업무를 하고 있어요. 2018년부터는 물건연구소보단 작가 생활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전시 작업은 작가 임정주와 디렉터 김순영이 큰 축을 이루어 굴려 나가는 작업이에요.

 

디렉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순영: 저는 처음부터 본격적인 작업 파트너는 아니었어요. 정주 씨가 전시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한두 마디를 보태는 정도였는데, 그 작업이 자연스럽게 전시 기획이 되면서 디렉터라는 직함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케이터링 같은 작업까지 담당하며 작가 임정주와 함께하고 있어요. ‘디렉터 김순영’으로 명함도 파줘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됐어요(웃음).

정주: 순영 씨에게 도움받은 부분이 많아서 아예 못을 박아버렸죠(웃음). 순영 씨는 저랑 완전히 다른 프로세스로 사고하는 사람이거든요. 연기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전시를 하나의 시퀀스로 파악해서 공간을 연출하더라고요. 순영 씨의 사고방식은 제가 생각해 낼 수 없는 구조라 항상 제 상상보다 탄탄한 전시가 된다는 게 좋았어요.

 

전시 공간을 시퀀스로 파악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순영: 전시 기획에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오고 10년 동안 연기해 와서 이런 기법들이 익숙하거든요. 배우들은 작품을 준비할 때 연기 동선을 점검하며 대사, 포즈, 표정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데요. 전시에도 이 과정을 도입해서 제가 관객이라는 배우가 되어보는거죠. 전시장 입구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과 그때 느낀 감정부터 출구에 다다르기까지의 모든 걸 세심하게 확인하는 거예요.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데만 해도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스스로 이 모든 걸 하기가 힘들어요. 전문가가 도울 수도 있겠지만, 정주 씨 생각은 제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좋은 시너지가 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정을 넘어서는

우리의 찰나

두 분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들었어요.

정주: 어? 어떻게 아셨어요(웃음)? 저희는 7년 동안 친구였어요. 같은 학교의 시각디자인과,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면서 스키수업 때 처음 만났죠. 딱 4박 5일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내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친해진 사이예요. 당시에는 각자 애인이 있어서 순수하게 친구로 가까워졌어요. 아마 군대에서 여자친구 다음으로 전화를 많이 건 사람이 순영 씨였을걸요?

순영: 군대 얘기하니까 갑자기 속이 갑갑해지네요. 그 당시 정주 씨가 얼마나 어리숙했는지, 연애 상담해 주느라 제가 다 바빴거든요. 친구로 지내는 내내 연애 상담사였어요(웃음).

 

각자 애인이 질투하지 않았어요?

정주: 질투요? 그땐 순영 씨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어서 그런지 질투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순영: 제 남자친구는 싫어했어요. 정주 씨가 군대에서 전화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전화가 올 때마다 ‘군대에 있는 거 맞냐’고 묻고, 여자친구도 있다고 하면 “근데 왜 그래?” 하고 묻고(웃음). 통화 내용은 100퍼센트 연애 상담이었는데요. 정주씨가 나쁜 여자만 만나서 고민거리가 정말 많았거든요.

정주: 근데 이 인터뷰 전 여자친구가 보면 어떡하지?

순영: 결혼했는데 무슨 상관이야? 아니, 왜 이렇게 신경을 쓰지?

 

빨리 화제를 바꿔야겠어요(웃음).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서 연인이 되는 게 새삼스러웠을 것 같은데 어때요?

순영: 저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제 이상형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었는데 정주 씨는 그런 타입도 아니었거든요(웃음). 친구로만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진 시점은… 음, 정주 씨가 유학 가고 한참 못 보다 다시 만난 때 같아요.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밥이나 먹자며 만났는데 뭔가 좀 달라 보이더라고요. 항상 ‘얘를 어쩌니.’ 싶게 물렀던 친군데 해외에서 혼자 생활해서 그런지 어딘가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죠. 처음으로 듬직하다고 느끼면서도 좀 생소해서 ‘어라?’ 싶던 기억이 나요.

