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111

암스테르담에서 두 번째로 방문한 극장 LAB111. 실험실을 뜻하는 단어 ‘LAB’이 극장 이름에 붙은 것부터 신선했다. 이곳은 빌헬미나 가스투스 병원의 ‘병리해부학실(Lab)’을 개조한 아리 바이오몬드스트리트 ‘111번지’의 복합문화센터다. 2016년 여름에 ‘LAB111’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공간은 두 개의 상영관과 전시실, 레스토랑, 문화 및 사회 프로그램을 위한 스튜디오와 채플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오갈 수 있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동시에 예술적 영감을 주는 환경을 조성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또한 NASA(New Amsterdam Art Space. 새로운 암스테르담의 예술 공간)로 불리며 암스테르담의 예술가와 대중이 만날 수 있는 장소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병원 자리에 만들어진 복합문화센터라니. 태생부터 흥미로운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LAB111의 극장 프로그램은 상상력에 호소하고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영화로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르 영화뿐 아니라 고전과 다큐멘터리 수급을 위해서도 많은 공을 쏟는데,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관객의 환호를 얻더라도 의미 있는 영화를 상영하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컬트 시네마’라 칭하고 있다(컬트영화란 주류 상업 영화에서 벗어나 소수의 영화광에게 지지를 얻는 영화를 뜻한다). 다른 극장과 차별화된 것 중 하나는 복합문화센터 내 레스토랑 ‘스트레인지러브’와 협업한 ’필름 앤 푸드(Film&food)’ 티켓이다. 21유로 50센트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영화 한 편과 식사 한 끼를 제공하는 티켓인데,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홈페이지로 예약하는 걸 추천한다. 식사 시간 외에는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바(Bar)로 이용할 수 있다. 참고로 레스토랑의 이름은 스탠리 큐브릭의 1964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차용했다고.

 

 

내가 방문한 2019년 9월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개봉에 발맞춰 타란티노 특별전이 열렸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극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운 좋게도 그 자리에서 영화와 식사 패키지를 구매할 수 있었다. 관람한 영화는 1997년 만들어진 타란티노의 세 번째 영화 <재키 브라운>. 앞선 두 작품 <저수지의 개들>(1992), <펄프 픽션>(1994)과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영화다. 데뷔작부터 강렬하고 유혈이 낭자 하는 작품을 만들어온 타란티노이기에 전작보다 상대적으로 정적인 이 영화에 대한 평은 다소 엇갈리는 편이다. 나는 <재키 브라운>을 좋아하는 편인데, 영화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역시나!”를 외치게 하는 음악 활용이라 말하고 싶다. 특히나 팜 그리어가 제복을 갖춰 입고 등장하는 롱테이크(영화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 오프닝 신과 보비 워맥의 배경 음악이 압권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 음악을 직접 선곡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음악을 활용해 스토리와 장면의 묘미를 극대화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동일하게 나오지만,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보비 워맥의 ‘Across the 110th street’.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다가온 저녁 시간, 스트레인지러브 레스토랑은 꽉 찬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멋지고 자유로운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무리 지어 웃고 떠드는 암스테르담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홀로 저녁을 먹자니 괜스레 쭈뼛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칸국제영화제 에코백을 멘 내게 칸에 가본 적이 있냐며 먼저 말 걸어오고, 메뉴에 설명을 보태며 추천하고 식사 중간중간 내가 앉은 테이블에 와서 얘기를 나누던 친절하고 다정한 서버들 덕에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타란티노의 최고작이라는 평이 많은 제4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펄프 픽션>의 포스터로 만든 메뉴판을 구경하는 재미는 덤이다. 또한 스트레인지러브의 인스타그램에는 그때그때 LAB111의 상영작에서 바와 음식이 등장하는 장면을 꾸준히 소개하는데, 영화를 보거나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전후에 그들의 게시물을 살피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 같다.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쓴 공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암스테르담에서 조금은 색다른 극장과 레스토랑을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LAB111만큼 완벽한 선택지는 없을 것이라 감히 단언해본다.

 

LAB111

A. Arie Biemondstraat 111, 1054 PD Amsterdam, Netherlands

H. lab111.nl

T. +31 20 616 9994

 

We Around Project

내가 사랑한 유럽의 극장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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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나경 크리에이터