정주: 그래서 사랑에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그즈음 순영 씨가 친구 이상으로 느껴졌거든요. 저는 순영 씨랑 친구로 지내는 동안 가까이 지내면서도 대화하는 게 너무 어색했어요. 연기하는 친구여서 그런지 꾸민 듯한 발성이나 목소리 톤, 지나치게 바른 발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거든요.근데 유학 때문에 오래 못 보다 만난 순영 씨에겐 그 느낌이 싹 빠지고 없더라고요.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점이어서 더 그랬을 텐데, 제 눈엔 그 모습이 진실돼보이고 좋았어요.

친구일 때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말,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짜예요(웃음)?

정주: 정말이에요. 미대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여자 친구가 많아서 순영 씨가 유일한 이성 친구도 아니었고…. 물론 다른 친구들보다 편하고 가깝긴 했지만요.

순영: 나도 절대 없었거든! 심지어 정주 씨는 저를 재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대요(웃음). 그땐 지금이랑 스타일이 달라서 화장도 진하고 타이트한 옷에 하이힐까지, 좀 화려하게 하고 다녔거든요. 서로가 선호하는 이성상과는 거리가 멀었죠.

 

이렇게까지 손사래 칠 줄이야(웃음). 가까운 친구에게 대시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순영: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해요. 합의점을 못 찾았죠. 일단은 함께 여행 갔을 때가 기점이 된거 같아요. 유학 중간에 귀국한 정주 씨랑 제주도에 가게 됐거든요. 저는 서로 미묘한 감정이 생겼기 때문에 단둘이 1박 여행을 간다고 생각했는데, 남녀 둘이 여행하면서 아무 일도 없길래 혼자 착각했다고 생각했어요.

정주: 제가 제주도에서 밥도 안 먹고 내내 잠만 잤거든요(웃음).하필 밤을 꼴딱 새우고 여행을 간 거라 너무 피곤했어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너한테 뭘 어쩌려는 게 아니라 정말 피곤하다고, 눈 좀 붙이자고 순영 씨에게 사정했을 정도로요. 하지만 전 그때 이미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도 연애처럼 자연스럽게 하게 됐나요?

순영: 그렇긴 한데, 어떤 부분에선 좀 극적이에요. 저는 정주씨랑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독신주의자였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일찌감치 결혼에 대한 로망을 버렸거든요. 어린 저에겐 가족이 따로 산다는 게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결혼할 맘을 먹게 됐어요?

순영: 정주 씨가 유학할 때 영국에서 3개월 정도 같이 지내게 됐어요. 그때 문득, 아무 사건도 계기도 없이 ‘이 정도면 같이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주: 순영 씨랑 영국에서 지낼 때 테이트모던이나 미술관 같은 델 자주 갔어요.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니 저는 그런 데 관심이 많았죠. 하지만 순영 씨는 평생 연기만 해온 사람이라 생소했을 텐데 저랑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물들어가는게 보였어요. 나중엔 제가 학교에 가면 혼자서도 미술관에 가서 본 작품을 또 보면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서로 영향받고 변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이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순영 씨가 독신주의자인 걸 알아서 굳이 이야길 꺼내진 않았죠. 그래서 같이 살자는 말을 들었을 땐 많이 놀랐어요.

운명이라는 게 진짜 있나 봐요.

순영: 운명이라고 하면 처음 보는 순간 마음이 확 끌릴 거 같지 않아요? 저희는 7년이나 친구였다 보니 ‘네가 내 짝인가…아닌가….’ 하면서 갸웃거렸어요(웃음).

 

그래서 더 운명 같은걸요(웃음). 결혼 준비는 어땠어요?

정주: 아…. 진짜, 진짜 힘들었어요.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들 하는데 해보니까 정말 그랬어요. 처음에는 예물, 예단도 생략하고 집도 함께 마련하기로 했는데 두 집 안의 기준이 점점 달라지더라고요. 저희 집은 부모님이 모두 사업가인데 순영 씨네는 저희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장모님이 계셔서 주변 사람들의 성격도, 연령대도, 시각도 달랐어요.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보태지다 보니 양쪽 기준에 차이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순영: 게다가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죠. 정주 씨네는 불교, 저희 집은 기독교였거든요. 스님들과 권사님들의 시각도 많이 다르더라고요.

정주: 복합적인 문제들이 부풀면서 양쪽 집안의 눈높이는 나날이 달라졌어요.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중심을 잘 잡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이리저리 휘둘리는 통에 제정신이 아니었죠. 부모님께 화낼 일도 많았고, 솔직히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하루에 한 번씩은 부둥켜안고 오열한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나서는 좀 괜찮아졌어요?

정주: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결혼하고도 계속 힘들었어요. 결혼하고 얼마 동안은 부모님이 주신 집에 살아서 어쩔 수 없이 간섭을 많이 받아야 했어요. ‘본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와야한다.’, ‘할머니께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야 한다.’…. 그러다 집안 사정으로 결혼 3년 차에 독립하게 됐는데요.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힘들고 고민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순영: 비록 월셋집이지만 저희가 원하는 집을 구하고 온전히 둘이서만 집 안을 꾸몄어요. 그 과정에서 심적으로 안정되는게 느껴졌죠. 그러면서 부모님들과 거리감도 생겼고요. 간섭이 사라지면서 저희 두 사람은 물론이고 부모님들과도 애틋해졌어요. 이전에 비해 상황은 나빠졌지만 오히려 관계는 끈끈해졌달까요. 이사하는 날 친한 친구가 ‘너희 이제 진짜 독립하는 거야. 축하해.’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아직도 그 말이 잊히질 않아요.

부모님과의 관계는 회복되었고요?

정주: 네. 하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졌어요. 결혼을 해보니까, 결혼 전과 후에 부모님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했다면 이제 ‘내 가정’은 본가 식구들이 아니라 부부가 이룬 새 가족이어야 해요. 저희 경우에는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변할 수 있던 거 같아요. 주체적으로 가지고 올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거든요.

 

평생을 함께한 부모님어서 새롭게 관계 맺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정주: 저는 결혼을 앞둔 주변 사람들에게 ‘착한 자녀는 되지 말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요. 부모님께 나쁘게 굴라는 뜻이 아니에요. 심지 없이 착하기만 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기 때문에 무작정 착하기만 한 태도를 지양하라는 거죠. 결혼했다면 이젠 부부만의 기준을 세워야 해요. 그리고 흔들리지 않아야 하죠. 물론 처음 맞는 국면이기 때문에 부모님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착한 자녀라면 이럴 때 ‘맞춰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흔들리게 될 텐데요. 휘청대지 않고 부모님이 새로운 관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더 단단한 가족이 될 수 있거든요. 저희는 그걸 좀 늦게 깨닫고 실행한 거죠. 사실 제가 좀… 착한 아들이었거든요(웃음).

나란히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순영 씨는 오랫동안 해온 연기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셈인데 혹시… 결혼 때문이었나요?

순영: 전혀 아니에요(웃음). 저희 어머니는 일찍부터 ‘자기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라’고 제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지금껏 제 모든 기준은 ‘김순영’이었죠. 연기도 마찬가지였어요.이 분야는 자기 자신을 어필하는 데 집중해야 해요. 그래서 일이 없으면 저에게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올바른 방법으로 사고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저는 물론이고 가족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게 좀 힘들더라고요. 마지막 작업이 작년 11월에 개봉했는데 그것도 개봉1년 전에 촬영한 거였으니 연기에서 손을 놓은 지 2년 가까이 되었네요. 언제든 하고 싶으면 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정주: 우리나라에는 여자 연기자가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아요.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모두 포함해서 그렇죠. 생각해보면 주인공은 남자 배우인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특히 30대여성은 더욱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아요. 많은 작품이 20대 젊은 여성이나 아예 나이가 많은 여성을 원하는 것 같거든요. 순영 씨는 나중에라도 다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 같은데, 지금 당장은 흥미 있는 일들을 함께 해나가는 중이에요.

 

새로운 역할이 힘들진 않아요?

순영: 저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작업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한 일이라 책임감도 생기고, 새로운 도전이어서 아직은 재밌어요.관객에게 보여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흥미롭고요.

 

작업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순영: 이야기 소재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튀어나와요. 지나가다 우연히 본 미물, 갑자기 맞닥뜨린 관념, 아주 사소한 질문….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그때그때 다르죠.

정주: 순영 씨랑 함께 살게 되면서 연애할 땐 모르던 것들이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를테면 순영 씨가 유난히 접시를 자주 떨어뜨린다는 거? 한번은 이유를 물었더니 손에 접시가 잘 안 잡힌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 손마다 잘맞는 형태의 접시가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50명의 사람 손을 받아 50개의 접시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어요. 그게 바로 저희 첫 작업인 ‘라디우스 프롬 유어 핸드Radius From Your Hand’죠. 어린아이,셰프, 작가, 주부, 부모님, 할머니… 다양한 사람 손에 맞는 접시를 만들어서 전시했는데, 손 모양에 따라 형태가 제각각이란 게 흥미로웠어요. 힘들면서도 뿌듯한 작업이었죠.

 

부부의 일상이 영감이 되다니, 이상적인걸요?

순영: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아요(웃음).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작은 일로도 싸울 때가 있거든요.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결혼 초엔 싸움도 참 시끄럽게 했어요.불꽃 튀게 싸우고 울며불며 화해하곤 했죠. 그러다 결혼 5년차부터는 서로의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 거 같아요.그저 ‘화가 난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감정적으로 해결되는게 있거든요. 24시간 붙어서 일하는 사이니까 일에 지장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존중하려고 애써요. 싸웠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정주: 저는 언젠가부터 싸울 거 같으면 손을 잡아요. 티브이에서 본 방법인데, 손잡고 얘기 나누다 보면 격한 감정이 좀 누그러들거든요. 사실 저흰 성격이 많이 다른 편이에요. 감정을 표현하는 것부터가 그렇죠. 표현에 능숙한 순영 씨랑은 반대로 저는 화도, 눈물도, 기쁨도 표현을 잘 못 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순영 씨한테 “오빠, 지금 되게 스트레스받고 있어. 숨 좀 돌려.” 같은 얘길 들어요. 근데 전 순영 씨가 말해줄 때까지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어요.

 

본인도 못 느끼는 걸 어떻게 알아차리는 거예요?

순영: 제 눈엔 명확하게 보여요. 식습관도 변하고 장 트러블도 잦아지고 말투도 달라져요. 눈치를 못 채는 정주 씨가 신기할 정도죠. 평소엔 제가 뭘 부탁하면 “응, 그래!” 하는데, 스트레스받은 날엔 사각형처럼 덜컥덜컥 넘어가는 게 느껴져요. 해소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저는 감정을 공부한 사람이어서 작은 감정들이 눈에 더 잘 보이는지도 모르겠어요. 어? 잠깐만….

네?

순영: 오요가 방귀를 뀌었나 봐요. 냄새가 너무…. 아우!

 

네(웃음)? 이야기 나온 김에 오요 소개도 들어볼까요?

정주: 얘는 손님 왔는데 웬 방귀를(웃음)…. 오요는 저희랑 함께 사는 네 살배기 까만 푸들이에요. 풀네임은 ‘야어여오요’인데 줄여서 오요라고 불러요.

순영: 오요는 저희에게 식구나 다름없는 강아지예요. 실은 제가 불임이어서 처음엔 아기를 입양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조건이 많고 까다롭더라고요. 당연히 까다로워야 할일이지만 그 당시엔 생각보다 장벽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아직 입양에 충분한 준비가 안된 것 같다는 의미 같아서 보류하게 됐죠.

정주: 그래도 식구를 늘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유기견 분양을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애견숍에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는 강아지를 보게 됐는데 그게 오요였어요. 사람들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만 데려가려고 하니까 상대적으로 큰 강아지는 사료를 줄이면서까지 관리받고 있더라고요. 산책도 제때 시키지 않아서 케이지를 열어줘도 걷는 방법을 몰라 다리가 막 꺾이고…. 그 모습을 보고 두고 올 순 없었어요.데려올 때가 4개월이었는데 벌써 네 살이 돼서는 다리도 이렇게 길어지고 몸집도 훨씬 커졌어요.

 

(오요가 계단에 있는 소품을 건드리지 않고 조심조심 올라간다.) 오요 진짜 영리하네요!

정주: 영리한 게 아니라 겁쟁이라 그래요. 덩치에 맞지 않게 겁이 진짜 많아요. 저 작은 물건들은 주로 순영 씨가 만든 건데, 매일 보는데도 무서워서 좀처럼 못 건드리더라고요(웃음).

 

저 소품들도 직접 만드신 거예요? 이 집엔 두 분의 손을 거치지 않은 물건이 없네요.

순영: 간식을 내어드린 이 나무 그릇들도 다 제가 만든 거예요.저는 주로 작은 물건들을 만드는데, 만드는 과정을 참 좋아해요. 긴 시간 나무 하나를 반복적으로 깎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들거든요. 멍 때리면서 나무가 깎이는 걸 보고 있는 거죠.

 

물건을 직접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순영: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그것말고도 이유는 많아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만든 것도 있고, 판매하려고 만든 것도 있고, 판매하려다가 B급이 되어 집으로 가져온 것도 있고…. 손작업은 조금만 터치를 바꿔도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물건의 결과물을 쉽게 예측할 수 없어요. 그릇으로 만들었는데 화분이 되는 엉뚱한 일도 생기고요.

정주: 나무라는 재료 자체도 변화가 많은 소재예요. 특히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용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재료죠.나무가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걸 ‘에이징 된다’고 하는데, 꼼꼼하게 관리된 나무 제품들은 좋은 컨디션 그대로 에이징 돼요. 그런데 수분에 노출되거나 열을 받거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곰팡이가 슬기도 하고 틀어짐이 생기기도 하죠. 나무야말로 사용자를 닮아가는 재료라고 생각해요.

변한다는 특성 때문에 제작이 좀 까다로울 것 같아요.

정주: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해요. 저는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어서 사용자가 어떻게 쓰느냐를 연구하는 건 당연한 데다가 모든 작업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이거든요. 컵을 예로 들면, 같은 컵이라고 해도 사람 입 모양에 따라 닿는 느낌이나 모양이 달라지니까 보통 어떻게 입을 대고 또 어떻게 마시는지 연구해야 해요. 의자를 만들더라도 기울기를 얼마로 해야 사람들에게 편할지, 흔들림은 있는 게 나을지 없는게 좋을지… 아주 작은 지점까지 고려하게 되죠.

 

사람마다 다른 거라면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가 힘들지 않나요?

정주: 그 기준은 100퍼센트 저희예요. 저희가 만드는 물건은 사람들에게 보급해서 생활을 편리하게 하자는 것보다도 우리 생각을 공유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거든요.

순영: 그래서 그 기준이 더 높기도 해요. 저희가 만든 물건이 곧 저희 취향이니 제 눈에 ‘아, 구려!’ 싶은 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죠.

 

지금까지 선보인 작업이 전부 두 분의 취향인 셈이네요.

순영: 얘기하다 보니 그렇네요. 정주 씨 작업에는 일관적인 덩어리감이 있는데, 저는 그걸 ‘날씬한 돼지’ 같다고 이야기해요. 똥똥한 느낌이 있지만 둔해 보이진 않는다는 점에서요.그런 느낌은 오브제의 각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전체적인 형태에서 풍겨 나오기도 해요. 정주 씨랑 묘하게 닮아 보이기도하고(웃음)….

 

손작업에도 기술이 필요할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만드나요?

정주: 보통 목선반이라는 기술을 활용해요. 영어로는 우드터닝Woodturning이라고 하는데요. 나무 작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술인데, 가로축을 기준으로 둥글게 돌아가는 나무를 칼로 깎아서 모양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목선반은 둘이 같이 배우러 다녀서 더 재밌었죠.

 

어떻게 함께 배우게 됐어요?

정주: 만들고 싶은 형태의 조명이 있었는데 그 외형을 만들기 위해선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거나 목선반을 활용해야 했거든요. 순영 씨에게 목선반이라는 걸 좀 배워보고 싶다고 했더니 “나도 배울래!” 그러는 거예요. 순영 씨는 호기심이 진짜 많아요(웃음).

 

같이 뭔가를 배우는 경험은 어땠어요?

정주: 둘 다 처음 접하는 기술이어서 무엇보다 출발선이 동등하다는 게 좋았어요. 실력에 차이가 없다 보니까 서로의 작업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같은 기술을 배운 건데도 손놀림에 따라 곡선의 형태나 비례가 달라지는 게 흥미롭더라고요.목선반을 하는 데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제가 힘이 더 세서 큰 나무를 수월하게 깎을 수 있다는 것뿐이었어요. 나란히, 동등한 상태에서 뭔가를 할 수 있어서 개인으로서도 부부로서도 즐거웠죠.

이쯤 되니 손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손작업처럼 보이게 하는 컴퓨터 기술도 생기고 있잖아요.

정주: 손작업처럼 보이게 하더라도 그건 결국 컴퓨터의 정교한 작업일 뿐이에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깔끔하게 정돈된 오브제를 만들기에 좋은 방식이에요. 하지만 작업자의 특성이 디테일하게 담긴다는 점에서 손작업이 저에겐 훨씬 매력적이죠. 1밀리미터의 미세한 차이로도 곡선의 느낌이 달라지는 작업이거든요. 한 작업자가 같은 물건을 두 개 만들어도 똑같이 재현할 수 없다는 건 참 신비로워요. 그래서 작업할 때마다 더 신중해지는 것도 좋고요. 제가 초기에 만든 물건 중에 뚜껑과 컵이 딱 맞물리게 작업 된 뚜껑컵이 있는데요. 신기할 정도로 꼭 맞아서 아끼는 작업인데 아무리 다시 해봐도 그것만큼 잘 맞는 컵은 만들어지질 않더라고요.

순영: 요즘은 많은 물건이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소진되는 것 같아요.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니까 막 사용하게 되는 것도 같고요. 그래서 손작업의 아날로그 한 특성에 더 마음이 가는데, 이건 비단 저희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순영: 물건연구소 초창기 때 젓가락 만드는 워크숍을 몇 번 했는데요. 나무젓가락 한 세트는 2천 원 돈이면 쉽게 사는데 5만 원이나 내고 워크숍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이 있었어요.젓가락 한 짝을 만드는 데 3시간 이상이 걸려도 직접 만드는 기쁨을 알아 열심이셨죠.

정주: 젓가락 한 짝을 만드는 데 사포 작업을 다섯 단계나 거쳐요. 성격이 급한 분들은 금방 포기하고 단계를 거듭할수록 대충 하게 되죠. 그런 점에서도 손작업은 만드는 사람의 특성이 담기는 작업이에요. 긴 시간을 거쳐 물건을 완성하고 나면 결과물이 근사하든 그렇지 않든 예쁨 받는데, 그런 걸 보는 것도 좋더라고요.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경험이 특별해서 더 소중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요?

정주: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매일 물건을 기획하고 만드는데도 모든 물건이 소중하거든요. 개중에서 특히 더 예뻐하게 되는 물건도 있고요. 식기를 예로 들자면, 아마 누구나 유난히 자주 사용하게 되는 젓가락이 하나 정돈 있을 거예요. 직접 만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 젓가락에 얽힌 에피소드 때문일 수도 있겠죠. 혹은 손과 형태감이 잘 맞아서, 입에 닿는 감촉이 좋아서일 수도 있을 테고요. 이처럼 사용자들이 느끼는 바를 연구하는 것 또한 저희 일인데, 감정적인 부분을 연구하는 게 순영 씨라면 형태나 기능적인 면을 고려하는 게 저일 거예요.

 

나무만 해도 종류가 다양해서 공부할 게 많을 것 같아요.

정주: 그럼요. 저희는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많은 나무를 사용해 봤는데 여전히 다뤄보지 못한 나무가 수두룩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선 나무를 배우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아요. 똑같은 나무를 다뤄도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는 일본과는 달리,우리나라는 대부분 ‘감’으로 기억해서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받기가 쉽지 않거든요. 어쩌다 나무로 작업하는 장인을 만나도 모든 게 눈대중이라 정확하게 배워오는 게 어려워요. 나무를 어느 정도 크기로 잘라야 하느냐고 물으면 “(검지와 엄지로 간격을 만들며) 이 정도?” 하신다고요(웃음).

순영: 나무 종류도 그래요. 우리나라에선 나무와 관련된 학과에서도 다양한 나무를 다룰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다양한 나무로 작업하고 싶어서 국산목과 해외목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도전하며 지내고 있어요. 한번은 먹감나무라고 쉽게 잘 썩는 나무 하나를 구해다가 톱질한 적이 있는데요. 가르자마자 바퀴벌레가 우수수 쏟아지는 거예요. 으, 그땐 한동안 바퀴벌레와의 전쟁이었어요. 얼마 전엔 사과나무를 갈랐는데 개미가 떼를 지어 나오더라고요. 작업실엔 아직도 처치 못 한 개미 떼가 많아요.

 

저도 나무 보고 싶어요!

정주: 작업실 가보실래요?

함께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일

우리는 함께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에 도착하기 직전, 오요가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늘 이 골목에서 낑낑댄다는 오요. 작업실에 다 온 걸 알아서 우는 걸까, 드라이브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이만큼이어서 우는 걸까? 나무 냄새가 가득한 작업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오요가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간다.

진짜 작업실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개미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조심스러워요.

순영: 개미도 그렇지만 오늘 계속 비가 오다 말다 해서 작업실 상태가 걱정스러웠어요. 물이 새는 데가 있어서 물이 찬 적도 있거든요. 혹시나 했는데 오늘은 무사하네요.

 

물이 차면 나무들은 어떡해요?

순영: 큰일 나죠(웃음). 습기 찬 나무로 작업하면 작업 이후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이미 습기에 길든 나무를 습기가 없는 데로 옮기면 눈에 띌 정도로 심한 변화가 생겨요. 뒤틀리거나 갈라지거나…. 그래서 나무는 관리가 중요해요. 오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내일 작업해야 하고, 내일도 좋지 않으면 모레로 미뤄야 하죠. 이런 특성이 저희가 따로 휴일을 두지 않고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불규칙한 루틴으로 지내다가 쉬는 날이 생기면 해방된 느낌이겠어요.

정주: 집에서도 오일 마감이니 사포질이니 작은 작업을 하느라 그럴 날이 잘 없지만, 어쩌다 하루를 온전히 쉬면 너무 편하고 좋아요. 저희는 물건을 만드는 것만큼 수집하는 것도 좋아해서 쉴 때도 이 물건, 저 물건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옛날에는 여행지에서 잡다한 물건을 사 오는 게 취미였는데 요샌 여행이 어려우니 동묘 같은 델 자주 가죠. 요즘은 동묘에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오고 눈속임하는 장사꾼도 많아져서 분위기가 좀 달라졌지만, 일요일 아침 7시에 가면 희귀한 물건을 제법 만날 수 있어요. 구경하다가 괜히 마음 가는 물건들을 하나둘 사 오곤 하는데 모아놓고 보면 기준도 없고 대중도 없어요(웃음). 아, 수집품은 그쪽에 있는 서랍들에 들어 있는데요. 한 칸씩 열어보세요. 잡동사니가 줄지어 있을 거예요.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네요. 작업은 주로 나무로 하는데 수집하는 물건은 거의 철물 쪽인 거 같아요.

순영: 작업실에 이미 차고 넘치는 게 나문데 거기에 수집품까지 나무면 좀 징그럽잖아요(웃음).

정주: 철물 특유의 아날로그 한 구조를 좋아해서 더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철물은 아무리 봐도 그저 철물이거든요. 손잡이를 예로 들자면, 그건 그냥 손잡이예요. 나사로 고정하는거 말곤 덧대야 할 게 하나도 없죠. 이런 명료한 특징이 좋아서 여행지에선 꼭 철물점에 들르곤 했어요.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 기준에 대해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정주: 예를 들면 색상이요. 우리나라 철물점은 모든 게 백색이고 일본은 아이보리예요. 집을 기본값으로 돌릴 때 기준이 되는 색상인데, 철물점엔 기본 색상으로 된 모든 게 다 있어요. 스위치 커버, 콘센트, 심지어 전기 테이프까지 그 나라의 기본 색상으로 만날 수 있죠. 작년엔 일본 대형 철물점에서 마음에 드는 똑딱이 스위치를 사 왔고 덴마크나 런던에서도 철물을 수집해 왔어요. 가장 그 나라다운 것, 스탠더드를 가지고 오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한 나라의 기준이 철물점에 있다니, 흥미롭네요. 물건을 수집하는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정주: 옛날엔 제 취향껏 수집한다고 생각했는데 긴 시간 모아놓고 보니 저한테 딱히 취향이랄 게 없는 것 같아요. 종류만 해도 철물, 황동, 광물, 호박… 그냥 마음 가는 것들을 사요.경계도 없고 기준도 없죠. 천 원, 2천 원 하는 것부터 가끔은 고가의 물건을 사기도 하고요.

순영: 잡다한 물건도 좋아하지만 유명 작가의 작업 중에 저희 깜냥으로 구입할 수 있는 걸 찾아보는 것도 좋아해요. 작년에 런던에서 사 온 오스트리아 작가 칼 오벅Carl Aubock의 오프너나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조명, 데이비드 멜러David Mellor의 차이니즈 커틀릿 라인 같은 게 그렇죠.

 

전부 오래도록 함께할 물건들 같아요.

정주: 맞아요. 물건을 만들 때도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게 ‘30-40년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거든요. 저희가 구입하는 물건들도 그래요. 큰맘 먹고 구입한 애플의 빈티지 스피커나 앙드레 소르네Andre Sornay가 만든 장 같은 물건은 당연히 그렇고, 2만 원짜리 라탄 테이블도 오래 사용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골랐죠.

순영: 하다못해 전시 때 사용한 나뭇가지도 오래갈 수 있는 건 집으로 가지고 와서 소품으로 활용해요. 간혹 투 머치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정주 씨가 한 번씩 정리해서 버리고요(웃음).

 

시간이 지난 뒤엔 두 분의 공간이 온통 취향으로 가득할 것 같아요.

정주: 저희 꿈은 취향껏 만든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다가 나중엔 집까지 스스로 짓는 거예요. 예전에는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시골에 집을 짓고 싶었어요. 근데 살다 보니 저희는 도시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둘 다 1시간 반이상 이동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전시나 미팅은 주로 도심에서 하다 보니 이동이 일이 되면 안 될 것 같거든요. 나중엔 산과 가까운 도심에 자리를 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집을 만들고 싶어요. 1층에는 좋아하는 가구와 주방을 둘 거예요. 순영 씨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넓은 주방, 그리고 손님을 대접할만한 공간도 만들어서 사람들도 많이 초대하려고요. 2층에는 침실과 옷방, 욕실을 두고 그 위엔 옥상을 마련할 생각이에요. 지금도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지만 그보다 풍성한 텃밭에서 이것저것 더 많은 걸 키워보고 싶거든요.

순영: 무엇보다 형편에 맞게, 버겁지 않은 선에서 완성하고 싶어요.

그 집에서 두 분은 어떤 시간을 꾸려가고 있을까요?

정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우린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니까 서로의 역할을 무 자르듯 자르고 싶진 않아요. 이를테면 “나 빨래했는데 넌 왜 설거지 안 해?” 같은 말은 실수로라도 하지 않으려고요.어떤 대화든 명령이 아니라 부탁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존중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순영: 결혼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 객체로서의 김순영이 사라지는 게 저에겐 늘 아쉬운 점이었어요. 결혼하면 남편이나 가정이 본인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쉽거든요. 아이 낳은 친구들을 보면 아이가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데, 저는 계속 매력적인 하나의 개인 ‘김순영’으로 남고 싶어요. 스스로 저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좋은 배우자가 될 것 같아서요. 김순영과 임정주가 개인으로서도 매력적이어야 둘의 이야기도 매력적일 것 같아요.

그런 매력적인 커플을 알고 있나요?

정주: 요즘 티브이를 자주 보는데 이효리랑 이상순 부부가 참 멋져 보여요.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죠. 각자 영역에서 서로를 존중하되 둘이 함께 있을 때 시너지가 생기는 부부 같아요.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각자의 삶도 보장받는 건강한 관계, 그런 사람들이어서 대중의 시선도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신에 대한 잣대가 철저하고 명확한 그들을 보면서 우리도 개인으로서의 중심을 잘 잡으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꾸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곤 해요.

 

타인의 사랑 이야기는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웃음)? 대화를 끝내기가 아쉽네요. 마지막으로 ‘이 사람과 함께하길 잘했다.’싶은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할까요?

순영: 정주 씨 춤출 때요.

정주: 야! 너(웃음)!

순영: 제 취향을 저격하는 춤이거든요. 저희는 개그 코드가 참 잘 맞아요. 정주 씨가 춤춰줄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정주: 빨리 화제를 돌리자면(웃음), 제 목표 중 하나가 하루에 한 번은 순영 씨를 웃게 해주자는 거예요. 춤을 추게 된 것도 사실… 순영 씨가 웃어서거든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린 시절 보던 동화책은 늘 이렇게 끝이 났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시시하게 만들어버리는 일률적인 결말. 순영과 정주를 만나니 이 싱거운 결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오랜 행복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아마 그땐 어려서 몰랐던 게 아닐까. 그러니 이 대화는 이렇게 끝내 마땅하다. “순영과 정주와 오요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